라반장님의 말씀처럼 간신히 이제 "이년"이가 가고 "삼년"이가 왔다.

어느때보다 힘들게 설을 맞이한것 같다. 

지난 11월부터 시작한 강진지역아동센터 공사를 시작으로 설전에 모두 3개의 프로젝트를 완공하였다.

덕분에 설 전전날까지도 현장에서 속을 태워야 했으니 

어느때보다 고생스럽게 설을 맞았다고 할만하다.


3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현장에서 진행하다 보니 힘든부분이 참 많았다.

우선 물리적으로 세곳을 왔다갔다 하는 동선이 힘들었고

덕분에 1월한달을 거의 지방에서 보내야 했다.

하지만 재밌었던 점은 이 세개의 프로젝트가 모두 규모와 성격이 달라 

마치 한곳의 식당에서 특이한 퓨전요리, 기본에 충실한 저렴한 백반, 그리고 달달하고 유치해 보이는 후식까지 

한꺼번에 먹는 듯한 즐거움이 있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기본에 충실한 저렴한 백반'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작년말쯤에 우리에게 저소득층을 위한 정말 저렴한 주택 

즉, Low Cost House 를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전라남도 지역에서 어린이재단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한해에 다섯채이상의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짓고 있는데 그것을 맡아서 해줄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사업(?)의 구조는 대상자가 선정이 되면 그 대상자가 처한 주거상황을 먼저 확인을 하고

각각의 상황에 맞춰 신축이든, 개축이든, 혹은 수리이든 을 결정을 해서 공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프로젝트에 할당된 금액은 약 4000만원. 

이는 그동안의 사업을 통해 찾아진 나름 최대한의, 그리고 공평성면에서 적절한 금액이라고 한다.

4000만원에 집을 짓는다라...

잡지책에 나오는 전원주택이라 불리는 집들의 공사비가 인테리어를 제외하고 평당 500만원에서 

왔다갔다 한다고 주장하니 4000만원이면 약 8평쯤 가능한 금액이다. 

이후 작년에 진행되었던 몇몇 주택을 직간접적으로 찾아보았다.

아무리 넉넉치 못한 예산이라곤 하지만 샌드위치패널로 지어지는 똑같은 모양과

각기 다른 상황의 가족이나 지리적 특성을 배려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 획일적 평면의 집들을 보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적어도 저것보단 더 좋은 집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반드시 해야한다는 책임감이 함께 들었다.

그렇게 해서 Low Cost House series 가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적은 예산을 가지고 

어디까지 우리가 집의 완성도와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인지가 프로젝트의 가장 큰 의미였다.

좀더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비록 최근 집을 짓는 비용을 합리화하고 현실화 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지만

아직도 집을 짓는 비용은 결코 많은 사람들이 선뜻 시작하긴 어려운 수준인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처럼 이렇게 예산이 넉넉치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저렇게 정말 낮은 공사예산의 경우엔 그에 맞는 또 다른 방법들이 모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이점이 우리에겐 이 프로젝트를 해볼만한 가치의 포인트가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첫번째 프로젝트가 전남 보성 벌교에서 지난 1월에 진행되었다.

건축주이자 대상자인 이 집의 주인은 아이가 모두 넷인 부부였다.

이 가족이 살던 집은 지난 12월 화재로 인해 모두 전소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가족중에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그리 넉넉치 못했던 살림에 살림살이가 거의 모두 불타버렸다.

따라서 가족이 한평남짓한 창고를 개조해 살고 있고 이 추운 겨울에 씻고 밥해먹는 등의 물을 쓰는 일을 

모두 밖에서 해야했던 이 가족에게 설이 되기 전에 집을 다시 만들어 주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 이 집을 둘러보았을때 개선되어야 할 세개의 명확한 문제들이 있었다.

첫번째는 매우 불합리한 평면이었다.

집은 약 17평정도 되었었지만 평면이 이상하게 되어 있어 아이들 네명이 두평되는 방에서 생활하고

집의 거실 겸 주방이 복도처럼 쓰이고 실제 복도공간은 창고처럼 쓰이고 화장실을 갈때마다 주방의

불을 켜고 가야하는 평면이었다. 


두번째는 과거 그 언젠가 동네 업자들에 의해 마구 지어져서 단열재도 없이 블럭과 벽돌로 올려놓은 외벽이었다.

건물의 네면중 두면은 약 20mm 스트로폼이 들어가 있었고 두면은 단열재가 아예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집이 겨울에 특히 춥고 빛마저 들지 않아 항상 어둡고 음습하였다.


세번째는 1년내내 집에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집은 북향을 하고있고 남쪽으로는 키큰 대나무숲이 있어서 집이 하루종일 빛을 받지 못했다.

거기다 창문 앞으로 덧붙여놓은 처마로 인해 집 내부로는 더더욱 빛이 들질 않았다. 


이런 세개의, 집이 가져야할 기본요소들이 충족되지 못하는 점들이 이 집을 만난 이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들로 남겨졌다. 

따라서 프로젝트는 이 세개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효율적이고 저렴한 방법들을 

종합적으로 찾아내는 것이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 과정의 하나로 우선은 이 프로젝트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말이 좀 거창했지만 쉽게 말하자면 어깨의 힘을 빼고 툭! 하고 내려놓는 마음가짐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마치 모 오디션프로에서 박진영이 말했듯 어깨와 눈의 힘을 좀 빼고 마음을 좀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이 프로젝트를 대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형태적인 고집, 공간적 고집, 재료적인 고집들을 많이 내려놓으려 했다.

주변에서 자재를 후원하시겠다는 분이 계시면 감사히 가져다 쓰고, 

주변에서 빨리, 싸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가져다 쓰고, 

그렇게 벌교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나 시공방법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문의 크기가 다 다르고 창문의 색과 크기가 다르고 선이 서로 안맞더라도 

그걸 맞추려 고집피우지 않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필요와 공급에 철저히 맞추려 하였다.

단 몇가지의 부분만 빼고.


그중 한가지가 바로 지붕에 대한 것이다. 

이 집이 가진 문제중에 가장 그 답을 찾기가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빛에 대한 것이었다.

1년내내 어두컴컴한 집을 개선하기 위해 빛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여건상 그 방법은 지붕을 통하는 것밖에 없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인 천창이나 중정등은 모두 우리의 예산상 어려운 것들이었다.

따라서 지붕 그 자체를 환하게 하는 것. 그것이 답의 단서였다.

아는 범위에서 열심히 찾아봐도 지붕 그 자체가 밝은 방법, 즉 단열이 되면서 빛이 들어와 환한 지붕.

그런 자재를 찾는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듣게된 뽁뽁이열풍.

뽁뽁이를 단열재로 쓴다는 말에 열심히 기사를 찾아보았다.

흥미로웠다. 

가능해 보였다.

내가 찾고있는 빛과 단열의 대결을 중재해줄 만한 가능성이 있을것 같았다.

그래서 직접 구매해서 만들어 보았다.

음.... 직접 보기도 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고민을 해보니 될것 같았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뮤앤자인건축사무소의 박근수 소장님과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았다.

방수와 여름에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온실효과 등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법을 생각했다.

그렇게 결국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작업자분들께 설명드리기도 힘들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누가 뽁뽁이를 단열재로 쓴다고 들어본적도 없다고 하셨다.

이 지붕의 핵심은 뽁뽁이를 꼼꼼하게 시공해서 지붕에 75겹의 공기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때문에

작업자분들께 열심히 설명드리고 함께 방법을 고민하였다.

다행히 나중엔 잘 이해해 주시고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작업을 열심히, 그리고 훌륭히 시공해 주셨다.


이렇게 해서 공사는 총 다섯분의 시공자 분들과 함께 철거부터 완공까지 총 21일에 걸쳐 진행되었고

시공자 분들의 고생과 희생속에 간당간당하게 설전에 완공식을 하고 입주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이 공사는 이 다섯분의 시공자분들이 없었으면 결코 정해진 예산안에 정해진 시기까지 

마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마치 슈퍼맨처럼 모든 공정을 다섯분이서 다 연결성있게 시공을 해 주셨기때문에 가능했다.

이 집의 진정한 공은 바로 이분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공사를 모두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려고 마지막으로 뵈었던 두부부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 술도 끊고 센터에 다니며 아버지교육도 받고 새롭게 살아 볼랍니다 라고 하시던 

아버님과 농사짓는 딸기를 건네주시던 어머니.

눈물이 날만큼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떠나는 마음이 먹먹했다.

헤어짐이 섭섭해서이기도 하고 정말 앞으로 저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는 마음에서이기도 

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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