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집짓기, 도심 속 주택 살기

가족이 꿈꾼 동화 같은 보금자리

층간소음에서 해방되고, 흙 밝고 하늘 올려다보며 하루를 잔잔히 여닫을 수 있는 집. 저마다의 개성으로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집. 도심에서 주택살이의 로망을 실현한 사람들의 행복한 이야기.

집에는 거실이 따로 없다. 대신 서클의 가운데에 위치한 정원이 거실 역할을 한다. 공기가 머무는 이곳은 향기 정원으로 꾸몄다. 인동덩굴, 허브같이 향이 좋은 식물 위주로 심었다. 가족이 모여 차 마시고, 초록을 가꾸고 흙놀이도 하며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 중심에 있지만 지하철도 아파트도 없는 동네. 바위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감도는 부암동 언덕길에 독특한 외관의 집이 위치해 있다. 길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막다른 골목에 숨어 있는 작은 집. 대나무로 만든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철제 구조물을 이용해 ㅁ자로 연결된 집, 집의 품에 폭 안긴 싱그러운 정원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이곳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호홀리’의 서석준 대표와 애니메이션 감독인 김현주 부부가 지난봄부터 여름까지 애정과 정성을 다해 고치며 완성한 집이다. 

지난해 9월 이사 올 때까지만 해도 세 명으로 단출하던 가족은 5개월 전 태어난 아린이까지 어느새 4식구로 늘었다. 지은 지 70여 년이 다 되어가는 한옥을 개보수해 가족에게 최적화된 보금자리로 만든 부부는 이곳에서 하윤이, 아린이가 마음껏 뛰어놀고 행복한 꿈을 꾸며 자라기 바란다. 부암동 라이프가 시작된 지 이제 1년. 집은 가족을 닮아가고, 네 식구는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는 이 아담한 집에서 오늘도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보수한 한옥채. 오픈형으로 주방과 서재가 연결된다. 서석준 대표는 직접 가구를 만들고, 싱크대를 디자인하여 공장에 의뢰해 제작했다.

두 집을 연결하는 통로인 구름다리는 오픈형 구조의 집에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베란다 기능도 하는 공간이다. 외관을 철골 구조에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로 제작해 시각적으로도 힘을 주었다.

Q 부암동 그리고 70년이 되어가는 한옥,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결혼해서 몇 년간은 아파트에 살았어요. 그런데 나고 평생 자란 친정집이 주택이었던 제게 아파트 생활은 오히려 불편함이 컸어요. 주택이 워낙 편하고 좋았고 남편도 제 의견을 존중해 아파트 생활을 접고 구기동에서 3년간 전세로 주택에 살았어요(엄마).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저는 지금 구 단위의 ‘보육정책위원’으로도 활동 중인데, 인성교육 우수 사례 중 하나로 집 안에서 발뒤꿈치 들기가 소개되는 현장을 보곤 해요. 한참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인데 말이죠.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고, 가족이 평생 살 집이라면 구입해 손을 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 차에 산책길에 우연히 이 집을 만나게 되었어요(아빠). 

Q 처음 집 상태는 어땠나요? 
말하자면 ‘황당한’ 상황이었어요. 1946년에 올린 후 한 번도 갈지 않은 기와는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들 했어요. 공사를 시작하며 집을 들추니 그마저도 기와 한쪽 편이 내려앉았어요. 서까래는 삭아 손만 대도 바스러졌고요. 지붕은 기둥이 아니라 장롱이 받치고 있었어요.

서재 부분은 바닥을 낮게 파고 벤치 의자를 짜넣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게 만들었다.

Q 그래도 이 집을 선택한 이유는요? 
옛 기억을 남기는 작업이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기와지붕을 살리고 창문, 서까래 등을 보존해 본래 한옥의 원형을 잃지 않도록 했어요.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집주이던 할머니가 가꾸시던 마당이 참 예뻤어요. 오랫동안 살아왔던 나무들의 자리 역시 존중하고 싶어 나무가 있는 땅을 피해 집을 냈고요. 실내 공간을 좀 더 확보하진 못했지만, 덕분에 우리 집에는 3개의 뜰이 생겼죠. 

Q 집의 구조가 무척 독특해요. 
원래 집은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 있었어요. 그중 낡아 수명을 다한 사랑채를 현대식으로 새로 지었고, 두 채를 잇는 구름다리를 만들어 집을 하나로 연결했어요. 작은 대문 자리만 빼면 마당을 가운데 두고 전체가 서클처럼 연결된 구조예요. 한옥은 보수를 해 주방과 다이닝룸, 서재 등을 오픈해서 배치했어요. 집 전체는 데크 빼고 20평형 정도예요.

(좌) 김현주 씨는 포토샵에서 원하는 사이즈에 맞게 무늬 타일을 양탄자 모양으로 배치해 윤현상재에 개인 오더로 주문했다. 
(우) 집에서 유일하게 방문이 달린 침실. 슬라이딩 도어로 유연하게 오픈, 분리된다.

파스텔 톤의 스카이 블루로 칠한 널찍한 침실 공간.

Q 설계와 시공은 어떻게 선정했나요? 
공사를 하기 전 7명의 건축가와 미팅을 했어요. 모두 유명한 분들이고 각각의 개성과 매력이 뚜렷했어요. 남편은 7개의 집을 짓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죠. 그중 철학과 예산이 잘 맞았던 젊은 건축가 집단 ‘제이와이아키텍처’와 함께 작업을 했어요. 3명의 소장 중 원유민 소장이 메인으로 설계를 맡아주었는데, 서양식 면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한옥 추녀의 모티브를 살리는 등 그만의 장기를 충분히 발휘해주었어요. 보통은 설계와 시공을 분리하는데, 한 꺼번에 맡겼어요. 

Q 공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리 부부는 집에 대해 원하는 바가 명확했어요. 원래 집의 원형을 살릴 것, 단절 대신 순환하는 구조일 것, 어디에서든 마당을 볼 수 있을 것. 이 세 가지를 우선적으로 꼽았어요. 아파트처럼 방사형 구조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생활 대신 아이들이랑 우르르 몰려다니며 한 바퀴 돌며 노는 집, 또 자연이 함께하는 집을 원했어요.

침실 한쪽, 꽃 정원이 내다보이는 공간은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그림책 작가이기도 한 김현주 씨의 작업실이다. 정원 한쪽에는 귀하게 구한 데이비드 오스틴 로즈를 심었다.

Q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집이 워낙 많이 낡아 있었어요. 다들 저 집이 어떻게 완성될까 궁금해할 정도였으니까요. 썩은 기둥과 보를 대신해 철근 빔으로 구조를 보강하고 기울어진 집을 바로잡았어요. 공사 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졌고요. 가구 등 할 수 있는 것들은 직접 땀 흘려 도전했는데, 서재의 책장만 해도 남편이 사포질하고 디자인 실장님이 커팅하고 작업반장님이 철빔 짜고 소장님이 페인트칠해 만들어진 눈물의 결과물이에요. 창이 많아 창호 공사가 컸는데, 공장에서 직접 짜 맞춰 부속품을 하나하나 달아 만들었어요. 덕분에 비용은 줄일 수 있었죠. 

Q 공간의 쓰임새가 궁금해요.
서클 구조를 만드는데 시작을 어디에서 할지가 고민이었죠. 지금의 대문 자리도 동선을 고려한 고민 끝에 나왔어요. 집은 주방부터 시작되는데, 남향에 있던 원래 부엌의 위치를 그대로 살렸어요. 조리 공간에 이어 다이닝룸이 나오고, 아이들의 놀이터 겸 서재 공간으로 연결돼요. 양옥은 드레스룸과 세탁실, 가족 침실이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이에요. 널찍한 침실은 복층 구조로 만들었는데 2층 다락방은 하윤이의 아지트죠. 양옥은 아이가 자라면 문을 달아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게 염두에 둔 공간이에요.

(좌) 양옥집의 욕실은 건·습식이 나뉘어 있고 세면대는 실내에 노출되어 있다. 작은 집에서 낭비되는 공간을 줄이려는 발상.
(우) 천창이 있는 스파 욕실. 널찍한 욕조는 원하는 사이즈가 없어 홍콩에서 수입해 왔다.

면의 분할을 중첩시키면서 어느 시선에서나 다채로운 표정을 만들어내는 집. 이 집은 색깔을 많이 썼지만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부드러운 핑크, 민트 그린 등의 사랑스러운 파스텔컬러는 모두 김현주 씨가 직접 고른 색. 집 안 전체가 그림 동화 같은 느낌이 난다.

Q 아쉬운 점은 없나요? 
집을 한 번 지어본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안 하고 싶어 한다지만 솔직히 다시 하면 더 잘할 것 같아요. 집 짓고 일본 건축 관련 책들을 다시 보니 자재부터 구성까지 아쉬운 것이 많아요. 비용 절감을 위해 창호도 짜서 제작하다 보니 아귀가 안 맞는 부분이 있고, 마당도 식물을 옮겨 심는 게 훨씬 수월할 수 있었죠. 내부 공간도 더 확보할 수 있고요. 

Q 주택에 살면서 신경 써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아파트처럼 깔끔하게 관리하기 힘드니 적당히 어질러놓고 사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어요.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수납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겨울에 춥지 않으냐고들 많이 물어보시는데, 이 집은 한옥 원형을 살리는 바람에 주방 창문, 욕실 등으로 웃풍이 들어오긴 해요. 겁낼 정도는 아니고, 한겨울에는 비닐을 씌워두니 문제없이 날 수 있을 정도였어요. 창을 곳곳에 내고, 처마가 있으니 오히려 여름에는 시원해요. 실내 적정온도를 지키고, 환기와 통풍을 제때 시키면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어요. 마당이 있어 생활 벌레가 들어오기도 해요. 그래서 주방은 마당과 높이를 맞추고, 서재부터는 위로 단을 올렸어요.

스파 욕실과 연결되는 먹거리 정원. 이전 집에 자라던 감나무를 비롯해 블루베리, 포도, 앵두, 바질 등이 맛있게 자라고 있다. 교통이 불편한 동네의 주택에 사니 마트 나가는 일도 번거로워 이것저것 키워 익으면 따서 상에 올리고 물에도 타 주스 대신 마신다. 주택살이 덕분에 라이프스타일도 친환경적으로 변해가는 중.

공예와 티, 가드닝을 즐기는 엄마, 가야금과 해금을 배우는 아빠,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면서 엄마 아빠의 다양한 취미에도 두루 호기심이 많은 하윤이, 그리고 천사 같은 아기 아린이까지 취향과 애정으로 풍성한 네 식구의 집.

  • + 건축개요
    위치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건축연도 2013년 1월 
    대지면적 187㎡(56.56평)
    건축면적 92㎡(27.83평)
    건축비용 1억 5000만원(대지와 주택 구입 비용 별도) 
    설계 및 시공 제이와이아키텍츠(070-8658-9912, http://jyarchitec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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