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본의 아니게 독립건축가 생존기를 업데이트 하지 못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출판사에서 생존기를 모아서 책을 내보자고 하셔서 그 동안 많지 않은 글이지만

써서 따로 모아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게으른 나머지 글을 꾸준히 쓰지 못해서 출판이 연기되었고,

감사하게도 출판사 대표님의 이해를 구해 그 동안 써온 글들과 앞으로 쓸 글들을 다시 블로그에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독립건축가 생존기는 기본적으로 그때그때의 심정(?)과 생각들을 올리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데

몇몇 글들은 아쉽게도 전에 써둔 글을 올려야 할 듯 합니다.


언제나 하는 변명이지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글을 쓸 마음의 여유도 잘 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갖지 못했던거 같기도 하고 어쩐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히나 가끔 건축주분들께서 '이젠 더 이상 블로그엔 글을 안쓰시나 봐요? 그럴 필요가 없어지신건가?'

하고 질책같은 물음을 하실때면 더더군다나 마음이 캥겨왔습니다.

딱히 그런 목적을 갔고 쓰기 시작했던 것은 아닌데 마치 일이 많아지니 더 이상 필요없어진거 같이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랬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몇몇 글은 과거에 써논 글들을 올리겠지만

앞으로는 가급적 그때 그때의 생각과 푸념과 심정들을 라이브하게 옮기려고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



사무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씩 예전의 프로젝트를 들춰봐야 할 때가 있다.

건축잡지에서 자료를 요청하거나 혹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과거에 했던 프로젝트와 유사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할 때 그렇다.

그래서 과거에 했던 프로젝트의 도면이나 사진 등을 찾다 보면 헛웃음이 난다.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때는 어떻게 이런 도면만 가지고 공사를 할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그 용기가 가상하기도 하고, 등골이 오싹하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경험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사무소를 시작하면 모든 게 다 부족하다.

경험치가 부족하고, 인맥도 부족하고, 자료도 부족하다.

적어도 우리는 그랬다. 한 명은 대형설계사무소에서만 5년을 있었고 한 명은 외국사무소에서만 2년이 채 안되는 기간동안 실무를 했다. 그마저도 한 명은 턴키와 보고서 작업을 주로 하고, 한명은 주로 현상과 초기디자인 작업만 했으니 현장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런 둘이서 사무실을 시작했으니 사무실에 데이터(Data)라고 할게 없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이 건축의 구축과 상세에 대한 교육과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

나두 그랬고 지금 졸업하고 있는 친구들도 그렇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건축이 구축되어지는 과정과 그에 따른 디테일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다.

설령 배웠다고 하더라도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따라해보고 암기해서 시험을 보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디테일에 있어서만 그런 건 아니다. 심지어 구조에 대해 기본적인 원리도 이해하지 못하고 졸업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내가 경험해 본 경우에서는 그랬다).


내가 델프트에서 석사를 시작하고 첫 학기때 가장 난감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스튜디오 설계 제출물 중에 내가 설계한 건물의 상세도를 그려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그 전에 그런 건 그려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내 기억엔) 내가 할 수 있는 건 비슷한 구축방식의 건물 상세를 베껴보고 물어봐서 흉내내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걸 그리면서도 왜 이렇게 구축되는지, 각각의 요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반면 같이 공부하던 유럽의 친구들은 비록 그려온 그림이 내가 흉내내서 그려간 것보다 허술해 보이긴 했지만 본인들이 그려온 것이 정확히 어떤 이유로, 무엇을 그린 건지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친구들은 설계가 바뀌고, 구축방식이 바뀌면 그에 맞춰서 상세도를 수정하고, 추가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지극히 나 개인이 부족해서 그런 경험이 더 크게 와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충격적이었다.

 

그러고 나서 암스테르담에서 일을 할 때도, 그리고 한국에 와서 사무실을 시작했을 때도 많은 상세도 자료들을 보았다.

하지만 직접 시공되는 현장을 본적이 없으니 봐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나는 내가 보고 이해할 수 없는 상세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해를 못하는데 현장에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현장은 언제나 살아있는 생물(?)같아서 끊임없이 변수가 생겨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에 대해 현장에서 알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대처하란 참으로 난간하기 일쑤다.

 

그렇다 보니 우리의 설계는 모두 현장에서 공사가 끝날 때 같이 끝났다. 설계를 시작해서 공사가 진행되고 그 공사가 진행될 때도 설계가 같이 진행되다가 공사가 끝나야 비로서 설계도 같이 끝났다는 의미이다. , 현장이 열리면 그곳에서 모든 걸 봐야했고, 현장 작업자들과 매일매일 협의를 해야했고, 도면을 그리면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했던 것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그러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은 자료를 찾아보고, 저녁에 밥을 사주면서 작업자에게 한 수 배웠다.

현장에서 보고 있으면 내가 그려준 상세도가 얼마나 말이 안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진에서 세 달을 보냈고, 벌교에서 한 달을 살았고, 부암동을 매일 출근했다. 그 이후에도 거의 모든 현장을 매일 가다시피 들락거렸다. 수많은 밤을 지방의 모텔에서 보냈다.


다행히 우리가 그 동안 해 왔던 프로젝트들은 공사금액과 프로그램이 다양한 편이었다.

이는 건물의 크기와 재료와 구축방식과 마감의 정도가 다양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에게 다양한 건축적 환경을 경험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쌓아온 경험들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의 범주에 있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사무실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이 경험치들을 데이터로 만들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업무의 효율성이 늘어날 것이고, 그것이 결국 사무실의 경험치가 되고 역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데이터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여기서의 데이터는 철저하게 경험에 의한 것이었고,

그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온전히 우리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온전히 내 것이라 이해한 내용은

응용을 가능하게 하고,

변형을 가능하게 하고,

다른 것들과의 접목이 가능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나온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프로젝트들을, 때로는 힘들게 했던 프로젝트들도 많았지만, 다양하게 진행해온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 물론 아직도 다른 분들의 작업들을 보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안에서 처음 해보는 재료와 구축방식과 시공방식을 경험해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큰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개개인의 경험이 되고, 그것이 모여 사무실의 역량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것이 좋은 디자인과 상호 호환 될때 사무소가 진정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60404 에 쓴 글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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