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정말 힘든 한달을 보내고 있다.

현상 및 각종 마감과 PT를 포함하니 20일 동안 6개 정도의 행사(?)들을 치르며 5월을 달려왔던 듯 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그렇고 사무실 직원들도 모두들 육체적으로 지쳐있다.


그런 와중에 지난주에는 나름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하루는 제출한 현상에 발표를 하러 갔고, 그 다음날에는 현상에 심사위원으로 심사를 하러 갔다.

하루만에 입장이 뒤바뀌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건 늘상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니 특별하다고 할 건 아니었지만

현상심사를 하는건 처음 해보는 것이라 무척 재미있었다.

또한 같이 심사를 하셨던 분들이 훌륭하신 건축가분들이셔서 

어떤 분위기로 어떻게 심사가 이루어지는지 분위기를 좀 익혀봐야겠다 하는 생각도 했다.


개인적으로 네덜란드 사무실에서 있을때 여러 현상에 참여했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현상을 준비하는 방향은 계획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생기더라도 새롭고, 매력적인 요소를 

만들어 내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좀 무리다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저 무난한 안을 만들도록 하진 않았다.

당시 사무실의 보스는 늘 그런 부분을 잊지 않도록 리마인드를 자주 시켜주는 편이었다.

그렇게 해서 얻었던 현상의 결과는 성공률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한국에 돌아와서 올해에 2개를 연달아 하며 지금까지 총 4개의 현상을 했다.

그리고 어떤 소장님들은 2등을 하는게 제일 좋은 거라고 말씀 하시곤 하시지만 어쨌든 주로 2등을 하며

얼마 되지 않는 상금만 따먹는, 그 소장님들의 말씀에 따르면 최상의, 결과였다

그 중에서 심사과정이나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괜히 했다 싶은 것도 물론 있었지만

아무튼 하는 중에 우리가 가졌던 기본적인 방향은 설령 공모제안내용을 좀 어기더라도

"안이 좋으면 된다" 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검증(?)되지 않은 방향을 갖고 현상을 해오다가 

이번에 현상 심사를 하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그 방향이 유효한지를 확인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물론 현상의 성격과 목표하는 바, 물리적 현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의 성향 등등 무척 다양한 요소가 

고려되어 심사되고 결과가 결정되는 것이니 일반화 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느낀 분위기는 최소한 공공기관에서 발주되는 현상에서는 어쩌면 

우리의 원칙은 절반정도만 유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현상에서 결국 당선을 시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가장 문제가 없는 제출안이었다.

물론 좋은 개념과 문제가 없는 것이 서로 공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기에 당선안 중에서 이 둘을 

모두 만족시키는 안들도 있었다.

다만  이것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즉 개념이 재미있는 안과 여러면에서 가장 문제가 없는 안이 충돌하는 경우

결국 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는 것은 가장 문제가(혹은 문제의 소지가 적은) 적은 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심사위원은 심사를 하면서 좋은 안을 뽑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책임감도 가져야 하겠지만,

더 크게는 여기서 결정된 안을 완성시키기 위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돈과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론 사용자의 입장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하고, 사용함에 있어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이 불편함이란 것의 기준이 곧 우리 사회의 건축에 대한 인식수준이고, 이 불편함이란 것에 대한 기준이

다양해 질때, 우리는 더 다양한 개성의 건축물을 갖게 될 것 이다.

어쨌든 지금 현재 요구되는 발주처와 사용자의 이에 대한 인식에 어느정도는 부합되는(문제가 없는) 안이 결국엔 

뽑히게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기회를 통해 발주처의 고충(?)도 나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고,

심사위원들의 고민도 경험해본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현상을 해야 할까?

아니, 우리는 현상을 왜 할까?


이번에 제출한 사무소들을 보면 같은 사무소가 비슷비슷한 안들을 여러 현상에 제출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당선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선 이해되는 면도 있지만

마치 현상안을 반복생산하고 있다는 느낌을 역시 지울 순 없었다.

현상안을 만드는 것과 당선이 그저 의례적인 행위인 것 처럼.


우리에게 현상은 나름 신성하다.

현상을 한번 하려면 정말 크게 맘을 먹어야 하고, 여러 무리가 따른다.

우리와 사무소 직원들 모두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현상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지금 시기에 할수 있을지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하는 현상이니 우리에겐 그 의미가 크다.


개인적으로 현상은 지금 사무실에서 현재 하고 있지 않은(혹은 할 수 없는) 

스케일과 프로그램을 다루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건축적 사고의 틀을 다양하게 넓히는데 있어 중요한 기회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선 자체가 목표이기 보단

그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안을 만들어 내는 것,

저런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다루어 보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그럼으로써 사무실 능력의 영역이 더 넓고 다양해 지기를 바란다.


현상이 끝나고 당선되지 않은 경우엔 물론 아프다.

그 이유를 이것저것 생각해 보지만 역시나 근본적으론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동시에 현재 진행하고 있는 현장들의 소중함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이 또한 현상의 긍정적 효과가 아닌가 한다. ㅎ


지난 몇달 고생한 사무소 식구들께 감사하며, 

나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실력을 채워갈 수 있도록 더 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다짐한다.


180524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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