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은 지난듯 하다. 매일 아침 사람이 그득찬 지하철을 비집고 들어간지가 아득하다.

그런데 아직 1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지난 주 화요일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으니...

1주일도 안된 시간 동안 사무소 개업준비하랴, 건축주도 만나랴, 건축사 학원도 다니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부분의 시행착오들과 절차들은 곧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그 전에, 지난 5년을 글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다보면, 그 5년이 퇴색되어 버릴 것 같다.
그 시간동안 모두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기억의 수면밑으로 가라앉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
...

포스코센터.
입사할 무렵의 회사는 이 곳 17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포스코센터의 로비는 얼마전 가보았을 때에도 역시나 감동적이다. 설계는 90년대초반, 완공은 95년.
그러나, 현재에도 한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일 정도로 로비와 아트리움의 공간감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그 넓은 로비는 포스코센터가 건립당시 건폐율 관련해 문제가 있었지만, 공공보행의 단서를 달고 허가가 났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이제는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대규모 로비를 만들 수도,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넓은 공간으로 두지 않고, 단체자원봉사, 바자회, 공연, 전시 등 정말 다양하고 요긴하게
사용된다.  변화무쌍한 공간 이용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자 틈틈이 찍어두었던 사진들은 어디에 있는지... -_ -

이 곳 17층에서 야근을 할 때 바라보았던 테헤란로의 모습 또한 그럴 듯한다.
이 시기는 건축이라는 특정한 대상보다는 사회생활 자체를 즐겼다.
그리고 사무실에서는 보고서 참 많이도 썼다. 사무실은 팀제가 아닌 풀제 즉, 프로젝트에 따라서 팀이 새로 구성되고
해체되는 시스템이라 어느 프로젝트든 막내.
보고서, 사례조사 간간이 3D 모델링.
물론 이런 것이 필요없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업무를 하는 능력 또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생각한 건축과 사무실에서 진행되는 건축 그리고 내가 맡아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괴리감은
지금 돌아보면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상 설계를 했다.
이번 현상 설계는 턴키 2개 보고서, 홍보물 맡아서 한 뒤에
지루한 개발 제안서 작업을 하던 차에 제대로 팀을 짜서 시작하는 프로젝트. 남은 기간은 3주.
시간이 많지 않다. 넌 보고서 잘 하니까 보고서 해.
보고서 맡았다.
작업을 하면서도 익숙하게 보고서 목업을 잡고 레이아웃을 잡아가는 모습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마무리 작업을 하고, 출력하고 제출.
떨어졌다. 
그래도 별로 슬프지 않다. 내 것같지가 않으니까. 나는 누군가의 도구이니.

개발 제안서 쓸 때 같이 일 했던 PM.
MXD 프로젝트 합사나가야 하는데 같이 나가자고 꼬신다.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 할 수 있는 기회가 쉽지 않다고 한다. 
공동주택 1500세대, 50층짜리 오피스, 20~30층짜리 주상복합 등.
합사 나갔다. 
이런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은 프로젝트 진행이 어렵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_ -;

발주처가 민간이다보니 특별한 사유 없이 밀어지기 일쑤.  그렇다고 설계사가 나설 수도 없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 금융위기다 뭐다 여건이 악화되면서 사업성 떨어지고...
그러면서 1년 반이 지났다.
그 동안 합사는 선릉에서 안양 범계역 근처로 옮겼다.
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더 없어졌다.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화면에 띄우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남는 시간을 활용해 LEED AP 자격증 땄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될 것 같은 맘이 들어서 도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뭔가 대단한 것 같았지만 2~3개월지나니 약발이 떨어져갔다.
그러다 프로젝트 무기한 홀딩
빈손으로 본사 복귀.

이제는 4년차 대리.
하지만 머릿속은 텅
무언가 트레이싱 페이퍼에 그림을 그리는게 어색해졌다.

그러던중 포스코에서 발주한 포항제철소/광양제철소 실내체육관.
설계랑 시공이랑 같이 한다는 '디자인빌드' 프로젝트
난 광양제철소 실내체육관 팀.
PM은 서울건축 출신, 40대에 IIT로 훌쩍떠나서 학업 마치고 그 해 입국한 인물. 
법규검토 좀 도와달라고 발을 들이며 시작한 프로젝트
약 7개월간 평일11시퇴근. 주말 이틀중 하루는 출근.
발주처나 설계사나 둘다 경쟁적으로 공기단축 외치며 쥐어짜는데
도면치는 설계팀하고 땅파고 공그리치는 시공팀하고 죽을맛.
그런데...
내가 참여했을 때 계획설계 마치고 바로 기본+실시설계 시작하려는 타이밍
PM은 뭐 할줄 아냐?
그 동안 경험이 미천하여 할 줄 아는 것은 보고서나 모델링, 하지만 가르켜주면 열심히 하겠다.
그 때부터 도면 한장한장 배우기 시작함.
동시에...
경영위치 출신 대리형님한테 한수 두수 아니 그 이상을 배움. 배운다기보다 흡입
그리고 나를 멍하게 만들었던 말.
디자인은 니가 생각했던 매스를 만지고 입면을 그리는 것 말고도
공간 안에서 너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너의 수많은 선택들이 공간을 만들어간다.
첨엔 뭣도 모르고 그냥 도면이나 쳐야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경영위치 소장님도 서울건축 출신. PM도 서울건축 출신
그 대리형님도 서울건축의 계파라고 해야하나
여튼 여기 들은 내용 PM도 같이 얘기하니 그렇다고 해야지
이렇게 7개월갈 죽을똥 말똥 하고 나니 눈이 좀 트인다.
이제 5년차.  선배들이 보면 가소로워보이겠지만, 나로서는 굉장한 변화의 계기였다.

이제 실내체육관은 마감공사와 조경공사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데, 
턴키 팀으로 호출.
안양에 무슨 인연이 있는지 다시 안양으로 합사.
팀별 역할 분담.
보고서 담당... -_   -;
내가 그동안 회사에서 쌓아온 이미지 덕이겠지. 
그래도 초반 계획안 잡을 때 머리 짜내면서 아이디어 회의에 임했지만,
프로젝트 나가리. ;;;;

다시 본사 복귀.
여수 엑스포 포스코 기업관 프로젝트 참여
파빌리온이다보니 외형이 둥글둥글 조약돌 같아, 그걸 구현하는게 제일 큰 과제
같은 팀이었던 M은 라이노를 귀신같이 다루는 인물.
나는 라이노 초짜.
나는 대신 예전의 기억을 살려 도면 열심히 그리려고 했는데
건축/구조 통외주
그래야 실행예산이 마이나스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 팀 3명은 보고,관리,3D조형 구축 등.
뭔가 심심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이 때즘 Y와의 작당이 시작되고,
여름 한달을 새로운 프로젝트 구상에 써버리고,

그러던 중
현상설계 투입.
팀에서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이 있는 터라
그래 이거라도 잘 해보자.
그런데 공동주택 현상.
잘 됐다. Y와의 작당 프로젝트도 주거. 하다보니 건축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집인데. 이 사무실은 주거랑 인연이 별로 없는 곳이라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비록 주거형태가 왜곡되어가는 정점에 선 것이 공동주택이라지만,
그 만큼 변화무쌍하게 거주자의 욕구를 충족시켜가는 괴물같은 존재.

현상설계 또 3주정도 남고,
손이 모자라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그리고, 모델링하고, 도집 만들고... 하다보니
당선.
우와.
현상설계 끝나고 다시 여수 팀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했는데
당선되면서 바로 프로젝트 팀 구성되고 팀원으로 들어감
공동주택 진행하면서
주요 포인트도 알게되고, 도면보는 법도 익히게 되고,
한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직까지는) 주거 형태의 여러 단면들에 대해
느끼고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
이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주거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나와 Y의 목표.

그리고 공동주택 한참 쭉 진행되는 동안 결심.
나가야 겠다.
나가서 직접 해봐야 겠다.
그리고 다시 새해

1월8일 만 5년, 6년차 설계 직원에서
현재는 5년제출신, 만 5년 실무경력을 가진, 그리고 건축가가 되기 위한 큰 발돋움을 시작하려는
순간.

...
... 


다시 시작이다!

120207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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