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순서가 좀 바뀌었지만

이번엔 지난 6월에 약 한달동안 진행했던 KOCOM 호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와 관련된 글을 써보고자 한다.


글을 시작하면서 먼저 두가지 질문(혹은 탄식)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혹 이글을 읽을 다른 분들께 드리고 싶다.


첫째는

'건축가로서 사무실을 하면서 들어오는 일에 대한 좋고 나쁨을 판단해야할까?

판단해야 한다면 그 판단은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을까?' 이고

두번째는

'건축계의 생태계가 어디까지 망가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독립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고민을 해본적이 없다.

일이 들어오면 감사합니다~ 하고 해야지,

또 일이 없는 것이 문제지 일이 좋고 나쁨을 판단할 경우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당연했다.

이런 생각에는 사실 어떤 프로젝트가 들어오더라도 설득하고 협력하고 싸우고 협박하고

마지막으로 건축주를 홀려서 잘 만들면 그것이 곧 좋은 프로젝트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어떤 프로젝트건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흥미가 있었다.


그러던 중 건설회사에도 몸담고 계시고 이런저런 사업을 하시는 형님께 호텔리노베이션 관련해

함께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배경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국의 외국인 관광 대호황기를 맞아 오피스를 비지니스호텔로 리노베이션하는 것이었고

'아는 형님' 말씀대로라면 이미 다 얘기가 되서 가져온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프로젝트 규모가 우리가 소화하기엔 쉽지 않은 것이었고

건축주의 성향도 좋은 건축주는 아니었던듯 싶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거의 다 된거나 마찬가지다' 라는 말과

'규모가 되니 하기만 하면 돈은 좀 되겠지' 하는 욕심과

'비지니스호텔은 수요가 많으니 어떻게든 하나만 하면 앞으로 좋은 기회가 또 생기겠지' 하는 김치국물의

유혹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일은 매우 속도감 있게 같이 들어간 '아는 형님'의 노고와 지휘아래 야릇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과정에서 건축주는 물리적으로 매우 짧은 스케줄로 프리젠테이션이나 미팅을 요구했고

그 안에서 우리에겐 주체적인 건축가보단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빠른시간안에 그려내는 역할이 요구되었다.

속도와 효율만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매우 비정상적이고, 우리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진행과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앞서 언급한 세가지 유혹들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질 못했다.

적어도 내 개인적인 욕심에선 그랬다.


그렇게 진행되던 프로젝트는 결국 마지막엔 설계비를 가지고 결정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볼건 다 보고, 의견도 받아보고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돈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건축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의 가치를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주변분들의 의견상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했다.

머 건축주 입장에선 더 싸게 설계해준다는 곳이 있으면 당연히 좋은 일이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동안 겪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인건 바로 여기서 발생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연면적 약 3000 평의 일부 신축을 포함한 호텔 리노베이션.

용역비가 따로 책정되어 있어서 빠진다고 해도 과연 설계비가 얼마가 되야할까.

여기서 우리가 얼마를 생각했는진 쓰지 않겠지만

설계를 해오신 분들이라면 대충 얼마정도 되겠구나 하고 알수 있으실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우린 우리가 제시한 설계비보다 훨~씬 더 싼 설계비를 제시한

어느 알 수 없는 사무소에 밀렸다.


하지만

내가 충격을 받은 건 프로젝트를 못하게 되서가 아니라

그 사무소가 제시한 설계비였다.

3000 만원.

일부 신축을 포함한 3000평 규모의 호텔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 제시한 설계비가 3000만원이다.

정말로 충격이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정말로 저 금액에 가능하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저 금액에 가능한지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화가났다.

한국에서 독립을 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서로 제살 깎아먹기를 해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있는 건축계에, 그리고 이런짓을 하고있는 저 나이많으신 건축가에게 진심으로 화가났다.

생태계를 완전히 망치는 행위이다.


이러니 건축주입장에선 설령 다른 가치를 보려고 해도 도저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제시한 설계비가 몇배가 차이가 난다면 이건 더 이상 게임이 안되는 얘기였다.

저런 금액을 제시한 건축가에게 화가나고,

그 말도 안되는 설계비 뒤엔 분명 골치아픈 일들이 수두룩하게 발생할거라는 걸 보지 못하는 건축주에게도 화가났지만

한편으론 건축주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약 한달여동안 건축주와 미팅도 갖고 협의도 하며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3000만원이라는 금액에 날라갔다.


물론 건축시장에도 여러층의 시장이 존재하고

이건 그 중 하나의 시장에서 발생하는 일이겠지만

참으로 씁쓸한 건축계의 단면이었다.


이런 일이 '그럴 수도 있지' 혹은 '요새 다 그래요' 라는

넌 아직 멀 모른다는 의미의 말로 위로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프로젝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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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을 올린지 정확하게 한달이 되었다.

처음에 기획당시에 일주일에 한번씩 올리려고 했던 글들이 이제는 한달간격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일의 양(일이 많다는 것이지 프로젝트가 넘친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마시길..)이

사람수에 비해 넘치다 보니 글을 쓰는것이 자꾸만 뒤로 미뤄지곤 한다.

좀더 분발해야겠다.


지난 한달동안 무슨일들이 있었는지 생각을 떠올려 보려하니 생각보다 쉽게 떠오르지가 않는다.

매일매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내고 있는데 돌아보면 특징적으로 정리가 안되는 걸 보니

말 그대로 정신 줄 놓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기억을 더듬어 지난 한달을 정리를 해보면

성일이가 합류해서 함께 준비하던 KOCOM 호텔 리노베이션이 건축계의 씁쓸함만을 맛본채 끝나버렸고,

그 동안 몇번의 미팅들을 통해 울릉도프로젝트가 구체화되어 가고 있고

특히나 구조, 방수, 방설 등등의 기술적인 문제들을 풀기위해 고민 가득한 시간들을 보냈다.

여기에 설아가 잠시 합류해 울릉도 유닛의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고 울릉도프로젝트 관련해

Union steel 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접한 '땅집사향'이라는 젊은 건축가분들을 위한 세미나에 가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중에서 KOCOM 호텔 프로젝트에 관해 써볼까 하고 글을 시작했지만

지난번에 이어 두번 연속으로 프로젝트에 관련한 글이 올라가는 것이 너무 딱딱해 보이는 것 같아서

다른얘기를 해볼까 한다.


이 고민은 근래 우리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이며 아마도 사람수가 많지 않은 작은 규모의 사무소들이

한번쯤은, 아니 어쩌면 사무소가 지속되는 한은 항상 직면하고 있을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현재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시작한 순서대로 울산의 구미리교회, 울릉도의 social housing,

곤지암의 주택(이건 이상하게 끝나버렸으나 어쨌든 고민의 당시에 있었으니 이곳에 쓴다),

충남의 3층 주택+상가

그리고 결정되진 않았지만 천천히 준비중인 춘천의 상업건물이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순간이 되서는 둘이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일의 양이 되어버렸다.

이런 경우에 물론 간단하게 사람을 더 뽑으면 된다 라고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이 많아져 그 양을 감당못함을 고민하는 것은 독립을 한 입장에서 미쳐 상상하지 못했던 행복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사람을 쉽게 고용할 수 없는 이유는

쉽게 말해 저 5개의 프로젝트가 모두 넉넉한 돈을 가져다 주는 프로젝트가 아니라는데에 있다.

자세히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도 있고,

충분한 설계비와 프로젝트의 의미 혹은 기회 사이에서 기회비용의 교환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저 중에선 돈이 되는 프로젝트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하지만 그에 상관없이 모든 프로젝트에는  똑같은 정도의 노동력이 들어간다.

더군다나 프로젝트가 어느 깊이상으들어가면 최소한 한명이

두 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깊이있게 고민하고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에 많은 한계가 있다.


여기서 프로젝트와 사람과 수입의 불일치가 발생한다.


이에 더해 현재는 저렇지만 앞으로도 저만큼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한

독립한 작은 사무소에서 staff 를 고정적으로 고용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 아닌가 한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완성도를 잃어버리거나

스스로가 설정한 가치를 담아내지 못한채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각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적어도 지금보단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지 못한다면

그 상황을 경계해야 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네덜란드에 있는동안을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첫번째 방법은 유연한 스케줄의 조정과 재배치에 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동안 나의 경우에도 동시에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종종 있었다.

각 프로젝트당 둘 혹은 셋이서 진행하던 상황에 그건 꽤나 정신없는 상황이 될수 있었다.

하지만 파트너들은 각 프로젝트를 왔다갔다 할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만들어주었다.

가령 A프로젝트에 1주, 다음 B프로젝트에 1주반 그리고 다시 A프로젝트로 1주반 정도 하는 식이었다.

이 경우에 우선 최소한 1주일이면 한 프로젝트에 충분히 몰입해있다가 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된다.

따라서 복수의 프로젝트를 근근히 진행할 수 있다.

또한 의외의 장점은 하나만 오랜시간동안 하는것보다 덜 지루할 수 있고(나의 경우엔 그랬다)

두개의 프로젝트를 하는동안 각 프로젝트로부터 생각지못했던 점들을 발견해서

두 프로젝트 모두에 발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동시에 다른 프로젝트를 하는동안 나의 머리가 두개의 서로 다른 디자인 프로세스를 경험하면서 훈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식의 스케줄관리가 가능했던 것에는 프로젝트 진행의 투명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투명성이란 단어가 완전히 적절한 의미는 아니지만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일정이나 계획이 프로젝트 초기에, 그것도 아주 이해가능한 수준에서 투명하게 만들어지고

공개되어진다는 것이다.(공개라고 해봤자 미리 건축가에게 알려주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는 건축가의 영역이나 역량이 아니라 건축주, 혹은 개발업자의 수준 문제다.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건축가에게 미리 스케줄이 알려지기 때문에

충분히 사전에 스케줄에 맞게 프로젝트를 직원들에게 배치 할 수 있었다.


두번째는 역시나 그때그때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고용해서 함께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매우 이상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여기서의 딜레마 하나는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령 그런분을 찾더라도 비용이 너무 비싸거나 혹은 좀 더 장기적인 계약을 원한다는 것이다.

사실 사무실 입장에서도 가급적이면 장기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분을 찾는것이 이상적이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프로젝트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고정비용을 만드는 것이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 부분은 사무실 시작하던때부터 고민을 하던 부분이다.

현재 작은 사무실을 하시는 많은 분들도 비슷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계신것으로 알고 있는데

프로젝트가 생길때마다 유연하게 모였다 다시 흩어질수 있는 그런 network 혹은 길드와 같은 pool 을

구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프로젝트의 크기와 성격에 맞춰 서로 모여서 진행을 하면서

고정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프로젝트의 소화능력을 향상 시키는 것이고

부차적으로는 그러면서 서로가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받아 상호발전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2월 독립 이후에 이러한 환경의 구축을 위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30대 초반의 우리에게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진행할만한 분들을 찾는것이 쉽지 않고

사실 설계비의 파이가 함께 나눠갖기에 너무 보잘것 없어서 함께 할 것을 제안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 문제는 가급적 프로젝트의 프로세스 과정을 투명하게 가져가도록 건축주와 함께 노력하고

끊임없이 주변의 pool 을 넓혀 가는 방법외에는 현재는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더 지나  다른 방법의 모색 혹은 여기서 언급했던 것의 경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만큼의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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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프로젝트가 이번달 14일부터 18일까지 고려대학교 조치원캠퍼스에서 열리는 패널조립행사를 시작으로 kick-off 됩니다.

그때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기위해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일주일후에 무사히 완성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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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희가 사무소에 합류하였습니다.

이로써 JY에 이어 마지막 'A' 가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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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M 의 김희준 소장님과 함께 곤지암에 자그마한 프로젝트를 위한 사이트를 보러 갔습니다

간김에 양평에 들러 소장님이 사주신 민물고기매운탕도 먹고

마지막으로 egg chapel 에 들러 그 웅장한(?) 자태를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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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 시기에 그 정도 되는 사무소를 그런 상황에서 그만두기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하지만 성일은 이 주렁주렁 붙은 우려들을 단순히 좀더 재밌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별거 아닌듯 과감히 떨쳐내었다.

물론 본인에겐 별거 아닌일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그의 과감한 용기에 응원을 보내고 

또한 언젠간 반드시 부상할 새로운 건축의 시기에 함께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 그의 짧은 글을 소개하며 그의 다음 선택이 무엇이 될지 기다려본다.





-우주의 중심이 대지빌딩 205호에 머물었던, 지난 한 달-


“그만두겠습니다.”

사실,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두 분 소장님을 만나고 여기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은, 짧은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했을 일, 그런데 우연찮게 제가 하게 된, 저에겐 매우 특별한 경험.

지리산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친구에게 온 메세지,
“선배가 하는 사무실이 있는데, 전인적인(?) 인간을 원해.  지금 당장 하는 거 없으면 해볼래?”
“전에 있던 사무소와는 극과 극인데?  무엇이든 해보는 게 좋겠지?  가볼게.”

그렇게 시작한 일이 한 달이 되었습니다.  

JYA-rchitects에 오게 된 것은 분명히 행운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었고 경험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동시에 맡았던 일이 잘 되지 않은 것은 불행입니다.  뛰어난 인재는 주어진 시간이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일을 마무리 짓는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이 일은 사무소 측에서는 ‘손해’이지만, 저에게는 무조건 ‘이득’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지난 한 달을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아가는데 쓸 수 있었으니까요.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저에게 이 소중한 경험은 앞으로 한 달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겁니다.  해 본 것과 안 해 본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니까요.  그 차이를 알기에 이 모씨는 그렇게도 ‘해봤는데’를 연발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상황은 우연의 백만 제곱 정도는 될 것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우주의 중심이 제 주위를 맴돌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 번 경험이 이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누군가의 눈에 ‘실패’로 보이더라도  그 때는 ‘실패’가 아니라 누구도 무시못할 ‘경험’으로 자리잡을 것이라 믿습니다.  거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모래 밭에 조금씩 더 깊은 뿌리를 내릴 것이라 확신합니다.

‘과도한 노동과 적은 보수’, ‘사양 산업’, ‘염가 설계’라는 암울한 말들로 점철된 건축계에, 쓰러지더라도 부러지지 못할 굳건한 나무로 자라날 수 있는 뿌리가 되어주세요.
‘나만 살면 돼’가 아니라, ‘내가 잘되야 내 후배들도 나를 보고 따라오지’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던 그 모습, 몇 년 뒤에도 그대로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뒤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첫 번째 collegue가 된 것을 감사하며,
2012년 7월 11일
박 성 일 드림

추신 : 누군가는 걸음마를 내딛는 갓난 아기로 볼지 몰라도 제 눈에는 무소불위의 전차같았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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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J 와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중에서 어떤게 제일먼저 지어질까 하고 얘기를 하곤 했다.

시기적으로 울릉도 프로젝트가 그리될 줄 알았었지만 1년짜리가 2년짜리 프로젝트로 바뀌면서

그럼 울산 프로젝트가 먼저 되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혹시 이게 내년으로 가면 충청도 어딘가에 지어질 프로젝트가 먼저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 먼저 끝나버렸다.

이 일은 예기치 않게 들어와서는 눈깜짝하는 사이에 끝나버렸다.



이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우선 머리가 아파온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렇고

건축주의 얼굴을 떠올리면 미안하고

또한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글로 정리해야 하나 생각하면 또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적 결론을 내린다면

이 프로젝트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반은 실패했다고 본다.

물리적으로도 우리는 돈을 손해봤으니 실패한 것이고

건축주입장에서는 공사가 끝나고 나서 몇몇 골치아픈일들을 겪었으니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건축주가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다면 심리적으로 나는 실패했다는 느낌을 갖는다.



프로젝트는 인테리어 겸 외부디자인 프로젝트였다.

아는분이 부탁하신 이 프로젝트는 첫 미팅이후 바로 진행되었다. 

건물은 신촌역근처에서 오래사신분들은 대부분 아실만큼 매우 오래된 건물이었고

이 오래된 건물은 관리되지 않아서 물리적으로 너무나도 열악한 상태였다.

이에 더해 건물주와의 (혹은 건물주사이의) 관계도 복잡했고 예산 또한 매우 적은 편이었다.

그에 비해 손대야하는것은 1,2 층외관, 계단, 화장실, 그리고 점포 내부까지였다.


다행히 건축주는 매우 열린분이셨고 한복디자인을 하시는 분 답게 디자인에 대한 존중이 있으셨다.

따라서 전적으로 믿어주시려 하셨고 다른 일련의 간섭도 하지 않으시려 하셨다.

매우 이상적인 건축주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점이 우리의 부주의로 인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지만 말이다.


건축주의 요구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구체적이었다.


'한복집이되 한복집같지 않게 해달라.

모던하고 심플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점포가 작은 크기이지만 홀같은 여유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

그외엔 기타 한복집에서 요구되는 실들이 필요하다.'


앞서도 인테리어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를 적으면서 인테리어 프로젝트가 갖는 장점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한 매력은 바로 이러한 요구를 받았을때 어떻게 이를 담아내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나름대로 

만들었을때 얻을 수 있다.

즉, 속도감 있이, 매우 제한된 조건에서 특별함을 만들어 내는 공간탐구의 기회라는 것이다.

내부적으론 저런 건축주의 요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였고

외부적으로는 어떻게 이 조금은 특별한 한복집에 어울리는 외부디자인을 만들것인가에 집중을 하였다


그 결과에 대한 보고는 다음의 링크에 담겨져 있으니 여기선 보여지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프로젝트 보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우리는 몇가지 관계를 시험, 정립해 보고자 하였다.

(적어도 인테리어 프로젝트에 한해선 작동할 수 있는 관계를 말이다)



그중 첫번째는 우리와 시공자와의 관계였다.

인테리어프로젝트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디자인 이후과정에 있어 최대한 에너지 소비를 아끼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의사소통이 잘 되고 정직한 시공자를 찾아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관계의 시작이라 보고 이 일을 여러업체를 알아보지 않고 알고 지내던 한 업체와 계약을 하였다.

물론 서로에게 충분치 않은 예산이었지만 우리의 이윤을 포기하고라도

시공자에게 최대한 맞춰서 계약을 하고자 노력하였다.

(노력했다라는 말은 시공자가 만족할만큼 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함께 일한 시공자분께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설정은 일정부분 실패했다고 본다.

첫째는 본래 시공과정에서 현장을 찾는 빈도나 기타 수반되는 잔업을 줄여서 우리의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려는

의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거의 매일 가다시피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물론 내 개인적인 성향상 매일 봐야지만 안심이 되는 것도 있었지만 매우 속도감있게 하루하루 달라지는

현장에선 설계자가 보거나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상황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거기서 생긴것이 아니었다.

외장재를 붙일때 외부갈바업체에 색을 포함한 이미지를 넘겨주었다.

그리곤 거의 비슷하게 나온다는 업체의 말만 믿고 도장을 할때 직접 가서 확인하질 않았고

막상 현장에서 색을 칠해온 외부조형물을 보는 순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보라색에 분홍색이 칠해진 조형물들이 외벽에 붙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건축주의 우려와 개인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색의 조형물을 달아둘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떼어다 재도장을 하는 상황까지 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결국 예산을 넘겨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색이 전달되는 과정엔 총 2번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첫번재는 우리가 만든 이미지를 업체로 보내서 출력을 할때다.

이때 이 업체가 무슨 종이에 출력을 하느냐,

어떤 파일형태로 출력을 하느냐 등등의 조건에 따라 우리가 보내준 색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색이 출력되어진다.

두번째 포인트는 이 출력한 종이를 가지고 업체는 다시 도장공장을 찾아가서 출력된 색대로 칠해주기를 주문한다.

이때 도장공장에서는 숙련된 분이 손으로 색을 섞어 가며 눈으로 색을 비교해가면 색을 맞추신다.

바로 여기가 두번째이다.

보통의 경우 두번째보다는 첫번째에서 오류가 발생하고 이 오류는 색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결정적 오류가 되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출력한 색을 가지고 업체에 전달을 해야했고

도장을 할때 공장에 직접가서 확인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오류가 발생할 거라는 예측을 하지 못했고 결국 건축주와 우리 모두에게 불쾌한 상황이 만들어졌었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셈이다.


현장에서 도장아저씨가 수작업으로 조색중인 모습


이 시공자와의 지속적이며 신뢰를 만들어 가기 위한 관계설정에 있어선 

사실 이 프로젝트 이후 다른 프로젝트가 있어서 연속적으로 시공자와 일을 함께 해가면서

관계를 다듬어 갔으면 좋았을 것이었겠지만 그렇지못해 그 효용성에 의문이 남는다.



두번째는 건축주와의 관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건축주는 매우 이상적인 타입이다.

모든것을 믿고 맡길테니 알아서 해달라는 것이다.

이 '알아서 해달라' 가 건축가에겐 굉장히 달콤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그것이 독이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프로젝트를 하는동안 특히 외장에 대해서 우리는 가급적 간판을 작게 만들고 (처음에 아예 안만들까도 했지만)

한복집 자체가, 더 나아가 그 건물 자체가 그냥 하나의 이미지만으로 인식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이 의도를 3D 이미지를 포함해서 건축주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건축주분께 '알아서 해주세요' 라고 말씀하지 말고 꼼꼼히 보시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그때 그렇게 넘어간 일이 결국엔 시공이 되고 나서 문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임은 일견 우리에게도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외장에 칠해진 색이 우리가 원했던데로 100%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주께서도 이 부분을 일전의 미팅에서 간과하셔서 막상 시공되고 나서 당황해하신 측면이 있었다.

또한 간판에 관한 부분도 결국 건축주께서는 규제를 넘기더라도 최대한 큰 간판을 원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설치한 간판을 보시곤 좀 걱정을 하셨다.


이렇듯 건축주가 어느부분에선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지으시면 건축가는 마음이 불편하다.

돌이켜보면 이 문제의 원인은 초반 미팅에 있었다고 본다

초반에 좀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건축주에게 가급적 많은걸 꼼꼼하게 설명하고 얘기하고 의견을 교환했어야 했는데

'알아서 해달라' 는 말에 '알아서 해줘야겠다' 라는 맘으로 답을 했으니 결국 문제 아닌 문제가 생긴것이 아닌가 싶다.


건축을 하면서 언제나 건축주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때로는 서로 얼굴찡그릴때도 있고 서운할때도 있고 아쉬움이 남을때도 있다.

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만 그것이 그 과정에서 서로 충분한 의사소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면

서로가 마음속에선 납득할 수 있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미팅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아쉬운부분이 생긴다면

이는 서로 서운한마음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반드시, 설령 건축주가 지인이기때문에 그럴 필요성이 없다고 판달될지라도,

최대한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지만 이후 결과가 나왔을때 아쉬운 부분이 생기는 걸 최대한 방지할 수 있기때문이다.


특히나 인테리어같은 경우엔 시공속도가 매우 빠르기때문에 사전에 얘기되지 않은 부분을 수정하고

중간에 다시 상의할 여유가 많지가 않다. 혹은 그럴수 있는 타이밍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또 다시 강조하지만 언제나 충분한 의사소통과 의견교환이 중요하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첫번째 결과물이 끝났다.

비록 온전한 건축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모든게 건축이고 디자인이라는 마음으로 진행하였기 때문에

감회도 새롭고  또 아쉬움도 남는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건축주의 얼굴이 떠오른다

처음에 우리에게 찾아왔을때의 얼굴과 프로젝트가 끝났을때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특히나 더 건축주에게 감사드리고 또 미안한 마음도 동시에 든다.

부디 원하던 '한복계의 아이돌' 로서 한복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올 수 있도록 사업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저 한복집이 그 성공의 조력자가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120703 Y






숭인동과 황학동

사무실은 청계천에 면해 있어 주변에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숨어있다.

그 중 사무실에서 슬리퍼를 질질끌고 5분여를 걸어가면 과거 청계천에 있던

풍물시장이 집단이주후 모여서 장사를 하고있는 풍물시장이 있다.

머 누가 설계했는진 잘 모르겠지만 참으로 재미있었을거 같다는 얘기를 하며 둘이서

점심식사후 쏟아지는 잠을 쫓아보고자 산책을 갔다.

풍물시장을 가본 분들은 말 안해도 아시겠지만, 생각보다 무척이나 재미있다.

예전 세운상가 복도나 육교에서나 팔았다던 성인비디오테이프와 만화까지도 그대로 팔고있다.

소소한 구경거리들이 가득차 있다.

마치 숨겨진 다락방을 뒤지는 느낌으로 '아!' 하고 감탄사를 연발케하는 것들을 찾는 재미 또한 솔솔하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램프를 따라서는 1970년대 서울의 사진을 전시 해놓았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옛모습들이다.

가서 한번 보시라.

81년생이상은 공감하실게 많이 있으실거다 :)


120703 이른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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