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말머리 제목에 "2장" 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그렇다고 3장, 4장 이라는 단계를 염두해 두고 있는건 아니지만

공식적으로 "독립" 이라는 것을 했으니 분명 우리는 '준비'라는 제목을 갖던 "1장" 에서 다음단계로 넘어왔음이 분명하다.

어떤 계기가 있어 앞으로 3장 혹은 4장 이라는 쳅터를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계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우선 "2장" 이라고 명명하고 개업이후의 일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애석하게도 개업이후에 글을 자주 쓰질 못했다.

본래는 매주매주 그 생생한 처절함을 쓰고자 하였으나 현재까지는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그다지 처절하지가 않았고

두번째는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을 생중계를 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운면도 있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이 될지 안될지가 불투명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어느정도 윤곽이 들어났을때 쓰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미뤄둔 경우가 있다.




오늘은 개업이후 오늘까지 약 한달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우리가 진행하였던, 혹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중 하나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한다.


한국에 귀국한지 약 3일정도가 되었을때, 존경해 마지않는(?) 김머머소장님께서 신사동에 돈안되는 프로젝트가 있으니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소개를 해 주셨다.


프로젝트는 신사동에 수입유아용품을 위한 flagship store 를 만드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조건은 약 40평의 1층과 그 외부공간을 디자인 하는 것이었고 다행히도

신사동 대로변이 아니라 블럭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이 아늑한 스케일의 골목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소개받았을때 몇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첫번째는 개인적으로 소위 '매장' 인테리어 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에 대해선 흥미가 없었다.

그 이유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J 를 통해서 인테리어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의 진행프로세스를 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굳이 단가를 가지고 경쟁하는 대열에 끼여들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였다.


처음 건축주를 (건축을 하는게 아니니 건축주라는 표현이 맞는진 모르겠고 후에 인테리어쪽에 있는 분과 대화를

하는동안 유심히 들으니 그분은 이런 의뢰인을 '소비자'라 불렀다. 머 어쨌든 우리는 모든것을 건축의 범주로 보고

생각하고자 하니 그냥 그 의뢰인을 '건축주' 라 부르겠다)

만나러 가면서 위에서 언급한 조건의 경우라면 정중히 거절을 하고 오고자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프로젝트는 몇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건축주가 굉장히 많은 레퍼런스들을 보여주면서 "디자인된" 어떤 store를 만들고 싶어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하기 여하에 따라 기존의 유행을 따라가는, 예쁘게 꾸미는데 초점을 둔 매장과 다른 것을 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번째는 예산이 매우 적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건축주가 원하는 것들에 비하면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이는 일반적인 매장으로 가서는 안되는, 디자인된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고

이런 논리로 충분히 원하는 것을 건축주에게 제안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머 개인적으론 예산이 매우 적은 프로젝트에 대해 승부욕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내가 알기로 네덜란드에서는 건축가가 인테리어 디자인, 혹은 인테리어만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는거 같다.

적어도 VMX 에 있는 동안 '인테리어 디자이너' 라는 직업을 가진사람이 따로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이는 주택의 경우 기본적으로 집주인 스스로가 자기집의 인테리어를 시간을 가지고 완성해 간다.

그래서 삐까뻔쩍하진 않더라도 아기자기하고 아늑하고 섬세하게 꾸며진다.

그 집의 인테리어는 집주인의 인간적인 면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외에 공공적인 프로젝트의 경우 적어도 VMX 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건축가가 내부디자인에 대한

컨셉을 잡고 공사가 진행되었다.

이는 건축물의 전체 컨셉과 내부공간은 당연히 일관된 개념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개념의 범주를 넘어서는 스케일의 프로젝트에서는 다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두가지 이유로 프로젝트에 흥미가 생겼고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거의 개업식도 하기 전의 일이다.

이후 디자인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개념을 가지고 디자인되었는지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프로젝트를 보면 다 나와있으니 다시 설명을 하진 않고 여기선 그 뒤얘기들을 하고자 한다.


프로젝트 보기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최종단계에서 지어지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건축주가 가지고 있는 예산이 첫미팅때 얘기했던 것보다 더욱 줄어서이다.

즉, 공사비의, 숫자의 함정에 빠진것이다

건축주가 디자인을 매우 맘에 들어했음에도,

우리에게 양해를 구해 디자인을 좀 수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건축주가 꼭 하고싶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사비라는 숫자의 함정에 빠져서 포기하고 말았다.


여기서 공사비라는 숫자의 함정이라 한 표현을 부연설명을 하자면

어떤 인테리어 공사이든 건축주는 결국 복수의 견적을 받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원하든 원치않든 그 견적을 가지고 공사비를 비교하게 된다.

앞서 우려했던 단가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숫자를 보고 비교를 하는 순간부터 숫자의 함정에 빠진다고 나는 주장한다.


이 경우도 비슷했다. 특히나 건축주의 예산이 굉장히 빠듯했기때문에

건축주입장에서는 많이 싼 숫자를 쉽게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했던 장점이 단점이 되어 돌아온 결과가 되었다.


이 시점에서 사실 우리에게 첫번째 고민의 순간이 있었다.

돌이켜보건데 분명 우리가 강력하게 밀어붙였으면 건축주를 설득시켰을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러하기를 주저했던데에는 매장 오픈 이후의 일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건축주는 분명 우리가 제시했던 디자인과 훨씬 싼가격을 제시한 경우를 두고 매출이라는 측면에서 고민을 하였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제안한 것을 매우 맘에들어했지만 그것이 매출의 증가로 이어질거란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은 물론 우리에게는 있었지만 그것을 증명하거나 보장해줄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좋은 디자인의 매장이 분명 매출뿐만 아니라 매장의 이미지 제고효과, 이슈를 만드는 효과 등등의

가시적, 비가시적 측면에서 분명한 플러스가 있다는 것을 믿지만

그것을 건축주에게 매출이라는,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로, 장담을 해줄 수는 없었다.

매출이라는 것이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것인데 그것을 디자인의 한가지 요소만을 가지고 우리가 주장하기에는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건축주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결정을 건축주에게 맡겨놓은 것이었다.


이후 두번째 고민의 순간이 있었다.

사실 이건 고민의 순간이었다기보다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기로 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단언하건데 우리가 제시한 디자인은 최초 건축주가 원했던 예산의 범위에 들어와 있었다.

(이미 견적서를 가지고 보여줬기때문에 확실하다)

이후 예산이 줄어서 우리는 이 줄어든 예산의 범위에 맞추기위해

건축주와 여러가지 수정들을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이는 수정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디자인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예산이 매우 빠듯했다)

하지만 어떤 프로젝트건 건축주의 예산이 넉넉하지 못한것이 99%이고

이에 맞추어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기때문에 이는 결코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건축주가 다른 터무니없는 공사비를 제안한 공사업체의 경우를 얘기하시는 순간

이 프로젝트는 이미 가격경쟁의 프로세스에 들어갔다는걸 느낄수 있었다.

그 순간이 아주 홀가분하게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순간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해서 프로젝트는 마지막에 와서 좌절되었다.

한편으론 줄어든 예산에 의해 일부가 수정 혹은 포기된채 공사되었을때 과연 우리가 원한 것이 잘 표현되어질수 있을지

그 결과물에 대한 우려도 있었기때문에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아쉬운것은 건축주분과 개인적으로도, 디자인 결과에 대해서도 매우 좋은 관계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숫자의 함정에 빠져 최종 결과를 내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게 남는다. 


이 프로젝트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인테리어" 라고 불리는 프로젝트중 첫번째 경우였다.

(물론 나는 이 또한 건축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진행한다)

처음에 우려했던 것보단 생각할 여지가 많은, 매력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처음에 우려했던 것만큼 프로젝트 프로세스자체가 왜곡된 부분이 많이 있다고 느꼈다.


다만 내부공간의 평면을 짜고 공간을 상상하고 만들어 감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공부가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매우 제한된 여건안에서 "특별함" 을 만들어 내는 공부를 하기에 매우 좋았다.

또한 그 진행이 매우 속도감있게 이루어진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끝으로 비록 우리와 함께 완성해 가지는 못했지만

이자리를 빌어 우리를 믿어주시고 또한 좋은 선물까지 주신 두분 건축주분께 감사드린다.


120406 Y








돌아보니 지난주부터 1주일동안은 사무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마우스를 딸깍거리는 시간보다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닌 시간이 많다.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Y는 바다건너 우산국에도 다녀왔고, 둘이서는 서울, 경기도 그리고 저멀리 울산까지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건축주부터, 공무원, 관련된 사람들, 건축을 이용할 분들, 같이 건축을 만들어갈 사람들...

예전 '큰' 사무소를 다닐 적에는 
진행했던 프로젝트들. 회사가 덩치가 큰 만큼 규모가 커야 실행을 짤 수 있다.
그런 규모의 건축들은 특정한 사람들로 이용자를 한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까지 계속 해왔듯이 통계치 또는 인문 사회적인 자료를 통해 건축가가 '분석'하고 '조정'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많은 작업들을 진행한다. 이른바 삽도.
그러나 건축이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대해서는 빗나가기 일쑤다.

여기서는 이야기를 해줄 사람도 없고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도 없다.

물론 건축가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능력도 없다고 본다.
일정부분은 어느 가정을 통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 이후에는 이용자가 다시 건축가와 피드백을 통해 조정하는 것으로 그 공백을 조금 메울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새버렸는데...

특히나 독립한 후에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프로젝트의 규모에 상관없이
조그만 상가 인테리어부터 social housing까지 그 일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은 
크게 차이가 없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며칠 전 개봉한 '말하는 건축가'의 스틸컷에서 우리가 하루하루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몇 주전 학교에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하신 말씀.
조직생활 하던 사람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인색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왜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해야 하는지하는 생각을 하기 쉽다고,
결론은 그러지 말고 하루종일 가서 이런저런 사람사는 얘기 듣다보면
그것이 다 건축하는 사람에게 돌아오게 된다. 
왜 예전에는 건축가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게 중요하다고 선생님들이 가르치지 않았나 몰라
하면서...

'사람멀미'나더라도 많이 만나고 이야기 많이 들으라 하신다.

 나는 내 스스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입으로 이야기하기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겨했다.
하지만, 한 달간의 싸돌아다닌 결과,
내가 이해한 듣기와 공감하며 듣기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이제 사무소 페인트 칠하고 자리에 앉은지 한달 남짓.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져있고,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그들이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



2012.3.14

J.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 들어오기전부터, 우리가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여는것에 뛰어들기전부터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 우리가 독립할것이라고 널리 알려왔던 바다.

따라서 한국에 들어와서
집, 사무실정리등의 당장 급한 물리적 상황들이 정리가 되고나서
우리는 그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귀한 조언들을 구하고자 하였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분들의 목록을 가지고 리스트를 지워나가듯이
모든분들을 다 찾아뵙고자 한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약속이 잡히는 분들과,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뵙고자 하였다.
앞으로 길게 보고 한분한분 차근차근 보는게 우리가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굳이 독립, 혹은 개업 이라는 부담스러운 단어를 쓰긴 했지만
나는 우리의 이 일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시작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만나는일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머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우선 찾아뵈었던 분들은 학부때부터 가깝게 지내고 있는 선생님들 이다.
한양대학교 노승범 선생님, 서현 선생님, 이정만 선생님.
이미 우리의 이 '작당'을 알고 계셨던 분들이기에 굳이 서론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대개의 경우는 역시나 올해의 건축시장이 가장 않좋은 시기이기때문에 쉽지않을거라는 걱정이셨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젊음을 무기로, 열심히 부딪쳐 나가라는 말씀이셨다.

이 역시나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예상가능한 말씀들이시다.
하지만 똑같은 말과 행동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다가오듯이,
독립을 하려는 상황에서 듣는 그러한 말씀들은 물리적 단어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진심으로 가슴에 와닿는 조언으로 들렸다.

다음으로 뵌분은 이종수 소장님.
개인적으로 네덜란드로의 유학을 준비할때부터 많은 조언과 힘이 되어주신 분이었고
작년부터 독립을 준비할때도 역시나 한국에 올때마다 밥도 사주시고(?) 많은 얘기도 해주시고
또 장기적으로 서로 공존과 공유의 네트워크를 함께 구상하고 계신 분이다.
소장님 역시도 오래전부터 우리의 계획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말씀보다는
사실 앞으로 소장님이 구상하고 계신 일과 우리의 일을 어떻게 연결해 갈지, 서로 어떤 역할을 서로를 위해 할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얘기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지난 여름부터 인연을 맺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해비타트의 유국장님과 백실장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앞으로의 협력에 대해 가볍게 밑그림을 그렸다.
서로가 기다리고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기다리던 만남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개별 프로젝트가 진행될때마다 자세히 소개할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뵌분은 J 를 아끼시는 김실장님의 소개로 만나게된 WISE 건축의 장영철 소장이었다.
얼마전부터 인터넷에서 몇번 기사를 보고 알고있었던 젊은 건축가분인데
생각지 못한 좋은 기회로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넓지않은 건축바닥으로 나온이상 어차피 보게되고 알게될 사이이니
서로가 미리 보고 좋은 인연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편안한 목적에서 시작한 만남이니만큼
토요일 오후 WISE의 사무실에서 가볍게 이루어졌다.

음... '사무실 참 좋다' 가 사무소에 대한 첫인상이었고
'생각보다(?) 성격좋으시네' 라는게 장소장님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처음보는 만남이다 보니 머 크게 이렇다할 얘기가 오간건 아니었지만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역시나 우리보다 좀더 연배도 있으시고 사무소를 시작하신지도 5,6년되시다 보니
그저 말로하지않아도 사무실에서 느낄수 있는 많은 자극들이 있었다.
또한 쉽지 않다고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한명의 독립된 건축가로 살아가는 분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만들어 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장소장님에게서 받은 다른 느낌이라면 굉장히 진솔한 분이라는 생각.
건축을 대하는 것도, 건축주를 대할 때도(보진 못했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하셨다 :), 그리고 프로젝트를 대할때도 그렇고 굉장히 진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에 일하던 VMX 의 파트너와는 다른 방식의 생존방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서운 자신감으로 건축주를 대하고 그 카리스마로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고 주물럭주물럭하는 것과는 반대로
솔직함과 진솔함, 진정성을 무기로 해쳐나가고 계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저 길지않은 대화에서 느낀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사실 우리가 좀더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좀더 구체적인 조언들을 구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은 그저 일반적인 얘기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건 건축주를, 혹은 프로젝트를 만났을때 좋은지 혹은 나쁜것인지를 구분할 수있는
안목이 빨리 생겨야 한다는 것하고 각 프로젝트마다 힘을 줘야 하는 것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건축주, 모든 프로젝트가 좋은 것은 아니고 어떤것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고, 잘 진행이 안될 것이 있고,
설령 다 해서 마친다 하더라도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으로 손해볼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한 안목을 갖어야 하겠다는 절실함을 조금씩 느껴가던 때에 들으니 공감이 되었다.
또한 모든 프로젝트를 다 잘하려고 하지말고 각 프로젝트마다 목적을 달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것은 디자인에 욕심을 더 가져야만 하는것이 있지만 어떤것은 다른 여러 목적에 의해
(때로는 그것이 정치적이될수도 있지만)

탄생되고 진행될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구분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것이지만 충분이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다.


                 
                 WISE 의 장영철 소장님과 POSCO A&C 김동근실장님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너무 조급하게 마음먹지말고 여유를 가지고 하라는 것과
주변에 많은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교류하고 연대하고 공유하면서 공존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나의 경쟁력이 되고 장기적인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주아주 재미있는 말이었다.

주변의 선배건축가분들, 학교의 선생님들을 뵈면서 들은 가장 많은 걱정은
쉽지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말들을 하실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다만 만남을 끝내고 문을 닫고 나올때에는 알 수 없는 자신감에 가슴이 뛰었다.
역시나 남들도 다 쉽게 할 수있는걸 해냈을때보단
남들이 다 쉽지 않을거라고 할때 해내야 재밌는거 아니겠는가.
쉽지 않을 거라고 다들 얘기하기에 그 성취감 또한 클거라는
'근자감'이 생긴다.

어쨌든 만남은 앞으로도 쭈욱!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건축가로서 살아가는 하나의 큰 재미 아니겠는가!

120226 Y


우리의 목표는 2월중순에 사무실 런칭을 하는 것이었다.
이미 사무실 임대는 설 연휴 전날 계약을 했으니, 임대기간이 시작한 터.
그래서 서둘러 사무실 정리를 하고 가구를 들이고 컴퓨터 등 기기를 구입하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처음 켠 날이 2월 13일.
단순히 이 때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라고 하면
이 글을 쓰는 의미가 없다.  다들 알고 싶은 것은 어떻게 준비를 했느냐이다.

후배들이나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들 하는 얘기가 궁금한게 많다고 한다.
우리도 사무실, 다시 말해 전에 대니던 사무실 나와서 새로 출근할 사무실 어떻게 만들까하는
많이 궁금했었고, 누구도 시시콜콜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복잡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일단 나열을 하고,
하나씩 자세히 적으려고 한다.
일반적인 절차는 아니지만, 우리가 겪었던 시간적인 순서대로 적자면...

1. 동업계약서 작성
    동업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는 설레임일 수 있고, 누군가에는 악몽일 수도 있다고 본다.
    나와 Y의 관계는 동업 이전에 같이 학창시절을 보낸 동기이자, 친구이고
    그 연으로 이렇게 작당을 벌일 수 있었지만, 이 관계가 어떤 동기, 어떤 환경에 의해서
    흔들리거나 약해질 수 있는 것이 동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업계약서가 필요하다. 내가 초안을 잡고 Y가 승낙하고 서로 싸인, 인감, 인감증명 첨부 끝.
    
2. 사무실 임대
    사무실 임대에 대한 포스트는 지난 번 Y가 올렸다. 그건 사무실을 고르는 과정이었고,
    이후 날을 하루 잡아서 가계약을 했다. 가계약금 50만원.
    지금 생각하면 굳이 가계약까지 걸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는 집이나, 일할 사무실은 인연이 닿아야 내가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그 때 어떤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나보다 하고 그러려니 한다.
    이제 본계약.
    본 계약시 몇가지 체크사항들을 확인하고 싸인. 송금. 확인증받으면 끝.

3. 사업자 등록
    처음에는 사업자 등록을 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1,2년 동네 노점을 할 것도 아닌데
    그런 것으로 고민말자 했다.
    그런데, Y가 가지고 있는 더치건축사는 국내에서 아직이지만, 곧 EU FTA를 통해 정리가 되겠지만,
    나는 이제 실무 5년을 마치고 나왔으니 건축사가 있을리 만무하고...
    사무실을 나오기전 한 실장님이 이 부분에 대해서 걱정했지만, 다 챙겨서 차리기엔
    우리의 결심이 흐지브지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건축사가 없다면, 다른 업종을 택해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대게 인테리어 쪽으로 많이 선택한다. 비슷한 업종이거니와 
    1~2인 사무실에서 의뢰 받는 일중에 하나가 인테리어 일도 있기에.
    올해 안해 건축사사무소로 등록하는게 목표!
    사업자등록 신청서,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 동업계약서(동업시), 각자 인감증명 가지고 가면 끝.

4. 사업자통장 개설
    회사이름이 빡~! 찍힌 통장을 갖고 싶다는 이유 말고도,
    여러 세무적인 이유로 사업자 통장을 개설해야 한다.
    필요한 서류는 대표자 신분증과 사업자 등록증 사본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의 경우에는 별게 없다. 그냥 만들어준다.
    은행에서 계좌관리도 사업자 등록번호가 아닌 나의 주민번호로 관리한다고 한다.(신한은행의 경우)
    그리고 체크카트 바로 만들고.
    신용카드(법인카드)는 만들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건 아직 고민 중.

5. 세무 관련
    월급명세서에 꼬박꼬박 세금을 떼어 가듯이
    회사를 차렸으면, 매출과 매입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세금을 내야 하는데,
    우리는 경리직원을 당장 뽑기에는 무리.
    그래서 세무사에 맡기자 해서 찾아간 곳이 종로4가에 있던 세무사사무실.
    이것저것 궁금해하던 것 묻다가 기장을 맡기는데 얼마냐고 물으니 월8만
    (기장은 매출,매입 내역을 정리하는 것.)
    그리고 나중에 세금 신고할 때 다시 비용이 발생할텐데...
    일단, 직접 해보자고 마음먹은 상태.
    아직 사무실 규모가 미약(-_ -)하니 챙길 건 별로 없어 일단은 패쓰.

6. 가구 그리고 명함
    사무실의 위치나 건물을 들어올 때의 분위기는 둘째로 치더라도
    내부 분위기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외부의 고객이나 지인들이 찾아올 때의
    우리의 얼굴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개받은 목수를 통해 커다란 원목 테이블 3개를 주문해서 2개는 작업용
    1개는 회의용으로 사용. 의자는 저렴하지만 디자인이 괜찮은 이케아에서 고름
    그리고
    명함. 작년 여름 알게된 시각,텍스트 디자인하시는 분께 통으로 맡김.
    우리도 작업을 하면서 여기저기 외압(?)에 시달리며 디자인이 산으로 가는 경험을 했듯이
    그들의 전문분야에서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통'으로 부탁.
    결과는 사진으로...^^ (아래사진의 바탕은 테이블 상판)

    

                                                                                                                                  Design by 전우찬 

7.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몇 가지.
    - 1인 창조기업 신청 ( 명칭이 이렇다 해도 2인 동업도 가능하다고 하니) : 정리되는대로 다시 포스트 예정
    - 개업식 준비


이상이다.
다음 글부터는 한 가지씩 좀 더 세부적으로 적을 예정.


2012 02 22
J.
     
한국에 돌아와 몸이 몹시나 바쁘다.
개인적으로는 새로 들어가 살집을 정리하는 일이고
공적으로는 사무실을 만드는 것이다.

우선은 사무실이 안정이 되고 준비가 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급한것은 내부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고 책장과 책상 및 테이블을 들이고
컴퓨터 및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중에서 선행되어야 할것은 내부 페이트칠이다.
하루 날을 정해서 둘이서  시작했다.

J 가 페인트칠을 위한 사전작업을 했다.

무척이나 꼼꼼한 그다 ㅋ

날이 너무 추운날이어서 창문을 열수도 안열수도 없는 상황이다.

열면 금새 춥고 안열면 냄새에 질식할 것 같은..


약 하루종일에 좀 모자른 시간동안의 노동끝에 작업을 끝냈다.

세상에 모든 페인트 노동자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허리와 무릎이 하염없이 아프다.

다만 사무실을 칠해간다는 것에, 그리고 확연히 하얗고 깔끔해진 사무실분위기에

큰 보람과 재미를 느꼈다. 한번이라면...ㅎ


청소를 끝내고 미리 주문해 두었던 책장을 받았다.

하얀색의 총 15칸짜리 책장이다.

일산의 가구단지를 뒤져서 10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럼한 가격에 구입했다.



사무실의 책상 및 테이블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할까 하고 고민이 많았다.

이유는 테이블은 구입처와 만드는 방법, 혹은 스타일에 따라서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사무실 책상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책상들은 우선 선택에서
제외를 하였다.
분위기가 곧 일의 능률이라는 모토(?)아래 좀더 자연스러운 책상을 원했다.
그래서 맞춤가구를 알아봤는데 역시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아는분의 소개로 알게된 funnyturemaker 라는 공방을 운영중인
furnituremaker 를 만났다.
젊고 활력넘치고 열정적인 아가씨로 우리의 큰 걱정인 비용면에서도
거의 손해를 보다시피해가며 테이블을 제공해 주시기로 하였다.
미안했다. 거의 협박하다시피했으니.. ㅎ

어쨌든 그렇게 해서 책상용으로 쓸 테이블 두개와 회의용으로 사용할
테이블 한개, 총 3개의 테이블을 주문하였다.

또한 더블어 책상용 테이블의 도착과 시간을 맞춰 친구를 통해 부탁한
컴퓨터를 찾아왔다.
모니터와 본체를 합쳐 100만원정도의 예산에서 최고의 성능으로 맞춰달라고
또 협박을 하였다.

앞서도 말했듯이 우린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흐흐흐

이자리를 빌어 테이블을 협박당한 정리나씨(www.funnyturemaker.com)와
컴퓨터를 협박당해 주문, 조립 및 OS설치까지해준 친구 이제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 사무실도 처음부터 모든걸 다 만들어 놓고 시작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JYA 의 성장과 함께 채워져 가길 바란다.

120213 Y
귀국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귀국을 계기로
지난 네덜란드에서의 시간들을 모두 이곳에 정리하고, 쏟아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동안 간간히 올렸던 글들에서 이미 많이 언급했기도 했거니와
나 스스로도 이곳에서의 생활을 어찌 정리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다만 20대후반에 와서 30대초반까지를 이곳에 있으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이란 혼자서 살아갈수 없다는,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의 나의 삶이란 모든게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어고 지속되어 왔다.
델프트에서의 형님, 누님, 동기, 후배들
암스테르담에서 평생의 연을 맺은 나의 또하나의 맘 과 파더, 그리고 여러분들
VMX 의 고마운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무사히 이시간까지 올 수 있었다.

그들에게, 그리고 주변의 모든이에게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
귀국하는 비행기에 챙겨가야하는 마음이다.

또 하나 네덜란드로부터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여유' 이다.
돌아보건데 네덜란드에서는 시간이 마치 천천히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루 24시간을 쓰는건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천천히 걸으면서, 몇십분이라도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마치 슬로우무비처럼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바라보게 하는 여유가 있었다.
또한 동네를 걷고, 차를 타고 가고, 기차를 타고 가는동안 주변을 관찰하고 느끼고
행복감을 느낀다.

이러한 마음의 여유는 건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고, 다른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멀리 떨어져 전체를 다시금 보게하는
그러한 여유를 갖게 해준다.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에 급급했을때 놓치기 쉬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하나를 하더라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비단 건축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집을 지으면 이들은 여유를 가지고 집을 꾸며나간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완성해 간다는 것이다
한번에 다 만들겠다고 욕심부리지 않는다.
자신이 나이들어 가듯이 집도 함께 완성해가며 함께 나이든다.
이런 여유속에서 그들은 집에 대한, 건축에 대한 철학을 자연스럽게 형성해 간다.

이러한 철학은 무슨무슨 디자인 이론 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책에서 보고 머리로 이해하려는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깊이 네덜란드의 건축에 들어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돌아간다.
바라는 건 지금 이 손에 닿을듯 말듯한 이 느낌들이 한국에 가서도
증발되지 않고 계속해서 내 몸과 마음과 생활패턴에 새겨졌으면 하는 것이다

120201 Y


맘과 파더를 비롯한 암스텔담의 고마운 분들


 

귀국을 한주 앞두고 바젤을 찾았다.

근 4년가까이 유럽에 있는동안
4번의 스위스 여행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건 두번째로 스위스를 찾았을때 였는데
당시엔 차를 빌려서 했기 때문에 다른 세번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로운 여행을 할수 있었다

따라서 일정이나 교통편에 완전히 구속되지 않고 말그대로
길이 있는 곳을 따라 여행을 했다.

그 알수 없는 길들은 지도나 여행책자에는 나와있지 않은
스위스의 알수없는 마을들로 나를 인도하였고
나는 비로소 진짜 스위스의 삶을 만날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풍경들은
단언코 '적어도 스위스에서' 만큼은 유명한 현대건축물들을 만날때보다도
더 감동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건 단순히
'더 이상 이보다 더 아름다울수 없을 것 같은 자연과 인간의 삶의 조화를 체험하는데서 오는 감동'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순전히 건축을 여전히 배우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스위스 현대건축가들의 작품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들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건축언어, 재료의 물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공간에서 느껴지는 담백함.
결코 이러한 감각들은 어느날 갑자기 천재같은 건축가들에 의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듯이 만들어진게
아니다.

그것들은 그들이 어려을때부터 삶을 통해 언제나 함께 해온 그들의 전통의로서의 삶과 건축이
자연스럽게 그들속에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현대적인 모습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왜 Peter zumter는, 왜 헤르조그 앤 드뮤론은 혹은 어떻게 저들은 저런 건물을 잘 만들까 
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은 스위스의 숨겨진 마을들을 찾는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쯤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나에게는 어린시절부터 나와 함께 나이들어온 전통과 생활을 담아내는 공간이 무엇일까?
다행이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 거실이 아닌 안방, 부엌, 사랑채로 둘러쌓인
마당이, 그리고 소파가 아닌 대청마루와 안방의 옷장뒤에 숨겨져있던 비밀스런 다락방에 대한 기억과 몸이 기억하고
있는 공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머리와 손에 깃들어서 건축으로써 투영되어 지지는 못하고 있다.

좀더 넓게 보면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단절되어 버린 우리의 유산이 못내 아쉽다.

이것은 결코 전통을 살리자, 한옥을 살려서 현대건축에 적용해야 된다 라고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그럴수도 있고 안 그럴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과거와 우리가 가진 유무형의 유산에 대한 이해는 분명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건축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시작하는 우리로서는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유심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우리의 얘깃거리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의 '당분간' 은 마지막 여행이 될 바젤여행이 끝났다.

120125 Y

근 한달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
이 글도 벌써 써논지가 한달은 되어버린 글인데 이제서야 이렇게 올린다
보통을 글을 올리기 전에 최소한 오타체크의 이유에서라도 한번은 읽어보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지난밤에 쓴 연애편지가 다음날 아침에 읽으면 유치찬란한 3류시처럼 되버리듯이
왠지 지금 읽으면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지 못할만큼 유치하게 느껴질거 같아서이다.
그저 저 순간에 저 감정을 그대로 이곳에 올리는게 맞을거 같다.


한 달은 지난듯 하다. 매일 아침 사람이 그득찬 지하철을 비집고 들어간지가 아득하다.

그런데 아직 1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지난 주 화요일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으니...

1주일도 안된 시간 동안 사무소 개업준비하랴, 건축주도 만나랴, 건축사 학원도 다니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부분의 시행착오들과 절차들은 곧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그 전에, 지난 5년을 글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다보면, 그 5년이 퇴색되어 버릴 것 같다.
그 시간동안 모두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기억의 수면밑으로 가라앉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
...

포스코센터.
입사할 무렵의 회사는 이 곳 17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포스코센터의 로비는 얼마전 가보았을 때에도 역시나 감동적이다. 설계는 90년대초반, 완공은 95년.
그러나, 현재에도 한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일 정도로 로비와 아트리움의 공간감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그 넓은 로비는 포스코센터가 건립당시 건폐율 관련해 문제가 있었지만, 공공보행의 단서를 달고 허가가 났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이제는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대규모 로비를 만들 수도,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넓은 공간으로 두지 않고, 단체자원봉사, 바자회, 공연, 전시 등 정말 다양하고 요긴하게
사용된다.  변화무쌍한 공간 이용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자 틈틈이 찍어두었던 사진들은 어디에 있는지... -_ -

이 곳 17층에서 야근을 할 때 바라보았던 테헤란로의 모습 또한 그럴 듯한다.
이 시기는 건축이라는 특정한 대상보다는 사회생활 자체를 즐겼다.
그리고 사무실에서는 보고서 참 많이도 썼다. 사무실은 팀제가 아닌 풀제 즉, 프로젝트에 따라서 팀이 새로 구성되고
해체되는 시스템이라 어느 프로젝트든 막내.
보고서, 사례조사 간간이 3D 모델링.
물론 이런 것이 필요없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업무를 하는 능력 또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생각한 건축과 사무실에서 진행되는 건축 그리고 내가 맡아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괴리감은
지금 돌아보면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상 설계를 했다.
이번 현상 설계는 턴키 2개 보고서, 홍보물 맡아서 한 뒤에
지루한 개발 제안서 작업을 하던 차에 제대로 팀을 짜서 시작하는 프로젝트. 남은 기간은 3주.
시간이 많지 않다. 넌 보고서 잘 하니까 보고서 해.
보고서 맡았다.
작업을 하면서도 익숙하게 보고서 목업을 잡고 레이아웃을 잡아가는 모습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마무리 작업을 하고, 출력하고 제출.
떨어졌다. 
그래도 별로 슬프지 않다. 내 것같지가 않으니까. 나는 누군가의 도구이니.

개발 제안서 쓸 때 같이 일 했던 PM.
MXD 프로젝트 합사나가야 하는데 같이 나가자고 꼬신다.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 할 수 있는 기회가 쉽지 않다고 한다. 
공동주택 1500세대, 50층짜리 오피스, 20~30층짜리 주상복합 등.
합사 나갔다. 
이런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은 프로젝트 진행이 어렵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_ -;

발주처가 민간이다보니 특별한 사유 없이 밀어지기 일쑤.  그렇다고 설계사가 나설 수도 없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 금융위기다 뭐다 여건이 악화되면서 사업성 떨어지고...
그러면서 1년 반이 지났다.
그 동안 합사는 선릉에서 안양 범계역 근처로 옮겼다.
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더 없어졌다.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화면에 띄우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남는 시간을 활용해 LEED AP 자격증 땄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될 것 같은 맘이 들어서 도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뭔가 대단한 것 같았지만 2~3개월지나니 약발이 떨어져갔다.
그러다 프로젝트 무기한 홀딩
빈손으로 본사 복귀.

이제는 4년차 대리.
하지만 머릿속은 텅
무언가 트레이싱 페이퍼에 그림을 그리는게 어색해졌다.

그러던중 포스코에서 발주한 포항제철소/광양제철소 실내체육관.
설계랑 시공이랑 같이 한다는 '디자인빌드' 프로젝트
난 광양제철소 실내체육관 팀.
PM은 서울건축 출신, 40대에 IIT로 훌쩍떠나서 학업 마치고 그 해 입국한 인물. 
법규검토 좀 도와달라고 발을 들이며 시작한 프로젝트
약 7개월간 평일11시퇴근. 주말 이틀중 하루는 출근.
발주처나 설계사나 둘다 경쟁적으로 공기단축 외치며 쥐어짜는데
도면치는 설계팀하고 땅파고 공그리치는 시공팀하고 죽을맛.
그런데...
내가 참여했을 때 계획설계 마치고 바로 기본+실시설계 시작하려는 타이밍
PM은 뭐 할줄 아냐?
그 동안 경험이 미천하여 할 줄 아는 것은 보고서나 모델링, 하지만 가르켜주면 열심히 하겠다.
그 때부터 도면 한장한장 배우기 시작함.
동시에...
경영위치 출신 대리형님한테 한수 두수 아니 그 이상을 배움. 배운다기보다 흡입
그리고 나를 멍하게 만들었던 말.
디자인은 니가 생각했던 매스를 만지고 입면을 그리는 것 말고도
공간 안에서 너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너의 수많은 선택들이 공간을 만들어간다.
첨엔 뭣도 모르고 그냥 도면이나 쳐야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경영위치 소장님도 서울건축 출신. PM도 서울건축 출신
그 대리형님도 서울건축의 계파라고 해야하나
여튼 여기 들은 내용 PM도 같이 얘기하니 그렇다고 해야지
이렇게 7개월갈 죽을똥 말똥 하고 나니 눈이 좀 트인다.
이제 5년차.  선배들이 보면 가소로워보이겠지만, 나로서는 굉장한 변화의 계기였다.

이제 실내체육관은 마감공사와 조경공사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데, 
턴키 팀으로 호출.
안양에 무슨 인연이 있는지 다시 안양으로 합사.
팀별 역할 분담.
보고서 담당... -_   -;
내가 그동안 회사에서 쌓아온 이미지 덕이겠지. 
그래도 초반 계획안 잡을 때 머리 짜내면서 아이디어 회의에 임했지만,
프로젝트 나가리. ;;;;

다시 본사 복귀.
여수 엑스포 포스코 기업관 프로젝트 참여
파빌리온이다보니 외형이 둥글둥글 조약돌 같아, 그걸 구현하는게 제일 큰 과제
같은 팀이었던 M은 라이노를 귀신같이 다루는 인물.
나는 라이노 초짜.
나는 대신 예전의 기억을 살려 도면 열심히 그리려고 했는데
건축/구조 통외주
그래야 실행예산이 마이나스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 팀 3명은 보고,관리,3D조형 구축 등.
뭔가 심심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이 때즘 Y와의 작당이 시작되고,
여름 한달을 새로운 프로젝트 구상에 써버리고,

그러던 중
현상설계 투입.
팀에서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이 있는 터라
그래 이거라도 잘 해보자.
그런데 공동주택 현상.
잘 됐다. Y와의 작당 프로젝트도 주거. 하다보니 건축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집인데. 이 사무실은 주거랑 인연이 별로 없는 곳이라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비록 주거형태가 왜곡되어가는 정점에 선 것이 공동주택이라지만,
그 만큼 변화무쌍하게 거주자의 욕구를 충족시켜가는 괴물같은 존재.

현상설계 또 3주정도 남고,
손이 모자라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그리고, 모델링하고, 도집 만들고... 하다보니
당선.
우와.
현상설계 끝나고 다시 여수 팀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했는데
당선되면서 바로 프로젝트 팀 구성되고 팀원으로 들어감
공동주택 진행하면서
주요 포인트도 알게되고, 도면보는 법도 익히게 되고,
한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직까지는) 주거 형태의 여러 단면들에 대해
느끼고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
이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주거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나와 Y의 목표.

그리고 공동주택 한참 쭉 진행되는 동안 결심.
나가야 겠다.
나가서 직접 해봐야 겠다.
그리고 다시 새해

1월8일 만 5년, 6년차 설계 직원에서
현재는 5년제출신, 만 5년 실무경력을 가진, 그리고 건축가가 되기 위한 큰 발돋움을 시작하려는
순간.

...
... 


다시 시작이다!

120207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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