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호 대한건축학회지에

'건축가의 졸업설계' 라는 제목의 특집이 실렸습니다.

거기에 부끄러운 학부졸업설계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학부와 대학원 졸업설계 중에서 어떤 내용을 써볼까 고민하다가,

이번 호 특집 주제에 담긴 의미가

가장 어설펐지만, 동시에 가장 의욕적이었던 그 시기를

돌아보고 소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학부때 작업에 대해 적기로 했습니다.

쓰는 동안 그 시절을 돌아보며,

최대한 사실 그대로를 기억해내려 노렸했는데

역시나 사람의 기억이 그렇듯이

과거의 그 모든 순간들이 찬란하게 왜곡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었던 것 같고,

진지했던 것도 같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많이 가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건축을 지금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이상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세상 일의 전부인 것 처럼 느껴지던 현실적인 고민과 어려움들이 있었겠지만,

지금 돌아보니 건축과 도시를 내맘대로 논하던 그때가 더 낭만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쓰는 동안 재미있었습니다.

졸업설계를 중심으로 관통하던 나의, 혹은 우리의 2006년의 생활들,

오고가며 매일같이 지내던 공간들, 같은 공간에서 웃고 놀고 술마시던 당시의 사람들

그 모두를 떠올려볼 수 있었고, 20대의 중반을 넘어가던,

졸업을 앞두고 가장 고민이 많았던, 하지만 동시에 지금 보면 인생에서

가장 희망찼던 순간을 기억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의 내가 원했던 모습이 지금의 나의 모습과 닮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에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잘 될거라는 막연한 꿈만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그런거 같습니다.

10년 후, 혹은 그 이후 어떻게 될거란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있진 않습니다.

지금도 그저 잘 될거란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하루하루, 한달한달을

정말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 고민과 노력들이 모여, 어떤 길로 우리를 데려다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 길이 결코 나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시 이런 무턱댄 믿음이 낭만이라면,

여전히, 앞으로도 당분간은 낭만적이려 노력하겠습니다!

Y

 

주택이나 작은 상가 등의 소규모 건축물을 설계와 감리를 진행하다보면 마지막 관문이라는 느낌의 과정이 있다.

준공 검사 그리고 그 준공검사를 수행하는 자.

준공 검사는 사용승인 검사를 편의상 준공검사라 부른다. 그리고 준공검사를 수행하는 건축사를 ‘업무대행자’ 또는 ‘특검’이라 부르기도 한다.

누가 언제부터 ‘특검’이라는 용어를 썼는지 그리고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특검은 ‘특별검사자’를 줄여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꾸 특검, 특검 부르면 뭔가 잘못한 것 같고, 주눅드는 느낌이 자연스레 들게 된다. 부르는 말이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바, 굳이 특검이라는 말을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법에는 사용승인의 검사를 담당할 권한이 있는 공무원(허가권자)의 업무를 건축사에게 대행을 시킨다는 의미로 ‘업무대행자’로 명칭을 정한다.[건축법 시행령 제20조] 건축주와 대화하면서 제3자로서 호칭을 할때는 그냥 ‘지역 건축사’ 또는 ‘준공검사 건축사’정도로 애둘러 얘기한다. 특검이라 부르기는 싫고, 업무대행자는 너무 딱딱한 느낌이다.

 

사무소를 시작하고나서 꽤나 많이 사용승인 인허가를 진행해봤고, 그 과정에서 등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쭈뼛쭈뼛한 머리칼을 다잡은 적도 있었고, 반대로 너무나 쉽게 웃으며 준공검사가 마무리된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겪어봤지만 지금도 역시나 정말 적응이 되기 힘든 과정이 바로 준공검사를 받는 과정이다.

 

지난 블로그에서 준공검사에 관한 글을 쓴적이 있다. 그때는 어떻게 하면 준공검사를 능숙하게 잘 받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보고 공유해보고자 하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 글을 쓴게 벌써 4년전의 일이다.

 

그 사이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사용승인 신청할 때 해당지역 건축사회에서 돈을 내라는 소리는 이제 안한다. 이 내용은 지난번 글에서도 쓴 바 있는데, 건축사가 준공검사를 하면서 해당 지자체로부터 법정 검사비를 받는데, 그게 얼마 안되니 지역의 건축사회에서도 별도로 돈을 걷었던 것인다. 이런 행위들은 나중에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받고 조사가 들어가면서 더 이상 이런 행위가 벌어지지지는 않는 것 같다.

또 바뀐게 있다. 16년 7월부터 시행된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감리의 분리이다. 설계,감리의 분리는 설계자가 감리까지 하게 되면 부실이 날게 뻔하니, 감리 법으로 정해서 따로 맡겨야하다는 것인데 이는 건축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의 처절함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러한 법이 지역 건축사들의 압도적인 지지속에서 통과가 된 것이라니, 직능인의 자존심보다는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몇 푼이 더 중요한 것이라니... 그 씁쓸함이란.

여튼, 이러한 법령의 개정으로 해당 지역의 감리는 법적인 지위와 우위를 가지게 되었고, 그 감리비의 계산단가도 보장받게 되었고, 심지어 그 돈을 건축주가 지급했는지도 법으로 정해놓았으니, 그들을 위한 안성맞춤 법안이라 하겠다.

이렇게 쏠쏠한 돈벌이가 되는 감리를 타지역에서 와서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우리 관내 건축사끼리 감리를 나눠먹어야지! 감히 타지역에서 감리를 할 생각을 해! 라는 생각일까?

이런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준공 검사를 받는 소위 특검을 받는 과정을 좀 더 어렵고 복잡하고 힘들고, 귀찮게 만들어서 건축주는 준공을 목전에 두고 설계를 했던 건축사에게 재촉을 하는 거고, 이런 상황속에서 설계자는 특검에게 부탁하고, 조아리고, 뭐하나 실수할까 조바조바하는 게 아니겠는가. 일이 잘못되어 트집이라도 잡히게 되면 몇주간 준공이 늘어지기 쉽상이고 담당 공무원은 알아서 처리하라고 뒷짐이나 지고 있는게 현재의 특검제도이다.

 

작년말과 올해초, 3건의 사용승인을 진행했다.

3건 모두 경기도에 해당되었고, 그 진행사항이 모두 달랐다.

한 건은 뜬금없이 특검건축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초대되어 검사는 뒷전이고, 행사에 참여하여 찬조금도 내고, 나중에는 주말에 그 건축사의 사무실까지 건축주와 같이 찾아가서 검사통과를 승인받았다. 마치 온화하게 베푸는 느낌으로.

 

두 번째는 같이 집을 둘러보고, 여러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시는 건축사를 만나기도 했고, 되려 집에 들어간 스팩이나 인허가방식에 대해서 궁금해하며 물어보시기도 했다.

 

세 번째는 3명의 건축사가 나와서 준공검사를 한다고 미리 얘기를 들은 지역이었다. 3명의 건축사가 나와서 이미 다른 지역에서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던 터라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3명이 나와서 검사를 한게 아니고, 한 명이 나와서 먼저 둘러보고, 일정을 이런저런핑계를 대면서 미루는 행태를 보였다. 이런 상황으로 시간이 2주가까이 지나면서 사무소나 건축주나 이미 인내가 극에 달해있는 터에 담당 주무관에게 하소연을 하게 되었는데, 어이없는 것은 담당 주무관이 자기 관내에서 3명의 특검이 나가서 검사를 하는 것은 처음 듣는 일이고, 자기가 직접 협회에 문의를 해보겠다라는 얘기를 들은 것이었다. 이 무슨 X같은 상황이... 그런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담당 공무원은 서류상 보완나온거 빨리 처리하고 준공내버리자. 자기도 서둘러서 진행하는것을 돕겠다고 나를 위로했으니, 젊은 담당 주무관이 언급하지 못한 그 속의 얽혀있는 관계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첫 번째의 경우는 해당 개인의 이상징후라 보이니 그려려니 하더라도 세 번째의 경우는 뭔가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것이 농후하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2월에 건축사와 건축가를 대표하는 셋의 직능단체가 공동성명을 채택해 각 지자체와 담당 주무관, 지역 건축사에게 배포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단체가 모여서 공동성명을 낼 정도면 그 사이 얼마나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 노골적으로 반복되고 건축주와 설계, 감리자가 피해를 겪어왔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만한다.

 

여기에 공동성명의 글을 덧붙이며, 손에 쥔 한 줌의 알량한 힘을 가지고 완장질하지말고 그 책임과 권한을 올바르게 그리고 정직하게 사용하길 바라며 글을 줄인다.

 

PS.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건축주가 어려움을 같이 공감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위에 겪은 일들 모두 상황을 공감하고 같이 도움이 되기 위해 건축주가 인내하고 같이 노력을 해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20년 1월 1일.

 

올해의 첫번째 글로 어떤 내용을 쓸까 하다가 이 소식을 

첫번째로 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사무소를 하시는 분들은 모두들 그러하시겠지만 

저희도

조금 더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에게 맞춰진 환경에서,

긴 시간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늘 소망해 왔습니다.

 

지금의 그린그린한(정확히는 첨에는 그린그린했던 ;;)

사무실을 만들면서도 그랬지만

늘 목표는 구성원들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을 가능한 능력안에서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이었고,

이곳에서 약 3년을 보내면서 불편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 우리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실현 가능한 노력을 해보고자 하였습니다. 

 

우선 살 동네를 정하고, 조건을 정하고, 건물을 알아보기 시작해서

반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제 JYA Home 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장소를 찾았습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집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혹은 더 일 수도 있고 ㅠ) 공간,

밖에서 이런저런 일들로 힘들더라도 이 곳으로 돌아오면 좀 더 편안할 수 있는 공간,

그런 집 같은 공간, JYA Home.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가장 서툰 돈 계산을 열심히 해야했고,

대출을 알아보고, 그것을 갚기 위한 계획을 세우면서

앞으로의 우리를 예상해보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어떻게, 다가올 긴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우리가 과연 지금의 우리보다, 혹은 지금의 다른 이들보다 더 나아지고

있는가 하는 고민도 함께 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바로 그러기 위해 지금 이러한 변화가 필요한게 아닌가 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변화들을 찾아내려 그 동안도 고민해 왔고,

좀 더 우리에게 맞는 공간,

좀 더 우리에게 편안한 공간,

좀 더 우리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공간을,

좀 더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더 나은 우리를 위해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하기에 비록 부족한게 많지만 

지금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새 집은 지금 사무실에서 그리 멀진 않지만

지금의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환경보다 좀 더 마을스럽습니다.

동네안쪽에는 여전히 주택들이 많이 남아있고, 동네에 작은 소공원들도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천변을 따라 잘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을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탈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 천을 바라보고 면해있는 땅을 찾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했습니다 ㅠ)

새 집에서는 창밖으로 맞은편에 산자락도 볼 수 있고,

1층을 들어서면서는 커피향도 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증축될 3층에는 작은 테라스가 있어, 미팅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 생각을 하다가 

혹은 멍때리면서 밖을 내다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금 더 쾌적한 화장실과, 좀 더 아늑한 작업공간과, 좀 더 개방적인 미팅룸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좀 더 안정적으로

(이렇게 일을 저질러 놓고 이 말이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매번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정말 건축을 조금이라도 더 잘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 발버둥입니다. 

 

아직 계획도 다 못했는데, 

다음달이면 이제 공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아마도 올 전반기는 이 집을 공사하느라고

또한 몸과 마음이 더 고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즐거운 여정이라 생각하겠습니다.

 

부디 지금까지 합정동, 하중동 에서 그랬듯이

이 곳에서도 좋은 일들이 더 많기를 바라고,

올 한해 우리를 비롯한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께도 

건강과 행복이 가득한 2020 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좀 더 자세한 후기는 아마도 올 6월쯤,

공사가 끝나고 이사를 하고 나서 다시한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없는 사무실 살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이 가능하도록

더 많이 애써준 조소장에게 감사!

 

Y

 

 

우리는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를 한다.

최근에는 UNBUILT 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서

계획은 했지만 짓지 못한 것들을 따로 모아 두기도 했다. 

 

그러다 어쨌든 공식적인 사무실 종무식이었던 20일에 서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불연듯 세상에 만들어지지 못할, 그렇다고 심지어 UNBUILT 에도 올라가지 못해

사무실 서버에만 남아있는 두 프로젝트가 눈에 들어왔다. 

 

폴더에 들어가 프로젝트를 다시 쳐다 보며 아쉬움이 깊게 남았다. 

그러다 올해가 가기전에 블로그에라도 올려서 마무리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올해가 지나면 소개하기에도, 다시 떠올리기에도, 그럴 필요도,

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현상설계에서 무려 3개를 내리 2등만 했다.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마지막 모자란 그 한끝이 멀까 라는 고민도 했다.

머 요즘은 2등이 젤 좋은 안이라는 주변 소장님들의, 듣기 좋으라고 해주시는게,

눈에 보이는 위로를 들으며, 나 역시 '우리꺼가 더 낫네' 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며(크크..;;)

그건 그런대로 넘어가면 된다.

 

다만 저것들 외에 2개의 프로젝트가 더 있었는데 

그것들은 법규위반으로 무려 심사도 받지 못하고 심사제외가 되었다. ㅠㅠ

정말이지 머라 할 말이 없고, 누굴 탓할래야 탓할 수도 없었고,

특히 그 중 하나는 심사제외사유를 듣고 나서야 알았으니,

이건 그냥 변명의 여지 없이 무릎을 꿇을 일이었다.

 

어쨌든

하나는 소방차가 학교운동장 내부로 진입할 수가 없게 만든 것이 문제였고,

하나는 무려 건폐율 초과였다.

 

하나는 준비하면서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하나는 중간에 여러번 확인하면서 했는데, 제출 전날에야 

           잘못계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둘다 치명적인 법규 체크 실수였고, 

이런 사유로 한달이 넘는 동안 여러명이 힘들여 작업한 결과물이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제외가 되는 상황은 너무나 아픈 결과였다.

 

현상설계라는 것이 얼마든지 당선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럴 확률이 훨씬 더 일반적이고 높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당선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생각한 것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마지막에 가서 당선이 되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알아야 그 과정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그 실패가 다음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끝나버리면 

준비하는 동안 하나의 안을 결정하기 위한 과정에서 우리가 했던

수많은 판단과 선택들이 충분히 날카롭고 타당했는지 검증받을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사무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나고 아픈 일이었다. 

 

어쨋든 그런 이유로 한동안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두 프로젝트 였는데,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 이곳에서 정리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니

올해는 현상을 꾸준히 해보려고 노력 했다. 

심사제외된 것들을 제외하면 모두 2등을 했으니 당선은 없지만,

의미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고,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작년과 올해,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되는 프로젝트들의

성격과 프로그램과 형태가 조금 더 다양해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현상을 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사무실의 영역을 더 다양화 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유럽에 있는 동안 겪었던 공공건축의 의미, 영향, 완성도에서 

많은 공감을 받았고, 마음 한편에서는 늘 그런 건축을 일정부분 꿈꿔왔다.

 

그러다보니 사무소의 포트폴리오에 그런 공공프로젝트들을 좀 더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고, 이를 통해 사무소가 또 다른 의미에서의 

균형을 갖기를 원한다. 

당장 이른 시간에 결과물이 만들어지지 못하더라도

가능하다면 멀리보고 시도해보고 싶다.

물론 사무실의 상황이 허락하는 선에서 말이다

 

Y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서 탈락한 계획안
건폐율을 초과해서 탈락한 계획안 

 

 

 

 

가끔은 서로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쟤가 나한테 할말이 있는 거 같은데..."

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올 한해를 그 어느해 보다도 숨가쁘게 달려온 상황에서

왠지 사무소 식구들이 우리에게 할말이 있을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잠시 여유가 있을때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뒤풀이나 회식이 아닌, 진짜 workshop 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해동안 가져온 

우리의 고민과 걱정, 우리가 생각하는 내년, 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무실의 미래를,

그 불확실한 얘기들을 과감히 입밖으로 내고, 그렇게 공유하고, 그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그들의 의견을 모으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무실의 모습으로 좀 더 다가갈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사무실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새로운 생각들을 모아내기 위한 시스템을 늘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7년이 넘는 시간동안 늘 시도하고, 바꿔보고, 실패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힘을 더 믿는 편이고, 

그것이 오랫동안 사무소의 에너지가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꾸준히 얘기해 왔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혹은 빠른 시간에 사무소의 주역이 우리가 아니게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자리에서 다시금 우리의 생각을 교환하고 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구성원 각자의 의지와 적극적 태도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아마도 내가 

더 열린 자세와 낮은 자세를 갖는 것인거 같습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각 자가 힘들었던 사연들은 개인적으로 따로 듣고자 했습니다.

오늘은 내년을 위한, 더 길게는 5년 후, 10년 후를 위한, 모두가 해야하는 얘기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무소 내부적으로 약간의 시스템과 구성의 변화를 갖고자 합니다.

이는 역할의 변화이기도 하고,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한 변화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사무실을 해온 지난 시간동안 

꾸준히 성장하며 자산이 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가급적 그렇게 성장해 주길 바라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늘 어렵고 불안하다고 느껴왔지만, 

올해는 어느해보다도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럴때 일수록 눈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반대로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년엔 또 큰 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됩니다.

우선 짧게는 내년 여름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에게 예정된 변화를 잘 즐겨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Y

 

점심먹으면서 부터 얘기는 시작, 지은이 식욕터짐!
점심이후 약 5시간의 토론(?)
저녁은 양갈비! 사장님의 입담과 영업에 멘탈나가서 배터지는 줄도 모르고 막 지름;;;
저녁식사 후 다시 뒤풀이(?), 50만원짜리를 호기롭게 주문했다가 아쉽게 지금 없다고 해서 참 다행 ㅋ, 꿩대신 닭

사무실에서 마포방향으로 총 네 군데를 약 10분거리 만큼씩 동쪽으로 이동하며 약 12시간을 보냈습니다. 

절묘한 동선이었습니다 ㅋ

사무소를 꾸려오면서 돌이켜보건데, '실수'라는 녀석과 늘상 같이 있어왔고, 따라왔다. 완전히 떼어놓고 싶은 심정이긴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길리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실수를 아예 없애기보다는 어떻게 관리하고 같이 지내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사무소를 차린지 몇 해 되지 않을 때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아주 팡팡 여기저기서 터지곤 했다. 사무소는 바람잘날이 없었다. 그제서야 등에 흐르는 식은땀과 온몸에서 느껴지는 쭈뼛한 감각을 느끼며 실수를 수습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물론 그때마다 괴로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프로젝트를 다루는 규모가 크지 않았고 그 안에서 생기는 소소한 실수들은 역으로 사무소의 경험과 자산으로 남았다.  나이가 들어 무엇인가를 학습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식은 땀 흘리고 나면 학습이 되었다는 것보다는 소위 뼛속에 새기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러고 나서도 같은 실수를 한 적도 있긴 하다...)

 

이런 실수를 하는 내 자신이 너무 싫기도 해서, 이걸 어떻게 잡아놓을까 하고 전전긍긍해왔다. 꽤나 꼼꼼하게 내용을 검토하고, 주변에 물어보고 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으나, 이러고 있자니 업무시간이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비슷한 프로젝트에서도 문제가 없었고, 그러니 비슷하게 진행하자고 하면서 대충하자니 나중에서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사고가 나기도 한다.

 

이렇게 최근까지도 (바쁘다는 이유로) 그때그때 상황을 모면하고, 상황을 떼우는 무한반복의 굴레에 있다가 실수라는 것을 좀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일단 정체를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 말이다.

 

일단, 왜 이렇게 실수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되었을까.

이 글을 읽는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지 뭘 그리 예민하게 구느냐고 할 수도 있다. (내가 예전에 그랬다.) 내가 혼자 처리해야하는 업무를 하다가 발생하는 사소한 실수들은 사무소에 큰 영향 보다는 사소하게 영향을 미친다. 자잘한 실수들이 크게 한방으로 오기보다 업무의 비효율이나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것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게 사무소의 입장에서 시시각각으로 중요한 결정들을 해야하는 입장에 서다보니 실수라는 것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신뢰와 직결되었다. 특히나 주택이나 근생과 같은 소규모 건축물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프로젝트의 코어에 자리잡는다. 직접적으로 건축가가 해야하는 수많은 판단들도 있겠지만 건축주 또는 시공사에게 자문역할을 하고 그들의 판단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생기는 실수로, 건축주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라면... 생각만 해도 눈이 질끈 감긴다...

 

그러면 실수가 없다면 좋은, 잘만들어진, 놀랄만한 건축을 할 수 있는가. 그건 당연히 아니다. 그건 자연스레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 다른 건축가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무엇가를 찾아보고,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 사무소가 추구하는 건축의 정체성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각각의 프로젝트마다가 다양성과 특별함을 찾는 과정이 실수를 더 만들어내는 상황을 연출한다. 아, 이 아이러니함이라니. 

 

그러면 실수는 언제 어떻게 슬그머니 우리를 찾아오는가. 

'하인리히의 법칙'과 같은 것을 거창하게 꺼내들지 않아도, 대형 실수가 터지기 전에는 여러 징후가 보이기 마련이다. 어렵게 말할 것도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갑자기 느껴지는 뭔가 쎄~한 느낌이 있는데, 이러면 뭔가 있다고 보면 된다. 결과적으로 뭔가 없다고 하더라도 짚고 넘어가는게 맞다고 본다.

회사 다닐적, 4년차때 선배 대리님이 해준 얘기가 2가지가 있다. 실무는 아직 저년차라 하더라도 건축에 몸을 담근지 그 정도 됐으면, 뭔가 쎄~한 느낌받으면 그거 잘못되어가고 있는거니 팀원끼리 크로스체크해보면서 짚고 넘어가라는 얘기다. 그 당시에는 쎄한 느낌이 가끔씩 왔었는데, 실무연차가 올라가고 소장이 되면서 자주 쎄한 느낌을 받긴하지만..... 신입이라하더라도 아닌 거라고 느껴지는 거는 진짜 아닌거다. (물론, 신입이 정말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촉을 세우고 있는 것에는 박수를 보낼만 하지 않은가)

다른 해준 얘기는 실무 10여년차 넘는 뭔가 프로페셔널한 고년차 형님들도 다 알고 있는게 아니고, 알고 있는게 틀릴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니 저 사람이 하는 얘기는 다 맞구나 이러고 지나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두가지 얘기에는 실수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담겨있다. 

 

그리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 너무 과몰입되어 있거나, 또는 영혼없이 모델링이나 캐드를 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자신의 일에 대한 촉을 세우고, 이게 잘 흘러가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본다.

(이러면서도 잘 실천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실수를 줄이기 위해 몇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다.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오답노트를 만드는 것처럼 식은 땀흘린 실수를 아주 상세히 적어서 실수노트를 사무소 내에서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 건이 자주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자주 생겨서도 안되고) 이것만은 사무소 식구들이 꼭 알고 스스로의 프로젝트를 돌아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고 상황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나 조차도 같은 실수에 빠질 수 있으니 말이다.

 

또 하나는 그 동안 미비하였던 법규체크리스트를 정비하였는데, 그 목적은 잘 정리되고 꼼꼼하게 법규를 보자는 목적은 아니다. 아주 사소한 실수라도 하나하나 기록해서 각각의 법규항목에 해당되는 사무소의 실수들이 적혀있어서, 정말 최소한은!!! 같은 실수를 두 번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건축이라는게 규모와 프로그램이 하도 다양해서 각각마다 검토해야할 사항들이 아주 복잡다단(x100)하다. 그래서 실수라도 검토해야할 사항을 까먹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참고로, 헬리포트의 설치기준도 체크리스트에 추가해놓았다. (헬리포트는 11층이상의 바닥면적 합계가 만제곱미터 이상인 건축물 옥상에 설치한다. ㅎㅎㅎ)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간단히 이야기를 줄이면 실수 좀 줄이면서 프로젝트 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일은 무슨 사고가 생길지 걱정하면서

J

건축을 하면서 건축가라는 직업이 갖는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다양한 직업과 분야에서 일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인격의 사람들과 건축이라는, 

어쩌면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큰 이벤트를 겪어 나가다보면 그 사람을 깊이 있게 겪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건축주분 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때가 있다. 

다양한 인생공부를 압축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배움에는 타산지석의 의미도 포함이 된다.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건축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나쁜 점이 될 때도 있다. 

건축을 하지 않았으면 만나지 않고 살아도 좋았을 것 같은 분들을 만나야 되는 건 힘든 일이다.

 

건축주분들 중에서는 돈을 버는 것에 특별한 재능을 갖고 계신 분,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계신 분, 

알만한 연예인, 

유명한 예술가 등 다양한 분들이 계셨지만 오늘은 사람을 다루는 관점에서 건축주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이 '사람을 다룬다는 것' 에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 인간에 대한 생각, 더 나아가 삶에 대한 자세가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 범주에는 당연히 건축주가 건축가를 다루는 방식도 포함되어 있다.

 

그 동안 만난 건축주 중에서 어떤 분들은 보면 참으로 영리하시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분들 참 사람을 영리하게 다루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영리하게 다룬다는 말의 의미는 사람을 전혀 기분 나쁘지 않게, 그렇지만 그 일에 최선을 다하게 만들고, 

스스로 책임감을 갖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이런 분들은 설계하면서부터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한번도 싫은 소리를 기분 나쁘게 하신 적이 없으셨다. 

아쉽고 서운한게 있으셔도 일단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유가 있었을 거란 생각을 전제하시고 본인의 생각을 말씀하신다.  

이 분들은 수 많은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의견은 주시지만 언제나 건축가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셨다. 

가장 많이 들었다고 기억하는 말이  저희는 소장님만 믿어요, 소장님이 의견주시면 그대로 할께요 등의 말이었다. 

그리곤 말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결정을 하셨다. 

그렇게 해 주시니 건축가로써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고, 

어찌 그 책임을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잠을 자다가도 갑자기 혹시 이거 놓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어서  식은땀이 났던게 몇번이고 있었다. 

그 만큼 프로젝트에 대해 자발적으로 더 고민을 하게 되고, 건축주의 그 믿음 가득한 눈빛에 보답하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엔 나름대로 최선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따져보니 아쉽고 부족하고, 늘 더 잘하지 못한 것에 죄송한 마음을 갖게 한다. 

사람에게 기분 좋은 부채의식을 갖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다. 

 

이러한 것이 비단 건축가에게만 그러신 것은 아니다. 시공사를 대하는 태도에도,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기본적으로 존중이 있다. 

그렇다보니 건축주가 몇몇 수정을 요구하는 사항들이 있어도, 

이 건축주분이 수정을 요구하실 정도면 정말 마음에 안드셨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공사도 건축주에게 기본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 

마무리하면서 건축주의 요구에 큰 이의없이 대응을 해주게 된다. 

결국 건축이라는 것은 온전히100 퍼센트 수제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공사와 작업자들에게 내 집인 것처럼 만들겠다 라는 마음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다만 일하는 과정에서

돈을 받았으니 그 만큼만 빨리 해치워버리고 가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과

돈은 돈이고 이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존중받고, 자부심이라는 것을 갖고, 그런 마음으로 손길 한번 더 가게 일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경우에는 프로젝트를 매우 수동적으로 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수동적으로 대처한다는 의미는 건축주가 불만을 갖지 않을 정도에서 고민이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딱 그 정도의 고민 이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앞선 경우가 이 믿음을 통해 건축가를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고, 

그래서 더 좋은 것다른 것을 고민하고 제안하게 되는 경우라면

이 경우는 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건축가가 굳이 주어진 일 이상의 수고와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된다. 

이러한 분들은 기본적으로 건축가가 제안하는 것이나 건축가의 판단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신다.

모든 것을 본인이 다시 찾아보고 결정한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 결정이라는 것이 건축가의 입장에선 매우 단편적이고 아쉬울때가 많다. 

건축가가 생각한 스토리와 조화로움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런 분들은 작은 아이템 하나하나까지 본인들이 고르고 결정한다. 

아쉬운 것은 이 경우 아이템 하나하나 만 보고 전체가 만드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신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의견을 드려도 좀 처럼 이해하지 못하신다. 또 이런 분들은 여기저기다 조언을 구하시고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얘기를 들으신다그리고 대게는 그런 얘기들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 조언이라는 것들이 대부분 단편적이고, 일반적이고, 때로는 틀린 얘기들도 많다. 

심지어는 시공사도 잘 믿지 않는다. 

 

이런 분들 중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혹은 본인이 생각하는 데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우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고, 그 다음엔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그 잘잘못 부터 따지려고 한다. 

세상의 대부분의 일이 그럴 것이고,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공정들을 나눠 수행함으로써

완성하는 현장에서도 그것이 누구 한 사람만의 잘못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런 분들은 과거에 잘못된 일이 왜 발생했는지 그 책임을 찾는데 우선 에너지를 쓰고, 

왜 미리 예방하지 못했는지 그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둔다. 

발생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서 본인은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러니 건축가도 시공사도 그저 문제가 될 만한 것은 하지 않으려 한다. 

건축주에게서 불평이 나오지 않는 선에서 서로 암묵적으로 동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건축가도 시공사도 건축주라는 가이드라인 안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 경우 건축은 딱 건축주가 생각하고 있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을 다루는 측면에서만 보면 영리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돈을 써도 누구는 건축가가 자발적으로 가진 능력 이상을 발현하도록 하고, 

누구는 갖고 있는 최소한의 능력만 쓰게 만든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게 어디 건축주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이겠는가.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겠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의 능력여하에 따라 일이 잘 되고 안되가 결정되는 것이 큰 곳 중 하나가 건축사무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우리 사무실의 구성원들에게 가진 것 이상의 능력과 애정을 발현할 수 있게 하고 있는가? 

나는 영리하게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건축주를 통해 여전히 배울게 많다. 

 

PS.

최근에 한 프로젝트와 설계를 진행하던 중 타절을 했다. 

미팅을 할 수록 점점 우리가 수동적으로 되어 간다는 것을 느꼈고, 

건축주와의 미팅이 점점 재미가 없어져 갔다.

전에는 그래도 꾸역꾸역 해서 마무리를 했지만, 그 과정 내내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왠지 앞서 얘기했던 경우가 될 거 같았다.

건축주는 잘 믿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만 가려하고, 

이런 경우 지금이야 그나마 괜찮지만, 현장이 열리고 나면 정말 괴로운 경우가 생긴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이 프로젝트를 그럼에도 꼭 해야하는 이유가 있는지 생각했을때,

이런 마음으로 계속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건축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거 같았다. 

또 하나를 배웠다.

  

 Y

우선 앞의 일부내용은 '건축가로 독립하기 : 3장 '성장하기'_ 직영공사 1' 에서 올렸던 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한꺼번에 읽는게 조금이나마 흐름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입니다.

 

사무실을 시작하고 첫 건축 프로젝트였던 강진의 지역아동센터와 벌교 뽁이집은 원치 않았 직영공사 였다. 

 왜 이 프로젝트들이 직영공사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는지는 다른 여러 에서 설명을 하기도 고, 

대략 상황만으로도 추측 가능 하시리라 다. 어쨌든 그 이후로도 의  Low Cost House 프로젝트들을

직영공사처럼 진행을 했다. 엄밀히 하자면 "반 직영" 도였다고 할  지만 어쨌든 늘 현장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지막으로 했던 "반 직영공사" 가 부암동 House 였다. 여기서 "반 직영"이란 시공을 시공사가 아닌

시공팀 정도와 함께 하면서 돈 관리를 리가 하고, 현장 관리는 그 시공팀의 반장님께 약간의 자율이 어지는

그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했다는 의미이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우여곡절끝에 정말 사무실이 개업하자마자 금전적으로 파산일보 직전까지 가는 참사와 

덕분에 현장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을 파야하는 보람된(?) 상황을 마주하게 었었다.

낮에 현장에서 일하고 오후에 사무실로 돌아와 사무실 장실에서 매일 샤워하는 눈물나 들이 있었다.

그 후 다시는 직영공사를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사실 직영공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매력적이다. 

히나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하나하나 만들어져가는 을 보며 흥분하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라서  언급한 그런 경제적, 체적 고됨은 그 기쁨에 하면 할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고됨보다 더 로운 것은 로 공사가 끝나고 나서다.

공사란 모름지기 끝나고 나서 몇  잔손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그런 것처럼 끝나고 나서도

자잘한 (로는 !) 하자들이 생한다. 공사를 한다는 것은 끝나고 나서 발생하는 제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공사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도 있고, 그 만큼의 이윤도 적에 있을테고, 무엇보다

하자보수도 무의 하나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무척이나 괴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공사에서 이윤이 지 않아서 였기도 하고, 그럴만한 인력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들었던 것은

프로젝트가 끝났는데도 끝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한정된 인력으로 로운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자보는 데에 에너지를 으니 사무소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직영공사란, 특히 건축공사는,  좀 더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후 사무소의 대부분 프로젝트들은 시공사를 해 진행이 되었고, 우리는 그저 직영공사 하듯이 리를 나갔다. 

시공사들과 작업을 하며 은 것을 배웠다. 그 중에선 정말 장인과도 은 시공사도 있었고, 처음엔 작은 시공사였는데 

같이 일하면서 같이 장해가는 듯한 시공사도 있었고, 눈에 보이는 마감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적인 기능에 더

집중하는 시공사도 있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장단점을 고 있지만, 시공사들은 어쨌든 전문가이다. 

시공에 관한한 사무소 컴퓨터 앞에  리로 생각한 우리보다는 훨씬더 현실적이고 물리적이다.

따라서 시공사를 단순히 건축가의 지시를 이행하다는 집단이 아니라, 또 다른 파트너이자 전문가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하우를 공유하려고 노력해 다.

그 과정에서 여러 시공사로부터 서로 다른 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늘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들이 있었다.  

정말 이 작업에 이 정도 금액이 들어갈까?, 공사 순서대로 차근차근 하면 될텐데 왜 순서를 뒤죽박죽해서 일을

복잡하게 할까? 왜 다음 공정에서의 작업 내용을 미리 고려해서 작업해 지 않아서, 뒤에 가서 시공을 하게 만들까?

마감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해야 되는데 왜 그렇지 못할까? 왜 이렇게 현장은 지저분 한가?

왜 건축주와의 의사소통이 명하고 원활하지 못할까? 등 의 금증과 아쉬움들이 마음속에 있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다 는 거 같다.

우리가 직접하면 저런 부분들은 더 잘 할 수 있을거 같은데 하는 건방진 생각들이 자꾸 불쑥불쑥 들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직접 공사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나는 용인 House 이고, 이는 건축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하나는 부산의 치과인테리어 프로젝트, 

마지막 하나는 건축도 인테리어도 아닌 방배동 한 주택의 마당을 Remodeling 하는 프로젝트 였다. 

이 프로젝트들에 대해 다른 얘기를 하기 전에, 

혹시 결과적으로 직영공사를 다시 또 할거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지금으로선 다시 하고 싶진 않다. 

물론 어떤 사무실들은 인테리어공사들을 직접하면서 잘 운영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보면 어쩌면 우리의 경험이 

단편적이고 또한 역량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다. 다만 몇 번의 직영공사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리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 또 우리가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용인 House, 부산의 치과인테리어, 방배동 리모델링의 프로젝트들에서 느끼고 겪은 것은 앞서 겪었던 것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문제와 비슷한 즐거움이 반복 되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공사비를 넉넉하게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건축주가 예산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우리가 전문 시공사도 아니고, 공사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도 많을텐데, 경험도 부족한 우리가 공사를 통해

이윤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시공사를 보며 늘 공사비 라는 것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이를 통해 건축주와 

신뢰를 쌓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즉 건축주와 우리가 모두 돈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면, 공사하면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비용들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공사를 하다 보면 거의 매 공정마다 

늘 생각하지 못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들이 발생하고, 작성한 견적서보다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드는 공정은 거의 없었다. 

견적서를 작업자분들께 받은 금액 그대로 반영을 해 놓다보니, 조그마한 변동에도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상황들을 건축주가 일일이 다 이해하느냐 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건축주는 어쨌든 어떤 방식으로

견적서가 작성되었는지, 어떤 사유로 추가금액이 발생했는지를 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처음 준 견적서 이외의 금액이

나오는 것을 불편해 할 뿐이다. 나름 대로는 시작하면서 설명을 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건축주가 이해한 것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건축주의 조그마한 요구사항이나 불평도 부담스러워지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돌발상황들이 모두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왔다이것은 공사가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입주 이후에 생기는 크고 작은 하자들에 대해 연락이 오는 것

그 자체로 모두 스트레스고 이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사무실을 너무 힘들게 하였다.

 

이런 상황을 다시금 반복해서 겪으면서 지금 겪고 있는 이 스트레스가 과연 생산적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어떤 때는 직영 공사로 인해 겪는 경제적 스트레스, 건축주와의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들이 정신을 지배하고, 

그로 인해 정작 우리가 해야하는 설계에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설계를 고민하는 시간을 즐겨야 하는데, 어떤 때는 마음이 파괴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영공사가 주는 매력은 여전하다. 도면이 아닌 현장에서 작업자와 직접 소통하며 만들어 내는 하나하나는

이런 경우가 아니면 느껴 볼 수 없는 건축의 또 다른 즐거움이자 쾌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때는 여전히 설계를 하고 있을 때이고, 우리가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그래서 더 나아지고 싶다고 늘 갈망하는 것 또한 건축설계이다.  따라서 직영공사라는 것이

이러한 우리의 즐거움과 나아감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우리는 직영공사를 앞으로는 그만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건축가가 현장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무실 컴퓨터의 모니터 안에서 그려지는 도면이 현장에서 작업자들의

손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를, 각 재료가 어떤 가능성과 한계가 있는지를  아는 것은 건축의 또 다른 단계이고 수준이다

이 과정 안에서 또 다른 창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직영공사는 배울 것이 많다.

물론 어떤 분들은 우리와 달리 직영공사를 통해 돈을 벌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공사를 직접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많은 것들을 최종적으로는

결정해야 하고그 경제적 물리적 책임도 고스란히 혼자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일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글 끝에 더해서 작년 초에 멀리 김해에서 했던 직영공사로 인해 지금까지도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자세한 얘기를 지금 쓸 순 없지만, 처음에는 받지 못한 돈으로 인한 금전적인 손실이 고통이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 우리 나름대로는 건축주의 여러 어려운 상황들에 최대한 맞춰보려

돈을 나중에 주겠다는 약속만 믿고 공사를 진행했는데, 그런 마음에 대한 배신을 생각하니 

그 인간 자체에 대한 미움이 훨씬 더 괴로웠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 크게 와 닿던 돈의 문제는 

조금씩 조금씩 해결되어 가는 거지만, 그 마음속에 생기는 증오는 시간이 지날 수록 커져갔다.

서로가 모든게 만족스러울 순 없는 거겠지만,

우리는 언제나처럼 진정을 다 했고, 그 진정성과 노력에 대해

부정당하고, 한편으론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속 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증오가 나의 손끝과 머리속을 침식해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순식간에 돌변한 그 태도에 어떻게 하면 복수 할 수 있을까가 머릿속에서 하루종일 맴돌기도 했다.

결국 이 증오가 나를 망가트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내가 감추고 싶다고 해서 감추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주변으로부터 깨달았다. 

그리고 고맙게도 조소장이 함께 짐을 나누어 가져가주면서 그 증오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닌 둘이 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 계기이며, 시간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직영공사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하면서,

또한 아주 익스트림한 일들을 겪으며 우리가 한정된 능력과 에너지로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고민을 모아야하는 지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일상의 시간에 대한 감사함을 배웠다. 

어쩌면 그것이 직영공사를 통해 얻은 가장 값진 보상인지 모르겠다.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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