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무실을 시작하고부터의 약 7년, 그 이전 약 2,3 년을 더해도 지난 약 10년의 시간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특이했던 기간 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상 이런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집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짓는 꿈을 꾸고, 또 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이에 더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집 혹은 건축에 대한 수 많은 책과 잡지가 인기를 얻으며 일반인들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방송에서도 또한 집 혹은 인테리어는 주요한 소재 중 하나로 다루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인들의 집 혹은 거주 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꾸게 해 주었고,

집을 재산증식의 수단에서 원하는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인식하게 해 주었다.

이에 더해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정권은 경기부양을 위해 건설을 적극 활용하였고,

그 결과로 엄청난 돈을 대출을 통해 시장에 풀기 시작했다.

일명 빚내서 집사라 라는 구호는 비단 아파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고, 한없이 낮아지는

대출금리는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 수익을 위해 빌딩을 지으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건축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에 더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나이와 패기로 무장한 수많은 건축가들이 건축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이들은 일의 규모, 종류, 영역을 가리지 않고 그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 있었다.

(물론 여기엔 몇몇 대형사무소의 부도도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지난 약 10년의 시간은 소규모 건축시장의 호황 아닌 호황의 시기였고,

건축사무소는 그 규모와 형태에서 다양화 되었다.

 

하지만 2019년 올해는 어떠한가.

정확한 통계를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여러 기회로 만나뵙고 얘기들은 사무소 소장님들을 통해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해 보건데 최소한 지난 10년,

아니 작년 혹은 재작년과 비교해도 확실히 나빠졌다는 것 만은 확실한 듯 하다.

대부분의 아뜰리에들이 활동하던 민간 소규모 건축시장은 강력한 대출규제와 부동산법,

그리고 높아진 대출금리로 사실상 거의 죽었다고 표현할 정도가 되었고,

그로인해 많은 사무소들이 수주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이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란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지난 약 10년간의 그 엄청난 대출과 그로인해 시장으로 풀린 돈은 표현하자면

미래에 쓸 돈들을 다 끌어모아 한 순간에 쓰게 만든 것과 마찬가리라고 생각한다.

그로인해 그 한 순간에는 건축시장이 호황처럼 보였지만, 그건 마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한 순간에 폭발시켜버리고 마는 그런 결과가 된게 아닌가.

1500조가 넘는 가게부채가 의미하는 것이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겪은 것과 같은

민간건축시장의 활성화는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란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약 10년의 시기동안 사무소를 시작하고,

그 시기를 경험한 우리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소규모 건축시장만으로 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수주를 할 수 있었고,

현재 하는 일을 충실히 하는 것 만으로 내년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 7년과 같은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또한 이전과 비교해 확연히 줄어든 상담 건수를 통해

민간시장의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고 있고,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10년은 그 이전의 소위 기성세대라 불리던 건축가들이 활동하던 시대와는 달랐다.

그 이전 기성세대 건축가들은 그래서 한때 왜 건축가들이 이런 작은 건축시장에서 활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도 직간접적으로 들은 적도 있다. 

그들이 활동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지난 10년의 시기에 수 많은 건축가들이

작은 주택, 작은 건물, 인테리어 등등을 하는 것이 탐탁치 않았을 것이고,

거대한 건축적 담론이나 건축적 철학 등을 얘기하는 않는 건축가들이 패기없어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뜨거웠던 이슈가 바로 "생존" 이라는 단어 일만큼 경쟁은 녹녹치 않았고,

예전과 같이 어설픈 건축적 담론이나 철학을 얘기할만큼 건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높이는 만만치 않았으며,

건축가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시대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대형 프로젝트가 넘쳐나던 시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어쩌면 지난 10년과는 또 다른 시기일 수도 있다.

지난 10년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 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만큼 더한 경쟁과 생존의 시대가 될 수도 있다.

늘 변화하고 나아져야하고, 또한 그것이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

그러려면 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의 내부적 여건과 역량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못한 사무소는 어쩌면 언제든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 무척 흥분된다.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불안정하지만, 그것이 불안하면도 동시에 흥미롭기도 하다.

지금 이 시기에 집중해야하고, 이 시기에 미래를 향해 신경을 곤두세워야하고, 

변화를 채찍질해야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시장을 또한 찾아야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걸 보여주어야 한다.

이 모든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Y

 

요즘 머리속을 계속 맴돌고 있는 생각은 불안감과 차별화 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30대의 끝무렵에 다다르고 나서 그런지,

혹은 각자가 다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헤쳐나가려 애쓰시는 주변의 여러 소장님들을 보며,

혹은 이제 막 시작하는, 의욕과 기대에 가득찬 여러 후배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은 작년과 다른 올해 민간건축경기의 위축을 느끼며, 

혹은 아마도 이런 모든게 다 모여 그런 생각이 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건축가는 늘 불안과 불안정을 갖고 사는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불안과 불안정을 스릴과 기대로 여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두려운 것은 역시나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다.

우리가 남들과 다른게 무엇일까?

우리가 다른 사무소와 차별되는 것이 무엇일까?

전에는 젊다는 것이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더 젊은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의 작업들?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작업들을 해가고 있고,

우리의 프로젝트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할까?

우리는 어쨌든 존재의 이유,

그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증명해내지 못하면 언젠가 존재자체를 불안해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무소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몇 년전, 30대의 한창에 있을때는 우리에게 앞으로 시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40대까지도 한참 남은 것 같고, 50대는 남의 얘기 같고, 60대는 생각도 안해봤다.

하지만 철이 들었는지 어떤건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보니 우리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무소가 되기 위해, 그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초초해지고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무소를 시작할 때부터 이 정체성이라는 것을 늘 고민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처음의 그 정체성을 현실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왔다고 생각한다.

가끔 강연을 하며, 그 준비를 하면서 우리의 작업들을 설명하기 위한 큰 이야기의 흐름을

처음 우리가 시작할때 썼던, 가졌던 글귀와 생각들을 통해 설명하려 노력한다. 

그때마다 우리가 처음 고민했던 정체성을 잃고 있진 않은지,

우리 작업들을 통해 그런 것들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 초심을 다시금 되돌아 본다. 

 

하지만 어쩌면 처음 시작할때는 사무소로서 구체적으로 그리던 모습이란게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엔 구체적인 어떤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고, 그렇게 될 거란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6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는 사무실을 꾸려나가는 것에, 

우리에게 주어진 프로젝트들을 해결하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나무가 아닌 좀더 큰 숲을 상상하며,

지금의 우리를 좀더 진지하고 객관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상태로 약 6년이라는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대로 머물건지, 아니면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갈건지,

갈거라면 그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지,

우리가 지금 준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할 시기가 되었다.

고민하고 이제 움직여야 할 시기가 되었다.

 

변화하지 않고, 발전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잊혀진다는 

단순한 진리는 분명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

 

다만 우리가 가려는 변화와 발전의 방향은

지금 가진 에너지를 모으고 모아 

결국 건축이라는 것을 더 잘하려는 방향이 될 것이다.

어쨌든 건축을 잘하고, 그걸로 인정받을때 우리는 가장 즐겁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런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지금" 이라는 것에 

어쩌면 감사하고, 그런 고민을 재촉해주신 한분의 건축주께도 감사드린다.

 

Y

 

시간은 상대적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열흘이 지났다. 불과 열흘 전, 날 좋은 가을 주말에 하루 종일 교실 책상에 앉아서 박박 그려대던 모습이 마치 몇 달전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손에 익었던 0.7mm 샤프펜의 느낌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도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새삼 느끼는 것은 책상 한쪽에 덕지덕지 붙여져 있는 테이프 쪼가리 뭉치와 시험 본 이후로 한번도 열지 않은 제도가방에 눈길이 갈 때면, 아 며칠전만해도 그랬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사무소를 지속해나가는 일상으로 돌아오고 11월 초 발표날을 무덤덤히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무덤덤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굉장한 속도로 일상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학원 강사는 시험을 마치고 후유증에 시달리지 말고 일상을 복귀하도록 노력하라는 당부까지 했었는데, 그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라이센스 1/2'를 쓸 때만해도 머릿 속은 온갖 잡생각과 불만으로 엉켜있었고, 내가 시험만 보고나면 그걸 모조리 풀어내야 겠다 마음먹었건만...  상대적인 열흘, 몇달이 지난 것 같은 열흘은 무언가 좋은 이미지만 남겨놓고 말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형사무소를 들어가고, 실무를 시작하고 그리고 5년이 지나고 다시 나와서 독립한 일련의 건축적인 행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대지분석 조닝/배치/평면설계/단면설계/구조/설비/지붕 등  방금 언급한 단어의 나열들은 건축사 시험에 나온다고 거의 정해진 것들인데, 이렇게 개별적으로 쪼개서 건축에 대해서 공부하는 일은 마치 땅을 몇 해에 걸쳐서 농사를 지어오다가 처음부터 다시 땅을 엎고 다지고 새로운 땅에서 다시 씨를 뿌리는 느낌이랄까....

개개의 시험 과목들이 난해하고 실무에서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한 번 끊어주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떤 나의 주변 상황과 맞물려 들어가는 것이기도 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뭐 모든 일에는 음양이 있듯이... 

이렇게 정리를 한 판 새로 하고 시작한 강진 프로젝트.

주어진 프로그램, 규모, 건축주의 요구사항들이 마치 시험문제 풀듯이 설계를 저절로 하게 되던데, 

물론 무난한 안을 만들어내고,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 낼수는 있을 수 있어도(시험에서 요구하는 답안이 그러하니)

어떤 이슈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계획은 또 다른 문제라고 실감했다.

이 문제로 Y와 약간의 승강이를 벌이긴 했는데, 

결국엔 그건 내 자신의 다른 부분을 계속 단련하고 외부에 강하게 노출시켰을 때 조금씩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이래서 내가 반농담으로 Y는 시험공부 시키면 안된다고 하는게...

그래서 내가 입버릇처럼 이번 한번에 붙어야지 이걸 2년 3년 이러고 있으면... 어휴... 한숨.


사무소를 차려 독립하고 시험 공부를 했던 지난 8개월은 주建야建했던 재밌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정식으로 합류한 A와 함께 벌어질 앞으로의 몇 년이 더더욱 재밌어 질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120926.


J


마지막 글을 쓴 이후 약 한달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어 가는 그 흥미진진했던 상황들을 매주 정리해서 기록했다면

최초에 기획했던 이 챕터의 의도와 훌륭하게 맞았을텐데 결론을 알수 없는 상황들을

기록하는 것이 좀 망설여졌다. 


어쨌든 8월한달간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면

한달내내 가장 많이 우릴 괴롭혔던 건 역시나 울릉도 프로젝트이다.

조만간 새로운 그림과 함께 다시한번 자세하게 쓸 생각이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프로젝트는 산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비겁한 변명과 정치적 파워게임이 벌어졌고

결국 프로젝트는 

책임도 안지고, 디자인도 안하고,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그들을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들에 의해 변경이 결정되었다.

단순히 디자인 변경의 문제가 아니다.

별다른 고민없이 세대수를 줄이면서 

그들은 간절히 집을 원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바램을 묵살한 것이다.


충남 덕산에 지을 3층건물의 설계를 시작하였고

울산의 프로젝트는 곧 그 재개여부가 결정될 것이지만 어쨌든 현재까지 중간 stop 되어있다.

모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며 바람을 한껏 넣고 간 어떤이는 그 후 한달동안 연락이 두절되었고

J 와 A 가 약 2주전부터 건축사 준비에 돌입해서 사무실에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 내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는 단어가 '산고의 고통'이다.

비록 수 많은 시도를 해야 그 중에서 높지않은 확률로 성사되는 것이 프로젝트라고 

다른분들이 위로는 해주시지만

역시나 아쉽움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마치 아기를 낳듯이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애정을 들이고 갖은 애를 쓰고 있고

내 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애지중지 진행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선가 딱! 하니 어려운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되는게 없네' 하는 생각이 들고

이건 마치 '애기를 기다리는 산모의 심정이 이런거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프로젝트 마다 이런저런 문제 하나없이 진행되는 것이 있겠냐 마는

어쨌든 그러다보니 더 애정이 생기고 더 빨리 그 완성된 모습을 보고 싶은 심정인 듯 하다.




개인적으로 근 2주가 조금 넘는 시간동안 사무실에서 혼자 있다보니 

굉장히 허전하다. 

네덜란드 처음 도착해서 첫학기에 방에 틀어박혀 며칠씩 혼자 과제하던때의 느낌과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다.

먼가 더 나쁜 느낌이다. ㅋ

하지만 이런 허하고 기분나쁜 느낌은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준다.

최근엔 저녁 5시가 넘어서면서 사무실 창밖으로 굉음을 내며 하루종일 바쁘게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트럭들이 좀 잠잠해 지기 시작할때부터 밤 8시 정도까지의 어둠이 내리는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

문을 활짝 열고 사무실에 앉아서 이런저런걸 여기저기 끄적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그다지 생산적인 생각들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지난 2월에 한국에 들어와 사무실 시작하고 나서 정신없이 달려온듯 하다.

육체적으로도 그랬지만 정신적으로도 돌이켜볼 여유가 없었고 '생각'이란 걸 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바쁘게 달려왔고 다양한 면에서 일종의 '확장'이란 단어로 정의될 수 있을 거 같은 지난 몇개월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은 건지 어떤 건지 두 명의 부재의 시기에 맞추어 프로젝트들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잠시 이길 바래본다 ㅎ) 덕분에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적당히 여유로운 시기가 찾아왔다.


긍정적으로 봐서 참 좋은 기회인듯 하다.

이제 몇일 남진 않았지만 덕분에 귀국하면서 하려고 계획했는데 하지못했던 것들도 정리하고 

머 책도 읽고 생각도 하고 전체적으론 어쨌든 사무실의 '재정비'의 시기였다.

당장 다음주 월요일부터 새로운 프로젝트도 있고 전반적으로 사무실의 시스템을 좀 정리해야겠다.


이번 글은 참으로 두서 없었다.

어쨌든 다음주면 돌아올 두 명의 컴백을 기다리고

다음주부터 시작될 사무실의 전진을 기대해 본다.


120914  Y


  




마지막 글을 올린지 정확하게 한달이 되었다.

처음에 기획당시에 일주일에 한번씩 올리려고 했던 글들이 이제는 한달간격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일의 양(일이 많다는 것이지 프로젝트가 넘친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마시길..)이

사람수에 비해 넘치다 보니 글을 쓰는것이 자꾸만 뒤로 미뤄지곤 한다.

좀더 분발해야겠다.


지난 한달동안 무슨일들이 있었는지 생각을 떠올려 보려하니 생각보다 쉽게 떠오르지가 않는다.

매일매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내고 있는데 돌아보면 특징적으로 정리가 안되는 걸 보니

말 그대로 정신 줄 놓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기억을 더듬어 지난 한달을 정리를 해보면

성일이가 합류해서 함께 준비하던 KOCOM 호텔 리노베이션이 건축계의 씁쓸함만을 맛본채 끝나버렸고,

그 동안 몇번의 미팅들을 통해 울릉도프로젝트가 구체화되어 가고 있고

특히나 구조, 방수, 방설 등등의 기술적인 문제들을 풀기위해 고민 가득한 시간들을 보냈다.

여기에 설아가 잠시 합류해 울릉도 유닛의 모델을 만들기 시작했고 울릉도프로젝트 관련해

Union steel 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접한 '땅집사향'이라는 젊은 건축가분들을 위한 세미나에 가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중에서 KOCOM 호텔 프로젝트에 관해 써볼까 하고 글을 시작했지만

지난번에 이어 두번 연속으로 프로젝트에 관련한 글이 올라가는 것이 너무 딱딱해 보이는 것 같아서

다른얘기를 해볼까 한다.


이 고민은 근래 우리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이며 아마도 사람수가 많지 않은 작은 규모의 사무소들이

한번쯤은, 아니 어쩌면 사무소가 지속되는 한은 항상 직면하고 있을 고민이지 않을까 싶다.


현재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시작한 순서대로 울산의 구미리교회, 울릉도의 social housing,

곤지암의 주택(이건 이상하게 끝나버렸으나 어쨌든 고민의 당시에 있었으니 이곳에 쓴다),

충남의 3층 주택+상가

그리고 결정되진 않았지만 천천히 준비중인 춘천의 상업건물이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순간이 되서는 둘이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일의 양이 되어버렸다.

이런 경우에 물론 간단하게 사람을 더 뽑으면 된다 라고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이 많아져 그 양을 감당못함을 고민하는 것은 독립을 한 입장에서 미쳐 상상하지 못했던 행복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사람을 쉽게 고용할 수 없는 이유는

쉽게 말해 저 5개의 프로젝트가 모두 넉넉한 돈을 가져다 주는 프로젝트가 아니라는데에 있다.

자세히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도 있고,

충분한 설계비와 프로젝트의 의미 혹은 기회 사이에서 기회비용의 교환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저 중에선 돈이 되는 프로젝트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하지만 그에 상관없이 모든 프로젝트에는  똑같은 정도의 노동력이 들어간다.

더군다나 프로젝트가 어느 깊이상으들어가면 최소한 한명이

두 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깊이있게 고민하고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에 많은 한계가 있다.


여기서 프로젝트와 사람과 수입의 불일치가 발생한다.


이에 더해 현재는 저렇지만 앞으로도 저만큼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한

독립한 작은 사무소에서 staff 를 고정적으로 고용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 아닌가 한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완성도를 잃어버리거나

스스로가 설정한 가치를 담아내지 못한채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각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적어도 지금보단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지 못한다면

그 상황을 경계해야 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네덜란드에 있는동안을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첫번째 방법은 유연한 스케줄의 조정과 재배치에 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동안 나의 경우에도 동시에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종종 있었다.

각 프로젝트당 둘 혹은 셋이서 진행하던 상황에 그건 꽤나 정신없는 상황이 될수 있었다.

하지만 파트너들은 각 프로젝트를 왔다갔다 할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만들어주었다.

가령 A프로젝트에 1주, 다음 B프로젝트에 1주반 그리고 다시 A프로젝트로 1주반 정도 하는 식이었다.

이 경우에 우선 최소한 1주일이면 한 프로젝트에 충분히 몰입해있다가 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된다.

따라서 복수의 프로젝트를 근근히 진행할 수 있다.

또한 의외의 장점은 하나만 오랜시간동안 하는것보다 덜 지루할 수 있고(나의 경우엔 그랬다)

두개의 프로젝트를 하는동안 각 프로젝트로부터 생각지못했던 점들을 발견해서

두 프로젝트 모두에 발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동시에 다른 프로젝트를 하는동안 나의 머리가 두개의 서로 다른 디자인 프로세스를 경험하면서 훈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식의 스케줄관리가 가능했던 것에는 프로젝트 진행의 투명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투명성이란 단어가 완전히 적절한 의미는 아니지만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일정이나 계획이 프로젝트 초기에, 그것도 아주 이해가능한 수준에서 투명하게 만들어지고

공개되어진다는 것이다.(공개라고 해봤자 미리 건축가에게 알려주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는 건축가의 영역이나 역량이 아니라 건축주, 혹은 개발업자의 수준 문제다.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건축가에게 미리 스케줄이 알려지기 때문에

충분히 사전에 스케줄에 맞게 프로젝트를 직원들에게 배치 할 수 있었다.


두번째는 역시나 그때그때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고용해서 함께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매우 이상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여기서의 딜레마 하나는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령 그런분을 찾더라도 비용이 너무 비싸거나 혹은 좀 더 장기적인 계약을 원한다는 것이다.

사실 사무실 입장에서도 가급적이면 장기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분을 찾는것이 이상적이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프로젝트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고정비용을 만드는 것이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 부분은 사무실 시작하던때부터 고민을 하던 부분이다.

현재 작은 사무실을 하시는 많은 분들도 비슷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계신것으로 알고 있는데

프로젝트가 생길때마다 유연하게 모였다 다시 흩어질수 있는 그런 network 혹은 길드와 같은 pool 을

구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프로젝트의 크기와 성격에 맞춰 서로 모여서 진행을 하면서

고정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프로젝트의 소화능력을 향상 시키는 것이고

부차적으로는 그러면서 서로가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받아 상호발전을 지속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2월 독립 이후에 이러한 환경의 구축을 위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30대 초반의 우리에게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진행할만한 분들을 찾는것이 쉽지 않고

사실 설계비의 파이가 함께 나눠갖기에 너무 보잘것 없어서 함께 할 것을 제안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 문제는 가급적 프로젝트의 프로세스 과정을 투명하게 가져가도록 건축주와 함께 노력하고

끊임없이 주변의 pool 을 넓혀 가는 방법외에는 현재는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시간이 더 지나  다른 방법의 모색 혹은 여기서 언급했던 것의 경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만큼의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120805 Y






 

가끔씩 J 와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중에서 어떤게 제일먼저 지어질까 하고 얘기를 하곤 했다.

시기적으로 울릉도 프로젝트가 그리될 줄 알았었지만 1년짜리가 2년짜리 프로젝트로 바뀌면서

그럼 울산 프로젝트가 먼저 되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혹시 이게 내년으로 가면 충청도 어딘가에 지어질 프로젝트가 먼저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 먼저 끝나버렸다.

이 일은 예기치 않게 들어와서는 눈깜짝하는 사이에 끝나버렸다.



이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우선 머리가 아파온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렇고

건축주의 얼굴을 떠올리면 미안하고

또한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글로 정리해야 하나 생각하면 또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적 결론을 내린다면

이 프로젝트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반은 실패했다고 본다.

물리적으로도 우리는 돈을 손해봤으니 실패한 것이고

건축주입장에서는 공사가 끝나고 나서 몇몇 골치아픈일들을 겪었으니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건축주가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다면 심리적으로 나는 실패했다는 느낌을 갖는다.



프로젝트는 인테리어 겸 외부디자인 프로젝트였다.

아는분이 부탁하신 이 프로젝트는 첫 미팅이후 바로 진행되었다. 

건물은 신촌역근처에서 오래사신분들은 대부분 아실만큼 매우 오래된 건물이었고

이 오래된 건물은 관리되지 않아서 물리적으로 너무나도 열악한 상태였다.

이에 더해 건물주와의 (혹은 건물주사이의) 관계도 복잡했고 예산 또한 매우 적은 편이었다.

그에 비해 손대야하는것은 1,2 층외관, 계단, 화장실, 그리고 점포 내부까지였다.


다행히 건축주는 매우 열린분이셨고 한복디자인을 하시는 분 답게 디자인에 대한 존중이 있으셨다.

따라서 전적으로 믿어주시려 하셨고 다른 일련의 간섭도 하지 않으시려 하셨다.

매우 이상적인 건축주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점이 우리의 부주의로 인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지만 말이다.


건축주의 요구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구체적이었다.


'한복집이되 한복집같지 않게 해달라.

모던하고 심플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점포가 작은 크기이지만 홀같은 여유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

그외엔 기타 한복집에서 요구되는 실들이 필요하다.'


앞서도 인테리어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를 적으면서 인테리어 프로젝트가 갖는 장점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한 매력은 바로 이러한 요구를 받았을때 어떻게 이를 담아내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나름대로 

만들었을때 얻을 수 있다.

즉, 속도감 있이, 매우 제한된 조건에서 특별함을 만들어 내는 공간탐구의 기회라는 것이다.

내부적으론 저런 건축주의 요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였고

외부적으로는 어떻게 이 조금은 특별한 한복집에 어울리는 외부디자인을 만들것인가에 집중을 하였다


그 결과에 대한 보고는 다음의 링크에 담겨져 있으니 여기선 보여지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프로젝트 보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우리는 몇가지 관계를 시험, 정립해 보고자 하였다.

(적어도 인테리어 프로젝트에 한해선 작동할 수 있는 관계를 말이다)



그중 첫번째는 우리와 시공자와의 관계였다.

인테리어프로젝트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디자인 이후과정에 있어 최대한 에너지 소비를 아끼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의사소통이 잘 되고 정직한 시공자를 찾아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관계의 시작이라 보고 이 일을 여러업체를 알아보지 않고 알고 지내던 한 업체와 계약을 하였다.

물론 서로에게 충분치 않은 예산이었지만 우리의 이윤을 포기하고라도

시공자에게 최대한 맞춰서 계약을 하고자 노력하였다.

(노력했다라는 말은 시공자가 만족할만큼 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함께 일한 시공자분께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설정은 일정부분 실패했다고 본다.

첫째는 본래 시공과정에서 현장을 찾는 빈도나 기타 수반되는 잔업을 줄여서 우리의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려는

의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거의 매일 가다시피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물론 내 개인적인 성향상 매일 봐야지만 안심이 되는 것도 있었지만 매우 속도감있게 하루하루 달라지는

현장에선 설계자가 보거나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상황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거기서 생긴것이 아니었다.

외장재를 붙일때 외부갈바업체에 색을 포함한 이미지를 넘겨주었다.

그리곤 거의 비슷하게 나온다는 업체의 말만 믿고 도장을 할때 직접 가서 확인하질 않았고

막상 현장에서 색을 칠해온 외부조형물을 보는 순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보라색에 분홍색이 칠해진 조형물들이 외벽에 붙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건축주의 우려와 개인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색의 조형물을 달아둘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떼어다 재도장을 하는 상황까지 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결국 예산을 넘겨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색이 전달되는 과정엔 총 2번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첫번재는 우리가 만든 이미지를 업체로 보내서 출력을 할때다.

이때 이 업체가 무슨 종이에 출력을 하느냐,

어떤 파일형태로 출력을 하느냐 등등의 조건에 따라 우리가 보내준 색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색이 출력되어진다.

두번째 포인트는 이 출력한 종이를 가지고 업체는 다시 도장공장을 찾아가서 출력된 색대로 칠해주기를 주문한다.

이때 도장공장에서는 숙련된 분이 손으로 색을 섞어 가며 눈으로 색을 비교해가면 색을 맞추신다.

바로 여기가 두번째이다.

보통의 경우 두번째보다는 첫번째에서 오류가 발생하고 이 오류는 색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결정적 오류가 되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출력한 색을 가지고 업체에 전달을 해야했고

도장을 할때 공장에 직접가서 확인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오류가 발생할 거라는 예측을 하지 못했고 결국 건축주와 우리 모두에게 불쾌한 상황이 만들어졌었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셈이다.


현장에서 도장아저씨가 수작업으로 조색중인 모습


이 시공자와의 지속적이며 신뢰를 만들어 가기 위한 관계설정에 있어선 

사실 이 프로젝트 이후 다른 프로젝트가 있어서 연속적으로 시공자와 일을 함께 해가면서

관계를 다듬어 갔으면 좋았을 것이었겠지만 그렇지못해 그 효용성에 의문이 남는다.



두번째는 건축주와의 관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건축주는 매우 이상적인 타입이다.

모든것을 믿고 맡길테니 알아서 해달라는 것이다.

이 '알아서 해달라' 가 건축가에겐 굉장히 달콤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그것이 독이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프로젝트를 하는동안 특히 외장에 대해서 우리는 가급적 간판을 작게 만들고 (처음에 아예 안만들까도 했지만)

한복집 자체가, 더 나아가 그 건물 자체가 그냥 하나의 이미지만으로 인식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이 의도를 3D 이미지를 포함해서 건축주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건축주분께 '알아서 해주세요' 라고 말씀하지 말고 꼼꼼히 보시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그때 그렇게 넘어간 일이 결국엔 시공이 되고 나서 문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임은 일견 우리에게도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외장에 칠해진 색이 우리가 원했던데로 100%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주께서도 이 부분을 일전의 미팅에서 간과하셔서 막상 시공되고 나서 당황해하신 측면이 있었다.

또한 간판에 관한 부분도 결국 건축주께서는 규제를 넘기더라도 최대한 큰 간판을 원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설치한 간판을 보시곤 좀 걱정을 하셨다.


이렇듯 건축주가 어느부분에선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지으시면 건축가는 마음이 불편하다.

돌이켜보면 이 문제의 원인은 초반 미팅에 있었다고 본다

초반에 좀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건축주에게 가급적 많은걸 꼼꼼하게 설명하고 얘기하고 의견을 교환했어야 했는데

'알아서 해달라' 는 말에 '알아서 해줘야겠다' 라는 맘으로 답을 했으니 결국 문제 아닌 문제가 생긴것이 아닌가 싶다.


건축을 하면서 언제나 건축주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때로는 서로 얼굴찡그릴때도 있고 서운할때도 있고 아쉬움이 남을때도 있다.

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만 그것이 그 과정에서 서로 충분한 의사소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면

서로가 마음속에선 납득할 수 있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미팅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아쉬운부분이 생긴다면

이는 서로 서운한마음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반드시, 설령 건축주가 지인이기때문에 그럴 필요성이 없다고 판달될지라도,

최대한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지만 이후 결과가 나왔을때 아쉬운 부분이 생기는 걸 최대한 방지할 수 있기때문이다.


특히나 인테리어같은 경우엔 시공속도가 매우 빠르기때문에 사전에 얘기되지 않은 부분을 수정하고

중간에 다시 상의할 여유가 많지가 않다. 혹은 그럴수 있는 타이밍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또 다시 강조하지만 언제나 충분한 의사소통과 의견교환이 중요하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첫번째 결과물이 끝났다.

비록 온전한 건축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모든게 건축이고 디자인이라는 마음으로 진행하였기 때문에

감회도 새롭고  또 아쉬움도 남는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건축주의 얼굴이 떠오른다

처음에 우리에게 찾아왔을때의 얼굴과 프로젝트가 끝났을때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특히나 더 건축주에게 감사드리고 또 미안한 마음도 동시에 든다.

부디 원하던 '한복계의 아이돌' 로서 한복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올 수 있도록 사업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저 한복집이 그 성공의 조력자가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120703 Y






Stay loose & be cool ......


지난주 회사 다닐때 동기였던 형님한테 받은 문자. 잘 지내냐며 마지막에 남긴 메시지.

그리고 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실천하기 힘든 상황.


울산 허가도면 박박 그리는 중. 아니 박박 그리는 것도 그리는 것이지만,

규모는 별로 되지도 않으면서도 도시계획심의대상이라 7월초 심의 안건 모을때까지

허가상 문제가 없어야 되려면 이번주에는 허가 집어넣어야 되는데,,,

당장 사무실에 걸려있는 몇가지 일들 신경쓰다보면 시간이 슝슝~


그리고 같은 대지 안에 들어갈 해비타트 주택의 표준도면이 변경되면서 기존 했던 배치가 

어긋나면서 요리조리 돌려보고 뒤집어보고하는데...


갑자기 드는 생각.


회사 다닐때, 직원들이 하는 농담중 하나.

건물이 완공 되고 나서 그 결과물을 놓고 '건축계에 또 하나 큰 죄를 지었네' 하며 서로 낄낄.

큰 죄? 그렇지. 맘에 들지 않은 거지. 그런 건물들 자기 손을 거치지 않았을 때는 누가 저런 건물을 하면서

손가락질 하지만, 정작 자기 손을 거쳐서 나온 건물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함.

누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일부 주변 사람들의 마인드.

그리고 팀작업에 건축 과정의 일부만을 책임지고 작업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실시설계가 거의 100% 외주화되면서 그림 그릴때는 저런거 아니었는데 내가 아닌 누군가가

실시 치면서 망친거다 하는 핑계. 또는 감리가 문제. 시공사가 문제.


물론 제대로된 건물 나오려면 건축주, 건축가, 시공자 세박자 모두 맞아야 된다고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별 생각없이 낄낄댈 일은 아니라는 것.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배치가 지지리도 안되서 '아 그냥 해버려' 하다가도 이미 이 작업들은 누군가 위에서 지시해서

그냥 해야 되는 '일'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 그리고 얼굴들이 지나가며

안되는 거 억지로 계속 끙끙 거린다. 

내가 여기서 손을 놓아버린다고 누가 왜 그랬냐고 따져 물을 사람 없지만,

그 전에 스스로가 납득이 되고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


이것이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이 아닐까 한다.


회사에서 팀으로 작업하며 프로젝트를 굴리던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


머리 쥐어 뜯다가 집에 돌아와서 제 자신 한탄하며...



Stay loose & be cool ...... 


도를 더 닦아야 겠음.


ps. D-90,  이 단어를 이해하는 모든 분들 화이팅!

어느새 말머리 제목에 "2장" 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그렇다고 3장, 4장 이라는 단계를 염두해 두고 있는건 아니지만

공식적으로 "독립" 이라는 것을 했으니 분명 우리는 '준비'라는 제목을 갖던 "1장" 에서 다음단계로 넘어왔음이 분명하다.

어떤 계기가 있어 앞으로 3장 혹은 4장 이라는 쳅터를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계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우선 "2장" 이라고 명명하고 개업이후의 일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애석하게도 개업이후에 글을 자주 쓰질 못했다.

본래는 매주매주 그 생생한 처절함을 쓰고자 하였으나 현재까지는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그다지 처절하지가 않았고

두번째는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을 생중계를 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운면도 있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이 될지 안될지가 불투명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어느정도 윤곽이 들어났을때 쓰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미뤄둔 경우가 있다.




오늘은 개업이후 오늘까지 약 한달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우리가 진행하였던, 혹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중 하나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한다.


한국에 귀국한지 약 3일정도가 되었을때, 존경해 마지않는(?) 김머머소장님께서 신사동에 돈안되는 프로젝트가 있으니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소개를 해 주셨다.


프로젝트는 신사동에 수입유아용품을 위한 flagship store 를 만드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조건은 약 40평의 1층과 그 외부공간을 디자인 하는 것이었고 다행히도

신사동 대로변이 아니라 블럭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이 아늑한 스케일의 골목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소개받았을때 몇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첫번째는 개인적으로 소위 '매장' 인테리어 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에 대해선 흥미가 없었다.

그 이유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J 를 통해서 인테리어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의 진행프로세스를 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굳이 단가를 가지고 경쟁하는 대열에 끼여들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였다.


처음 건축주를 (건축을 하는게 아니니 건축주라는 표현이 맞는진 모르겠고 후에 인테리어쪽에 있는 분과 대화를

하는동안 유심히 들으니 그분은 이런 의뢰인을 '소비자'라 불렀다. 머 어쨌든 우리는 모든것을 건축의 범주로 보고

생각하고자 하니 그냥 그 의뢰인을 '건축주' 라 부르겠다)

만나러 가면서 위에서 언급한 조건의 경우라면 정중히 거절을 하고 오고자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프로젝트는 몇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건축주가 굉장히 많은 레퍼런스들을 보여주면서 "디자인된" 어떤 store를 만들고 싶어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하기 여하에 따라 기존의 유행을 따라가는, 예쁘게 꾸미는데 초점을 둔 매장과 다른 것을 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번째는 예산이 매우 적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건축주가 원하는 것들에 비하면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이는 일반적인 매장으로 가서는 안되는, 디자인된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고

이런 논리로 충분히 원하는 것을 건축주에게 제안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머 개인적으론 예산이 매우 적은 프로젝트에 대해 승부욕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내가 알기로 네덜란드에서는 건축가가 인테리어 디자인, 혹은 인테리어만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는거 같다.

적어도 VMX 에 있는 동안 '인테리어 디자이너' 라는 직업을 가진사람이 따로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이는 주택의 경우 기본적으로 집주인 스스로가 자기집의 인테리어를 시간을 가지고 완성해 간다.

그래서 삐까뻔쩍하진 않더라도 아기자기하고 아늑하고 섬세하게 꾸며진다.

그 집의 인테리어는 집주인의 인간적인 면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외에 공공적인 프로젝트의 경우 적어도 VMX 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건축가가 내부디자인에 대한

컨셉을 잡고 공사가 진행되었다.

이는 건축물의 전체 컨셉과 내부공간은 당연히 일관된 개념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개념의 범주를 넘어서는 스케일의 프로젝트에서는 다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두가지 이유로 프로젝트에 흥미가 생겼고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거의 개업식도 하기 전의 일이다.

이후 디자인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개념을 가지고 디자인되었는지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프로젝트를 보면 다 나와있으니 다시 설명을 하진 않고 여기선 그 뒤얘기들을 하고자 한다.


프로젝트 보기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최종단계에서 지어지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건축주가 가지고 있는 예산이 첫미팅때 얘기했던 것보다 더욱 줄어서이다.

즉, 공사비의, 숫자의 함정에 빠진것이다

건축주가 디자인을 매우 맘에 들어했음에도,

우리에게 양해를 구해 디자인을 좀 수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건축주가 꼭 하고싶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사비라는 숫자의 함정에 빠져서 포기하고 말았다.


여기서 공사비라는 숫자의 함정이라 한 표현을 부연설명을 하자면

어떤 인테리어 공사이든 건축주는 결국 복수의 견적을 받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원하든 원치않든 그 견적을 가지고 공사비를 비교하게 된다.

앞서 우려했던 단가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숫자를 보고 비교를 하는 순간부터 숫자의 함정에 빠진다고 나는 주장한다.


이 경우도 비슷했다. 특히나 건축주의 예산이 굉장히 빠듯했기때문에

건축주입장에서는 많이 싼 숫자를 쉽게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했던 장점이 단점이 되어 돌아온 결과가 되었다.


이 시점에서 사실 우리에게 첫번째 고민의 순간이 있었다.

돌이켜보건데 분명 우리가 강력하게 밀어붙였으면 건축주를 설득시켰을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러하기를 주저했던데에는 매장 오픈 이후의 일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건축주는 분명 우리가 제시했던 디자인과 훨씬 싼가격을 제시한 경우를 두고 매출이라는 측면에서 고민을 하였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제안한 것을 매우 맘에들어했지만 그것이 매출의 증가로 이어질거란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은 물론 우리에게는 있었지만 그것을 증명하거나 보장해줄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좋은 디자인의 매장이 분명 매출뿐만 아니라 매장의 이미지 제고효과, 이슈를 만드는 효과 등등의

가시적, 비가시적 측면에서 분명한 플러스가 있다는 것을 믿지만

그것을 건축주에게 매출이라는,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로, 장담을 해줄 수는 없었다.

매출이라는 것이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것인데 그것을 디자인의 한가지 요소만을 가지고 우리가 주장하기에는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건축주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결정을 건축주에게 맡겨놓은 것이었다.


이후 두번째 고민의 순간이 있었다.

사실 이건 고민의 순간이었다기보다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기로 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단언하건데 우리가 제시한 디자인은 최초 건축주가 원했던 예산의 범위에 들어와 있었다.

(이미 견적서를 가지고 보여줬기때문에 확실하다)

이후 예산이 줄어서 우리는 이 줄어든 예산의 범위에 맞추기위해

건축주와 여러가지 수정들을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이는 수정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디자인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예산이 매우 빠듯했다)

하지만 어떤 프로젝트건 건축주의 예산이 넉넉하지 못한것이 99%이고

이에 맞추어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기때문에 이는 결코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건축주가 다른 터무니없는 공사비를 제안한 공사업체의 경우를 얘기하시는 순간

이 프로젝트는 이미 가격경쟁의 프로세스에 들어갔다는걸 느낄수 있었다.

그 순간이 아주 홀가분하게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순간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해서 프로젝트는 마지막에 와서 좌절되었다.

한편으론 줄어든 예산에 의해 일부가 수정 혹은 포기된채 공사되었을때 과연 우리가 원한 것이 잘 표현되어질수 있을지

그 결과물에 대한 우려도 있었기때문에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아쉬운것은 건축주분과 개인적으로도, 디자인 결과에 대해서도 매우 좋은 관계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숫자의 함정에 빠져 최종 결과를 내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게 남는다. 


이 프로젝트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인테리어" 라고 불리는 프로젝트중 첫번째 경우였다.

(물론 나는 이 또한 건축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진행한다)

처음에 우려했던 것보단 생각할 여지가 많은, 매력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처음에 우려했던 것만큼 프로젝트 프로세스자체가 왜곡된 부분이 많이 있다고 느꼈다.


다만 내부공간의 평면을 짜고 공간을 상상하고 만들어 감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공부가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매우 제한된 여건안에서 "특별함" 을 만들어 내는 공부를 하기에 매우 좋았다.

또한 그 진행이 매우 속도감있게 이루어진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끝으로 비록 우리와 함께 완성해 가지는 못했지만

이자리를 빌어 우리를 믿어주시고 또한 좋은 선물까지 주신 두분 건축주분께 감사드린다.


120406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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