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핑계' 는 아니었다.

최근의 지난 몇 년동안에는 정말 바빴다. 

그러다 보니 밤에 집에 들어갔을때는 운동이란 걸 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자기전에 누워 웹툰 좀 보다가 자는게 낙이자 하루의 마무리였다.

운동을 해보려 시도를 안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길게 가진 못했다. 

 

한살 한살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안좋아 진다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나 주로 차로 이동을 하다보니 걸어다니는 거리가 정말 얼마 없었다. 

낮잠을 자지 않고는 하루일과를 다 소화할 수 없을 만큼 저질체력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 늘 입버릇처럼 달고만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등에 난 종기를 제거하려 사무실 근처 병원의 외과를 찾아갔다.

이 외과는 치질로 유명했는지 환자의 9할은 치질환자였다.

그 사이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마침내 진료실에 들어갔을때 진료실 침대에 붙어있는

"치질환자 진료자세" 를 보여주는 그림을 보았고, 그 그림속 자세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런 자세로 진료받을 생각만해도 너무 굴욕적일거 같았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체력이 딸려 골골댈때도,

건강검진에서 운동 안하면 빨리 죽는다고 그렇게 겁을 줄때도, 

하루에 낮잠을 한시간을 자야 오후 일정이 가능할때도,

늘 많이 먹으라고 권하던 엄마가 그만 먹고 살빼라고 타박할때도, 

안하던 운동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물론 치질예방과 운동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냥 치질을 피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운동뿐이라는 막연한 미신이었다. 

 

그렇게 해서 약 두 달 정도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물론 퇴근해 집에 가서 하는 거다 보니 너무 늦거나, 너무 피곤하면 못한다. 

그래서 많아야 일주일에 4,5번 정도 하는 거고, 코스는 동네를 크~게 한바퀴 도는 것이다. 

이처럼 비록 소박한 운동이긴 하지만 나름 꾸준히(?) 하면서 새삼 느낀 것들이 있다. 

 

첫번째는

일단 다 필요없고, 버티면 된다는 것이다. 비록 좀 느릴지라도.

얘기했던데로 퇴근 후에 하는 달리기이다 보니 컨디션은 늘 다르다. 

늦게 집에 간 날에는 무척 피곤한 상태여서 출발해 열발자국정도 뛰었을때 

벌써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 불편해진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바로 든다.

저녁을 늦게 먹거나 많이 먹거나 했을때도 달리기를 시작하자 마자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든다. 역시나 포기하고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바로 든다. 

또한 동네를 도는 거다 보니 운동장을 달리는 것과 다른게 달리는 코스가

거의 대부분 오르막이거나 내리막으로 되어 있다. 평평한 구간은 많지 않다.

오르막은 오르막대로 허벅지가 터질것 같이 힘들고,

내리막이라고 그 속도대로 달렸다가는 곧 폐가 찢어질 것 같은 숨가쁨을 느끼게 된다.

이럴때도 그만 멈추고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바로 든다.

따라서 이럴때는 속도고 나발이고 우선 버티는 것이 필요하다. 

몸이 무거울때, 컨디션이 안좋다고 느낄때, 오르막에서 허벅지가 터질거 같은 고통을 느낄때는

평소의 보폭보다 훨씬 줄여서,

마치 걷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는 말고 계속 약하게라도 뛰어야한다. 

너무 멀리보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에만 집중하면서 가야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호흡이 안정되고, 다리의 통증도 견딜만해지고,

무거웠던 몸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컨디션이 좋을때는 원하는 속도와 보폭으로 달려나가면 되지만,

그렇지 않을때는, 느리고, 마치 걷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버텨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우선은 멈추지만 않으면 다시금 페이스는 올라오게 되어 있다. 

 

두번째는 

눈이 바닥을 쳐다보지 말고 앞을 보고 달려야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뛰고 있는 내 발을 쳐다보고 달리면 

더 빨리 힘들고 지친다.

그럼에도 자꾸 바닥을 쳐다보는 것은 힘들어서이기도 할 것이고,

혹시 머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하반신 아래는 지면에 닫는 내 발과 다리의 감각에 맞기고, 

고개는 정면을 바라보고 달리면 훨씬 덜 힘들고, 더 멀리, 그리고 오래 달릴 수 있다.

즉, 내 다리와 발을 믿고 눈은 앞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난 두달여동안 나는 그랬다. 

 

세번째로는 

내 호흡과 페이스와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호흡이 중요하다.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소리, 그리고 그에 맞춰 움직이는 내 팔과 다리

이것들이 서로 익숙한 리듬으로 함께 움직일때 나는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먼거리를 오랜 시간동안 달릴 수 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어느 순간 내 몸은 내 머리와는 별개로 

머리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도, 몸은 스스로 움직이고,

이렇게 달리고 있는 상태가 마치 원래의 상태인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런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 호흡과, 함께 움직이는 팔다리의 리듬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호흡과 리듬을 잃어버렸을때,

이를 기억해내고 내 페이스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20대 한창때에 비하면 달리는 거리나 시간이 형편없지만,

대신 지금 하는 달리기는 내가 가진 체력의 한계 덕분인지, 

나의 온 신경과 온 마음가짐을 통해 노력해야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달리기를 통해 단순한 달리기 이상의 

많은 것을 느낀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도, 건축도, 사무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깊게 하게 된다.

우리가 하는 일도, 지금 우리 사무실도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속도와 보폭으로 앞으로 쭉쭉 달려나갈 때가 있고,

힘들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때, 마음이 심난하고 무거울때, 원하는데로 알아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럴때는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보폭을 줄여가면서, 호흡을 깊게 하고, 걷는 듯 뛰는 듯 하며 꾹 버텨내야 한다. 

아무리 느릴지언정 멈추지만 않으면 

어느 순간 컨디션은 올라오게 되어 있고 다시 원하는 속도로 달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그리 오랜시간이라 할 순 없지만, 

사무실을 하면서, 사무실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사이클의 반복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 좋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고, 나쁘다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라는 것도 깨닫는다.

그저 지금 우리의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우리의 리듬이 깨지지는 않았는지, 

눈이 바닥을 보는 것이 아니고 앞을 보고 있는지만 신경쓰고,

우리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좋은 사무소로서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을때든 나쁠때든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소박한 달리기이지만 달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걸 배운다.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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