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상대적이다. 그것도 무척이나...


열흘이 지났다. 불과 열흘 전, 날 좋은 가을 주말에 하루 종일 교실 책상에 앉아서 박박 그려대던 모습이 마치 몇 달전의 일을 떠올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손에 익었던 0.7mm 샤프펜의 느낌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도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새삼 느끼는 것은 책상 한쪽에 덕지덕지 붙여져 있는 테이프 쪼가리 뭉치와 시험 본 이후로 한번도 열지 않은 제도가방에 눈길이 갈 때면, 아 며칠전만해도 그랬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사무소를 지속해나가는 일상으로 돌아오고 11월 초 발표날을 무덤덤히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무덤덤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굉장한 속도로 일상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학원 강사는 시험을 마치고 후유증에 시달리지 말고 일상을 복귀하도록 노력하라는 당부까지 했었는데, 그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라이센스 1/2'를 쓸 때만해도 머릿 속은 온갖 잡생각과 불만으로 엉켜있었고, 내가 시험만 보고나면 그걸 모조리 풀어내야 겠다 마음먹었건만...  상대적인 열흘, 몇달이 지난 것 같은 열흘은 무언가 좋은 이미지만 남겨놓고 말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형사무소를 들어가고, 실무를 시작하고 그리고 5년이 지나고 다시 나와서 독립한 일련의 건축적인 행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대지분석 조닝/배치/평면설계/단면설계/구조/설비/지붕 등  방금 언급한 단어의 나열들은 건축사 시험에 나온다고 거의 정해진 것들인데, 이렇게 개별적으로 쪼개서 건축에 대해서 공부하는 일은 마치 땅을 몇 해에 걸쳐서 농사를 지어오다가 처음부터 다시 땅을 엎고 다지고 새로운 땅에서 다시 씨를 뿌리는 느낌이랄까....

개개의 시험 과목들이 난해하고 실무에서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한 번 끊어주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떤 나의 주변 상황과 맞물려 들어가는 것이기도 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뭐 모든 일에는 음양이 있듯이... 

이렇게 정리를 한 판 새로 하고 시작한 강진 프로젝트.

주어진 프로그램, 규모, 건축주의 요구사항들이 마치 시험문제 풀듯이 설계를 저절로 하게 되던데, 

물론 무난한 안을 만들어내고,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 낼수는 있을 수 있어도(시험에서 요구하는 답안이 그러하니)

어떤 이슈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계획은 또 다른 문제라고 실감했다.

이 문제로 Y와 약간의 승강이를 벌이긴 했는데, 

결국엔 그건 내 자신의 다른 부분을 계속 단련하고 외부에 강하게 노출시켰을 때 조금씩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이래서 내가 반농담으로 Y는 시험공부 시키면 안된다고 하는게...

그래서 내가 입버릇처럼 이번 한번에 붙어야지 이걸 2년 3년 이러고 있으면... 어휴... 한숨.


사무소를 차려 독립하고 시험 공부를 했던 지난 8개월은 주建야建했던 재밌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정식으로 합류한 A와 함께 벌어질 앞으로의 몇 년이 더더욱 재밌어 질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120926.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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