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이 가고 어느새 2013년이 되었다.

어느새라는 말 그대로 정말 어느새 2013년을 맞아버렸다.

한국에 들어와서 첫 현장이 작년 10월말부터 시작되어 그 현장을 오고가고

(사실은 거의 가 있었지만) 하다보니 연말에 사무실식구들이 모여 한해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도 들어온지 약 8개월만에 첫 현장을 열었으니 그 지난 8개월간의 좌충우돌했던 일들이 완전히 헛된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꼭 될거 같아 보였던 일들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실망하고 그랬던 일이 

의도치않았던 다른 좋은 사건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몇번의 다리를 지나 돌고 돌아 열매를 맺은 것중의 하나가

바로 현재의 강진아동센터 현장이다. 

정말이지 한치앞도 알 수 없는게 인생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또한 한편으론 무섭다는 생각도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지 모르기때문에 

그 어떤 사건도 흘려보내면 안될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벌써부터 피곤해지기도 한다.



현장을 시작한 후 어쩔 수 없이 현장에 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장이 직영공사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사비가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위'눈먼돈' 을 잡아보고자, 

아니 정확하게는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에 의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기타 다른이유를 덧붙이자면 기본디자인이 끝난후 실시도면조차 그릴틈이 없이 

시작되어야 했던 현장이었기 때문에 도면이 완전히 준비되지 못한 디자인의 완성도를 보장하는 방법은 현장에서 

지켜보고 풀어가는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덕분에 사무실의 누군가는 항상 현장에서 상주를 하며 관리를 해야했고

때로는 잡다한 준비작업이나 공사도 해야 했다.

정말이지 매우 힘든 일이었고 엄청난 에너지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가지 좋았던 것은 바로 현장을 완전히 몸으로, 눈으로, 귀로 익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과정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사과정 하나하나를 직접 내 손으로 한 것과 같은 느낌이다.

사실 이것이 네덜란드에서 일하는 동안 가장 갈구했던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니, 

서울에서 멀고먼 강진 그 현장에 내려가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바닥부터 시작해 골조가 완성외고 외장까지 붙여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는 동안에는 정말 재밌기도 했다.






현장에서 있는 동안 배운건 물리적인 구축의 과정뿐만은 아니다

바로 그 현장을 만드는 인간군상들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된다.

이번 현장을 하면서 크게 실망하고 떨궈버린 사람들이 한 셋이 된다.

그들은 이바닥 생리를 잘 모르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의 잣대에서 계산해봤을때

말도 안되는 가격을 갖고 속이려 든다.

그들에겐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적인 일일 수 있겠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하기엔 너무나 괴리가 있다.

한국의 현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겐 너무나 이상하게 보였다.

왜 좋은 건물, 좋은 환경을 아이들에게 주기위해 모아진 돈을 그런 업자들의 주머니에 

공짜로 넣어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상식은 지극히 단순했다. 일한만큰, 그리고 합리적인 이득을 취해가라.

그렇지 못한 관행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복잡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상식과 잣대가 이 공구리바닥에선 그리 잘 지켜지진 않았던것 같다.


사람을 떨궈버린다는건 참 힘든일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적어도 나는, 번잡한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쉽고 명쾌한걸 좋아한다.

사람관계도 그래서 한번 만나면 가급적 믿고 말고 싶다.

두고보고 판단하는 것 같이 오래걸리고 번잡한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처음에 보통 믿고 웃으며 진행하다 나중에 그 이면을 알았을때 내가 느끼는 충격이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사람을 쳐버리는 것이 심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번잡한걸 싫어하듯이 한번 마음에서 버리면 그것도 빨리 정리하는 편이다.

가끔은 속된말로 내가 내돈으로 짓는 것도 아닌데 왜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혹시 내가 이 생태계를 잘 모른체, 그 관행을 인정하지 않은체 너무 딱딱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한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어떤지 판단이 어려울때도 있다.

하지만 정당한 대가가 아닌 돈을 찾아서 건물이, 그리고 그 안의 아이들의 삶이 더 풍부해 질 수 있다면

그것이 맞는 것이라고 일단은 믿겠다.


현장에서 공사하는 사람들을 직접상대하는 것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다.

그중에는 정말 소위 말하는 '업자새끼들'도 있지만 앞으로 다른 현장에서도 함께 일을 할수 있을만한

좋은 분들도 있다. 

어차피 현장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도면을 그려서 현장에 넘기고 끝내는 범위의 사무소가 아니라면,

현장에서 함께 건물을 만들어 갈 많은 분들을 알고 있는 것이 곧 자산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과정을 거쳐 그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 많은 우여곡절과 보람과 좌절과 실망과 분노와 욕설과 재미와 뿌듯함이 공존하며 진행되는 현장이다.


이제 더이상 욕설과 의심이 없이 현장이 마무리 될 수 있기만을 바란다


130108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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