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 들어오기전부터, 우리가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여는것에 뛰어들기전부터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 우리가 독립할것이라고 널리 알려왔던 바다.

따라서 한국에 들어와서
집, 사무실정리등의 당장 급한 물리적 상황들이 정리가 되고나서
우리는 그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귀한 조언들을 구하고자 하였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분들의 목록을 가지고 리스트를 지워나가듯이
모든분들을 다 찾아뵙고자 한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약속이 잡히는 분들과,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뵙고자 하였다.
앞으로 길게 보고 한분한분 차근차근 보는게 우리가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굳이 독립, 혹은 개업 이라는 부담스러운 단어를 쓰긴 했지만
나는 우리의 이 일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시작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만나는일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머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우선 찾아뵈었던 분들은 학부때부터 가깝게 지내고 있는 선생님들 이다.
한양대학교 노승범 선생님, 서현 선생님, 이정만 선생님.
이미 우리의 이 '작당'을 알고 계셨던 분들이기에 굳이 서론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대개의 경우는 역시나 올해의 건축시장이 가장 않좋은 시기이기때문에 쉽지않을거라는 걱정이셨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젊음을 무기로, 열심히 부딪쳐 나가라는 말씀이셨다.

이 역시나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예상가능한 말씀들이시다.
하지만 똑같은 말과 행동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다가오듯이,
독립을 하려는 상황에서 듣는 그러한 말씀들은 물리적 단어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진심으로 가슴에 와닿는 조언으로 들렸다.

다음으로 뵌분은 이종수 소장님.
개인적으로 네덜란드로의 유학을 준비할때부터 많은 조언과 힘이 되어주신 분이었고
작년부터 독립을 준비할때도 역시나 한국에 올때마다 밥도 사주시고(?) 많은 얘기도 해주시고
또 장기적으로 서로 공존과 공유의 네트워크를 함께 구상하고 계신 분이다.
소장님 역시도 오래전부터 우리의 계획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말씀보다는
사실 앞으로 소장님이 구상하고 계신 일과 우리의 일을 어떻게 연결해 갈지, 서로 어떤 역할을 서로를 위해 할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얘기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지난 여름부터 인연을 맺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해비타트의 유국장님과 백실장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고 앞으로의 협력에 대해 가볍게 밑그림을 그렸다.
서로가 기다리고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기다리던 만남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개별 프로젝트가 진행될때마다 자세히 소개할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뵌분은 J 를 아끼시는 김실장님의 소개로 만나게된 WISE 건축의 장영철 소장이었다.
얼마전부터 인터넷에서 몇번 기사를 보고 알고있었던 젊은 건축가분인데
생각지 못한 좋은 기회로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넓지않은 건축바닥으로 나온이상 어차피 보게되고 알게될 사이이니
서로가 미리 보고 좋은 인연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편안한 목적에서 시작한 만남이니만큼
토요일 오후 WISE의 사무실에서 가볍게 이루어졌다.

음... '사무실 참 좋다' 가 사무소에 대한 첫인상이었고
'생각보다(?) 성격좋으시네' 라는게 장소장님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처음보는 만남이다 보니 머 크게 이렇다할 얘기가 오간건 아니었지만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역시나 우리보다 좀더 연배도 있으시고 사무소를 시작하신지도 5,6년되시다 보니
그저 말로하지않아도 사무실에서 느낄수 있는 많은 자극들이 있었다.
또한 쉽지 않다고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한명의 독립된 건축가로 살아가는 분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만들어 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장소장님에게서 받은 다른 느낌이라면 굉장히 진솔한 분이라는 생각.
건축을 대하는 것도, 건축주를 대할 때도(보진 못했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하셨다 :), 그리고 프로젝트를 대할때도 그렇고 굉장히 진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에 일하던 VMX 의 파트너와는 다른 방식의 생존방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서운 자신감으로 건축주를 대하고 그 카리스마로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고 주물럭주물럭하는 것과는 반대로
솔직함과 진솔함, 진정성을 무기로 해쳐나가고 계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저 길지않은 대화에서 느낀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사실 우리가 좀더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좀더 구체적인 조언들을 구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은 그저 일반적인 얘기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건 건축주를, 혹은 프로젝트를 만났을때 좋은지 혹은 나쁜것인지를 구분할 수있는
안목이 빨리 생겨야 한다는 것하고 각 프로젝트마다 힘을 줘야 하는 것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건축주, 모든 프로젝트가 좋은 것은 아니고 어떤것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고, 잘 진행이 안될 것이 있고,
설령 다 해서 마친다 하더라도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으로 손해볼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다.
그러한 안목을 갖어야 하겠다는 절실함을 조금씩 느껴가던 때에 들으니 공감이 되었다.
또한 모든 프로젝트를 다 잘하려고 하지말고 각 프로젝트마다 목적을 달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것은 디자인에 욕심을 더 가져야만 하는것이 있지만 어떤것은 다른 여러 목적에 의해
(때로는 그것이 정치적이될수도 있지만)

탄생되고 진행될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구분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것이지만 충분이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다.


                 
                 WISE 의 장영철 소장님과 POSCO A&C 김동근실장님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너무 조급하게 마음먹지말고 여유를 가지고 하라는 것과
주변에 많은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교류하고 연대하고 공유하면서 공존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나의 경쟁력이 되고 장기적인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주아주 재미있는 말이었다.

주변의 선배건축가분들, 학교의 선생님들을 뵈면서 들은 가장 많은 걱정은
쉽지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말들을 하실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다만 만남을 끝내고 문을 닫고 나올때에는 알 수 없는 자신감에 가슴이 뛰었다.
역시나 남들도 다 쉽게 할 수있는걸 해냈을때보단
남들이 다 쉽지 않을거라고 할때 해내야 재밌는거 아니겠는가.
쉽지 않을 거라고 다들 얘기하기에 그 성취감 또한 클거라는
'근자감'이 생긴다.

어쨌든 만남은 앞으로도 쭈욱!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건축가로서 살아가는 하나의 큰 재미 아니겠는가!

120226 Y


우리의 목표는 2월중순에 사무실 런칭을 하는 것이었다.
이미 사무실 임대는 설 연휴 전날 계약을 했으니, 임대기간이 시작한 터.
그래서 서둘러 사무실 정리를 하고 가구를 들이고 컴퓨터 등 기기를 구입하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처음 켠 날이 2월 13일.
단순히 이 때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라고 하면
이 글을 쓰는 의미가 없다.  다들 알고 싶은 것은 어떻게 준비를 했느냐이다.

후배들이나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들 하는 얘기가 궁금한게 많다고 한다.
우리도 사무실, 다시 말해 전에 대니던 사무실 나와서 새로 출근할 사무실 어떻게 만들까하는
많이 궁금했었고, 누구도 시시콜콜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복잡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일단 나열을 하고,
하나씩 자세히 적으려고 한다.
일반적인 절차는 아니지만, 우리가 겪었던 시간적인 순서대로 적자면...

1. 동업계약서 작성
    동업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는 설레임일 수 있고, 누군가에는 악몽일 수도 있다고 본다.
    나와 Y의 관계는 동업 이전에 같이 학창시절을 보낸 동기이자, 친구이고
    그 연으로 이렇게 작당을 벌일 수 있었지만, 이 관계가 어떤 동기, 어떤 환경에 의해서
    흔들리거나 약해질 수 있는 것이 동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동업계약서가 필요하다. 내가 초안을 잡고 Y가 승낙하고 서로 싸인, 인감, 인감증명 첨부 끝.
    
2. 사무실 임대
    사무실 임대에 대한 포스트는 지난 번 Y가 올렸다. 그건 사무실을 고르는 과정이었고,
    이후 날을 하루 잡아서 가계약을 했다. 가계약금 50만원.
    지금 생각하면 굳이 가계약까지 걸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는 집이나, 일할 사무실은 인연이 닿아야 내가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그 때 어떤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나보다 하고 그러려니 한다.
    이제 본계약.
    본 계약시 몇가지 체크사항들을 확인하고 싸인. 송금. 확인증받으면 끝.

3. 사업자 등록
    처음에는 사업자 등록을 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1,2년 동네 노점을 할 것도 아닌데
    그런 것으로 고민말자 했다.
    그런데, Y가 가지고 있는 더치건축사는 국내에서 아직이지만, 곧 EU FTA를 통해 정리가 되겠지만,
    나는 이제 실무 5년을 마치고 나왔으니 건축사가 있을리 만무하고...
    사무실을 나오기전 한 실장님이 이 부분에 대해서 걱정했지만, 다 챙겨서 차리기엔
    우리의 결심이 흐지브지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건축사가 없다면, 다른 업종을 택해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대게 인테리어 쪽으로 많이 선택한다. 비슷한 업종이거니와 
    1~2인 사무실에서 의뢰 받는 일중에 하나가 인테리어 일도 있기에.
    올해 안해 건축사사무소로 등록하는게 목표!
    사업자등록 신청서, 사무실 임대차 계약서, 동업계약서(동업시), 각자 인감증명 가지고 가면 끝.

4. 사업자통장 개설
    회사이름이 빡~! 찍힌 통장을 갖고 싶다는 이유 말고도,
    여러 세무적인 이유로 사업자 통장을 개설해야 한다.
    필요한 서류는 대표자 신분증과 사업자 등록증 사본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의 경우에는 별게 없다. 그냥 만들어준다.
    은행에서 계좌관리도 사업자 등록번호가 아닌 나의 주민번호로 관리한다고 한다.(신한은행의 경우)
    그리고 체크카트 바로 만들고.
    신용카드(법인카드)는 만들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건 아직 고민 중.

5. 세무 관련
    월급명세서에 꼬박꼬박 세금을 떼어 가듯이
    회사를 차렸으면, 매출과 매입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세금을 내야 하는데,
    우리는 경리직원을 당장 뽑기에는 무리.
    그래서 세무사에 맡기자 해서 찾아간 곳이 종로4가에 있던 세무사사무실.
    이것저것 궁금해하던 것 묻다가 기장을 맡기는데 얼마냐고 물으니 월8만
    (기장은 매출,매입 내역을 정리하는 것.)
    그리고 나중에 세금 신고할 때 다시 비용이 발생할텐데...
    일단, 직접 해보자고 마음먹은 상태.
    아직 사무실 규모가 미약(-_ -)하니 챙길 건 별로 없어 일단은 패쓰.

6. 가구 그리고 명함
    사무실의 위치나 건물을 들어올 때의 분위기는 둘째로 치더라도
    내부 분위기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외부의 고객이나 지인들이 찾아올 때의
    우리의 얼굴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개받은 목수를 통해 커다란 원목 테이블 3개를 주문해서 2개는 작업용
    1개는 회의용으로 사용. 의자는 저렴하지만 디자인이 괜찮은 이케아에서 고름
    그리고
    명함. 작년 여름 알게된 시각,텍스트 디자인하시는 분께 통으로 맡김.
    우리도 작업을 하면서 여기저기 외압(?)에 시달리며 디자인이 산으로 가는 경험을 했듯이
    그들의 전문분야에서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통'으로 부탁.
    결과는 사진으로...^^ (아래사진의 바탕은 테이블 상판)

    

                                                                                                                                  Design by 전우찬 

7. 그리고 앞으로 진행될 몇 가지.
    - 1인 창조기업 신청 ( 명칭이 이렇다 해도 2인 동업도 가능하다고 하니) : 정리되는대로 다시 포스트 예정
    - 개업식 준비


이상이다.
다음 글부터는 한 가지씩 좀 더 세부적으로 적을 예정.


2012 02 22
J.
     
한국에 돌아와 몸이 몹시나 바쁘다.
개인적으로는 새로 들어가 살집을 정리하는 일이고
공적으로는 사무실을 만드는 것이다.

우선은 사무실이 안정이 되고 준비가 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급한것은 내부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고 책장과 책상 및 테이블을 들이고
컴퓨터 및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중에서 선행되어야 할것은 내부 페이트칠이다.
하루 날을 정해서 둘이서  시작했다.

J 가 페인트칠을 위한 사전작업을 했다.

무척이나 꼼꼼한 그다 ㅋ

날이 너무 추운날이어서 창문을 열수도 안열수도 없는 상황이다.

열면 금새 춥고 안열면 냄새에 질식할 것 같은..


약 하루종일에 좀 모자른 시간동안의 노동끝에 작업을 끝냈다.

세상에 모든 페인트 노동자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허리와 무릎이 하염없이 아프다.

다만 사무실을 칠해간다는 것에, 그리고 확연히 하얗고 깔끔해진 사무실분위기에

큰 보람과 재미를 느꼈다. 한번이라면...ㅎ


청소를 끝내고 미리 주문해 두었던 책장을 받았다.

하얀색의 총 15칸짜리 책장이다.

일산의 가구단지를 뒤져서 10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럼한 가격에 구입했다.



사무실의 책상 및 테이블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할까 하고 고민이 많았다.

이유는 테이블은 구입처와 만드는 방법, 혹은 스타일에 따라서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사무실 책상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책상들은 우선 선택에서
제외를 하였다.
분위기가 곧 일의 능률이라는 모토(?)아래 좀더 자연스러운 책상을 원했다.
그래서 맞춤가구를 알아봤는데 역시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아는분의 소개로 알게된 funnyturemaker 라는 공방을 운영중인
furnituremaker 를 만났다.
젊고 활력넘치고 열정적인 아가씨로 우리의 큰 걱정인 비용면에서도
거의 손해를 보다시피해가며 테이블을 제공해 주시기로 하였다.
미안했다. 거의 협박하다시피했으니.. ㅎ

어쨌든 그렇게 해서 책상용으로 쓸 테이블 두개와 회의용으로 사용할
테이블 한개, 총 3개의 테이블을 주문하였다.

또한 더블어 책상용 테이블의 도착과 시간을 맞춰 친구를 통해 부탁한
컴퓨터를 찾아왔다.
모니터와 본체를 합쳐 100만원정도의 예산에서 최고의 성능으로 맞춰달라고
또 협박을 하였다.

앞서도 말했듯이 우린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흐흐흐

이자리를 빌어 테이블을 협박당한 정리나씨(www.funnyturemaker.com)와
컴퓨터를 협박당해 주문, 조립 및 OS설치까지해준 친구 이제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 사무실도 처음부터 모든걸 다 만들어 놓고 시작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JYA 의 성장과 함께 채워져 가길 바란다.

120213 Y
귀국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귀국을 계기로
지난 네덜란드에서의 시간들을 모두 이곳에 정리하고, 쏟아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동안 간간히 올렸던 글들에서 이미 많이 언급했기도 했거니와
나 스스로도 이곳에서의 생활을 어찌 정리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다만 20대후반에 와서 30대초반까지를 이곳에 있으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이란 혼자서 살아갈수 없다는,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의 나의 삶이란 모든게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어고 지속되어 왔다.
델프트에서의 형님, 누님, 동기, 후배들
암스테르담에서 평생의 연을 맺은 나의 또하나의 맘 과 파더, 그리고 여러분들
VMX 의 고마운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무사히 이시간까지 올 수 있었다.

그들에게, 그리고 주변의 모든이에게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
귀국하는 비행기에 챙겨가야하는 마음이다.

또 하나 네덜란드로부터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여유' 이다.
돌아보건데 네덜란드에서는 시간이 마치 천천히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루 24시간을 쓰는건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천천히 걸으면서, 몇십분이라도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마치 슬로우무비처럼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바라보게 하는 여유가 있었다.
또한 동네를 걷고, 차를 타고 가고, 기차를 타고 가는동안 주변을 관찰하고 느끼고
행복감을 느낀다.

이러한 마음의 여유는 건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고, 다른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멀리 떨어져 전체를 다시금 보게하는
그러한 여유를 갖게 해준다.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에 급급했을때 놓치기 쉬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하나를 하더라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비단 건축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집을 지으면 이들은 여유를 가지고 집을 꾸며나간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완성해 간다는 것이다
한번에 다 만들겠다고 욕심부리지 않는다.
자신이 나이들어 가듯이 집도 함께 완성해가며 함께 나이든다.
이런 여유속에서 그들은 집에 대한, 건축에 대한 철학을 자연스럽게 형성해 간다.

이러한 철학은 무슨무슨 디자인 이론 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책에서 보고 머리로 이해하려는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깊이 네덜란드의 건축에 들어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돌아간다.
바라는 건 지금 이 손에 닿을듯 말듯한 이 느낌들이 한국에 가서도
증발되지 않고 계속해서 내 몸과 마음과 생활패턴에 새겨졌으면 하는 것이다

120201 Y


맘과 파더를 비롯한 암스텔담의 고마운 분들


 

귀국을 한주 앞두고 바젤을 찾았다.

근 4년가까이 유럽에 있는동안
4번의 스위스 여행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건 두번째로 스위스를 찾았을때 였는데
당시엔 차를 빌려서 했기 때문에 다른 세번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로운 여행을 할수 있었다

따라서 일정이나 교통편에 완전히 구속되지 않고 말그대로
길이 있는 곳을 따라 여행을 했다.

그 알수 없는 길들은 지도나 여행책자에는 나와있지 않은
스위스의 알수없는 마을들로 나를 인도하였고
나는 비로소 진짜 스위스의 삶을 만날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풍경들은
단언코 '적어도 스위스에서' 만큼은 유명한 현대건축물들을 만날때보다도
더 감동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건 단순히
'더 이상 이보다 더 아름다울수 없을 것 같은 자연과 인간의 삶의 조화를 체험하는데서 오는 감동'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순전히 건축을 여전히 배우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스위스 현대건축가들의 작품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들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건축언어, 재료의 물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공간에서 느껴지는 담백함.
결코 이러한 감각들은 어느날 갑자기 천재같은 건축가들에 의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듯이 만들어진게
아니다.

그것들은 그들이 어려을때부터 삶을 통해 언제나 함께 해온 그들의 전통의로서의 삶과 건축이
자연스럽게 그들속에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현대적인 모습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왜 Peter zumter는, 왜 헤르조그 앤 드뮤론은 혹은 어떻게 저들은 저런 건물을 잘 만들까 
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은 스위스의 숨겨진 마을들을 찾는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쯤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나에게는 어린시절부터 나와 함께 나이들어온 전통과 생활을 담아내는 공간이 무엇일까?
다행이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 거실이 아닌 안방, 부엌, 사랑채로 둘러쌓인
마당이, 그리고 소파가 아닌 대청마루와 안방의 옷장뒤에 숨겨져있던 비밀스런 다락방에 대한 기억과 몸이 기억하고
있는 공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머리와 손에 깃들어서 건축으로써 투영되어 지지는 못하고 있다.

좀더 넓게 보면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단절되어 버린 우리의 유산이 못내 아쉽다.

이것은 결코 전통을 살리자, 한옥을 살려서 현대건축에 적용해야 된다 라고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그럴수도 있고 안 그럴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과거와 우리가 가진 유무형의 유산에 대한 이해는 분명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건축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시작하는 우리로서는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유심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우리의 얘깃거리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의 '당분간' 은 마지막 여행이 될 바젤여행이 끝났다.

120125 Y

근 한달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
이 글도 벌써 써논지가 한달은 되어버린 글인데 이제서야 이렇게 올린다
보통을 글을 올리기 전에 최소한 오타체크의 이유에서라도 한번은 읽어보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지난밤에 쓴 연애편지가 다음날 아침에 읽으면 유치찬란한 3류시처럼 되버리듯이
왠지 지금 읽으면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지 못할만큼 유치하게 느껴질거 같아서이다.
그저 저 순간에 저 감정을 그대로 이곳에 올리는게 맞을거 같다.


오랜만에 델프트(Delft)를 방문했다.

아마도 귀국전 마지막방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벌써 졸업한지 시간이 꽤나 지났기 때문에 아는 분들이 많진 않다.

머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델프트에 오니 지난 유학동안의 시간들을 돌이켜보게된다.
델프트에서의 유학은 건축적으로만 봤을때도 물론 나에게 무척이나 인상깊은 시간들이었다.
누구나 본인이 공부하고 머물렀던 곳에 대한 아늑함과 향수가  있기 마련이다.
거기다 그것이 시간이 좀 지나서의 회상이라면 그것은 더욱 미화되어,
아름답고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시도 그렇다.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좌절도 있었지만, 그 고통의 시간만큼이
미화되어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사실 이런 글은 학교를 막 졸업했을때, 혹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에 쓰는 것이
적합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더욱 생생하고 와닿는 얘기들을 쓸 수 있을테니까.
따라서 지금의 나는 이 델프트공대를 이야기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떠올리고자 했을때 떠오르는 것을 몇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더 늦기전에.

델프트공대의 가장 좋은 점중에 하나라면 다양한 성격의 트랙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하이퍼바디(Hyperbody)와 같이 컴퓨터스크립팅을 기본으로 한 스튜이오에서부터
전통적인 디자인 방법론을 기본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까지,
또한 공공건물, 집합주거 처럼 전통적인 건축의 프로그램들을 주제로 하는 스튜디오부터 재료, 혹은 고층 빌딩,
친환경빌딩을 프로그램으로 하는 스튜디오까지 매우 다양한 스튜디오가 다양한 주제와 방법론을 갖고 개설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의 관심과 목적에 맞는 스튜디오를 2년동안 계획을 하고 조합을 해서 스튜디오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전혀 다른 성격과 주제를 갖고 있는 스튜디오들이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도 학기내내 동시적으로
옆에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에더해 각각의 다른 스튜디오들 사이의 일명'융합'이 때때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것은
학생에게는 금같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스튜디오 진행내내 건축 디자인과 동시에 구조와 재료등 디자인이 실체화 되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과 지식들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구조, 디테일 잡지에서 보고 베끼는 한이 있더라도) 디자인뿐만이 아닌 좀더 입체적인 관점에서
건축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을 기울이려는 자세를 갖고자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학부에서부터 이루어지는데 그로인해 학생들은 건축을 그림이 아닌 현실속에 존재하는 '장' 으로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오픈렉쳐와 관련 시설등등은 다른 좋은 학교들도 그러할테니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여기까지가 좀 공식적인 얘기였다면
개인적인 기억으로 좀더 들어가보면 이렇다.

지금돌이켜봤을때 기억에 남는 것중 하나는 스튜디오동안 튜터가 언제나
강조한 것이 평범한 것, 기존에 하고있는 방식말고 다른, 재밌는, 기존에 있지않은 것을 시도해보라는 것이었다
이는 비단 디자인의 형태뿐만이 아니라 구조방식이며 재료사용이며
내가 알고있던 '이런형태에는 이런구조면 혹은 이런재료면 일반적으로 되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의심하라는 것이었다.
즉, 디자인초기부터 구조 및 재료, 거기다 프리젠테이션 하는 방법에 까지
모든 기존의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의심하고 다른것, 재밌는것 을 찾을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다른 기억은, 공간을 만들어 냄에 있어, 아니 공간을 탐구하는데에 있어
굉장히 열린 방법과 진지한 마음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건축은 적어도 나에게는 유학을 오기전에는 굉장히 표현적이고 형태적이며
자극적인 건축처럼 보였다. 잡지를 통해서 본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와서 느꼈던 네덜란드 건축은 흥미진진한 표현과 형태들 속에서 언제나
기본을 먼저 강조하고, 순수한 공간자체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제나 재미(fun)을 놓치지 않는다.


들었던 스튜디오중에, 혹은 옆방에서 했던 스튜디오를 구경한 것중에선
면과 선등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부터 시작해 그들의 접기, 구부리기, 그리고 조합등의 변형을 통해, 
각종 재료의 물성을 분석하고 이미지화를 하는 것을 통해, 라이노에서 만들어지는 자유 3D 형태의 조합 및 변형을 통해, 
도시의 모든 각종 현상을 분석하고 형태화 시키는 것 등등을 통해 의도하지 않았던, 손으로 쉽게 그려지지 않는 그런 공간들을
탐구하고 찾아내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다.


때로는 일차적으로 '어떻게 저 주제에서 공간적인 요소를 발전시킬수 있을까' 하고 
당황스러울때도 있었지만 결국엔 진지한 탐구와 분석 그리고 재구성을 통해
그안에서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과 퀄리티(quality)를 찾아낸다.
나름 당시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에서 끊임없이 싸울것을 요구한다.
싸움이라는 표현이 우리말중에서 가장 적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교를 다니는 내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디자인과,
그리고 튜터와 끊임없는 싸움이 필요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음… 글을 시작할때는 이보단 더 쓸수 있을 것 같았는데 더 이상 적당한게 떠오르진 않는다.
또한 쓰고보니 델프트(Delft) 에서 공부하신 다른 분들께서 보시고 틀렸다고 하시는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그것도 무척이나 미화되었음이 분명한 기억을 가지고 쓴 것임을 밝혀둔다.


다만 분명한 것은 델프트에서의 2년간의 치열했던 단련과정들은 학부때 갈망하던
욕구들을 일정부분 만족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진지하고 겸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몇몇밤에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리.


끝으로 오늘 델프트에서 시간을 내 주신 형님들, 친구들 그리고 동생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 또 세계의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함께 델프트에서의 시간을 나누었던 분들에게도.



아, 여기 일본의 건축 잡지인 A+U의 2012년 신년호에
TUDelft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건축교육에 대한 에세이가 있어서 소개한다
내가 쓰지 못한 좀더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scanned by 권영민



120116 Y




 
회사를 나왔다.

처음 JYA blog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생각해왔던 순간이자, 가장 먼저 쓰고 싶었던 문장이었다.
지난 여름부터 가졌던 많은 생각들,
이미 앞에서 글로 남겼던,
생각의 타래들을 끊어버리고 
아직 일과가 끝나지 않은 오후에 회사를 나왔다. 

만5년. 숫자로만 세어보면 오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돌이켜보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듯 하다.

그 5년동안 같이 지내왔던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1시간정도면 인사를 다 드릴것 같았는데, 다시 자리에 앉고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많은 사람들중 몇가지 상황들을 소개한다.

#1. 
모든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말중에 '경기도 어려운데 어찌...'
나도 그렇게 들었고, 그 사람들도 그렇게 들었고,
신문에서도 떠들고, 대통령도 떠들고, 유럽도 그렇다고 하고, 미국도 어렵다고 하고...
그러면 아.. 정말 경기가 어려운가 보구나. 보구나. 보구나. 
하지만, 과연 경기가 좋았던 적은 얼마나 있었을까.
IMF이전? 아니면 지난 금융위기 이전?
그 때 당시도 모두들 지금은 경기가 호황이다라고 했을까.
어렵다고 하지만, 아직도 도시에는 크레인이 올라가고 가림막이 처져있고
누군가는 먹고 살고 있다는 것.
겪어보지 않고서는 속단할 수 없다.
꼭 겪어봐야 아는가? 라는 질문에는 
그럼 이제 호황이니 어서 독립해라 라고 그 때 말해줄건가?  라고 답하고 싶다.

#2.
인사드렸던 몇 분 중에는 개인사무소를 운영했거나, 준비하다가 포기했던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의 표정과 눈빛은
큰 회사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들과는 조금은 남달랐다.
뭔가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복잡하고 애잔함?
그들이 겪었던 힘든 길과 고민들이 떠올랐으리라.
결국은 잘 하라고, 대신 잘 하라고 많은 격려를 주신다.

#3.
입사할때부터 실장님으로 계셨던 (다녔던 회사에서 실장급은 타사무소의 본부장급이다)
어제까지도 소속 실의 상무님으로 계셨던 분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하고 싶은 말 없냐고 해서...
저 나가고 좋은 기회가 있으면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제 밑에서 일하다가 나가니까 같이 일하는 관계가 되버렸군
큰 건 따서 외주를 주는 상상을 해본다... 크허허

#4.
1층 데스크에 경비 및 관리로 일하시는 분.
야간근무에 '타로점'으로 유명하다. 
회사사람들 알게모르게 1/3넘게는 봤을게다.
지난 주 인사드리고 타로점 봐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야간근무때 찾아오라고 하시는군.
세 장을 뽑았다.
여기서 세세히 말하기는 뭣하지만,
나 자신, 큰 조직에 길들여진 나 자신을 바꾸는게 중요하다 나왔다.
그 말을 와잎에게 전하니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하신다.
^^


이제 다시 시작이군. 앞으로의 뜨거운 5년을 위하여.

120201. J.

 
이번 주에는 개인적인 서류들을 정리했다.

머 나에게 있어 이곳에서 정리해야했던 공식적인 서류들이라면
Master degree에 대한 legalization 과 아포스티유를 받는 것,
네덜란드 건축사 라이센스에 대한 legalization 과 아포스티유를 받는 것,
그리고 경력확인서 정도였다.

덕분에 네덜란드 북쪽의 흐로닝헨(Groningen)부터 덴하그(Den haag)의
 courthouse와 chamber of commerce 등등을 부지런히 다녀야 했다.

네덜란드 건축사 라이센스가 한국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진 아직 잘 모른다.
한-EU FTA 이후에 먼가 현실적인 변화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아직 자세히 확인을 하진 못했다.
아마 이런것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을 해야하는 과정(수고?)이 남아 있는 듯 하다.

이번글은 너무 짧나?

120112 Y





토요일에 파티가 있었다.
더치파트너가 신년파티 겸 내 송별회를 겸해서 집으로 초대를 했다.
보통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집으로 초대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파티는 언제나 그렇든 다같이 술마시고 얘기하고 떠들고 웃고, 저녁먹고.
그리고 이번엔 파트너들이 일일이 각자를 위해 준비한 선물들을 추첨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골라주는 시간이 있었다.
내 선물은 누가 골라줬드라… 음… 겨우 어제일인데 기억이 안난다.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 보니 누가 누구한테 줬는지 원.. 암튼 내가받은 선물은 텍스트테잎(text tape)이다.
상자않에 수많은 단어들이 들어 있고 그 중에서 필요한 단어를 골라서
원하는 문장을 조합해 어디다 붙이거나 하는 것이다.



파티가 끝났다.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또한 델프트에서 우리들끼리 했던 파티와는 또 다른 경험의 파티였다.
고급스러웠고 유쾌했다.
JYA도 이런 파티를 연말쯤에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것으로 공식적인 VMX in Amsterdam 에서의 일정은 끝났다.
물론 앞으로도 이들을 볼일은 많이 있을 것이다.

120114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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