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랜만에 쓴다.
자꾸 일이생기고,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보니 글쓰는걸 미루게 된다
먼가 마음이 편해야만 글을 쓰고 싶어진다
마음이 불편하니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한 방에 앉아서 있는 시간자체가 견디기 힘들때가 있다
말그대로 마음이 허한 사람이 요란하다고 내가 딱 그짝인가 보다

사실 독립을 결정하는데 있어 앞서 얘기했던 왜 독립하고자 하는가 하는 주제는
그리 특별할게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하는 사람치고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며
굳이 건축이 아니더라도 자기 일을 하고싶다 라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런생각을 결심으로 옮기는데 있어 약간의 계기가 있었고 또한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 다른 말로 하자면 살아남을 수 있을거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매우 크게 작용했을 뿐이다

사실 독립을 결정하기위해 더욱 중요한건
'하면 안되는 이유' 를 생각해보고 고민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지만 그 이유들에 대한 대책을 미리 고민해 볼수있고
결국엔 '하면 안되는 이유'는 없구나 하는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않으면 칠흑같은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 버릴수가 없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결국 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따라서 앞으로 몇번에 걸쳐 우리 각자에게 '독립하면 안되었던 당시의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우선 나에게 있어 독립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때쯤에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지금 독립하는게 과연 맞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내가 지금 독립할 실력을 갖고 있을까' 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져보는 생각이 아닐까 한다

나의 경우에 이런 생각이 실질적으로 다가올때가 언제였는가 하면
사무소에서 파트너들과 미팅을 할 때였다.
우리 사무소는 두 명의 파트너가 있다. 한명은 아일랜드 출신이고 한명은 더치이다
프로젝트는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프로젝트당 1명 혹은 2명이서 진행을 하고
파트너들과 수시로 미팅을 갖는다. 머 한마디로 크리틱을 받는다고 할수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사무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프로젝트 초기디자인에는 거의 참여를 했었기 때문에
(물론 중간에 껴들어갔다가 나온 프로젝트도 있지만)
파트너들과 미팅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졌다

그때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 내고 아이디어를 낸다.
무릎을 꿇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아 많이 배우는구나 하고 느꼈다
하지만 막상 마음속으로 독립을 결심하고 나니
배운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내가 아직 배워야할게 많은거 같은데
과연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네덜란드 사무소에서 일하며 배울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를
버리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매일매일 하루에 열두번도 마음이 왔다갔다했다.

그리곤 근본적이면서 문어발식으로 걱정들이 이어졌다.
선배들이 이 나이에 독립하지 않는건 다 이유가 있었서가 아닐까.
좀더 실무를 하고 독립을 할까.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괜히 시작하는건 아닐까.
여기까지 자리잡는데 쉽지 않았는데 네덜란드에 더 있을까.

하지만 한번 마음속에 자리잡은 욕망은 이런 이성적인듯 보이는 이유들로 쉽사리
잠재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파트너 중 한명인 Don 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이 이유로 면담을 한건 아니고 다른 일로 얘기를 시작해서
하다보니 마음속의 얘기가 나왔나 보다.

솔직히 얘기를 했다.
Don 이 말했다.

if you have a chance, you! have! to! take! it!

정확히 저렇게 말했는진 기억이 잘안나는데 암튼 비슷하게 얘기했다
기억나는건 얘기하면서 강조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얘기를 해줬다.
자기가 29살에 독립한 얘기들...

물어봤다.
나 아직은 너한테 더 배워야 할거 같은 생각이 든다.
너를 보면서 항상 많은 걸 배우고 있다.
독립을 하면 이 기회를 버려야한다는게 아쉽다

Don 이 말했다.
자기가 29살에 독립을 했을때 자기는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니가 할수밖에 없기 때문에 넌 해낸다.
(영어로 한말을 우리말로 옮길라니 좀 이상하군 큼.)
저기 있는(당시 미팅룸 밖 유리너머로 보이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를 가르키며)
저 친구가 여기서 8년째 일하고 있지만 8년 지났다고 저 친구가 나처럼 되는건 아니다.
니가 여기 몇년 더 있는다고 '이제 충분히 배웠네' 하고 느끼는 순간이 오는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말이 니가 니 프로젝트를 하게되면 남 밑에서 배우는 것 보다
100배는 더 많이 배울수 있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무소에 와서 일하다가 떠나갔다고 했다
그들을 보며 자기가 생각하는 최선은
그들이 자신의 사무소를 차려 나가는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건축가로 성장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했다.

물론 얘기의 끝에 이런 말을 덧붙여주었다. 친절하게도..
가장 빠르면서 가장 악몽같은 길이라고...
자기도 처음 2년동안은 돈을 잃었단다. 쩝..

한순간 마음이 편안해 졌다가 순식간에 다시 먹구름이 몰려왔다.
ㅎㅎ
이건 농담이다.

Don 과 얘기를 하고 나서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다.
생각해 보니
배워먹는건, 즉 높은분이 주시는것 잘 받아먹는건 건축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벌써 학교다닌 횟수로만 7년째 먹었다.

이걸 언제까지 먹는다고 배가 불러서 완전체가 될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그런건 안되지 싶다.

Don 을 비롯한 내가 보아온 소위 일가를 이룬 건축가들에게서 나오는 예리함은
아마도 야생에서 살아남은 자들만이 가질수 있는 노련함과 경험, 그리고 그 강력한 생명력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싶다
우리에서 사육된 자가 뿜어낼 수 있는 눈빛이 아니다.

첫번째 고민의 순간이 지나가는 듯 했다.

111128 Y




이 글을 마지막으로 고민을 날려버리고자 한다.


  "세상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 가장 모르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오히려 타인은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데 나 스스로는 편견과 자기애에 사로잡혀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힘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 순간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누구나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때는 나와 같은 갈등과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하고자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생성되었는데 자기 인식의 벽 때문에 자신감을 미리 꺾는 경우도 자주 본다.

  그런 분들에게 감히 충고를 한다면, 자기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일단 시도를 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도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일단 시도한 것이라면 아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할 수도 있고 성공을 할 수도 있는데, 그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가운데 자기를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며, 이 자체만으로도 무척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선택과 시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것이 꼭 직업, 회사일과 관련된 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무엇이든 자기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들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시도를 해보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 안철수 '나와의 만남, 나의 발견' 중에서

111123 J



아 마음이 심란하다
퇴근후 집에와 한미FTA 날치기 통과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일단 "개새끼들" 이라고 한마디 하고 시작해야겠다.

정치.. 정치가 어느순간에서부터 남의 얘기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당장 애를 키워야해서 교육비를 걱정해야한다거나 집을 사야되는데
집값이 너무 뛰어서 정치가 피부로 와 닿는다는건 아니다.

건축가라는 직업이 사회와 얼마나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즉, 가장 걱정되고 짜증스러운건 우리사회가 저성장 지속발전의 단계로 접어들어야 할 시점에
터진 이 미국이라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경제적 사상과 구조를 가진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우리사회의 나아갈 길이 얼마나 왜곡되고 변질될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지금도 지랄같은 한국 건축시장이 어떻게 바뀌어 갈지 참으로 흥미진진해진다.
정말이지 우리나라에 있는, 또 미국에 있는 이에 관련된 놈들 모두 다 개새끼들이 아닐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건축가로서 건물을 완성하는 과정은 매우 다양하다.
예쁘거나 혹은 멋있는 디자인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건 그 중 일부일 뿐이다
그외에 건축가가 해야하는, 따라서 할줄 알아야 하는 영역이 아주 많다.
건축주 혹은 개발업자를 만나고, 다른 협력업체 사람을 만나고 혹은 건물을 사용할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만나서 토론도 하고, 협박도 하고, 설득도 하고, 설명도 하고, 웃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머 이런 것들이 건축가가 해야하는 것들이다.

어찌보면 이런것들을 하는것이 디자인을 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고 어쩌면 더 재미있는 일일수도 있다.
암스테르담의 사무소에 있으면서 파트너를 통해 이런 건축가로서의 행위들을 매일 본다.
파트너들은 건축가로서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그래서 권리를 주장할 줄 안다.
즉, 그들은 프로젝트를 지배한다.
초기디자인 단계에서부터 땅을 파고 완공식을 하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과정에서 그들은 아이디어를 내고 설득하고 관철시키고 싸우고... 그리고 해낸다.
따라서 그들의 건물엔 디자인부터 재료사용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다.

그들은 '건축가' 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어쩌면 매일매일 지켜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을 사회환경의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고 본다.
물론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사회시스템이 우리보다 좋아서 거저 만들어준것도 아니고,
네덜란드의 모든 건축가가 이럴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내가 당연하다고 넘겨버리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곤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조사하고 설득시키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곤 건축주를 협박한다.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안하면 당신은 손해를 보는거다. 니가 나와 일을 하고있으면 나를 믿어라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건물을 잘 팔릴 건물을, 공간을 만들어 주겠다.
싫으면 말아라. 니 손해지 내 손해가 아니다.'

이 협박에 안넘어간 건축주는 못봤다.
즉, 그들이 누리고 있는 건축가로서의 삶은 그들이 쟁취한 것이다.
스스로가 건축가로서의 자존감을 지키지 않는데 그걸 알아서 지켜줄 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건축주, 혹은 사용자와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말뿐만이 아닌, 실제 디자인 단계에서 많은 협동작업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끌려다니진 않는다.
소통와 제시, 이 두 가지는 함께 이루어 져야한다.

이 모든 것들이 건축가가 해야하는 것이다.
건축가는 사회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나도 저런것이 하고 싶었다.
컴퓨터앞에 앉아서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완성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하며 고민하고 의심하고 찾아내고 해결해서
결국 완성하는 그런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 성취감이야 말로 건축가 라는 직업을 택하고 수없이 고민되는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 건물을 짓고 싶다는 나의 욕망에 더해져
나를 독립이라는 길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111122 Y






나는 왜 이 시점에 독립을 결심하는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번에 한자리에서 써 내려가기에는 많은 감정들이 교차하기에 제목에 다시 (1)을 붙였다.
지금 여기서 다 못한 말은 언젠가 채울 수 있으리라 보고서...

...나도 내 건축을 하고 싶다...


#1. 소모되고, 버려지는 나의 그림

작업을 하면서 하나의 최적의 설계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 일테지만,
내 생각을 담아 표현하고 그려낸 나의 그림이 너무나 쉽게 평가되고, 별거 아닌 어쩌면 어디서 베꼈겠거니 하고
치부해버리는 그런 상황들 속에서 내 머리는 이미 둔감해질대로 둔감해진줄 알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그림들이 계속 눈에 밟힌다.
한번에 내가 보여줄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그럴 실력을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냥 수많은 그림중의 아무것도 아닌 버려지는 그림으로 남기에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


#2. 낯이 화끈거리다

후배의 소개로 고등학교에 무료로 배포되는 잡지에 직업을 소개하는 꼭지에 건축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간단한 인터뷰전 나의 프로필을 묻는다.
대표할 수 있는 작업이 무어냐?
띵...
(할말 없음)
없는데요...
뭐라도 불러주세요...
얘기할수는 있지만, 그걸 제가 했다고 할 수는 없고요.
결국 프로필에 작업란은 공란으로 처리되었을 거다.
전화를 끊고서, 한숨.
나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냐...


#3. 자존감

사내 직무만족도 조사에서 설계부서에서 가장 낮은 점수가 나오는 것은, 
설계부서의 직원들의 성향 또는 희망을 대형사무소의 이윤을 내기 위한 조직구조와 상충되기 때문이리라 본다.
나도 별반 차이 없는지라, 
오히려 나는 나의 자존감 회복을 외부에서 찾고자 했다.
내 비록 회사에서는 이렇더라도, 내 작은 힘을 필요로 하는 무엇을 있을거다 하고.
가령... 사회봉사(?) 개념에서 출발한
그 '일'이
시발점이 되어 여기에 이 글을 쓰고 있다. 


#4. 30년중 5년정도면 

한번만이라도 내 작업을 할 수 있다면,,, 하고 머릿속에 맴돌던 아쉬움들.
앞으로 30년간 건축을 할거면,
5년정도 일탈을 해도 별 탈 없지 않을까? ㅎㅎ
나에게 5년이라는 시간의 기회를 주시오,, 와잎~


111120 J







 
'아 건물 지어보고 싶다'
네덜란드로 유학을 와서 델프트에서의 석사를 마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느꼈던 허무함과는 달랐다.
학부를 졸업하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은 '난 정말 진지하게 건축을 공부했을까' 였다.
겉만 번지르르한 그림그리기에 매달렸던건 아니였을까 였다.
그래서 내가 정말 건축을 할수있을지에 대한 깊은 의심이 들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유학을 결정했다.
그리고 석사를 마치고 나서 든 생각이 저거였다.

이젠 스스로가 건축을 훨씬 더 진지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젠 건축을 할 수 있을것 같았다.
건축이란 나 혼자 잘났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보기에 그럴싸한 것에 현혹되지 않고 진정으로 퀄리티있는 건축
혹은 공간을 보려는 눈이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덜란드에 취직을 해서 일을 시작했다
많은 프로젝트를 했다. 특히나 사무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컴피티션을 했던거 같다.
동시에 2개의 컴피티션을 왔다 갔다하면서 하기도 했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사무소에 아시아 사람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다.
근데 이 아시아인은 네덜란드 말을 못한다.
따라서 이 아시아인은 현장에도 갈 수없고, 상세도면을 그릴 수도 없으며,
업체와의 미팅을 맡기기도 애매하다.
클라이언트와 만나는건 더 힘들다.
의사소통을 하는 것과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상대방을 '요리'하는 건 전혀 차원이 다른 얘기다.

덕분에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는 대부분 참여를 했다.
당선되기도 많이 하고 떨어지기도 많이 했다.
당선되고 나면 이 녀석은 다른 동료에게 넘어간다.

어느순간부터 '아 건물 지어보고 싶다' 가 '아 내 건물 지어보고 싶다' 로 바뀌었다.


111116 Y

오늘은 좀 짧다.
요새 사무소에서 스트레스 이빠이다.
그래서 퇴근하고 집에오면 얼마안되는 자유시간동안 좀 자극적인 먼가를 봐야한다 ㅋㅋ
머리속에 먼가 좀 집에와서 놀았다는 느낌을 주어야지 덜 억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일도 2개나 써야되고.
그래서 오늘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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