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지 이제 2주가 다 되간다.

이제 한 일주일반정도가 남았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우연히 ANM studio의 김희준 소장님 블로그를 통해 연락을 드렸고
와서 머무는 동안 뵙고자 문의를 드렸더니 흔쾌히 시간을 내 주셨다.

장소는 신사동 가로수길.
본래 이곳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지금은 여러 사정상 이전을 준비하고 계신관계로 어쨌든
가로수길에서 보기로 했다

가로수길이라는 장소가 언제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지 난 잘 모르겠다
내가 무딘 탓인지, 아니면 본래 비싼동네는 출입을 잘 안해서 그런지 바로 강건너 왕십리에
있을때는 잘 몰랐다가 네덜란드 가서 인터넷 매체를 통해 오히려 더 많이 듣게 되었다.

가로수길.
처음가봤지만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것 만큼 흥미롭진 않았다.
다만 거의 20미터 마다 하나씩 있는 cafe 들이 얼마전 신문기사에서 읽은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

어쨌든 그렇게 가로수길을 한시간 정도 배회하다가 한 cafe에서
소장님을 만났다.

소장님은 의외로 격식이 없으신 분이었고 나와같이 걸죽한 X설 을 즐겨 사용하시는
와일드한 분이셨다.... 라는게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좀더 소상하게 묘사를 해 보자면 이런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현대사회의, 현대 한국 건축구조의 울타리나 정해진 길을 벗어나 오롯이 13여년의 시간동안
거친 들판에서만 살아오신, 아니 생존해 오신 야수의 기운을 뿜어내는 건축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내가 짧은 만남동안 그 모든 이야기들을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만나 본 건축가분들 중에, 적어도 한국의 건축가분들 중에선
가장 용감하게 맨몸으로 모든걸 받아, 견뎌오시고 철처하게 본인의 의지와 능력으로 살아오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말로는 자세히 하지 않으셨지만 그 동안 겪어온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 도전, 성취 등등
그간의 찬란했던 시간들이 내공으로 쌓여 몸에 베여있는것이 느껴졌다.

독립을 준비하고 있는 내게 말로는
"이 정신못차리는 놈" 이라고 자꾸 말은 하셨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말투에는 왠지 모를 애정과 기특함이 묻어 있는듯 했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자
"말을 곧이 곧대로 들으란 말이야" 라고 하시긴 했지만.

김희준 소장님의 지난 시간을 자세히 이곳에 쓰기는 힘들지만
놀라운 건 만 28살에, 그것도 IMF 가 닥친 1998년에, 학부를 졸업하고 경력 2년의 배경이
다 인 상태에서 건축시장이라는 거친 들판으로 뛰쳐 나오셔서 지금까지 살아남으신 그 이력.
그리고 이제 한번 더 도약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그 눈빛과 자신감.
사실 이런것들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동안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디자인부터 시공관리까지 혼자서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프로젝트의 규모와 완성도가 굉장히 훌륭하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내가 김희준 소장님을 뵙고싶어한 이유도 홈페이지에서 본 프로젝트의 완성도나 디자인이
매우 흥미로워서 이기는 했지만 그 모든걸 거의 혼자서 하셨다는 것에 사실 놀랬다.
이분은 진짜였다.

김희준 소장님이 비록 나에게 말로써 이런저런 격려나 충고도(혹은 정신 못 차린다는 야유도) 많이 해주셨지만
지금 현재 소장님이 보여주신 그 지난 행적들 자체가 독립을 준비하는 젊은 건축가들에게
훌륭한 격려이고 표상이며 희망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했다.
돈이나 빽이 아닌 오로지 실력만으로 하나를 만들고 그 하나가 다른 프로젝트를 불러오고...
많은 독립을 꿈꾸는 젊은 건축가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생존의 프로세스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몇가지 구체적인 소장님의 얘기를 정리를 해보면
나에게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바로 '너는 너고 나는 나이다' 라는 것이다.

이것이 먼 말인고 하니 다른 유명한, 주변의 좀 잘나간다 싶은
건축가들을 신경쓰지말고 '너는 니꺼 하는거고 나는 내꺼 하는거다' 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좀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너무 남에꺼, 혹은 남의 충고를 신경쓰다가 갈길조차 잃어버리지 말고
내꺼를, 내 건축이야기를 꾸준히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내 건축이야기' 이고 이를 '꾸준히' 하는 것이다.
이게 유행하면 이거하고 저게 좋아보이면 저거 하고 하는 게 아니라 당장 눈에 보이진 않더라도
내 건축을 이야기 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장기적으로 나에게 다른 기회들을 열어줄 것이라고 하셨다.
두번째는 천천히 가더라도 '꾸준히' 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장님 표현을 빌리자면 '막 뛰어가다가 또랑에서 엎어져서 넘어져 버리는게 아니라' 꾸준히 가는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셨다,

이쯤에서 나는 엠비씨의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생각이 났다.
7명의 가수들이 경쟁을 한다. 그 각각의 가수는 비록 현재 가요계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각자는 각자의 스타일을 갖고 있고 그걸 좋아해주는 매니아, 즉 그들만의 팬층이 존재한다.
그들은 평생을 각자의 장르적 영역성을 갖고 활동해 왔으며, 자신만의 그 무기와 내공을 가지고
'나는 가수다' 라는 무대에서 경쟁을 한다.
누군간 그저 매회 그들을 순서매기기에 큰 의미를 두고 보지만,
그들은 실은 각자의 '내꺼'를 가지고 격돌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내꺼'를 가진 가수들을 보며 소름이 돋은 적이 있었다.

오늘 소장님이 말씀해주시는 것도 그런 '내꺼'를 가지라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건축가라 불리는 우리도 일렬로 줄세워 등수를 매길수 없는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도 안되는 것인데
우리는 앞에있는, 혹은 유명한, 잘 나가는 그들을 따라 가고자 하기도 한다.

하지만 후에 우리것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누군가와 경쟁할 수 있는, 내껄 꺼내보여줄 수 있는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려 하고 보여주려 하여야 한다.
그것이 독립을 준비하는 젊은 건축가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일단 가진게 '자신감' 과 스스로도 염려될만큼의 '우직함 (혹은 무모함)'이니 일단은 좋은 출발이지 않은가.

김희준 소장님이 현재 얼마나 행복하신지, 건축가로 살아오신 지난 13여년의 시간에 얼마나 만족스러워하시는지는 모르겠다.
안여쭤보았다.
만약 만족스러워 하신다면 한편으론 허탈한 마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약 10여년후에 독립한 건축가로서 살아남아 있다면 어떤 마음일까 몹시나 궁금했다.

다만 짐작컨데 지난 시간동안 즐거우셨으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행복은 성공을 해서 행복한게 아니라 성공까지 가는 그 길에 행복이 있다고 나도 생각한다.
이 말은 다시 말해 그 길이 행복하다면 그게 곧 성공이라는 의미도 될 것이다.

10년후, 20년후에 어느정도의 경제적, 사회적 부와 명예를 얻느냐가 성공과 행복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이 길에 들어설 필요가 없다.
상상만 해봐도 얼마나 허탈할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나에겐 그 10년, 20년동안, 아니 그 이상으로 오랫동안 과정을 즐기며 행복한게 중요하다.


끝으로 다시한번 바쁜시간 내주신 김희준 소장님께 감사드리며
중간에 오셔서 좋은 말씀 해주시고 저녁까시 사주신 이로재의 정효원실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111221 Y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