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델프트(Delft)를 방문했다.

아마도 귀국전 마지막방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벌써 졸업한지 시간이 꽤나 지났기 때문에 아는 분들이 많진 않다.

머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델프트에 오니 지난 유학동안의 시간들을 돌이켜보게된다.
델프트에서의 유학은 건축적으로만 봤을때도 물론 나에게 무척이나 인상깊은 시간들이었다.
누구나 본인이 공부하고 머물렀던 곳에 대한 아늑함과 향수가  있기 마련이다.
거기다 그것이 시간이 좀 지나서의 회상이라면 그것은 더욱 미화되어,
아름답고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시도 그렇다.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좌절도 있었지만, 그 고통의 시간만큼이
미화되어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사실 이런 글은 학교를 막 졸업했을때, 혹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에 쓰는 것이
적합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더욱 생생하고 와닿는 얘기들을 쓸 수 있을테니까.
따라서 지금의 나는 이 델프트공대를 이야기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떠올리고자 했을때 떠오르는 것을 몇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더 늦기전에.

델프트공대의 가장 좋은 점중에 하나라면 다양한 성격의 트랙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하이퍼바디(Hyperbody)와 같이 컴퓨터스크립팅을 기본으로 한 스튜이오에서부터
전통적인 디자인 방법론을 기본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까지,
또한 공공건물, 집합주거 처럼 전통적인 건축의 프로그램들을 주제로 하는 스튜디오부터 재료, 혹은 고층 빌딩,
친환경빌딩을 프로그램으로 하는 스튜디오까지 매우 다양한 스튜디오가 다양한 주제와 방법론을 갖고 개설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의 관심과 목적에 맞는 스튜디오를 2년동안 계획을 하고 조합을 해서 스튜디오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전혀 다른 성격과 주제를 갖고 있는 스튜디오들이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도 학기내내 동시적으로
옆에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에더해 각각의 다른 스튜디오들 사이의 일명'융합'이 때때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것은
학생에게는 금같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스튜디오 진행내내 건축 디자인과 동시에 구조와 재료등 디자인이 실체화 되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과 지식들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구조, 디테일 잡지에서 보고 베끼는 한이 있더라도) 디자인뿐만이 아닌 좀더 입체적인 관점에서
건축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을 기울이려는 자세를 갖고자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학부에서부터 이루어지는데 그로인해 학생들은 건축을 그림이 아닌 현실속에 존재하는 '장' 으로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오픈렉쳐와 관련 시설등등은 다른 좋은 학교들도 그러할테니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여기까지가 좀 공식적인 얘기였다면
개인적인 기억으로 좀더 들어가보면 이렇다.

지금돌이켜봤을때 기억에 남는 것중 하나는 스튜디오동안 튜터가 언제나
강조한 것이 평범한 것, 기존에 하고있는 방식말고 다른, 재밌는, 기존에 있지않은 것을 시도해보라는 것이었다
이는 비단 디자인의 형태뿐만이 아니라 구조방식이며 재료사용이며
내가 알고있던 '이런형태에는 이런구조면 혹은 이런재료면 일반적으로 되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의심하라는 것이었다.
즉, 디자인초기부터 구조 및 재료, 거기다 프리젠테이션 하는 방법에 까지
모든 기존의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의심하고 다른것, 재밌는것 을 찾을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다른 기억은, 공간을 만들어 냄에 있어, 아니 공간을 탐구하는데에 있어
굉장히 열린 방법과 진지한 마음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건축은 적어도 나에게는 유학을 오기전에는 굉장히 표현적이고 형태적이며
자극적인 건축처럼 보였다. 잡지를 통해서 본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와서 느꼈던 네덜란드 건축은 흥미진진한 표현과 형태들 속에서 언제나
기본을 먼저 강조하고, 순수한 공간자체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제나 재미(fun)을 놓치지 않는다.


들었던 스튜디오중에, 혹은 옆방에서 했던 스튜디오를 구경한 것중에선
면과 선등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부터 시작해 그들의 접기, 구부리기, 그리고 조합등의 변형을 통해, 
각종 재료의 물성을 분석하고 이미지화를 하는 것을 통해, 라이노에서 만들어지는 자유 3D 형태의 조합 및 변형을 통해, 
도시의 모든 각종 현상을 분석하고 형태화 시키는 것 등등을 통해 의도하지 않았던, 손으로 쉽게 그려지지 않는 그런 공간들을
탐구하고 찾아내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다.


때로는 일차적으로 '어떻게 저 주제에서 공간적인 요소를 발전시킬수 있을까' 하고 
당황스러울때도 있었지만 결국엔 진지한 탐구와 분석 그리고 재구성을 통해
그안에서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과 퀄리티(quality)를 찾아낸다.
나름 당시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에서 끊임없이 싸울것을 요구한다.
싸움이라는 표현이 우리말중에서 가장 적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교를 다니는 내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디자인과,
그리고 튜터와 끊임없는 싸움이 필요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음… 글을 시작할때는 이보단 더 쓸수 있을 것 같았는데 더 이상 적당한게 떠오르진 않는다.
또한 쓰고보니 델프트(Delft) 에서 공부하신 다른 분들께서 보시고 틀렸다고 하시는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그것도 무척이나 미화되었음이 분명한 기억을 가지고 쓴 것임을 밝혀둔다.


다만 분명한 것은 델프트에서의 2년간의 치열했던 단련과정들은 학부때 갈망하던
욕구들을 일정부분 만족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진지하고 겸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몇몇밤에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리.


끝으로 오늘 델프트에서 시간을 내 주신 형님들, 친구들 그리고 동생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 또 세계의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함께 델프트에서의 시간을 나누었던 분들에게도.



아, 여기 일본의 건축 잡지인 A+U의 2012년 신년호에
TUDelft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건축교육에 대한 에세이가 있어서 소개한다
내가 쓰지 못한 좀더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scanned by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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