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건축주나 상담하시던 분들이

왜 요즘은 독립건축가 생존기에 글을 많이 안쓰냐는 질문을 하신다.

"음... 왜 일까"

이 질문에 대한 진심은 사실 마음속에 있었지만,

그대로 말씀드리진 못하고, 그저 너무 바빠서 잘 못쓰게 된다라고 얼버무리고 만다.

 

아주 틀린말은 아니다.

이곳에 글을 쓰는 것은 사실 머리속에 먼가 생각이 좀 머물고 있을때,

하고 싶은 말이 있을때, 그럴때 보통은 글을 써왔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말한 것 처럼 머리속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있어야 하고,

그런 생각들은 보통은 손과 발이 너무 바쁘지 않을때,

중간중간 멍하니 있거나, 혼자 별 일 없이 있는 때에 생겨난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 많은 사건들이 있고, 시간은 늘 부족하고, 

그저 벌어진 사건들을  해결하려 하다보면 생각으로 정리할 여유가 없이

하루 하루, 일주일 이주일, 한달 하고 또 여러 달이 지나가 버린다.

겨우 몇일 전 일도 기억이 가물가물 할 만큼 정신착란의 상태이다. ;;;

따라서 머리속은 늘 먼가가 복잡하게 엉켜있는 상태이고, 머리와 마음이 차분할 여유가 없다.

늘 불안하고, 이상하게 당장 여유가 있으면, 지금 멍하니 보낸 이 시간이  

훗날 화살이 되어 돌아올 거 같은 초조함에 시달린다.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도 썼다 지우다 썼다 지우다 하다 결국 포기한다. 

 

글이라는 것이 생각이 정리되고 정리되서 나오는 결과물이라 했을때,

최근에 이곳에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쓸 소제가 없어서도 아니고,

글을 쓸만큼의 물리적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정확히는 머리속이, 그 안의 생각이 정리되지가 않아서이다. 

 

사실 이 상황은 단순히 블로그에 글을 쓰냐 안쓰냐의 문제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다. 

사무실을 하고 있으면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없이 살고 있다는 것,

그때 그때 벌어진 상황에 함몰되어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찔한 상황이고, 

이러는 사이에 사무실이, 그 안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서둘러

살펴보아야 할 일인 것이다. 

모두가 알겠지만,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해가고, 또 세월도 너무나 빨리 흘러가고,

정신줄 놓고 있는 동안 흘러간 곳이 때로는 생각지도 못하게 멀리 와버린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그 반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생각을 정리하고 정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글이지만, 

반대로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그것이 다시 글로 써지면서 생각이 갈 길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마지막 글 이후 약 반년이 지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정리한 생각을 쓰기 위해서 이기보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좀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동안 이곳에 써 왔던 글이 보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되게 느껴졌던 이유는 

바로 꾸밈없이 생각들을 정리해서 써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생각을 꾸미려 하고, 돌려말하려 하고, 있어보이려 하는 

태도들도 생겨났다. 

좋게 포장하자면 이제 사무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제 꽤나 많은, 건축주를 포함한,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솔직함만이 정답은 아니지, 그럴 수도 있어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사실 까놓고 얘기하면 그저 잘보이고 싶고, 잘나보이고 싶고, 

그로부터 나의 불안감이나 초조함을 감추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마치 슬램덩크에서 변덕규가 산왕전에서 쓰러져있는 채치수를 향해 무를 썰어주며,

넌 회를 꾸며주고 받쳐주는 그런 존재인데 왜 주인공이 되려 하냐 라며 정신차리라고 했던 장면처럼

(워딩이나 비유가 다 맞는진 모르겠다.....머 비슷한 상황이었던거 같긴 한데 ㅋ ;;;)

블로그의 글을 좋아했던 분들은 그런 진솔함에 공감해서 였던 것이지,

우리가 잘난체하는 걸 보고싶어서는 아니었을 것이고,

블로그를 우리가 쓰는 목적도 그런 진정성을 공유하고 싶어서 이지,

우리가 어떻게 보여질 지가 첫번째 고려사항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따라서 우선 소박하게는 글을 좀 자주 쓰려고 한다. 

정리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고, 지금 나에게는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눈치보지 않고 쓰려고 한다. 

모두에게 잘보이려 노력하기보다,

좋아해주는 분들도 있고, 또 실망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 받아들이려 한다.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그것으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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