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 시기에 그 정도 되는 사무소를 그런 상황에서 그만두기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하지만 성일은 이 주렁주렁 붙은 우려들을 단순히 좀더 재밌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별거 아닌듯 과감히 떨쳐내었다.

물론 본인에겐 별거 아닌일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그의 과감한 용기에 응원을 보내고 

또한 언젠간 반드시 부상할 새로운 건축의 시기에 함께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 그의 짧은 글을 소개하며 그의 다음 선택이 무엇이 될지 기다려본다.





-우주의 중심이 대지빌딩 205호에 머물었던, 지난 한 달-


“그만두겠습니다.”

사실,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두 분 소장님을 만나고 여기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은, 짧은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했을 일, 그런데 우연찮게 제가 하게 된, 저에겐 매우 특별한 경험.

지리산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친구에게 온 메세지,
“선배가 하는 사무실이 있는데, 전인적인(?) 인간을 원해.  지금 당장 하는 거 없으면 해볼래?”
“전에 있던 사무소와는 극과 극인데?  무엇이든 해보는 게 좋겠지?  가볼게.”

그렇게 시작한 일이 한 달이 되었습니다.  

JYA-rchitects에 오게 된 것은 분명히 행운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었고 경험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동시에 맡았던 일이 잘 되지 않은 것은 불행입니다.  뛰어난 인재는 주어진 시간이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일을 마무리 짓는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이 일은 사무소 측에서는 ‘손해’이지만, 저에게는 무조건 ‘이득’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지난 한 달을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아가는데 쓸 수 있었으니까요.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저에게 이 소중한 경험은 앞으로 한 달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겁니다.  해 본 것과 안 해 본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니까요.  그 차이를 알기에 이 모씨는 그렇게도 ‘해봤는데’를 연발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상황은 우연의 백만 제곱 정도는 될 것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우주의 중심이 제 주위를 맴돌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 번 경험이 이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누군가의 눈에 ‘실패’로 보이더라도  그 때는 ‘실패’가 아니라 누구도 무시못할 ‘경험’으로 자리잡을 것이라 믿습니다.  거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모래 밭에 조금씩 더 깊은 뿌리를 내릴 것이라 확신합니다.

‘과도한 노동과 적은 보수’, ‘사양 산업’, ‘염가 설계’라는 암울한 말들로 점철된 건축계에, 쓰러지더라도 부러지지 못할 굳건한 나무로 자라날 수 있는 뿌리가 되어주세요.
‘나만 살면 돼’가 아니라, ‘내가 잘되야 내 후배들도 나를 보고 따라오지’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던 그 모습, 몇 년 뒤에도 그대로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뒤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첫 번째 collegue가 된 것을 감사하며,
2012년 7월 11일
박 성 일 드림

추신 : 누군가는 걸음마를 내딛는 갓난 아기로 볼지 몰라도 제 눈에는 무소불위의 전차같았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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