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접수가 끝난 이후 사무실 구성원들의 투표를 통해 면접대상자를 선정하였고, 지난주 목요일부터 어제까지 총 3일동안 최종면접을 진행하였습니다.
역시나 올해도 너무나 어려운 과정들이었습니다. 어제 밤에 사무실 구성원 모두가 모여 최종 합격자를 선정하는 동안에도, 한분한분 떠올려보면 누구하나 욕심나지 않는 분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장점이 두루두루 많으신 분들이었고, 특정부분에 특출나게 뛰어나신 분도 있었고, 두고두고 맘이 쓰일 정도로, 짧은 면접시간임에도 정이 든 분도 있었습니다. 웃는 얼굴표정 하나하나까지 기억이 나서 결정을 할때 진심으로 쓰리고 안타까운 분도 있었습니다. 미사어로 쓰는 말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경기상황이, 건축사무소들의 현실이 이 분들께 좋은 기회와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것에 깊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저희 또한 부족한 현실에 더 많은 분들을 안아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지원해주시고, 면접을 본 분들 중에서 가장 잘 하는 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무실 구성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을 선택한다는 기준으로 고민하고 고민해서 선택하였습니다.
부디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이 이미 본인들이 충분히 잘한다는 자신감을 가지시고, 비록 쉽지않은 현실이지만, 조금 더 인내하셔서 앞으로 좋은 건축 해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고 문의를 주시기도 하셨는데 워낙 조심스러워서 중간에 채용과정을 공유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건축설계사무소에서 도대체 버터가게는 왜 하는 건가? 아니, 더 근본적으론 건축사무소를 하면서 다른 사업은 왜 하려고 하는 건가? 이게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요소들인가?
일단 사무소를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난 이후, 건축사무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고되고 꾸준히 생존하기조차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이 보기에 상대적으로 일찍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실제 느끼기에는 그러했다. 그래서 그 이후 내 머리속에는 늘 좀 더 안정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매개로 연결된 생태계냐 했을 때, 그것은 건축, 디자인 이런 것들을 매개로, 그리고 어쨌든 지금 우리의 본업인 JYA-RCHITECTS라는 사무소를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무소라는 하나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건축설계를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무엇보다 재미있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무소를 중심으로 그 어떤 형태가 되었든 따로 존재하기도 하고, 상호 시너지가 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서로 연결되고 이어져, 건축을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의 디자인으로 확장될 수 있고, 다양한 영역과 교류할 수 있는 생태계가 되기를 바랬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로부터 좀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랬고, 일거리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 안의 구성원들이 좀 더 안정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랬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버터는 건축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진 않지만, 좀 더 넓고 길게 보면 버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게 디자인이고 또한 이후 다양한 형태로의 변형과 확장을 고려했을때 건축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될 수 있다고 봤다. 그 확장이 어떤 식으로 또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생태계를 만들어가면서 또 하나 기대하고 있는 것은 그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다. 나나 조소장이 잘 할 수 있는게 있고 못하는게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하는 것은 못하는 것을 해보려고 욕심내는 것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못하는 것을 잘 할 수 있는 사람과 이어지는 것이다.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은 이처럼 우리가 못하는 것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고 그들로부터 우리 능력 밖의 기회와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버터로 시작된 이 시도가 결국엔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전에도 사무소에 관해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나나 조소장이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혹시나 우리가 우리를 지켜보는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맨땅에서 시작한 후 조금씩 성장해가고 버텨내고 결국 생존해 냈을 때 일 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어쩌면 이 생태계도 그런 비슷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비롯 자본도, 규모도 부족하지만 건축을 중심으로 하나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것이 잘 작동해 흥미로운 결과들을 만들어 갈 때, 부동산이나 거대한 자본을 통해서가 아닌, 좀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의 생존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우리의 이 도전이 지금의 이 극단적 건축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는 도전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 왜 버터인가에 대한 답은 특별하지 않다. 그저 원우가 버터를 하고 싶어했고 자신있어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와 조소장) 관점에선 그것이 전부였다.
내가 사무실을 시작하고(일종의 사업이란 걸 시작하고) 깨달은게 하나 있다. 어떤 일이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그걸 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그대로 인사가 만사다. 일을 하는 사람이 그 일을 애정하고 있어야하고, 오롯이 자신의 일이라 여겨야하며, 끝없이 높은 수준을 달성하려는 눈높이가 높아야하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에 대해 높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책임을 지라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시스템도, 원칙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결국 마지막엔 사람이었다.
이 버터는 철저히 그런 관점에서 선정된 아이템이다. 즉 무엇을 할지가 중요하지 않았고, 누가 할 것이냐가 먼저였고 바로 그 누가가 원우였다. 원우는 오랜시간 지켜본봐 무척 부지런하고, 무척 성실하며, 매우 책임감이 높다. 또 센스가 있다. 거기다 건축설계를 하고 있지만,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쭉 요리와 식재료에 관심이 많아 그런 자신의 관심사와 장점을 펼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본인이 건축설계도 하고 싶고, 음식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 어떤 것도 대충 해서는 성공할 수 없기에 이 둘을 병행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한때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하려는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둘을 어떤 식으로든 조합해 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여럿이서라면 가능할거란 믿음이 있었다.
또한 여기서 다 밝힐 순 없지만 어쨌든 후보로 올라있던 것이 버터 말고도 몇가지가 더 있었다. 그 중에서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의 여건, 판매방식의 다양성, 이후 확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버터를 결정했다.
가미버터를 구상하려면, 당연히 우선은 기본 재료가 되는 버터를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어떤 재료를 더할지, 그래서 최종적으로 어떤 맛을 구현할지 연구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모든 개발은 100% 원우의 능력이었다.
또한 버터를 가지고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버터 뿐만 아니라 디자인하고 만들어야 할 것들이 무척 많다. 사실 버터 맛을 개발하고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디자인이지만, 그 외에도 이름을 짓는 것, 포장지를 만드는 것, 로고를 만드는 것, 온라인 페이지를 구성하는 것, 오프라인 매장을 만드는 것, 그 안에 들어가는 아주 작은 아이템들 하나하나까지 디자인이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지점이 건축설계사무소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이자 우리에게 있어 하나의 즐거움 이었다. 그 동안 하지 않았던 스케일과 종류의 디자인을 고민해 보고 작업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의 자극이 된다. 이 모든 것 또한 원우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이번에 준비를 하는 동안 가미버터를 이러저런 음식과 함께 조합해 먹어보면서 그동안 몰랐던 버터맛의 깊이와 다양함을 알게 되었다. 먹는 것에 대한 깊이가 조금도 없는 내 입장에서도 버터는 생각보다 어떤 음식과도 좋은 조합을 만들어 낸다고 느꼈다. 특히 별거 없던 음식(완전한 육식주의인 내 입장에서 평소에 살기 위해서만 가끔 먹던 음식들이 있다)들이 그저 버터 한 조각으로 전에 느끼지 못했던 풍요롭고 풍미있는 맛이 되는 걸 보면서, 버터라는 아이템을 탐구하고 발전시켜 보고 세상에 내놓는 것이 해볼만 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