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기본적으로 반복운동이다.
이 반복이라는 것은 유사한 동작을 여러 번 하고 또 하는 그런 행위의 연속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기 위해서, 그리고 처음 몇 킬로를 달릴 수 있게 되기까지 필요한 건 오로지 이 반복적인 행위를
꾸준히 지속하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된다.
나같은 경우는 처음에 운동장의 트랙을 5바퀴 뛰는 것으로 시작을 했다.
물론 처음엔 10바퀴 정도는 뛰어야지 하고 시작했지만 내 나이와 내 체력이 내 머리 속 기억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겨우 2바퀴쯤 돌았을 때 깨달았다. 10바퀴는 고사하고 2바퀴를 겨우 뛰고 멈췄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내 목표는 5바퀴로 내려갔다.
내가 뛰는 운동장 트랙은 한바퀴가 약 330미터 쯤 된다.
그러니 처음 내가 달성한 기록은 660미터였고, 목표로 삼은 건 겨우 5바퀴, 약 1.6킬로 정도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달리기라도 일단 시작했다면 이 후엔 오직 꾸준함만 있다면 내가 달릴 수 있는 거리는 점점 늘어난다.
이건 그 어떤 이견도 없으며 어떤 예외도 없다.
이처럼 단순하고 정직한 원리로 작동하고, 또 보상이 확실한 어떤 행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쉽게 찾기 힘들다.
이렇게 꾸준하게 뛰다보면 어느새 거리가 3킬로, 5킬로 그리고 마침내 10킬로까지 도달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엔 정확하지 않지만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해 약 2개월 정도 걸린 듯 하다.
아무튼 거리가 이 정도가 되고 나면 그 다음엔 이제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선택은 사람마다 그 성향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정도 거리에 만족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10킬로를 달리는 것에 만족할 수 도 있고,
어떤 사람은 더 먼 거리를 달리는 것을 목표로 해서 15킬로, 20킬로에 도전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 10킬로를 더 빠르게 달리는 것을 목표로 할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세번째 경우로 좀 더 잘 달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여기서 더 잘 달린다는 것은 아마도 더 좋은 자세로, 덜 힘들게, 더 빨리 달리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더 빨리 달리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해서 갑자기 더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같은 초보가 그걸 위한 방법 같은걸 잘 알고 있을리도 없다.
내가 아는 방법은 그저 꾸준히, 계속 달리는 것이었고,
다만 전엔 단지 10킬로를 완주하는 것에 신경을 썼다면, 이젠 시간을 기록하면서 달리기를 한다는 것이 좀 다르다.
처음 내가 10킬로를 달리게 되었을때 내 기록은 킬로미터 당 약 6분 30초대 였다.
(물론 이건 애플워치의 나이키러닝앱의 오류라 추측되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이것이 전부다)
이처럼 달릴때마다 기록을 신경쓰면서 달리고, 그렇게 꾸준히 달리다 보면 이제 몸이 점점
익숙해지고 다리에 근육이 붙고, 숨쉬는 것이 익숙해진다.
그래서 기록은 점점 줄어들고 몇달이 지나고 나서는 킬로당 시간이 5분 10초대까지 줄어들었다.
처음엔 5분대만이라도 뛰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기록이 생각보다 큰 폭으로 단축되 평균적으로는 5분 2,30초대로 줄었다.
이제 그 정도 속도로 뛰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고 나면 다음으론 4분대를 넘보게 된다.
그래서 이전에 해왔듯이 마음 먹고 더 빨리 달려보기도 하고, 10킬로가 아니라 5킬로를 4분대로 달려보려고도 해 봤지만 왠지
이번엔 물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거리에 상관없이 단순히 4분대로 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숨이 차서,
그런 상태론 1킬로미터를 달리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6분대에서 5분대로 진입하고 5분대 후반에서 초 중반으로 단축하는 것은 꾸준한 달리기로 몸이 익숙해지면 가능한 듯 했지만,
5분대 초 중반에서 4분대로 진입하는 것은 그것만으론 되지 않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달리기는 같은 자세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꾸준히 오래 달리다 보면 그 전엔 없었던 달리기에 필요한 근육이 발달하게 되고,
평소 걷기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의 폐기능이 달리기 라는 새로운 자극과 상황에 점점 적응해가며 그 용량을 키워간다.
하지만 반복운동인 달리기의 특성상 근육은 늘 쓰던 근육만 편중되서 발달하는 듯 하다.
특히나 평지를 달렸던 내 코스 조건상
나의 발바닥,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허리 그리고 심폐근육들은 모두 그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이리저리 궁리해보고 얕게 알아본 바 4분대로 진입하기 위해서, 즉 여기서 한단계 더 빠른 수준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동안 받지 않았던 다른 종류의 자극이 필요하고,
그를 통해 그 동안 발달되지 않았던 다양한 종류의 근육들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유튜브와 주변 고수분들께 여쭤봐서 알게 된 방식은 언덕달리기, 하체근력운동, 인터벌운동 등이 있다.
물론 난 아직까지 저런 운동들을 해보진 않았다. 현재 나의 상태는 딱 여기까지다.
건축사무소로서 생존하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덕목은 꾸준함이다. 꾸준히 도전하고 계속 설계하고(설계할 거리를 만들고) 또 설계하고 실패해보고
거기서 경험치를 얻는 그 모든 과정을 그냥 묵묵히 해나가는 꾸준함이 사무소로 생존하기 위한 기본인 것 같다.
물론 기본이라고 해서 쉽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포기하는 것은 처음의 바로 그 꾸준함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본을 지켜가는 건 무척 어렵다. 프로젝트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겠지만 프로젝트가 꾸준히 있어야 한다.
사실 이 조건만 충족된다면 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에 있어 어려울게 무엇이겠는가.
어쩌면 그렇게 되기 위해 역량있는 사무소가 되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꾸준한 설계가 필요하고,
결국 돌고 돌아 머리와 꼬리가 이어진, 답이 없는 얘기인 듯 하긴 하다.
우리는 매년 프로젝트 폴더가 약 30개 내외가 만들어진다.
물론 그 중에선 끝까지 가지 못한 경우도 많지만
어쨌든 민간이든 공공이든 다 합쳐서 그 정도의 프로젝트들을 시도하고 진행한다.
이는 많은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운영상의 고려 즉,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상하게 프로젝트를 많이 한다고 수익이 많이 남는게 아니기 때문에 더 어렵다.
그럼에도 그렇게 꾸준히, 가능한 ‘많은’ 설계를 진행하려 하다보면 기본적인 설계를 위한 사무실내 역량과 조직 구성이 만들어진다.
달리기로 치자면 킬로미터당 5분대를 위한 기본적인 근육이 생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사무소가 더 높은 수준의 단단한 역량을 갖기 위해서는 많이 꾸준히 하는 것에 더해
이제 다양한 근육을 단련할 필요가 있다.
사무소들 중에서는 소규모의 민간시장에서 특정 용도 등에 특화되거나,
현상을 통한 공공프로젝트, 혹은 설계를 넘어 사업의 영역에 특화된 경우들이 있다.
누구보다 확실한 자기의 시장을 갖고 있고, 그 시장에서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경우 내부의 작업 방식, 직원들의 마음가짐, 생산되는 결과물 등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선에 갇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익숙한 방식으로 시장에서 통하고, 이것이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편안함과 익숙함이 자연스러워진다.
일전에 한 소장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기직원들은 이제 너무 초식동물같이 되어 버려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을 꺼려하고, 새로 직원을 뽑을 때도 기존의 직원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성향의 직원을 선호해서 결국에는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로 사무소가 채워진다고.
마치 어느 정도 기록대에서 달리기가 편해지고 나면 그렇게만 꾸준히 달리고 싶다는 본능적 욕구가 생기는 것처럼.
결코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꾸준하게 한 영역을 영위해 간다는 것, 그 영역에서는 가장 많은 경험과 결과를 갖고 있다는 것,
즉 어쨌든 꾸준히 달려 그 누적 거리가 계속 늘어간다는 것은 그런 시간과 과정들이 쌓여 굉장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원한다면 좀 더 멀리 가기도 하고, 좀 더 빨리 달릴 수도 있는 다양한 역량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냥 성향이 그렇다. 그래서 특정 프로그램, 규모, 영역에 규정되어지기보다 다양한 조건의 프로젝트들을 다 (잘)할 수 있도록
내부의 다양한 근육을 키우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나 방법은 다양한 자극을 동시에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 것들이 내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꾸준히 진행되면서
사무소 내부에서 각각의 개인들이 다양한 경험과 자극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랬다.
극단적으로는 아주 작은 스케일의 디테일도 잘 디자인해 구현할 수 있고,
동시에 당장 지어질 것 같지 않은 그럴싸한 조감도도 제안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싶었다.
현재도 사무소 내에서는 이런 다양한 성격의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
작게는 누구도 이 정도 디테일한 도면을 요구하지도 않고, 그래서 돈도 되지 않지만 작은 프로젝트의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도면을 그리고 수정하고를 몇 주째 반복하고 있다.
또 다른 쪽으로는 안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이는,
대규모 개발사업의 마스터플랜과 조감도를 몇 번을 수정하고 또 수정해 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 먼 두 지점 사이에는 일반적인(?) 다양한 프로젝트들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이런 과정들을 통해 믿는 것은 그저 이러한 경험들이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의 역량을 넓혀주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과 이런 자극들이 내부에 쌓여서
우리를 외부 환경변화로부터 좀더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이다.
우리는 오래 달릴 수도 있고, 또 원한다면 빨리 달릴 수도 있는 능력을 갖고 싶다.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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