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 동안에는 설계공모를 많이 하지 않았다.
24년도에는 두 개를 해서 운 좋게도 두 개가 모두 당선되는, 승률 100%의 기염을 토한 이후,
25년도에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오랜만에 설계공모를 참여하기로 하고 시작했던 것이
국회세종의사당 마스터플랜 국제설계공모 였다.
시작은 아는 소장님들과의 술자리에서였다.
‘ 그래도 국회가 이전하는,
우리 일생에 다시 없을 특별한 프로젝트인데 참여는 해봐야 되는거 아니냐,
안되더라도 해보자 보자 보자 보자… ’
우리 가슴에 아직 패기라는게 남아있는 척, 사실 반쯤은 중년의 취기였다. ㅋ
그렇게 아는 소장님과 함께 팀을 이뤄 신청을 하고 기세좋게 시작을 했지만
아는 소장님은 현실을 직시하신 후 ‘원소장님께 뒤를 부탁합니다~’ 라는 말씀과 함께
중도 이탈을 해버리셨다.
그렇게 허허벌판에 남겨진 후 어쩔까나 잠깐 고민을 한 후 우리는 단독으로라도 이미
시작한 이 레이스를 마무리 해야겠다는 무모한 결정을 하였다.
아니 현상하나 하면서 머 이렇게 중도 이탈이니, 무모한 결정이니 하느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국회가 이전하는, 총 사업비가 약 5조가 넘는 대형 프로젝트이고, 이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뽑기 위한 설계공모이다 보니 우선 군침을 흘리는 고래들이 너무 많을 것은 뻔하였다.
거기다가 이 고래들을 생각해서 인진 몰라도 제출물의 양과 계획해야되는 양이 엄청나게 많았다.
또한 이건 공모기획단계에서 무슨 꿍꿍이가 있거나(이 정도 할 수 있는 규모만 참여해라 라고하는…)
제정신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밖에는 의심할 수 없는 지침들도 많았다.
그러니 이걸 우리같은 새우가 고래들 틈바구니에 껴서 해도 되는겨?
되도 않는 일 괜히 해서 줘터지고 나오는거 아녀?
이거 우리 인력으로 마감이나 할 수 있는겨?
건축판에 있는 고래들은 거의 다 들어올텐데 이 판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겨?
등등 이 프로젝트를 끝까지 하기로 결심하기 위해서는 속으로 감수해야하는 것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일단 한번 시작한 건 어떻게든 마무리는 한다라는 우리의 가오(?)와
안해도 딱히 할일이 없던 당시의 우리의 슬픈 상황과 맞물려,
떨어질게 뻔하지만 그래도 끝은 본다며 고! 를 외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공모는 약 두 달간의 치열한 내부작업과 주말을 반납한 직원들의 헌신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1차를 통과해 최종 파이널리스트에 올라갔고, 최종심사에서 4등으로 마무리 되었다.
사무실을 하면서 공모전을 여러번 했지만 공모 이후 이렇게 후기를 남긴 적은 없었다.
우선 당선되지 못한 공모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결국 패배자의 변명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지 않았고, 당선된 경우라면 굳이 자랑이 될거 같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공모 최종심사를 보며
이번에는 짧게라도 후기를 남겨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다만 지금부터 쓰는 글이 결국 돌고돌아 패배자의 옹졸한 변명과 원망으로 보일 수 있음을
나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너무 감정적이지 않고자 몇 번을 정제한 후 글을 올린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앞서 못먹어도 고! 를 외친 이유를 짧게 언급하긴 했지만
그 이유에는 사실 가장 중요했던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난 계엄 이후 우리 사회의 권력관계는
과거와는 분명하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민들 사이의 어떤 보이지 않는 정신적 연대가 생겨났고
시민과 국회의원이 온전히 한편이 되어본 이후 그 사이에는 전에 없던 유대가 만들어진 듯 하다.
말로만 하던, 시민을 받드는 정치가 아니라 진심으로 국회가 시민의 눈치를 보고,
시민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의식도 생긴듯 하고
진정으로 우리나라의 주권자는 국민이구나를 실감한듯 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이렇게
권력과 시민의 관계가 수평적이 된 적이 있었던가.
따라서 이런 시점에 새롭게 계획되는 국회세종의사당은 재정립된
국회권력과 시민의 관계를 공간화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우리의 민주주의는 세계의 모범이 되었고,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자발적이고 시민주도적이며 강한 회복력을 가진 민주주의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국회가 보여주어야 하는 모습은
세계에서 가장 앞에 서있는 민주주의 그 자체를 상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세계 1등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국회는 어떻게 정의되야 할까?
과연 그 모습은 어떠할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스스로도 너무 궁금했고,
다른 많은 건축가들은 과연 그 모습을 어떻게 상상하고 구현해낼까,
그들이 내놓는 답은 어떠할지 또한 너무나도 궁금했다.
이 질문을 온전히 고민해보고, 남들이 내놓은 답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모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민한 것 만큼 남들이 고민한 것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 공모에 참여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래서 당선은 어렵더라도 당선작을 보며 무릎을 탁! 하고 칠 수 있는
그런 결과를 볼 수 있기를 바랬다.
우선 우리 스스로 그 답을 찾아보고자 많은 고민을 했다.
역사적으로 권력기관이 가져온 관습적, 상식적 개념과 배치에서 벗어나고자 하였고,
우리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에 맞는 시민과 국회의 새로운 관계가 무엇일지 찾아보고자 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스로 그런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제출하는 순간까지도
우리 계획안이 정말 그 답을 찾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제출된 다른 안들에서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제안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심사.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권력기관은 권위를 건축과 공간으로 표현하고자 하였고,
그 핵심은 축과 스케일일 것이다.
개인을 움츠려들게 만들고, 가장 높은 권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함을
의미하는 축과 스케일.
권력과 시민 사이의 거리를 만들어 이를 권위로 치환하는 공간구조.
개인적으로 이 상징적 축을 중심으로 배치를 하는 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방식이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쉽게해선 안될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왜 우리는 여전히 국회의 권위를 거대한 축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하는가.
그렇게 거대한 축의 끝에 위치한 국회가 과연 미래 국민주권시대에 그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의원들이 있어야할 자리인가.
시민은 그 국회를 볼때 이 거대한 축을 통해서 보고,
이 긴 축을 어렵게 가야지만 국회에 도달하는 것인가?
그것이 주권자인 시민과 대리자인 국회의 수평적 관계인가?
국가의 권위와 상징이 왜 앞으로도 축의 폭과 길이에 의해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심사과정에 나온 축에 대한 관점, 국회가 금강 변에 있어야하는 이유 등은 이해할 수 없었다.
런던과 베를린 그리고 금강 주변의 도시맥락과 역사가 완전히 다른데
그저 강변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런던과 베를린이 그러하니 그래야 한다라는게 이유가 될 수 있는가?
국가의 상징은 인공위성에서도 보일 만 해야하고
그것이 국격과 이어진다는 방향의 심사평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민주주의, 국회, 그리고 그 권력의 주인인 국민의 관계를
여전히 근대적인 축을 통해 보여주고 상징해야 하는가?
그럼 축이 더 크고 넓을 수록 국격이 올라간다는 것인가?
그럼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크고 거대한 축이 필요한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상징축이 있다고 결정해도 좋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납득이 가게 설명해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왜 우리의 새로운 국회는 미래에도 축이라는 것을 통해 국가의 상징과 국격을 표현해야하는지,
그 비워진 거대한 공간이 평소엔 어떻게 시민의 일상과 닿을 수 있는 것인지,
축을 통해 국회와 시민의 거리가 멀어진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될 수 있는지.
새로운 국회의 정체성이 어떻게 해석되어서 축이라는 장치로 녹아들고 공간화 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지를 심사과정을 통해 들려줬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지만 인구 40만이 안되는 세종시에
폭이 100미터에 길이가 1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빈 공간이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본관 주변의 수공간은 또 무엇인가.
해자와 같이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이 과연 시민 가까이에서 시민과 소통하는 국회의 모습에 적절한 것인가?
개인적으로 이번 심사의 과정에 대해 무척 아쉽다.
우리가 당선이 되는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고, 당선안이 좋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다.
처음부터 당선만을 목적으로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공모 과정을 통해 매우 기대했던,
오랜 전근대시대와 초기 우리 현대사를 거치며,
수 많은 피로 어렵게 어렵게 비로소 이룩한 시민과 권력의 수평적 관계.
이 위대한 우리사회의 진보를 상징해야하는 국회를 계획하는데 있어,
어떤 민주적 가치와 미래적 방향성을 기준으로 삼았는지
솔직히 몇몇 심사위원들로부터는 그 의도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심사과정을 통해, 최종 결과를 통해 배우고자 했던, 새로운 혜안을 보지 못했다.
이번 공모를 통해 사무실 스스로는
이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를,
이 정도 양의 제출물들을 소화해낼 수 있다는
역량을 확인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또 그 과정에서 AI 를 활용해
계획의 일부와 이미지를 생성해 낼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또 3D 프린터를 활용하면 모형제작도 내부적으로 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앞으로도 이들을 더 폭넓고 능숙하게 다루는 역량을 키운다면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더 확장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끝으로 사무실 모두가 수고해줬지만
그 중에서도 직접적으로 참여한
종수, 태헌, 태훈, 서현, 병익, 도훈 이에게 특히 수고했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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