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2023년)를 나에게 몇 마디 워딩으로 정리하라 한다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건축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대부분의 분야에서 그럴 테지만
그 어느때보다 '생존'이라는 단어가 피부에 와닿았던 한 해였던 것 같다. 

물론 생존 이라는 단어가, 그 의미가 언제든 중요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사무실을 처음 시작했을 때 즈음, 
그러니까 약 2010년대 초반 이후 젊은 건축가들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생존'이었다. 
당시 새로운 흐름처럼 만들어진, (상대적으로) 다수의 젊은 건축가들의 개소와 등장으로, 
한정된 시장안에서 이들이 어떻게 자리 잡고, 어떤 활동을 보여줄 것이고,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관심이었고 주목의 대상이었다.  

이때 젊은 건축가들이 발견했던 시장은 기성의 건축가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중소규모 건축시장이었다. 
이를 위해 대중과의 접점을 늘리고, 우리 일상 속 다양한 건축물에 관심을 갖고, 이 시장을 기점으로 다양한 영역으로 
파고들고자 했다. 이 시장은 기존에는 건축가들에게 일면 외면받는 영역이었고, 개별적으로 보자면 
경제적으로도(설계비적으로도) 그리 매력적인 영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규모적 측면에서 확장성이 충분했고, 
여러 사회적 흐름들과 동조되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이후 젊은 건축가들은 유연성과 민첩성을 무기로 사회적 변화에 주체적으로 대응해 그때그때 요구되는 시장의 요구들을 
만족시키면서 시장을 점유해갔고, 코로나라는 전 지구적 사건 등을 겪으면서 이러한 기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하지만 코로나시기 이후의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후폭풍,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무능, 지난 수년간 극에 달했던 
부동산을 향한 욕망의 결과들이 더해져 우리는 2022년과 23년 완전히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경제라는 것이 늘 사이클이 있기 마련이라하고, 돌이켜보면 어느 영역이 안 좋으면 다른 영역이 좋고 하는 
작용 반작용같은 현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 
과거엔 그것이 젊은 사무소의 장점이자 생존방식이었고 우리도 일면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그 어느 경우와도 다른 것 같다. 어느 영역을 막론하고 모든 영역이 얼어붙었고, 때문에 흐름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고, 그렇기에 어느 시장을 개척하고, 주목하고, 대응하고 할 여지 자체가 없(어보인)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공포는 수많은 사무소들이 우선 쉽게 손댈 수 있는 현상공모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이거라도 당장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최근 새건협에서 진행하는 작은 주차타워조성 현상공모에 무려 220팀이 넘게 지원한 것이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3년에 진행된 대부분의 공모 경쟁률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물론 우리도 그러했다. 돈이 없는 것보다 시킬 일이 없는 것이 더 두려웠고, 사무실의 남는 인력은 현상공모에 투입했다. 
그러다 지난 1년은 고정된 인력 몇명을 정하고 지속적으로 현상공모를 하기도 했다. 나름 두 개의 당선이 있었으니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낀 건 가능성이라기보단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함과 현실인식이었다. 
(규칙적으로, 다양한 규모의 현상들을 하며 느꼈던 생각은 다음에 다시 다루기로 하자.)
그리고 그나마 한탕의 희망을 안고 달려들었던 이 달콤씁쓸한 시장도 올해는 작년보다 줄어들 것이라 한다. 
정부 정책이 그러하고 23년 말부터 체감되는 공모의 숫자가 그러하다. 

지금의 이 상황은 일시적이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좋았던 때, 고속성장을 하던 그런 때로는 이제 가지 못할 듯하다. 
우리 사회는 지난 수년간 모든 세대와 모든 계층이 짤 수 있는 데로 쥐어짜서 지금의 시장을 떠받치고 있고,
저출산과 고령화의 인구적 측면에서도 이제 더 이상 짜낼 수 있는 에너지는 우리사회에 없는 듯하다. 
우리는 이제 완전한 저성장시대를 준비해야한다. 

그럼 지금 우리 젊은 건축가들은, 사무소들은 그런 상황을 대비하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지난 1년동안 관찰해 본 주변 사무소들은 딱히 그러지 못한 듯하다. 
사실 건축사무소가 준비를 한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만큼 건축사무소의 사업방식은 사실 무척 수동적이다. 오랜 역사동안 이어온 산업특성이 그러했다. 
의뢰인이 있어야 사업이 작동하는 방식이고, 그 의뢰라는 것이 없으면 자연스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의에 의해 할 수 있는 것은 현상공모 정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편으론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은 지금의 이 상황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했던 듯하다. 
사무소를 해온 지난 10년동안 여러 상황들을 겪고 그 과정에서 변화들이 생겼지만 
이 정도의 피부에 와닿는 막막함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무소들이 좋았던 시기의 그 상태 그대로 지금의 이 상황을 맞았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쌓아놓은 쌀독의 쌀을 가지고 버티다가 점차 한계에 다다른듯한 상황을 종종 듣고, 보게 된다.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더 늦기전에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당장 우리부터도 그렇다. 
이제 새로운 시대와 환경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지속해 나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난해 몇몇 그런 분들을 만났다. 
그중에 한 분은 4,5년 전에 만났을 때부터 건축을 중심으로 하는, 직접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고, 
지금은 그것이 자리를 잡아가며 본인의 포지션을 찾은 듯 보였다. 
처음 들었을때의 그 어설픔은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 자산이 된 듯했다. 
속으로 많은 걸 깨달았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 사업들들로 인해 그 사이에서 생각지 못한 
새로운 사업이 또 구상된다는 것이었다. 
의도치 않은 새로움을 볼 수 있는 눈과 여건이 그분에게는 생긴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생겨날 변화들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이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도 지난 시간동안 이런저런 생각(!)과 구상(!)들을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늘 당장의 사무소 일이 약간 벅찰 정도로 돌아가고 있으니 생각과 구상이 실행으로 옮겨가질 못했다.
아쉬운 지점이다. 
그리고 어쩌면 아직 약간의 여력이 있을때,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 봐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좀 더 가다보면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우선은 사무소의 직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시도해보려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을 시작은 했지만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지 모르겠다. 
늘 결론이 있어야한다는 강박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은 그 결론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마음속 소회들을 늘어놓는 것으로 지금은 마무리를 해야 할 듯싶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지난 한해 내내 마음 한편으론 건축사무소, 설계를 한다는 것에 있어서 무력감을 느꼈다.
과거처럼 일을 '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과 달리 일을 '만들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에서 오는 회의감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발버둥들이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을 때 오는 현타도 있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거나 발전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이렇게 소위 생존 혹은 연명하기 위한 노력들이 
크게 봤을 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염증도 있었다.   

다만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너~무 늦기 전에 이런 고민들을 밖으로 꺼내놨다는 것과 
그것을 사무소 식구들과 공유하고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들이 어떤 의미있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건축사사무소를 하는 이유인 설계를 '잘'하고 싶은 그 본질, 욕심과 양립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도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건축사사무소라는 껍질 밖으로 한 발을 나가보려는 것이다. 
그렇게 늘 하던 영역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지를 살펴보고 싶다. 
그래서 사무소 식구들과 좀 더 오랜시간, 먼가 가 기대되는 마음으로 함께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의 끝으로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모든 사무소들이 무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물론 우리를 포함해서.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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