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J 와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중에서 어떤게 제일먼저 지어질까 하고 얘기를 하곤 했다.

시기적으로 울릉도 프로젝트가 그리될 줄 알았었지만 1년짜리가 2년짜리 프로젝트로 바뀌면서

그럼 울산 프로젝트가 먼저 되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혹시 이게 내년으로 가면 충청도 어딘가에 지어질 프로젝트가 먼저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예기치 않았던 일이 먼저 끝나버렸다.

이 일은 예기치 않게 들어와서는 눈깜짝하는 사이에 끝나버렸다.



이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우선 머리가 아파온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렇고

건축주의 얼굴을 떠올리면 미안하고

또한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글로 정리해야 하나 생각하면 또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적 결론을 내린다면

이 프로젝트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반은 실패했다고 본다.

물리적으로도 우리는 돈을 손해봤으니 실패한 것이고

건축주입장에서는 공사가 끝나고 나서 몇몇 골치아픈일들을 겪었으니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건축주가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다면 심리적으로 나는 실패했다는 느낌을 갖는다.



프로젝트는 인테리어 겸 외부디자인 프로젝트였다.

아는분이 부탁하신 이 프로젝트는 첫 미팅이후 바로 진행되었다. 

건물은 신촌역근처에서 오래사신분들은 대부분 아실만큼 매우 오래된 건물이었고

이 오래된 건물은 관리되지 않아서 물리적으로 너무나도 열악한 상태였다.

이에 더해 건물주와의 (혹은 건물주사이의) 관계도 복잡했고 예산 또한 매우 적은 편이었다.

그에 비해 손대야하는것은 1,2 층외관, 계단, 화장실, 그리고 점포 내부까지였다.


다행히 건축주는 매우 열린분이셨고 한복디자인을 하시는 분 답게 디자인에 대한 존중이 있으셨다.

따라서 전적으로 믿어주시려 하셨고 다른 일련의 간섭도 하지 않으시려 하셨다.

매우 이상적인 건축주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점이 우리의 부주의로 인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지만 말이다.


건축주의 요구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구체적이었다.


'한복집이되 한복집같지 않게 해달라.

모던하고 심플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점포가 작은 크기이지만 홀같은 여유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

그외엔 기타 한복집에서 요구되는 실들이 필요하다.'


앞서도 인테리어 프로젝트에 대한 소회를 적으면서 인테리어 프로젝트가 갖는 장점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한 매력은 바로 이러한 요구를 받았을때 어떻게 이를 담아내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나름대로 

만들었을때 얻을 수 있다.

즉, 속도감 있이, 매우 제한된 조건에서 특별함을 만들어 내는 공간탐구의 기회라는 것이다.

내부적으론 저런 건축주의 요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였고

외부적으로는 어떻게 이 조금은 특별한 한복집에 어울리는 외부디자인을 만들것인가에 집중을 하였다


그 결과에 대한 보고는 다음의 링크에 담겨져 있으니 여기선 보여지지 않은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프로젝트 보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우리는 몇가지 관계를 시험, 정립해 보고자 하였다.

(적어도 인테리어 프로젝트에 한해선 작동할 수 있는 관계를 말이다)



그중 첫번째는 우리와 시공자와의 관계였다.

인테리어프로젝트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디자인 이후과정에 있어 최대한 에너지 소비를 아끼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의사소통이 잘 되고 정직한 시공자를 찾아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관계의 시작이라 보고 이 일을 여러업체를 알아보지 않고 알고 지내던 한 업체와 계약을 하였다.

물론 서로에게 충분치 않은 예산이었지만 우리의 이윤을 포기하고라도

시공자에게 최대한 맞춰서 계약을 하고자 노력하였다.

(노력했다라는 말은 시공자가 만족할만큼 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함께 일한 시공자분께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설정은 일정부분 실패했다고 본다.

첫째는 본래 시공과정에서 현장을 찾는 빈도나 기타 수반되는 잔업을 줄여서 우리의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려는

의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거의 매일 가다시피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물론 내 개인적인 성향상 매일 봐야지만 안심이 되는 것도 있었지만 매우 속도감있게 하루하루 달라지는

현장에선 설계자가 보거나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상황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거기서 생긴것이 아니었다.

외장재를 붙일때 외부갈바업체에 색을 포함한 이미지를 넘겨주었다.

그리곤 거의 비슷하게 나온다는 업체의 말만 믿고 도장을 할때 직접 가서 확인하질 않았고

막상 현장에서 색을 칠해온 외부조형물을 보는 순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보라색에 분홍색이 칠해진 조형물들이 외벽에 붙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건축주의 우려와 개인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색의 조형물을 달아둘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떼어다 재도장을 하는 상황까지 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결국 예산을 넘겨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색이 전달되는 과정엔 총 2번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첫번재는 우리가 만든 이미지를 업체로 보내서 출력을 할때다.

이때 이 업체가 무슨 종이에 출력을 하느냐,

어떤 파일형태로 출력을 하느냐 등등의 조건에 따라 우리가 보내준 색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색이 출력되어진다.

두번째 포인트는 이 출력한 종이를 가지고 업체는 다시 도장공장을 찾아가서 출력된 색대로 칠해주기를 주문한다.

이때 도장공장에서는 숙련된 분이 손으로 색을 섞어 가며 눈으로 색을 비교해가면 색을 맞추신다.

바로 여기가 두번째이다.

보통의 경우 두번째보다는 첫번째에서 오류가 발생하고 이 오류는 색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결정적 오류가 되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출력한 색을 가지고 업체에 전달을 해야했고

도장을 할때 공장에 직접가서 확인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오류가 발생할 거라는 예측을 하지 못했고 결국 건축주와 우리 모두에게 불쾌한 상황이 만들어졌었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셈이다.


현장에서 도장아저씨가 수작업으로 조색중인 모습


이 시공자와의 지속적이며 신뢰를 만들어 가기 위한 관계설정에 있어선 

사실 이 프로젝트 이후 다른 프로젝트가 있어서 연속적으로 시공자와 일을 함께 해가면서

관계를 다듬어 갔으면 좋았을 것이었겠지만 그렇지못해 그 효용성에 의문이 남는다.



두번째는 건축주와의 관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건축주는 매우 이상적인 타입이다.

모든것을 믿고 맡길테니 알아서 해달라는 것이다.

이 '알아서 해달라' 가 건축가에겐 굉장히 달콤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그것이 독이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프로젝트를 하는동안 특히 외장에 대해서 우리는 가급적 간판을 작게 만들고 (처음에 아예 안만들까도 했지만)

한복집 자체가, 더 나아가 그 건물 자체가 그냥 하나의 이미지만으로 인식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이 의도를 3D 이미지를 포함해서 건축주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건축주분께 '알아서 해주세요' 라고 말씀하지 말고 꼼꼼히 보시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그때 그렇게 넘어간 일이 결국엔 시공이 되고 나서 문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임은 일견 우리에게도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외장에 칠해진 색이 우리가 원했던데로 100%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주께서도 이 부분을 일전의 미팅에서 간과하셔서 막상 시공되고 나서 당황해하신 측면이 있었다.

또한 간판에 관한 부분도 결국 건축주께서는 규제를 넘기더라도 최대한 큰 간판을 원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설치한 간판을 보시곤 좀 걱정을 하셨다.


이렇듯 건축주가 어느부분에선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지으시면 건축가는 마음이 불편하다.

돌이켜보면 이 문제의 원인은 초반 미팅에 있었다고 본다

초반에 좀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건축주에게 가급적 많은걸 꼼꼼하게 설명하고 얘기하고 의견을 교환했어야 했는데

'알아서 해달라' 는 말에 '알아서 해줘야겠다' 라는 맘으로 답을 했으니 결국 문제 아닌 문제가 생긴것이 아닌가 싶다.


건축을 하면서 언제나 건축주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때로는 서로 얼굴찡그릴때도 있고 서운할때도 있고 아쉬움이 남을때도 있다.

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만 그것이 그 과정에서 서로 충분한 의사소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면

서로가 마음속에선 납득할 수 있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미팅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아쉬운부분이 생긴다면

이는 서로 서운한마음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반드시, 설령 건축주가 지인이기때문에 그럴 필요성이 없다고 판달될지라도,

최대한의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지만 이후 결과가 나왔을때 아쉬운 부분이 생기는 걸 최대한 방지할 수 있기때문이다.


특히나 인테리어같은 경우엔 시공속도가 매우 빠르기때문에 사전에 얘기되지 않은 부분을 수정하고

중간에 다시 상의할 여유가 많지가 않다. 혹은 그럴수 있는 타이밍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또 다시 강조하지만 언제나 충분한 의사소통과 의견교환이 중요하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첫번째 결과물이 끝났다.

비록 온전한 건축프로젝트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모든게 건축이고 디자인이라는 마음으로 진행하였기 때문에

감회도 새롭고  또 아쉬움도 남는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건축주의 얼굴이 떠오른다

처음에 우리에게 찾아왔을때의 얼굴과 프로젝트가 끝났을때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특히나 더 건축주에게 감사드리고 또 미안한 마음도 동시에 든다.

부디 원하던 '한복계의 아이돌' 로서 한복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올 수 있도록 사업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저 한복집이 그 성공의 조력자가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120703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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