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순서가 좀 바뀌었지만

이번엔 지난 6월에 약 한달동안 진행했던 KOCOM 호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와 관련된 글을 써보고자 한다.


글을 시작하면서 먼저 두가지 질문(혹은 탄식)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혹 이글을 읽을 다른 분들께 드리고 싶다.


첫째는

'건축가로서 사무실을 하면서 들어오는 일에 대한 좋고 나쁨을 판단해야할까?

판단해야 한다면 그 판단은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을까?' 이고

두번째는

'건축계의 생태계가 어디까지 망가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독립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고민을 해본적이 없다.

일이 들어오면 감사합니다~ 하고 해야지,

또 일이 없는 것이 문제지 일이 좋고 나쁨을 판단할 경우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당연했다.

이런 생각에는 사실 어떤 프로젝트가 들어오더라도 설득하고 협력하고 싸우고 협박하고

마지막으로 건축주를 홀려서 잘 만들면 그것이 곧 좋은 프로젝트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어떤 프로젝트건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흥미가 있었다.


그러던 중 건설회사에도 몸담고 계시고 이런저런 사업을 하시는 형님께 호텔리노베이션 관련해

함께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배경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국의 외국인 관광 대호황기를 맞아 오피스를 비지니스호텔로 리노베이션하는 것이었고

'아는 형님' 말씀대로라면 이미 다 얘기가 되서 가져온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프로젝트 규모가 우리가 소화하기엔 쉽지 않은 것이었고

건축주의 성향도 좋은 건축주는 아니었던듯 싶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에 우리는

'거의 다 된거나 마찬가지다' 라는 말과

'규모가 되니 하기만 하면 돈은 좀 되겠지' 하는 욕심과

'비지니스호텔은 수요가 많으니 어떻게든 하나만 하면 앞으로 좋은 기회가 또 생기겠지' 하는 김치국물의

유혹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일은 매우 속도감 있게 같이 들어간 '아는 형님'의 노고와 지휘아래 야릇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과정에서 건축주는 물리적으로 매우 짧은 스케줄로 프리젠테이션이나 미팅을 요구했고

그 안에서 우리에겐 주체적인 건축가보단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빠른시간안에 그려내는 역할이 요구되었다.

속도와 효율만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매우 비정상적이고, 우리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진행과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앞서 언급한 세가지 유혹들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질 못했다.

적어도 내 개인적인 욕심에선 그랬다.


그렇게 진행되던 프로젝트는 결국 마지막엔 설계비를 가지고 결정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볼건 다 보고, 의견도 받아보고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돈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건축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의 가치를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주변분들의 의견상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했다.

머 건축주 입장에선 더 싸게 설계해준다는 곳이 있으면 당연히 좋은 일이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동안 겪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인건 바로 여기서 발생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연면적 약 3000 평의 일부 신축을 포함한 호텔 리노베이션.

용역비가 따로 책정되어 있어서 빠진다고 해도 과연 설계비가 얼마가 되야할까.

여기서 우리가 얼마를 생각했는진 쓰지 않겠지만

설계를 해오신 분들이라면 대충 얼마정도 되겠구나 하고 알수 있으실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우린 우리가 제시한 설계비보다 훨~씬 더 싼 설계비를 제시한

어느 알 수 없는 사무소에 밀렸다.


하지만

내가 충격을 받은 건 프로젝트를 못하게 되서가 아니라

그 사무소가 제시한 설계비였다.

3000 만원.

일부 신축을 포함한 3000평 규모의 호텔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 제시한 설계비가 3000만원이다.

정말로 충격이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정말로 저 금액에 가능하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저 금액에 가능한지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화가났다.

한국에서 독립을 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서로 제살 깎아먹기를 해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있는 건축계에, 그리고 이런짓을 하고있는 저 나이많으신 건축가에게 진심으로 화가났다.

생태계를 완전히 망치는 행위이다.


이러니 건축주입장에선 설령 다른 가치를 보려고 해도 도저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제시한 설계비가 몇배가 차이가 난다면 이건 더 이상 게임이 안되는 얘기였다.

저런 금액을 제시한 건축가에게 화가나고,

그 말도 안되는 설계비 뒤엔 분명 골치아픈 일들이 수두룩하게 발생할거라는 걸 보지 못하는 건축주에게도 화가났지만

한편으론 건축주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약 한달여동안 건축주와 미팅도 갖고 협의도 하며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3000만원이라는 금액에 날라갔다.


물론 건축시장에도 여러층의 시장이 존재하고

이건 그 중 하나의 시장에서 발생하는 일이겠지만

참으로 씁쓸한 건축계의 단면이었다.


이런 일이 '그럴 수도 있지' 혹은 '요새 다 그래요' 라는

넌 아직 멀 모른다는 의미의 말로 위로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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