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Aalter 는 작은 도시이고 이곳에는 현재 학교가 3곳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이 세개의 학교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었다.
이에 더해 학교에는 기존의 학교가 하던 지역공동체를 위한 공공공간의 역활을 강조, 확대하는 프로그램이 삽입되었다.
그런 이유로 이 프로젝트는 Aalter 지역주민 전체의 관심사가 되었고
그들에게 본인들의 자녀들이 다닐 학교에 대한, 그리고 자신들 또한 이용할 이 건축물은 매우 중요한 관심의 대상 일수 밖에
없는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따라서 그들은 건축가를 불러서 설명을 듣기를 요청했고, 건축가, 학교관계자, 학교주민들로 이루어진 미팅을 통해
적극적으로 그들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일부 주민들은 사무소로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 감상,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런이유로 컴피티션당시에 만들어 올렸던 짧은 film 을 도시주민들이 열심히 찾아보고 학교 홈페이지에도 띄워놨단다.

그들의 이러한 관심과 열의는 건축가를 흥분시킨다.
그래서 이렇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랍시고 여분의 에너지를 써서 짧은 영상을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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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기로 맘 먹을 때는 물론 확정된 일을 보고 결심했지만,
그건 아주 작은 시작일 뿐, 이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나서는 하이에나가 된 기분.
흐리멍텅해져 맛이 가기 직전의 눈깔을 하고 전철에 몸을 싣던 모습에서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중.
예전에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올 때는 몰랐는데,
머리를 짜내고, 어떤 식으로 엮어서 먹거리를 만들어 낼까 하고 고민을 하다보면
의외로 여러가지 접점이 생기는데
이를 가령 씨앗 뿌리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봄.
내가 뿌린 씨앗이 언제 싹이 터서 열매를 맺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 씨앗이 이미 썩어 문들어 진 것인지, 제대로 실한 놈인지는 현재로서는 분간이 안됨.
하지만, 현 상황에서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내고 성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함. 
그 과정들의 집합들이 JYA의 과거이자 미래의 모습이므로.

...
...
...

누구든 한번쯤 느꼈겠지만, 온 신경이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다보면,
주변의 상황들이 나를 향해 있다는 느낌.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머릿 속으로 막연히 이런 책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버젓이 있긴 한대, 그 출판일이 2011년 10월 5일.
마치 나보고 읽으라고 시기를 맞춰 출판한 것 같은 착각.
'동업하라'
몇달전 Y와 같이 여름 몇날을 같이 작업하면서 보낼 적 지나가는 말로
집안 어른께 동업에 대해 여쭤봤지만,
바로 나온 대답은
-동업하는거 아니다.
그러고보니 나도 은연중에 많이 들어왔었던 듯.
왜냐면 그 말 한마디에 여러가지 이유들이 휘리릭 떠올라서 고개를 끄덕였으니.
그래도
이 험난한 세상을 발 맞추면서 걸어갈 동지 한명정도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드는데.
읽으면서 몇가지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럴수도 있구나 하고 느낀점.

 1) 철저한 역할 분담과 각자 맡은 분야에서의 책임 ?  각자 건축가로서의 온전한 성장과 발전을 기반으로...
 2) 풀베팅정신, 나는 여기다 나의 얼마만큼을 걸고 있는가... 절실함? 
     주변에 얘기할 때, 어쩌면 쉽게 몇년 해보다가 안되면 다시 취직하지 하는 식의 이야기를 해왔는데,
     아니다 싶네. 비속어로 피똥싸게 해보고 나서야 그만둬도 후회스럽지 않을까?
     어차피 시작은 후회없은 인생을 위한 결정이었으니...
 3)  죽음의 계곡, Death Valley. 사업 전반부에 만나는 힘들고 지쳐가는 시기.
     나는 이 시기를 어떻게 버텨나갈 것인가. 누구는 그랬지 이 시기가 걸러내는 시기라고. 
     그 시기가 무작정 버티면 될 것일까?  아니면 어떤 식으로 넘어갈 것인가...
 4) 돈의 흐름과 경영성과에 대한 크로스체크.
 5) 미처 예상 못한 애매한 상황들과 책임소재들에 대해 사전 논의.
      미리 정해 놓은 만큼 동업을 하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감정싸움을 줄임
 6) 아름답게 헤어지는 방법
      이거 시작도 안한 상황에서 굳이...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는 흔하디흔한 말.
      그런데 아직도 나는 글쎄...라며 절반만 공감중.
 7)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계약서에 명시하고 서로간의 관계가 금전, 혹은 감정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서로간의 책임을 가지고 신뢰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게

이 책의 요지.

건축가라는 입장에서는 어색한 부분도 많지만,
결국에는 서로 많은 대화를 통해서 잘 정리해나가자

요런 이야기 ^^

J111220



 
사실 독립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구체적으로 준비를 하다 보면
여러가지 걱정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지난번 글에서 말했던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의문이
마음속에서 정리가 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많은 걱정과 망설임이 남는다

나에게 있어 오늘 두번째로 꼽고자 하는것은 다음과 같다.

현재 사무소에 있으면서 어쨌든 다양한 규모와 프로그램의 프로젝트를 다루어 왔다.
비록 한국처럼 단지 전체를 개발하는 아파트 프로젝트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집합주택단지부터, 학교, 오피스, 공장, 대사관, 아트센터, 작은 개인주택까지(개인주택은 아주 잠시만 했었지만)
이러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의 경험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독립을 하게되면
아무래도 프로젝트의 규모나 종류가 굉장히 영세해 질 수 밖에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할수있는건 개인주택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도 가능성이 있는 것 또한
규모나 종류에서 한계가 있을 거라는 걱정이었다.

혹시 이러한 변화가 지금의 내 나이를 한참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경험하고 배워가야할 시기라고
봤을때 개인적으로 현재 가진 좋은 기회를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걱정은 좀더 발전하여
자칫 독립후에 혹시나 이러한 이유로인해 발전이, 성장이 멈추거나 더뎌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이어졌다.
즉, 혹시나 우물안에 갇혀 자극과 변화없이 개구리가 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
그런 의미에서 돌이켜봤을때 현재의 암스테르담 사무소의 환경은 나를 항상 불편하게 하는,
즉, 자극되게 만드는 훌륭한 환경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물론 지금 자세히 쓰기는 애메하지만 이러한 자극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무뎌지는 걸 느끼기도 하고
자극을 내가 어떤 포지션에 있느냐에 따라 100%, 혹은 10%, 즉 얼마나 받아들이고 내것으로 만드느냐가
달라진다고 생각을 한다)

어쨌든 불행하게도 아직 이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두번째 이유' 에 대한 만족할 만한 대답이나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대형프로젝트들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걸 다루기 위해 많은 인원으로 이루어진(특히나 상하가 꽤나 엄격한)조직에서 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지만, 내가 다루어보지 못한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에 대한
일종의 미련은 갖고 있다.
분명 내가 모르는, 경험해 보지 못한, 내가 했던 것과는 다른 규모와 접근방식을 요구하는 디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문제는 한국의 대형사무소에서, 주로 대규모 프로젝트만을 다뤄온 J 에게서 이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면 좀더 나은, 명쾌한 얘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래서 내가 이 시점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해결책들은
조금 막연하고 형태가 없다
다만 아마도 사무소의 형태나 성격을 다른 집단, 혹은 개인과 어떤식으로든, 언제든 함께 의견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을 수 있도록 유연하게 유지하는 것과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이미 자리를 잡으신, 비교적 큰 규모를 다룰 위치에 계신 건축가 분들과
기회가 되는데로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것 등등이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아직은 김치국물 마시는 얘기다)
이 해결책들은 우리가 앞으로 최소 1년여의 시간동안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고 찾아본 후에
그 결과를 가지고 1년후쯤에 다시금 얘기를 할 계획이다

어쨌든 이 문제는 J 와, 더 넒게는 주변의 선배님, 교수님, 소장님들과 더 논의가 되어야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고, 또한 건축가로 살아가며 평생을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111207 한국가는 비행기 안에서 Y   






나이가 나이인 만큼
시기가 시기인 만큼
올 가을은 결혼식 소식이 왜이리 많던지.

학창시절에는 자주 보던 친구들도 이제는 경조사가 있어야 얼굴을 본다
친구중 하나.
1년에 한두번 보지만, 볼 때마다 하는 말...
 - 요새 사는게 어때? 재밌어??

매번 들어도 어색함 질문.
그리고 그 어색함이 묻어난 대답
  - 응... 뭐... 그렇지... 그냥 회사 다니지 뭐...

돌아오는 길.
그런 대답을 했던 나도 싫고, 이러한 상황도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곧 잊혀지고 만다.
내가 뭐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는지.
그냥 일상으로 돌아간다.

.
.
.

박차고 나가고자 결심을 하고 난 이후에는
마음만은 조금 가벼워졌다.
가벼워졌다는 표현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이전에는 단지 정해진 틀 속에서 가슴이 멎어 있었고
지금은  시시때때로 기대와 설레임, 걱정과 두려움들이 가슴을 지나친다.

손가락이 베이거나 하여 통증을 느낄 때, 내가 비로서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 있음을 느끼듯
심란한 가슴 속은 나를 다시 확인시켜준다.

.
.
.

111207 J 
금요일 오후
파트너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각 담당자들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

다가오는 겨울, 네덜란드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맞아
현재 진행중인 각 프로젝트의 이미지를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버젼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머 포토샾을 하든, 렌더링을 다시 하든.

그리고 이 이미지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축주들에게 보낼거란다.

하하하.
재밌다.
암! 이정도 이벤트는 해줘야지.

건축은 사업이고 건축주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리라 본다.

전에 우리가 끝냈던 개인주택을 가본적이 있다.
건축주가 설계과정에서 그리고 시공과정에서 건축가가 보여주었던 드로잉들, 이미지들, 직접 찍은 미팅 사진등을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둔 것을 보았다
집을 하나 짓는 다는 것은 건축주에겐 결과뿐만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들이 모두 하나의 과정이고 결국
그런것들이 모여 집의, 그리고 그 집에 사는 가족의 역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보내줄 겨울 이벤트 이미지들 또한 건축주들에겐 좋은 추억을 가져다줄 선물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이와 관련해 문득 지난번 코펜하겐 여행에서 본 VM House 의 모자이크 타일 벽이 생각났다.
코펜하겐에 가면 BIG 이 디자인한 집합주거들를 시리즈로 한지역에서 볼수가 있다.
Mountain, VM House, 8tallet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지어진 것이 VM House 인데
이 중 M 에 해당하는 건물의 입구에는 커다란 타일 모자이크로 만들어논 사람 얼굴이 있다.
당시 가이드를 해준 코펜하겐 건축협회 분이 그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 얼굴은 최초 BIG 에게 VM House 의 설계를 맡긴 개발업자의 그것이다.
건물의 시공이 끝났을 무렵 BIG의 사장인 Bjarke Ingels 는 입구에 특별한 것을 만들려는 생각을 했고
이에 개발업자의 얼굴을 유명 예술가에게 부탁해 타일모자이크로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를 들은 개발업자는 이 아이디어를 반대했고,
그러자 Bjarke Ingels 는 코펜하겐의 유명한 집합주거들은 전통적으로 모두 그렇게 해 왔다고
거짓말을 해서 설득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건물의 입구에는 개발업자의 얼굴이 타일모자이크로 만들어지게 되었고
후에 VM House 가 코펜하겐 올해의 건축상(인가.. 잘 기억이 안난다 좀 지난 일이라서.. 암튼 먼 상을 받았다)을
받자 그 상패를 금색타일로 만들어서 전체 얼굴에서 이(the teeth)들 중 하나의 타일대신 붙였다.
그래서 결국 그 모자이크 얼굴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니를 하나 가지게 된 것이다
(들은지 좀 지난 얘기라 정확히 기억하는건지 확신이 안선다. 큰 줄거리는 기억이 나는데 디테일이 좀...ㅋ)

저기 보이는 저 얼굴이 그 얼굴이다. 아쉽게도 금니는 안보인다 (photo by 최유리)

이러한 일련의 아이디어는 개발업자에게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벤트가 되었다.
그는 Bjarke Ingels 의 이런 재치를 매우 높이 샀고
결국 그 후 BIG 의 대표작이 된 Mountain House, 8tallet 을 모두 BIG에게 주었다.

자 어떤가.
거짓말 확! 보태면 현재의 BIG 을 만든건 바로 그 황금 모자이크 타일 하나에서 시작된 것이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돈을 쓰고 접대를 해서 건축주의 마음을 얻는게 아니라
그에게 흥미를 주고, 재미를 주고, 감동을 주고,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건축가가 진정 마음을 얻고
진정으로 건강한 건축가, 건축주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사바사바는 중요하다 끝!

111204 Y


               




              ps. 아직 로고가 미완성이라 임시로 링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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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링크하나 소개하면서 잔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uU86MQcd_sQ



장 이거 화면보이게 좀 해줘 다른 링크처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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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랜만에 쓴다.
자꾸 일이생기고,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보니 글쓰는걸 미루게 된다
먼가 마음이 편해야만 글을 쓰고 싶어진다
마음이 불편하니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한 방에 앉아서 있는 시간자체가 견디기 힘들때가 있다
말그대로 마음이 허한 사람이 요란하다고 내가 딱 그짝인가 보다

사실 독립을 결정하는데 있어 앞서 얘기했던 왜 독립하고자 하는가 하는 주제는
그리 특별할게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하는 사람치고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며
굳이 건축이 아니더라도 자기 일을 하고싶다 라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런생각을 결심으로 옮기는데 있어 약간의 계기가 있었고 또한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 다른 말로 하자면 살아남을 수 있을거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매우 크게 작용했을 뿐이다

사실 독립을 결정하기위해 더욱 중요한건
'하면 안되는 이유' 를 생각해보고 고민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지만 그 이유들에 대한 대책을 미리 고민해 볼수있고
결국엔 '하면 안되는 이유'는 없구나 하는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않으면 칠흑같은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 버릴수가 없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결국 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따라서 앞으로 몇번에 걸쳐 우리 각자에게 '독립하면 안되었던 당시의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우선 나에게 있어 독립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때쯤에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지금 독립하는게 과연 맞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내가 지금 독립할 실력을 갖고 있을까' 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져보는 생각이 아닐까 한다

나의 경우에 이런 생각이 실질적으로 다가올때가 언제였는가 하면
사무소에서 파트너들과 미팅을 할 때였다.
우리 사무소는 두 명의 파트너가 있다. 한명은 아일랜드 출신이고 한명은 더치이다
프로젝트는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프로젝트당 1명 혹은 2명이서 진행을 하고
파트너들과 수시로 미팅을 갖는다. 머 한마디로 크리틱을 받는다고 할수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사무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프로젝트 초기디자인에는 거의 참여를 했었기 때문에
(물론 중간에 껴들어갔다가 나온 프로젝트도 있지만)
파트너들과 미팅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졌다

그때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 내고 아이디어를 낸다.
무릎을 꿇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아 많이 배우는구나 하고 느꼈다
하지만 막상 마음속으로 독립을 결심하고 나니
배운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내가 아직 배워야할게 많은거 같은데
과연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네덜란드 사무소에서 일하며 배울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를
버리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매일매일 하루에 열두번도 마음이 왔다갔다했다.

그리곤 근본적이면서 문어발식으로 걱정들이 이어졌다.
선배들이 이 나이에 독립하지 않는건 다 이유가 있었서가 아닐까.
좀더 실무를 하고 독립을 할까.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괜히 시작하는건 아닐까.
여기까지 자리잡는데 쉽지 않았는데 네덜란드에 더 있을까.

하지만 한번 마음속에 자리잡은 욕망은 이런 이성적인듯 보이는 이유들로 쉽사리
잠재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파트너 중 한명인 Don 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이 이유로 면담을 한건 아니고 다른 일로 얘기를 시작해서
하다보니 마음속의 얘기가 나왔나 보다.

솔직히 얘기를 했다.
Don 이 말했다.

if you have a chance, you! have! to! take! it!

정확히 저렇게 말했는진 기억이 잘안나는데 암튼 비슷하게 얘기했다
기억나는건 얘기하면서 강조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얘기를 해줬다.
자기가 29살에 독립한 얘기들...

물어봤다.
나 아직은 너한테 더 배워야 할거 같은 생각이 든다.
너를 보면서 항상 많은 걸 배우고 있다.
독립을 하면 이 기회를 버려야한다는게 아쉽다

Don 이 말했다.
자기가 29살에 독립을 했을때 자기는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니가 할수밖에 없기 때문에 넌 해낸다.
(영어로 한말을 우리말로 옮길라니 좀 이상하군 큼.)
저기 있는(당시 미팅룸 밖 유리너머로 보이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를 가르키며)
저 친구가 여기서 8년째 일하고 있지만 8년 지났다고 저 친구가 나처럼 되는건 아니다.
니가 여기 몇년 더 있는다고 '이제 충분히 배웠네' 하고 느끼는 순간이 오는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말이 니가 니 프로젝트를 하게되면 남 밑에서 배우는 것 보다
100배는 더 많이 배울수 있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무소에 와서 일하다가 떠나갔다고 했다
그들을 보며 자기가 생각하는 최선은
그들이 자신의 사무소를 차려 나가는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건축가로 성장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했다.

물론 얘기의 끝에 이런 말을 덧붙여주었다. 친절하게도..
가장 빠르면서 가장 악몽같은 길이라고...
자기도 처음 2년동안은 돈을 잃었단다. 쩝..

한순간 마음이 편안해 졌다가 순식간에 다시 먹구름이 몰려왔다.
ㅎㅎ
이건 농담이다.

Don 과 얘기를 하고 나서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다.
생각해 보니
배워먹는건, 즉 높은분이 주시는것 잘 받아먹는건 건축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벌써 학교다닌 횟수로만 7년째 먹었다.

이걸 언제까지 먹는다고 배가 불러서 완전체가 될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그런건 안되지 싶다.

Don 을 비롯한 내가 보아온 소위 일가를 이룬 건축가들에게서 나오는 예리함은
아마도 야생에서 살아남은 자들만이 가질수 있는 노련함과 경험, 그리고 그 강력한 생명력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싶다
우리에서 사육된 자가 뿜어낼 수 있는 눈빛이 아니다.

첫번째 고민의 순간이 지나가는 듯 했다.

111128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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