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만 아쉽게도

이런저런 일정덕분에 3월 10일이 되어서야 개업식을 하였습니다.


개업식을 굳이 이렇게 해야할까 싶기도 했지만

걱정하시고 궁금해하시는 가족분들을 위해

가족들만 모시고 이렇게 뻑쩍지근하게 시작하였습니다


자 그럼

모두의 바램처럼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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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A는 지난 3월 2일 한국해비타트와 후원협약을 맺었습니다!

후원은 한 해동안 이루어지는 해비타트 건축 사업의 설계 및 디자인을 비롯한 전반적인 건축 작업을 포함합니다. 

앞으로의 행보에 많은 기대 바랍니다. 

120307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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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와 몸이 몹시나 바쁘다.
개인적으로는 새로 들어가 살집을 정리하는 일이고
공적으로는 사무실을 만드는 것이다.

우선은 사무실이 안정이 되고 준비가 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급한것은 내부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고 책장과 책상 및 테이블을 들이고
컴퓨터 및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중에서 선행되어야 할것은 내부 페이트칠이다.
하루 날을 정해서 둘이서  시작했다.

J 가 페인트칠을 위한 사전작업을 했다.

무척이나 꼼꼼한 그다 ㅋ

날이 너무 추운날이어서 창문을 열수도 안열수도 없는 상황이다.

열면 금새 춥고 안열면 냄새에 질식할 것 같은..


약 하루종일에 좀 모자른 시간동안의 노동끝에 작업을 끝냈다.

세상에 모든 페인트 노동자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허리와 무릎이 하염없이 아프다.

다만 사무실을 칠해간다는 것에, 그리고 확연히 하얗고 깔끔해진 사무실분위기에

큰 보람과 재미를 느꼈다. 한번이라면...ㅎ


청소를 끝내고 미리 주문해 두었던 책장을 받았다.

하얀색의 총 15칸짜리 책장이다.

일산의 가구단지를 뒤져서 10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럼한 가격에 구입했다.



사무실의 책상 및 테이블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할까 하고 고민이 많았다.

이유는 테이블은 구입처와 만드는 방법, 혹은 스타일에 따라서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사무실 책상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책상들은 우선 선택에서
제외를 하였다.
분위기가 곧 일의 능률이라는 모토(?)아래 좀더 자연스러운 책상을 원했다.
그래서 맞춤가구를 알아봤는데 역시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아는분의 소개로 알게된 funnyturemaker 라는 공방을 운영중인
furnituremaker 를 만났다.
젊고 활력넘치고 열정적인 아가씨로 우리의 큰 걱정인 비용면에서도
거의 손해를 보다시피해가며 테이블을 제공해 주시기로 하였다.
미안했다. 거의 협박하다시피했으니.. ㅎ

어쨌든 그렇게 해서 책상용으로 쓸 테이블 두개와 회의용으로 사용할
테이블 한개, 총 3개의 테이블을 주문하였다.

또한 더블어 책상용 테이블의 도착과 시간을 맞춰 친구를 통해 부탁한
컴퓨터를 찾아왔다.
모니터와 본체를 합쳐 100만원정도의 예산에서 최고의 성능으로 맞춰달라고
또 협박을 하였다.

앞서도 말했듯이 우린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흐흐흐

이자리를 빌어 테이블을 협박당한 정리나씨(www.funnyturemaker.com)와
컴퓨터를 협박당해 주문, 조립 및 OS설치까지해준 친구 이제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 사무실도 처음부터 모든걸 다 만들어 놓고 시작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JYA 의 성장과 함께 채워져 가길 바란다.

120213 Y
귀국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귀국을 계기로
지난 네덜란드에서의 시간들을 모두 이곳에 정리하고, 쏟아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동안 간간히 올렸던 글들에서 이미 많이 언급했기도 했거니와
나 스스로도 이곳에서의 생활을 어찌 정리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다만 20대후반에 와서 30대초반까지를 이곳에 있으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이란 혼자서 살아갈수 없다는,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의 나의 삶이란 모든게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어고 지속되어 왔다.
델프트에서의 형님, 누님, 동기, 후배들
암스테르담에서 평생의 연을 맺은 나의 또하나의 맘 과 파더, 그리고 여러분들
VMX 의 고마운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무사히 이시간까지 올 수 있었다.

그들에게, 그리고 주변의 모든이에게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
귀국하는 비행기에 챙겨가야하는 마음이다.

또 하나 네덜란드로부터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여유' 이다.
돌아보건데 네덜란드에서는 시간이 마치 천천히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루 24시간을 쓰는건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천천히 걸으면서, 몇십분이라도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마치 슬로우무비처럼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바라보게 하는 여유가 있었다.
또한 동네를 걷고, 차를 타고 가고, 기차를 타고 가는동안 주변을 관찰하고 느끼고
행복감을 느낀다.

이러한 마음의 여유는 건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고, 다른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멀리 떨어져 전체를 다시금 보게하는
그러한 여유를 갖게 해준다.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에 급급했을때 놓치기 쉬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하나를 하더라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비단 건축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집을 지으면 이들은 여유를 가지고 집을 꾸며나간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완성해 간다는 것이다
한번에 다 만들겠다고 욕심부리지 않는다.
자신이 나이들어 가듯이 집도 함께 완성해가며 함께 나이든다.
이런 여유속에서 그들은 집에 대한, 건축에 대한 철학을 자연스럽게 형성해 간다.

이러한 철학은 무슨무슨 디자인 이론 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책에서 보고 머리로 이해하려는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깊이 네덜란드의 건축에 들어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돌아간다.
바라는 건 지금 이 손에 닿을듯 말듯한 이 느낌들이 한국에 가서도
증발되지 않고 계속해서 내 몸과 마음과 생활패턴에 새겨졌으면 하는 것이다

120201 Y


맘과 파더를 비롯한 암스텔담의 고마운 분들


 

귀국을 한주 앞두고 바젤을 찾았다.

근 4년가까이 유럽에 있는동안
4번의 스위스 여행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건 두번째로 스위스를 찾았을때 였는데
당시엔 차를 빌려서 했기 때문에 다른 세번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로운 여행을 할수 있었다

따라서 일정이나 교통편에 완전히 구속되지 않고 말그대로
길이 있는 곳을 따라 여행을 했다.

그 알수 없는 길들은 지도나 여행책자에는 나와있지 않은
스위스의 알수없는 마을들로 나를 인도하였고
나는 비로소 진짜 스위스의 삶을 만날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풍경들은
단언코 '적어도 스위스에서' 만큼은 유명한 현대건축물들을 만날때보다도
더 감동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건 단순히
'더 이상 이보다 더 아름다울수 없을 것 같은 자연과 인간의 삶의 조화를 체험하는데서 오는 감동'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순전히 건축을 여전히 배우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스위스 현대건축가들의 작품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들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건축언어, 재료의 물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공간에서 느껴지는 담백함.
결코 이러한 감각들은 어느날 갑자기 천재같은 건축가들에 의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듯이 만들어진게
아니다.

그것들은 그들이 어려을때부터 삶을 통해 언제나 함께 해온 그들의 전통의로서의 삶과 건축이
자연스럽게 그들속에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현대적인 모습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왜 Peter zumter는, 왜 헤르조그 앤 드뮤론은 혹은 어떻게 저들은 저런 건물을 잘 만들까 
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은 스위스의 숨겨진 마을들을 찾는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쯤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나에게는 어린시절부터 나와 함께 나이들어온 전통과 생활을 담아내는 공간이 무엇일까?
다행이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 거실이 아닌 안방, 부엌, 사랑채로 둘러쌓인
마당이, 그리고 소파가 아닌 대청마루와 안방의 옷장뒤에 숨겨져있던 비밀스런 다락방에 대한 기억과 몸이 기억하고
있는 공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머리와 손에 깃들어서 건축으로써 투영되어 지지는 못하고 있다.

좀더 넓게 보면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단절되어 버린 우리의 유산이 못내 아쉽다.

이것은 결코 전통을 살리자, 한옥을 살려서 현대건축에 적용해야 된다 라고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그럴수도 있고 안 그럴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과거와 우리가 가진 유무형의 유산에 대한 이해는 분명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건축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시작하는 우리로서는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유심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우리의 얘깃거리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의 '당분간' 은 마지막 여행이 될 바젤여행이 끝났다.

120125 Y

근 한달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
이 글도 벌써 써논지가 한달은 되어버린 글인데 이제서야 이렇게 올린다
보통을 글을 올리기 전에 최소한 오타체크의 이유에서라도 한번은 읽어보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지난밤에 쓴 연애편지가 다음날 아침에 읽으면 유치찬란한 3류시처럼 되버리듯이
왠지 지금 읽으면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지 못할만큼 유치하게 느껴질거 같아서이다.
그저 저 순간에 저 감정을 그대로 이곳에 올리는게 맞을거 같다.


한 달은 지난듯 하다. 매일 아침 사람이 그득찬 지하철을 비집고 들어간지가 아득하다.

그런데 아직 1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지난 주 화요일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으니...

1주일도 안된 시간 동안 사무소 개업준비하랴, 건축주도 만나랴, 건축사 학원도 다니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부분의 시행착오들과 절차들은 곧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그 전에, 지난 5년을 글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대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다보면, 그 5년이 퇴색되어 버릴 것 같다.
그 시간동안 모두 즐겁고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기억의 수면밑으로 가라앉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
...

포스코센터.
입사할 무렵의 회사는 이 곳 17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포스코센터의 로비는 얼마전 가보았을 때에도 역시나 감동적이다. 설계는 90년대초반, 완공은 95년.
그러나, 현재에도 한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일 정도로 로비와 아트리움의 공간감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그 넓은 로비는 포스코센터가 건립당시 건폐율 관련해 문제가 있었지만, 공공보행의 단서를 달고 허가가 났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이제는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대규모 로비를 만들 수도,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넓은 공간으로 두지 않고, 단체자원봉사, 바자회, 공연, 전시 등 정말 다양하고 요긴하게
사용된다.  변화무쌍한 공간 이용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자 틈틈이 찍어두었던 사진들은 어디에 있는지... -_ -

이 곳 17층에서 야근을 할 때 바라보았던 테헤란로의 모습 또한 그럴 듯한다.
이 시기는 건축이라는 특정한 대상보다는 사회생활 자체를 즐겼다.
그리고 사무실에서는 보고서 참 많이도 썼다. 사무실은 팀제가 아닌 풀제 즉, 프로젝트에 따라서 팀이 새로 구성되고
해체되는 시스템이라 어느 프로젝트든 막내.
보고서, 사례조사 간간이 3D 모델링.
물론 이런 것이 필요없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업무를 하는 능력 또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생각한 건축과 사무실에서 진행되는 건축 그리고 내가 맡아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괴리감은
지금 돌아보면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상 설계를 했다.
이번 현상 설계는 턴키 2개 보고서, 홍보물 맡아서 한 뒤에
지루한 개발 제안서 작업을 하던 차에 제대로 팀을 짜서 시작하는 프로젝트. 남은 기간은 3주.
시간이 많지 않다. 넌 보고서 잘 하니까 보고서 해.
보고서 맡았다.
작업을 하면서도 익숙하게 보고서 목업을 잡고 레이아웃을 잡아가는 모습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마무리 작업을 하고, 출력하고 제출.
떨어졌다. 
그래도 별로 슬프지 않다. 내 것같지가 않으니까. 나는 누군가의 도구이니.

개발 제안서 쓸 때 같이 일 했던 PM.
MXD 프로젝트 합사나가야 하는데 같이 나가자고 꼬신다.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 할 수 있는 기회가 쉽지 않다고 한다. 
공동주택 1500세대, 50층짜리 오피스, 20~30층짜리 주상복합 등.
합사 나갔다. 
이런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은 프로젝트 진행이 어렵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_ -;

발주처가 민간이다보니 특별한 사유 없이 밀어지기 일쑤.  그렇다고 설계사가 나설 수도 없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 금융위기다 뭐다 여건이 악화되면서 사업성 떨어지고...
그러면서 1년 반이 지났다.
그 동안 합사는 선릉에서 안양 범계역 근처로 옮겼다.
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더 없어졌다.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화면에 띄우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남는 시간을 활용해 LEED AP 자격증 땄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될 것 같은 맘이 들어서 도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뭔가 대단한 것 같았지만 2~3개월지나니 약발이 떨어져갔다.
그러다 프로젝트 무기한 홀딩
빈손으로 본사 복귀.

이제는 4년차 대리.
하지만 머릿속은 텅
무언가 트레이싱 페이퍼에 그림을 그리는게 어색해졌다.

그러던중 포스코에서 발주한 포항제철소/광양제철소 실내체육관.
설계랑 시공이랑 같이 한다는 '디자인빌드' 프로젝트
난 광양제철소 실내체육관 팀.
PM은 서울건축 출신, 40대에 IIT로 훌쩍떠나서 학업 마치고 그 해 입국한 인물. 
법규검토 좀 도와달라고 발을 들이며 시작한 프로젝트
약 7개월간 평일11시퇴근. 주말 이틀중 하루는 출근.
발주처나 설계사나 둘다 경쟁적으로 공기단축 외치며 쥐어짜는데
도면치는 설계팀하고 땅파고 공그리치는 시공팀하고 죽을맛.
그런데...
내가 참여했을 때 계획설계 마치고 바로 기본+실시설계 시작하려는 타이밍
PM은 뭐 할줄 아냐?
그 동안 경험이 미천하여 할 줄 아는 것은 보고서나 모델링, 하지만 가르켜주면 열심히 하겠다.
그 때부터 도면 한장한장 배우기 시작함.
동시에...
경영위치 출신 대리형님한테 한수 두수 아니 그 이상을 배움. 배운다기보다 흡입
그리고 나를 멍하게 만들었던 말.
디자인은 니가 생각했던 매스를 만지고 입면을 그리는 것 말고도
공간 안에서 너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너의 수많은 선택들이 공간을 만들어간다.
첨엔 뭣도 모르고 그냥 도면이나 쳐야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경영위치 소장님도 서울건축 출신. PM도 서울건축 출신
그 대리형님도 서울건축의 계파라고 해야하나
여튼 여기 들은 내용 PM도 같이 얘기하니 그렇다고 해야지
이렇게 7개월갈 죽을똥 말똥 하고 나니 눈이 좀 트인다.
이제 5년차.  선배들이 보면 가소로워보이겠지만, 나로서는 굉장한 변화의 계기였다.

이제 실내체육관은 마감공사와 조경공사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데, 
턴키 팀으로 호출.
안양에 무슨 인연이 있는지 다시 안양으로 합사.
팀별 역할 분담.
보고서 담당... -_   -;
내가 그동안 회사에서 쌓아온 이미지 덕이겠지. 
그래도 초반 계획안 잡을 때 머리 짜내면서 아이디어 회의에 임했지만,
프로젝트 나가리. ;;;;

다시 본사 복귀.
여수 엑스포 포스코 기업관 프로젝트 참여
파빌리온이다보니 외형이 둥글둥글 조약돌 같아, 그걸 구현하는게 제일 큰 과제
같은 팀이었던 M은 라이노를 귀신같이 다루는 인물.
나는 라이노 초짜.
나는 대신 예전의 기억을 살려 도면 열심히 그리려고 했는데
건축/구조 통외주
그래야 실행예산이 마이나스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 팀 3명은 보고,관리,3D조형 구축 등.
뭔가 심심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이 때즘 Y와의 작당이 시작되고,
여름 한달을 새로운 프로젝트 구상에 써버리고,

그러던 중
현상설계 투입.
팀에서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이 있는 터라
그래 이거라도 잘 해보자.
그런데 공동주택 현상.
잘 됐다. Y와의 작당 프로젝트도 주거. 하다보니 건축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집인데. 이 사무실은 주거랑 인연이 별로 없는 곳이라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비록 주거형태가 왜곡되어가는 정점에 선 것이 공동주택이라지만,
그 만큼 변화무쌍하게 거주자의 욕구를 충족시켜가는 괴물같은 존재.

현상설계 또 3주정도 남고,
손이 모자라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그리고, 모델링하고, 도집 만들고... 하다보니
당선.
우와.
현상설계 끝나고 다시 여수 팀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했는데
당선되면서 바로 프로젝트 팀 구성되고 팀원으로 들어감
공동주택 진행하면서
주요 포인트도 알게되고, 도면보는 법도 익히게 되고,
한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직까지는) 주거 형태의 여러 단면들에 대해
느끼고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
이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주거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나와 Y의 목표.

그리고 공동주택 한참 쭉 진행되는 동안 결심.
나가야 겠다.
나가서 직접 해봐야 겠다.
그리고 다시 새해

1월8일 만 5년, 6년차 설계 직원에서
현재는 5년제출신, 만 5년 실무경력을 가진, 그리고 건축가가 되기 위한 큰 발돋움을 시작하려는
순간.

...
... 


다시 시작이다!

120207 J 
오랜만에 델프트(Delft)를 방문했다.

아마도 귀국전 마지막방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벌써 졸업한지 시간이 꽤나 지났기 때문에 아는 분들이 많진 않다.

머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델프트에 오니 지난 유학동안의 시간들을 돌이켜보게된다.
델프트에서의 유학은 건축적으로만 봤을때도 물론 나에게 무척이나 인상깊은 시간들이었다.
누구나 본인이 공부하고 머물렀던 곳에 대한 아늑함과 향수가  있기 마련이다.
거기다 그것이 시간이 좀 지나서의 회상이라면 그것은 더욱 미화되어,
아름답고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시도 그렇다.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좌절도 있었지만, 그 고통의 시간만큼이
미화되어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사실 이런 글은 학교를 막 졸업했을때, 혹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에 쓰는 것이
적합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더욱 생생하고 와닿는 얘기들을 쓸 수 있을테니까.
따라서 지금의 나는 이 델프트공대를 이야기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떠올리고자 했을때 떠오르는 것을 몇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더 늦기전에.

델프트공대의 가장 좋은 점중에 하나라면 다양한 성격의 트랙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하이퍼바디(Hyperbody)와 같이 컴퓨터스크립팅을 기본으로 한 스튜이오에서부터
전통적인 디자인 방법론을 기본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까지,
또한 공공건물, 집합주거 처럼 전통적인 건축의 프로그램들을 주제로 하는 스튜디오부터 재료, 혹은 고층 빌딩,
친환경빌딩을 프로그램으로 하는 스튜디오까지 매우 다양한 스튜디오가 다양한 주제와 방법론을 갖고 개설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의 관심과 목적에 맞는 스튜디오를 2년동안 계획을 하고 조합을 해서 스튜디오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전혀 다른 성격과 주제를 갖고 있는 스튜디오들이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도 학기내내 동시적으로
옆에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에더해 각각의 다른 스튜디오들 사이의 일명'융합'이 때때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것은
학생에게는 금같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스튜디오 진행내내 건축 디자인과 동시에 구조와 재료등 디자인이 실체화 되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과 지식들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구조, 디테일 잡지에서 보고 베끼는 한이 있더라도) 디자인뿐만이 아닌 좀더 입체적인 관점에서
건축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을 기울이려는 자세를 갖고자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학부에서부터 이루어지는데 그로인해 학생들은 건축을 그림이 아닌 현실속에 존재하는 '장' 으로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오픈렉쳐와 관련 시설등등은 다른 좋은 학교들도 그러할테니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여기까지가 좀 공식적인 얘기였다면
개인적인 기억으로 좀더 들어가보면 이렇다.

지금돌이켜봤을때 기억에 남는 것중 하나는 스튜디오동안 튜터가 언제나
강조한 것이 평범한 것, 기존에 하고있는 방식말고 다른, 재밌는, 기존에 있지않은 것을 시도해보라는 것이었다
이는 비단 디자인의 형태뿐만이 아니라 구조방식이며 재료사용이며
내가 알고있던 '이런형태에는 이런구조면 혹은 이런재료면 일반적으로 되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의심하라는 것이었다.
즉, 디자인초기부터 구조 및 재료, 거기다 프리젠테이션 하는 방법에 까지
모든 기존의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의심하고 다른것, 재밌는것 을 찾을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다른 기억은, 공간을 만들어 냄에 있어, 아니 공간을 탐구하는데에 있어
굉장히 열린 방법과 진지한 마음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건축은 적어도 나에게는 유학을 오기전에는 굉장히 표현적이고 형태적이며
자극적인 건축처럼 보였다. 잡지를 통해서 본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와서 느꼈던 네덜란드 건축은 흥미진진한 표현과 형태들 속에서 언제나
기본을 먼저 강조하고, 순수한 공간자체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제나 재미(fun)을 놓치지 않는다.


들었던 스튜디오중에, 혹은 옆방에서 했던 스튜디오를 구경한 것중에선
면과 선등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부터 시작해 그들의 접기, 구부리기, 그리고 조합등의 변형을 통해, 
각종 재료의 물성을 분석하고 이미지화를 하는 것을 통해, 라이노에서 만들어지는 자유 3D 형태의 조합 및 변형을 통해, 
도시의 모든 각종 현상을 분석하고 형태화 시키는 것 등등을 통해 의도하지 않았던, 손으로 쉽게 그려지지 않는 그런 공간들을
탐구하고 찾아내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다.


때로는 일차적으로 '어떻게 저 주제에서 공간적인 요소를 발전시킬수 있을까' 하고 
당황스러울때도 있었지만 결국엔 진지한 탐구와 분석 그리고 재구성을 통해
그안에서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과 퀄리티(quality)를 찾아낸다.
나름 당시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에서 끊임없이 싸울것을 요구한다.
싸움이라는 표현이 우리말중에서 가장 적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교를 다니는 내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디자인과,
그리고 튜터와 끊임없는 싸움이 필요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음… 글을 시작할때는 이보단 더 쓸수 있을 것 같았는데 더 이상 적당한게 떠오르진 않는다.
또한 쓰고보니 델프트(Delft) 에서 공부하신 다른 분들께서 보시고 틀렸다고 하시는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그것도 무척이나 미화되었음이 분명한 기억을 가지고 쓴 것임을 밝혀둔다.


다만 분명한 것은 델프트에서의 2년간의 치열했던 단련과정들은 학부때 갈망하던
욕구들을 일정부분 만족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진지하고 겸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몇몇밤에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리.


끝으로 오늘 델프트에서 시간을 내 주신 형님들, 친구들 그리고 동생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 또 세계의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함께 델프트에서의 시간을 나누었던 분들에게도.



아, 여기 일본의 건축 잡지인 A+U의 2012년 신년호에
TUDelft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건축교육에 대한 에세이가 있어서 소개한다
내가 쓰지 못한 좀더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scanned by 권영민



120116 Y




 
회사를 나왔다.

처음 JYA blog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생각해왔던 순간이자, 가장 먼저 쓰고 싶었던 문장이었다.
지난 여름부터 가졌던 많은 생각들,
이미 앞에서 글로 남겼던,
생각의 타래들을 끊어버리고 
아직 일과가 끝나지 않은 오후에 회사를 나왔다. 

만5년. 숫자로만 세어보면 오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돌이켜보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듯 하다.

그 5년동안 같이 지내왔던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1시간정도면 인사를 다 드릴것 같았는데, 다시 자리에 앉고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많은 사람들중 몇가지 상황들을 소개한다.

#1. 
모든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말중에 '경기도 어려운데 어찌...'
나도 그렇게 들었고, 그 사람들도 그렇게 들었고,
신문에서도 떠들고, 대통령도 떠들고, 유럽도 그렇다고 하고, 미국도 어렵다고 하고...
그러면 아.. 정말 경기가 어려운가 보구나. 보구나. 보구나. 
하지만, 과연 경기가 좋았던 적은 얼마나 있었을까.
IMF이전? 아니면 지난 금융위기 이전?
그 때 당시도 모두들 지금은 경기가 호황이다라고 했을까.
어렵다고 하지만, 아직도 도시에는 크레인이 올라가고 가림막이 처져있고
누군가는 먹고 살고 있다는 것.
겪어보지 않고서는 속단할 수 없다.
꼭 겪어봐야 아는가? 라는 질문에는 
그럼 이제 호황이니 어서 독립해라 라고 그 때 말해줄건가?  라고 답하고 싶다.

#2.
인사드렸던 몇 분 중에는 개인사무소를 운영했거나, 준비하다가 포기했던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의 표정과 눈빛은
큰 회사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들과는 조금은 남달랐다.
뭔가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복잡하고 애잔함?
그들이 겪었던 힘든 길과 고민들이 떠올랐으리라.
결국은 잘 하라고, 대신 잘 하라고 많은 격려를 주신다.

#3.
입사할때부터 실장님으로 계셨던 (다녔던 회사에서 실장급은 타사무소의 본부장급이다)
어제까지도 소속 실의 상무님으로 계셨던 분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하고 싶은 말 없냐고 해서...
저 나가고 좋은 기회가 있으면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제 밑에서 일하다가 나가니까 같이 일하는 관계가 되버렸군
큰 건 따서 외주를 주는 상상을 해본다... 크허허

#4.
1층 데스크에 경비 및 관리로 일하시는 분.
야간근무에 '타로점'으로 유명하다. 
회사사람들 알게모르게 1/3넘게는 봤을게다.
지난 주 인사드리고 타로점 봐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야간근무때 찾아오라고 하시는군.
세 장을 뽑았다.
여기서 세세히 말하기는 뭣하지만,
나 자신, 큰 조직에 길들여진 나 자신을 바꾸는게 중요하다 나왔다.
그 말을 와잎에게 전하니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하신다.
^^


이제 다시 시작이군. 앞으로의 뜨거운 5년을 위하여.

120201.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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