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델프트(Delft)를 방문했다.

아마도 귀국전 마지막방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벌써 졸업한지 시간이 꽤나 지났기 때문에 아는 분들이 많진 않다.

머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델프트에 오니 지난 유학동안의 시간들을 돌이켜보게된다.
델프트에서의 유학은 건축적으로만 봤을때도 물론 나에게 무척이나 인상깊은 시간들이었다.
누구나 본인이 공부하고 머물렀던 곳에 대한 아늑함과 향수가  있기 마련이다.
거기다 그것이 시간이 좀 지나서의 회상이라면 그것은 더욱 미화되어,
아름답고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시도 그렇다.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좌절도 있었지만, 그 고통의 시간만큼이
미화되어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사실 이런 글은 학교를 막 졸업했을때, 혹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에 쓰는 것이
적합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더욱 생생하고 와닿는 얘기들을 쓸 수 있을테니까.
따라서 지금의 나는 이 델프트공대를 이야기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떠올리고자 했을때 떠오르는 것을 몇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더 늦기전에.

델프트공대의 가장 좋은 점중에 하나라면 다양한 성격의 트랙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하이퍼바디(Hyperbody)와 같이 컴퓨터스크립팅을 기본으로 한 스튜이오에서부터
전통적인 디자인 방법론을 기본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까지,
또한 공공건물, 집합주거 처럼 전통적인 건축의 프로그램들을 주제로 하는 스튜디오부터 재료, 혹은 고층 빌딩,
친환경빌딩을 프로그램으로 하는 스튜디오까지 매우 다양한 스튜디오가 다양한 주제와 방법론을 갖고 개설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의 관심과 목적에 맞는 스튜디오를 2년동안 계획을 하고 조합을 해서 스튜디오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전혀 다른 성격과 주제를 갖고 있는 스튜디오들이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도 학기내내 동시적으로
옆에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에더해 각각의 다른 스튜디오들 사이의 일명'융합'이 때때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것은
학생에게는 금같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는 스튜디오 진행내내 건축 디자인과 동시에 구조와 재료등 디자인이 실체화 되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과 지식들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구조, 디테일 잡지에서 보고 베끼는 한이 있더라도) 디자인뿐만이 아닌 좀더 입체적인 관점에서
건축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을 기울이려는 자세를 갖고자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학부에서부터 이루어지는데 그로인해 학생들은 건축을 그림이 아닌 현실속에 존재하는 '장' 으로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오픈렉쳐와 관련 시설등등은 다른 좋은 학교들도 그러할테니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여기까지가 좀 공식적인 얘기였다면
개인적인 기억으로 좀더 들어가보면 이렇다.

지금돌이켜봤을때 기억에 남는 것중 하나는 스튜디오동안 튜터가 언제나
강조한 것이 평범한 것, 기존에 하고있는 방식말고 다른, 재밌는, 기존에 있지않은 것을 시도해보라는 것이었다
이는 비단 디자인의 형태뿐만이 아니라 구조방식이며 재료사용이며
내가 알고있던 '이런형태에는 이런구조면 혹은 이런재료면 일반적으로 되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의심하라는 것이었다.
즉, 디자인초기부터 구조 및 재료, 거기다 프리젠테이션 하는 방법에 까지
모든 기존의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의심하고 다른것, 재밌는것 을 찾을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다른 기억은, 공간을 만들어 냄에 있어, 아니 공간을 탐구하는데에 있어
굉장히 열린 방법과 진지한 마음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건축은 적어도 나에게는 유학을 오기전에는 굉장히 표현적이고 형태적이며
자극적인 건축처럼 보였다. 잡지를 통해서 본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와서 느꼈던 네덜란드 건축은 흥미진진한 표현과 형태들 속에서 언제나
기본을 먼저 강조하고, 순수한 공간자체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제나 재미(fun)을 놓치지 않는다.


들었던 스튜디오중에, 혹은 옆방에서 했던 스튜디오를 구경한 것중에선
면과 선등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부터 시작해 그들의 접기, 구부리기, 그리고 조합등의 변형을 통해, 
각종 재료의 물성을 분석하고 이미지화를 하는 것을 통해, 라이노에서 만들어지는 자유 3D 형태의 조합 및 변형을 통해, 
도시의 모든 각종 현상을 분석하고 형태화 시키는 것 등등을 통해 의도하지 않았던, 손으로 쉽게 그려지지 않는 그런 공간들을
탐구하고 찾아내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다.


때로는 일차적으로 '어떻게 저 주제에서 공간적인 요소를 발전시킬수 있을까' 하고 
당황스러울때도 있었지만 결국엔 진지한 탐구와 분석 그리고 재구성을 통해
그안에서 새로운 공간의 가능성과 퀄리티(quality)를 찾아낸다.
나름 당시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들에서 끊임없이 싸울것을 요구한다.
싸움이라는 표현이 우리말중에서 가장 적합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교를 다니는 내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디자인과,
그리고 튜터와 끊임없는 싸움이 필요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음… 글을 시작할때는 이보단 더 쓸수 있을 것 같았는데 더 이상 적당한게 떠오르진 않는다.
또한 쓰고보니 델프트(Delft) 에서 공부하신 다른 분들께서 보시고 틀렸다고 하시는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그것도 무척이나 미화되었음이 분명한 기억을 가지고 쓴 것임을 밝혀둔다.


다만 분명한 것은 델프트에서의 2년간의 치열했던 단련과정들은 학부때 갈망하던
욕구들을 일정부분 만족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진지하고 겸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몇몇밤에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리.


끝으로 오늘 델프트에서 시간을 내 주신 형님들, 친구들 그리고 동생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 또 세계의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함께 델프트에서의 시간을 나누었던 분들에게도.



아, 여기 일본의 건축 잡지인 A+U의 2012년 신년호에
TUDelft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건축교육에 대한 에세이가 있어서 소개한다
내가 쓰지 못한 좀더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scanned by 권영민



120116 Y




 
회사를 나왔다.

처음 JYA blog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생각해왔던 순간이자, 가장 먼저 쓰고 싶었던 문장이었다.
지난 여름부터 가졌던 많은 생각들,
이미 앞에서 글로 남겼던,
생각의 타래들을 끊어버리고 
아직 일과가 끝나지 않은 오후에 회사를 나왔다. 

만5년. 숫자로만 세어보면 오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돌이켜보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듯 하다.

그 5년동안 같이 지내왔던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1시간정도면 인사를 다 드릴것 같았는데, 다시 자리에 앉고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많은 사람들중 몇가지 상황들을 소개한다.

#1. 
모든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말중에 '경기도 어려운데 어찌...'
나도 그렇게 들었고, 그 사람들도 그렇게 들었고,
신문에서도 떠들고, 대통령도 떠들고, 유럽도 그렇다고 하고, 미국도 어렵다고 하고...
그러면 아.. 정말 경기가 어려운가 보구나. 보구나. 보구나. 
하지만, 과연 경기가 좋았던 적은 얼마나 있었을까.
IMF이전? 아니면 지난 금융위기 이전?
그 때 당시도 모두들 지금은 경기가 호황이다라고 했을까.
어렵다고 하지만, 아직도 도시에는 크레인이 올라가고 가림막이 처져있고
누군가는 먹고 살고 있다는 것.
겪어보지 않고서는 속단할 수 없다.
꼭 겪어봐야 아는가? 라는 질문에는 
그럼 이제 호황이니 어서 독립해라 라고 그 때 말해줄건가?  라고 답하고 싶다.

#2.
인사드렸던 몇 분 중에는 개인사무소를 운영했거나, 준비하다가 포기했던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의 표정과 눈빛은
큰 회사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들과는 조금은 남달랐다.
뭔가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복잡하고 애잔함?
그들이 겪었던 힘든 길과 고민들이 떠올랐으리라.
결국은 잘 하라고, 대신 잘 하라고 많은 격려를 주신다.

#3.
입사할때부터 실장님으로 계셨던 (다녔던 회사에서 실장급은 타사무소의 본부장급이다)
어제까지도 소속 실의 상무님으로 계셨던 분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하고 싶은 말 없냐고 해서...
저 나가고 좋은 기회가 있으면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제 밑에서 일하다가 나가니까 같이 일하는 관계가 되버렸군
큰 건 따서 외주를 주는 상상을 해본다... 크허허

#4.
1층 데스크에 경비 및 관리로 일하시는 분.
야간근무에 '타로점'으로 유명하다. 
회사사람들 알게모르게 1/3넘게는 봤을게다.
지난 주 인사드리고 타로점 봐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야간근무때 찾아오라고 하시는군.
세 장을 뽑았다.
여기서 세세히 말하기는 뭣하지만,
나 자신, 큰 조직에 길들여진 나 자신을 바꾸는게 중요하다 나왔다.
그 말을 와잎에게 전하니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하신다.
^^


이제 다시 시작이군. 앞으로의 뜨거운 5년을 위하여.

120201. J.

 
이번 주에는 개인적인 서류들을 정리했다.

머 나에게 있어 이곳에서 정리해야했던 공식적인 서류들이라면
Master degree에 대한 legalization 과 아포스티유를 받는 것,
네덜란드 건축사 라이센스에 대한 legalization 과 아포스티유를 받는 것,
그리고 경력확인서 정도였다.

덕분에 네덜란드 북쪽의 흐로닝헨(Groningen)부터 덴하그(Den haag)의
 courthouse와 chamber of commerce 등등을 부지런히 다녀야 했다.

네덜란드 건축사 라이센스가 한국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진 아직 잘 모른다.
한-EU FTA 이후에 먼가 현실적인 변화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아직 자세히 확인을 하진 못했다.
아마 이런것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을 해야하는 과정(수고?)이 남아 있는 듯 하다.

이번글은 너무 짧나?

120112 Y





토요일에 파티가 있었다.
더치파트너가 신년파티 겸 내 송별회를 겸해서 집으로 초대를 했다.
보통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집으로 초대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파티는 언제나 그렇든 다같이 술마시고 얘기하고 떠들고 웃고, 저녁먹고.
그리고 이번엔 파트너들이 일일이 각자를 위해 준비한 선물들을 추첨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골라주는 시간이 있었다.
내 선물은 누가 골라줬드라… 음… 겨우 어제일인데 기억이 안난다.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 보니 누가 누구한테 줬는지 원.. 암튼 내가받은 선물은 텍스트테잎(text tape)이다.
상자않에 수많은 단어들이 들어 있고 그 중에서 필요한 단어를 골라서
원하는 문장을 조합해 어디다 붙이거나 하는 것이다.



파티가 끝났다.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또한 델프트에서 우리들끼리 했던 파티와는 또 다른 경험의 파티였다.
고급스러웠고 유쾌했다.
JYA도 이런 파티를 연말쯤에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것으로 공식적인 VMX in Amsterdam 에서의 일정은 끝났다.
물론 앞으로도 이들을 볼일은 많이 있을 것이다.

120114 Y
한국에서 돌아왔다.

돌아와서 약 일주일정도 사무실에 나갔다.
한국에 가기전에 하고 있던 프로젝트들을 정리를 했고
그 사이에 중간중간 개인적인 일들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사무소와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나같은 경우엔 조금 복잡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우선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이슈는 VMX에서 우리사무소에 대해
한국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VMX 한국 사무소를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일정 금액을 투자를 하는 것일테고
(혹은 우리는 일정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로서는 좀더 안정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얘기는 현재의 우리로서는 굉장히 부담되는 제안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공짜로, 혹은 그저 나와의 정을 생각해 그런 제안을 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얘기는 가능성만을 남겨둔체 후에 적당한 때가 되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다만 나에겐 '가능성'을 열어두는게 중요하고,
VMX 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분명 우리가 갖지 못한 능력과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무엇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나에겐 나를 끊임없이 자극시켜줄 수 있는 다양한 '자극들'이 중요한데
VMX는 분명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자극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쨌든 내가 일하던, 배우던, 나를 잘 알고, 나를 자극시켜 줄 (좋은 방식으로건, 혹은
나쁜 방식으로건) 사무소와 관계를 잘 변경하고 정립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고맙게도 다음주 주말에 송별회를 겸한 파티가 있다.
VMX 에서의 마지막 공식적인 일정이 될 것이다.
섭섭하고 고맙다.


120106 Y
지난 2주 동안 많이 바빴다.
나는 곧 회사를 나올 몸이지만,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달 쯤 팀장님께 먼저 내 거취에 대해 말씀드릴적만 해도 이렇게 바쁘진 않았는데,
팀에게 미안한 감이 많다.

그리고 이 2주동안
회사와 주변에 나의 행동에 대해 알렸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 프로젝트 총괄하는 부장님, 입사를 했을 적부터 줄곧 내가 속한 실의 실장님으로 계셨던
상무님께도 모두 알렸다.

동기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거치며 같이 일 했던 동료, 후배, 팀장님들.

그리고 가족들, 친척들에게도 대부분 알렸다.

반응은 ...

부럽다 / 용기가 대단하다 / 집에서 허락해준게 더 대단해다 -_-; / 잘 해봐라 / 실무를 좀 더 하고 하지 그러냐 / 
일은 어떻게 시작할거냐 / 라이센스는 어떻할거냐 / 사업하려면 이런저런거 잘 챙겨야 한다 / 사기꾼 많다 / 
일 한다음에 돈은 잘 받을 수 있겠냐 / 동업하는 친구랑 잘 해야한다 / 사무실은 어쩔거냐 / 
지금 가지고 있는 맘을 잊지 말아라 /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잘 참아내라 / 하다가 안되면 다시 돌아와라 /

위의 적은것들 말고도 많다.

상대방들의 반응에 크게 동요되고 싶지 않아도, 상대방의 칭찬에는 어깨가 들썩이고, 걱정에는 주눅이 든다.
하지만, 
아직도 겪지 않고, 무슨 일이 생길지 직접 부딪히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주변의 반응에 대해서 최대한 초연하고자 한다.

 그리고 오늘 대전에 장인어른한테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지막 한 마디만 가슴에 담고자 한다.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구경꾼이다, 주인공은 너희들이다" 

그들의 걱정이 나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나타내는 것일 뿐 결국은 헤쳐가는 것은 Y와 나 이 둘이라는 것을
다시금 마음속에 새긴다. 

20120114 - J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듯 이번에는 프로젝트 만들기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은 독립을 하려고 준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 여겨진다.
당연한 것이다. 현재 사무소를 운영하고 계신 기존의 건축가 분들도 평생 해야하는
고민인데 새로 시작하는 젊은 건축가들에겐 오죽하겠는가.

이 프로젝트에 관련된 부분은 사실 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무슨 프로젝트를 실제로 만들어 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를 위한 특별한 노하우를 알고 있는것도 아니기 때문에
선뜻 주제로 꺼내쓰기가 어려웠다.

다만 이번 한국방문시 생겼던 몇가지 뜻하지 않은 소식들을 들으며
느낀 것을 바탕으로 project 라는 주제를 이쯤에서 한번쯤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염두해 두어야 할것이
첫째는 미안하게도 이 글에선 몇몇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이름은 밝히지 못할 것 같다
이유는 일단 그 일들은 '아직' 우리것이 아니다.
따라서 미리 밝히는 것은 'Potential client' 에게도
실례가 될 수 있으며 그러다 우리 그거 안주면 안되니까.. ㅎ
아마도, 바라건데, 마음속으론 확신에차서, 언젠가 그 프로젝트들이 우리것이 되어
결과가 나올때쯤에는 다시한번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할 기회가 올것이다.

두번째는 이곳에 쓸 내용들이 결코 새롭거나 특별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부자도 아니고 흔히 얘기하는 배경이 좋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란 것은 대부분의 젊은 건축가들이 독립을 위해서 밟아나갈 거라 예상되는
길이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쓰는 이 글들이 의미가 있는 거겠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이 글에선 이런 예측가능한 방법들이 정말 가능하구나 라는걸 확인하는데에 초점을 맞추면
되는 것이고 그걸 통해 나두 할수 있겠는걸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계기가 되고 독립을 위한 의지를 다지는데에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만족스러울듯 하다

우선 첫번째 project(?) 라 불릴만한건 지난 봄에 내가 출장겸해서 한국에
들어갔을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J 를 비롯한 몇몇 대학졸업동기들끼리 만나 술을 먹다가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얘기를 했다. 재미없게도.
그러다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우리가 가진 재능을 통해,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좀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얘기가 흘러갔다.
즉, 마음만 갖고 있어서는, 우리가 좀더 내공이 쌓이면 해보자 머 이런 마음으로는 평생가도 변명거리만
달라질 뿐이지 뒤로 미루는건 똑같다는 것이다.

자 그럼 어떻게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냐.
항상 여기가 어렵다. 어떻게라는 단계로 넘어가면 그곳에서부턴 행동력의 문제이고
그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의 소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때 J 가 말했다.
본인이 한 NGO 단체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정말 누군지만 아는 사람, 얼굴도 모르는, 만나본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번 연락을 해보겠단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당시의 나의 생각을 고백해 표현하자면 이렇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난 당시 그 NGO 단체가 그렇게 큰 단체인지도 몰랐고 그저 몇명 안되는 단체인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가 건축가인데, 재능기부의 차원에서 일을 해'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머가 있겠어? 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던 거다. (참고로 그 NGO 단체는 한국에서 가장 네임벨류있는 단체 중 하나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보낸 제안서 하나에서 이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이 모든 일'이라는 의미는 그 project 가 진행이 되면서 우리의 독립이 예상보다 빨라졌다는 것이다.

반응은 생각보다 빠르고 적극적이었다.
특히나 내부에서 변화를 바라고 있던 분들이 적극적으로 호응을 해주셨다.
그래서 여름에 다시 한국에 들어가 오픈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이후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듯..... 했다.
그렇게 작년 11월초까지 주중에는 사무실일을하고 주말에는 한국일을 하면서
정신없고 바쁘고, 그치만 매우 흥미로운 시간들을 보냈다.

이때쯤에 우리들 마음속에는 독립을 하고싶다, 아니 독립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다.
당시의 프로젝트는 NGO 단체에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결코 돈이 되는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다만 30세대 전후의 집합주거 단지를 만드는 것이라는게 매우 매력적이었다.
더군다나 한해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 매년 새로운 장소에 지어지는 것이기때문에
그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나라의 편향적이고 왜곡되보이는 주거문화에 새로운 제안을 해봐야겠다는
장기적인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네덜란드에서 일을 하면서 한국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한다는 것에 매우 커다란 제약이 있었다.
모든 프로세스가 매우 느릴수 밖에 없었고, 건축은 만나서 협의와 토론을 통해 이루어지고, 설득하고, 진행해 나가도
잘 될까 말까한데 이러한 물리적 상황에서는 그런 과정들이 거의 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잘 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들어가야 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 그 당시에 J 가 나에게 보낸 메일중에 한 대목을 소개한다
당시 독립이라는, 생각보다 이른, 거대한 사건 앞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그가 했던 고민이 여실히 묻어난다


".......중략

나 아직 100% 맘을 못 정했다.

사무실을 운영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간에 피로가 쌓이면

그 수준은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는다.

나는...

우리가 뭘 먹고 살아갈지 걱정이다.

회사에서 던져준 밥만 먹고 5년간 살아온 나로서는 몇가지 대안이 생각이 안난다.

....... 중략"                                               
                                                                                                                      2011년 2월 18일 email 중에서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걱정과 설레임과 포부를 안고 진행되던 프로젝트는 결국 엎어지고 말았다

어느 단체에나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손에 쥔 작은것에 연연해서 전전긍긍하는 답답한 위인들은
있는 법이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위인들이 항상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어쨌든 결론이 그렇게 나고 나서 우리는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저거 하나 엎어졌다고 주저앉아버리면 쪽팔리니까 그냥 우리하려던 데로 독립하자!
라고 결론을 냈다.

그렇게 결론을 내고나니 당장 독립하고 정말 머하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 고민은 매우 깊고 심오해서 밤에도 그 걱정에 잠을 못이룰 정도였다.
 
그래서 우선 내 주변에 건물을 지을 만한 분들이 없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자 어떤가?
우리도 어쨌든 좀 돌아오긴 했지만 결국엔 많은 건축가분들이 독립하면서 그러했듯이
결국 가까운 분들, 주변분들에게서 먼저 일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이 방법을 그리 탐탁치 않아했다.
독립하고자 하는데 방법적인 면에서 전혀 독립적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엔 이 방법이 사실은 가장 현실적이면서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최근들어 전혀 모르는 분을 소개받아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를 나눠본적이 있었다.
집을 짓고싶어 하시는 분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가 젊은 건축가인것도 좋고 다른 조건들은 다 괜찮았지만
지어진 건물이 아직 없다는 것을 무척이나 걱정스러워하셨다.
그 분에겐 평생 업적의 결과물 중 하나가 될 집을 우리의 실험용으로 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좀 더 오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이미 마음을 정하신 것 같아 설득하는 것은 그만 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이라는, 지어진 건물이 아직 없다는 단점을 이해해주실수 있는
주변분들을 통해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대안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프로젝트를 만든다 는 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주변에 아는 사람들, 그 아는 사람들의 아는 사람들에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개를 의뢰하고,
물어보고, 설득하고, 찾아갔다.
말하건데 나는 무척이나 뻔뻔한 사람이다.
교수님도 뵙고, 아는 소장님들도 뵙고.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독립할거라는거, 그래서 우리가 프로젝트를 찾고 있다는 걸
주변사람들에게 최대한 공개를 하는 것이다. 최대한 접점이 생길만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물론 절대 비굴해서는 안된다.
처음 독립하는 젊은 건축가들로서 '비록 프로젝트는 없지만 자존심과 실력은 있다' 라는 
자존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마저 없으면 무엇으로 우리자신을 다른사람에게 일명 '세일즈' 할수 있겠는가 
'혹시 일이 있으면 우리가 해주겠다' 라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허허허 -_ -;

어쨌든 그렇게 해서 찾던 중 프로젝트가 하나 들어왔다.
1층(혹은 2층)까지 상가를 두어 세를 놓고 그 위로는 가정집을 두는 건물이다.

그러던 중 지난번에 같이 일을 진행했던 NGO 단체의 분들에게서도 전시와 관련된 제안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또 그때 NGO 일을 함께 진행 하면서 알게된 다른 분에게서 또 다른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또 J 의 아는 분을 통해서 약간 종교적인 성향을 띤, 또 다른 제안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또, 사무실을 같이 쓸 분을 구하던 중, 인테리어 디자인과 시공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또, .....

어떤가. 아직 사무실을 준비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벌써 이 만큼이나(우리에겐 이만큼이나다) 가지고
시작을 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아직 가능성만을 가진, 시간이 좀더 걸릴거 같은 몇몇 프로젝트들이 더 있다. 
물론 이 것들이 모두 다 성사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저런 가능성들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성사될 가능성 또한 많아 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런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구슬꿰듯이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진정한 재미 아니겠는가.

여기서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다
위에서 나열한 프로젝트들 중에선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로 나타난 일들이 몇개 있다.
예를 들어,  처음 시작했던 NGO 단체의 프로젝트는 그저 하룻밤에 써서 보낸 이메일한통에서 시작되었고,
그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안에서 일하시는 몇몇 사람들을 알게되었고, 본래 의도했던 프로젝트가 엎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을 통해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들이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 또한 모두 성사될 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또 어떤,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지 모른다.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생각보다 모든것이 매우 진지한것에서 시작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앞서 얘기했듯이 적극적이기만 하다면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질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단계는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저 프로젝트들을 완성도 있게,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 완성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믿는다. 그 완성된 씨앗은 또 다른 재미있는 열매들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거라고.
작은 눈덩이를 조심조심굴려서 차츰차츰 큰 눈덩이로 만들어 가듯이,
이제 독립을 준비하는 젊은 건축가들에게는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하나 조심조심 굴려서 자꾸자꾸 키워가려는 자세가
생존을 위한 유일하면서, 중요한 자세인거 같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중요하고,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며, 긍정적인 마음이 있어야 하고, 끝으로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
그럼 프로젝트는 만들어 질거라고 믿는다

이 이야기들이 1년쯤 뒤에도 유효해서 우리의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120105 Y






 

3주전에 한국에 들어와 개인적인 일들과 함께 내년 2월초에
독립을 위한 좀더 구체적인 사항들을 준비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보이는 것은 역시나 사무실자리를 얻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독립하고 우리에게 프로젝트를 줄 가능성이 있는 "potential client" 를 만나
일의 진행 시기와 가능성을 점검하고 독려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첫번째로 사무실을 정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앞서 J가 글에서 쓴 것처럼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성북동 근처의 몇몇 후보들 중에서 2군데정도를 추려서 둘러보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성북동 깊숙히 자리잡은 작고 매우 저렴한 원룸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한성대입구 역에서 내려 사무소까지
가는길은 높은 담장의 고급주택들과 그 사이사이 자리잡은 갤러리들이 도착하기까지
사무소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줄 것이고 찾아오는 이의 마음속을 주눅들게 할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따라오던 대로변에서 접어들어 사무소에 닿기 위해 올라야 하는 급경사의 경사로는
찾아오는 이의 허리를 다시한번 굽히게 할 것이다.
건축주 혹은 협력자를 만나기 위한 사무소로는 매우 훌륭한 위치였다.
나 또한 매일매일을 사무소를 향해 허리를 굽혀 오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해질 수 있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일 것이다.
주변은 매우 조용하고 나무도 많고 주차할 곳도 많고 마음에 들었다.


사무실공간까지 올라가는 길 _ 스트리트 뷰
안타깝게도 내부 사진은 없다

다만 내 마음속에 걸리는 것은 내부가 너무 좁아서 둘을 위한 책상을 두고 나면
여유공간이 별로 안남는 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넓직한 테이블을 두고 만남도 갖고 얘기도 하고 프로젝트에 관해 토론도 하고
차도 마시고 싶은 욕구를 채울 수 없을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좁은 공간이 나의 사고와 마음을 제안하고, 초조하게 하고, 좁게 만들것 같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금전적 자산에 비추어봤을때 포기하기엔 아까운 옵션이었다.
따라서 옵션으로 우선 두고 출국까지 몇일이 남았으니 좀더 찾아보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무실을 찾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원하는 지역의 부동산중개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문의를 해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인터넷의 직거래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앞서 J도 얘기했듯이 여러가지 이유로 강남의 빌딩숲은 피하고 (물론 여러가지 이유중엔 임대료에 대한
현실적인 요인이 한가지이기도 하다) 좀더 사람사는 곳 같은, 약간은 느슨한 동네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본 곳이  성북동지역이었다
나는 시간과 물리적인 한계상 우선 인터넷 직거래사이트를 주로 이용하였다.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고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그만한 시간적여유와 나의 체력적 한계가 충분치 않은 이유였다.

우리에게는 사무실 임대의 조건중에서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우선 임대료는 보증금은 최대 1000만원까지, 매달내는 임대료는 가급적 50만원이하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혹시 여러가지 이유로 사무소등의 임대조건을 찾아보신 분들은 아시리라 생각되지만
이런 조건에 서울에 있어야 하며 생각보다 넓어서 책상도 놓고 넓직한 테이블도 놓고 모델을 만들 공간도 있어야하는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사무실자리를 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당연히 좀 깨끗했으면 좋겠다.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했는데 좁더라도 금전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을 찾을 것이냐
아니면 물리적인 측면에서 우리를 만족시키는 곳을 찾고 비용을 좀더 감수할 것이냐 였다.
고민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우선은 비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독립하고 나서 좀더 즐겁게,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는 사무실의 물리적 조건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고 두번째는 비용은 사무실을 같이 사용할 누군가를 한명 찾아 공간을 같이 써서 매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을 가지고 열심히 검색을 해봐도 원하는 눈높이에 맞는 사무실을 찾는것이 쉬운것은 아니었으나
가까스로 2군데 정도를 정하고 둘러보고자 연락을 했다.
한군데는 을지로 4가역 7번출구에서 약 5m 떨어져있는 말그대로 초역세권! 두둥!
다른곳은 신설동역에서 좀 걸어야하는 종로구 숭인동의 사무실.

먼저 을지로에 있는 사무실을 보았다.
알만한 사람은 아시겠지만 주변에 각종 자재상가, 출력소, 공예소등 영세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동네이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건물로 들어갔다. 2층에 들러 임대인을 찾고 함께 4층으로 올라갔다.
뜨악이다.
건물이 낡은것 또한 좋았지만 올라가는 길이....쉽게 표현하자면 누군가를 데려오기가 좀 민망할 것 같았다.
특히나 화장실은 내가 쓰기에도 민망하고 불편할 것 같았다.
4층에 도착해 사무실로 들어갔다.
우와이다.
무진장 넓었다. 왠만한 작업대까지 다 있었다. 건물이 매우 낡은 것이긴 했지만
내부는 수리를 좀 해서 깔끔한 편이었다 좀 추운것만 빼고.
음... 좋다 나쁘다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다.
나오면서 보니 또 한가지 안타까운점이 주차공간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내부가 넓은 것에 마음이 끌려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겨울에 난방비도 좀 많이 나올것 같긴 했지만.
조건은 1000만원에 월 55만원이었고 전기세는 따로 였다.
이쯤되면 함께 사무실을 나눠 쓸 누군가를 구해야 할것 같은데
4층까지 올라오다가 그냥 돌아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을지로 사무실 _ 인터넷 직거래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들이다



다음으로 숭인동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청계천을 면하진 않고 한블럭 뒤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은 쾌적한 편이었다.
여기서 쾌적한 편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차들도 지들 맘대로 주차되있고
걸어다니면 심심하진 않을 것 같은 그런 환경이라는 얘기다.
사무실은 빌딩 2층에 있었다.
우선 계단을 한번만 올라가면 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건물또한 깨끗한 편이었다. 특히 화장실이
거기다 앞서 얘기했듯이 건물이 확보하고 있는 주차장도 많이 있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주차할곳이 언제든지 있을 것 같은 여유로운 느낌이 좋았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을지로의 사무실만큼은 아니었지만(어립잡아 을지로는 약 18평정도는 되 보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만큼은 여유로워 보였다
특히나 맘에드는 것이 ㄷ 자 형태의 내부구조가 공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것 같았다
내부도 깨끗하고 특별히 손댈곳이 없어 보였다.
마음이 이곳으로 기울었다.
건물주인과 통화를 하고 내년 2월부터 계약을 하기로 했다.
이곳은 조건은 보증금 600만원에 임대료는 전기세를 뺀 55만원이다.


숭인동 사무실 _ 인터넷 직거래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들이다

이제 이 사무실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된다

개인적으로 맘에 들면 별로 망설이지 않고 바로 진행하는 편이다
살면서 몇번인가를 고민하다가 놓치고 후회한적이 있어서
그때의 아쉬운 느낌이 싫고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한다는 것이 귀찮아서 인듯 하다.
우리어머니가 "별놈없고 별년없다" 고 하시는 말처럼 너무 이것저것 잰다고 해서
특별히 별난 놈이 나오지 않으니 괜히 시간낭비, 에너지낭비 말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기타 인터넷 서핑을 위한 시간을 빼면
사무실을 결정하는데 약 3일, 2번의 외출 이 소요되었다.

111227 Y


독립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 중
그 동안의 글들에서 얘기한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들 이외에도
물리적인 것들이 필요한데 그 중 가장 중요한게
사무실 아닐까 싶은데
일단 고정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에 (일단, 각자의 인건비는 논외로...;;;)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 연인들과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만 할 것 같은 날
집에 하루종일 덩그라니 남겨진 탓에
점심만 먹고 집을 나섬. 화이트 크리스마스구나...

사무소를 구하는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복덕방을 돌아보기로 했는데

 1. 보증금, 임대료는 1000에 50이하로 - 이정도가 최대 한계치...
 2. 위치는 강북 - 강북에서도 동네에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강남을 안하는 이유는? 강남의 오피스 숲은 여력도 없거니와, 이미 수년간 질리게 봐온 덕에
 3. 굳이 사무실이 아니어도 주거용으로 나온 원룸도 같이 알아보기

이정도가 생각해 놓은 것인데, 
이것 말고도
 4. 교통접근성 - 협력업체 또는 클라이언트를 위한
 5. 건축사무소간 공동 사무실

하지만, 당장 클라이언트가 찾아올 일도 당장 흔치 않을 것 같고, 협력업체야 초반 킥오프 미팅하고 전화로 협업을 진행한다면
굳이 매달 몇십만원을 꼴아박으면서 목 좋은데 자리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그리고 건축사사무소간 공동 사무실은 아직 결정된 사항이 아니라, 일단은 개별적으로 생각중
2~3개 사무소가 공동 사용하고, 관리/운영비 분담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비용 문제 뿐아니라, 정보공유나 서로간의 자극제로서의 역할 등 하지만 역시 좀 더 무르익어야할 상황이므로... 패쓰.

일단 오늘은 대충 가격대랑 물건을 둘러보는 겸해서 큰 부담 없이 나섬

이런저런 생각으로 정한곳이 성북동.
지난 여름 길상사를 둘러보기 위해 다니던 성북동 길은
높은 담장과 으리으리한 주택들로 인한 위화감만 빼자면
동네 분위기나 주변 환경은 나무랄대가 없다고 생각함

다행히 성북동 한 구석, 길상사 가는 길목에
연립주택 1층 원룸이 비어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둘러보고.
Y가 오케이만 한다면 난 괜찮다고 생각함

가격도 생각보다 괜찮고 ^^  
동네분위기도 카페나, 갤러리, 오래되어 보이는 성당이 주변에 보이고,

밥집이나, 생활을 위한 가게들은 없어보였지만, 한성대에서 걸어 올라오는 길에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보고
어차피 밥도 자체해결할 생각이므로.

여기 말고도, 한성대 입구쪽 사무실, 약수역 인근 원룸을 둘러봤지만
여러면에서 부족.
가장 큰게 역시 월세.

조금씩 윤곽이 보이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모양새다

집에 돌아와 혹시 근처에 건축가가 살고 있나 지도 검색해보니
주대관교수님의 엑토건축이 우리보다 더 깊숙히 자리잡고 있음.
양평 집짓기할때 처음 뵈었었는데 성북동에 작업실이 있었군.


- 20121225 J,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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