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가 우리에게 처음 연락이 오는 방법은 크게 2가지. 크게라고 할 것도 없이 대부분  2가지다.

이메일과 회사전화.

건축주들의 성향에 따라서 이메일로 여러 이야기를 길~게 해주시는 분들도 있으시고, 전화로 간단하게 궁금한 것만 물어보시고 실제로 사무실로 방문을 원하거나, 현장방문을 요청하는 일정을 잡기도 한다. 


몇 번의 이메일을 주고 받거나, 사무실에서 미팅을 가진 뒤에 실제 계약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이때부터는 건축주와의 의사소통 도구들은 조금 다양해진다.

어느 방식이 제일 좋다. 최적화된 방법이다 라는 것이 없는 것이, 건축주들의 성향과 라이프스타일, 다룰 수 있는 도구들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대부분 건축주가 원하는 방식대로 진행이 된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이메일. 이메일을 통해 변경된 요구사항들, 디자인리뷰, 스케치, 이미지 등을 구분없이 주고 받는다. 중요한 사항들은 직접 만나서 설명드리고 피드백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수시로 필요한 사항들은 이메일이 아직도 최고의 도구라 생각이 든다. 이메일이 강력한 도구가 된 것은 스맛폰이 대중화되면서 어느때고 쉽게 확인하고 답장을 보낼 수 있게 된 덕이다.


그런데 얼마전 계약한 건축주와 이메일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이메일 말미에 네이버 비공개 카페를 개설할테니 우리들과 건축주 그리고 몇몇 관련된 사람들이 가입하여 이 곳에서 자료를 주고 받자는 내용이 있었다. 나름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고 어떻게 운영이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여러 우려들은 기우였다.  너무나 카페를 잘 활용해서 건축주의 요구사항들을 나열하고 이미지도 첨부하고 듀플렉스이기 때문에 두 건축주간의 서로 의견 조정 등도 여기서 이루어졌다. 아직은 요구사항들을 듣고 설계를 진행하는 단계이기에 실제 계획안이 만들어지고 서로 리뷰를 하는 단계가 오면 다시 어떤 식으로 이용될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건축주와 첫 만남부터 시시콜콜한 이야기며, 농담이며, 진지한 요구사항 등이 고스란히 남겨 있기에 완공을 하고 입주를 하면서까지의 내용들은 1년가까이 기록이 된다면 멋진 기록 저장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건축주는 여느 건축주와 비슷하게 이메일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필요할 경우에는 카톡을 이용해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설계를 진행해왔고, 이제 착공 후 골조가 올라가는 시점에 있다. 이 프로젝트는 오히려 역으로 SNS툴을 우리가 제안했다. 네이버 밴드 어플을 이용해서 건축주(여기도 듀플렉스)를 모두 가입시키고 현장 감리사진 및 현장 협의사항들을 바로바로 올리고 의견을 주고 받는다.

아직은 사용하는 초기단계이기에 어떻다고 단정하기 쉽지는 않지만, 현장감리 사진들을 공정별로 찍어서 선별하지도 않고 찍었던 사진들 모두 후루룩 올려버리고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주면, 건축주 입장에서는 굳이 현장을 가보지 않아도 이렇게 이렇게 올라가는 구나 하고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건축주와 실제 미팅에서 이제까지 현장이야기를 일일이 꺼내지 않고 필요한 이야기만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이런 방식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시공자, 건축주, 건축가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 프로젝트의 경우는 건축주가 입주를 한 뒤에 그 동안의 내용등을 정리해서 책을 준비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집짓기 블로그를 운영해서 별도로 기록을 하기도 한다.


소통도구가 발달되고 실시간 업무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실무자에게 피곤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고, 일일이 모든 내용들이 가감없이 보여져야 하는 부담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집지으면 10년을 늙는다라는 우습지 않은 우스개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집 짓기에 대한 정보가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부분들에서 나오는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건축가의 역할은 일반적인 설계 감리의 역할을 넘어서 여러 관계자들을 다독이고 북돋으면서 집짓는 과정을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중간자의 역할을 건축주가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기도 하고, 이러한 부분을 많이 기대하기도 한다. 이러한 건축주의 기대에 점점 발전하는 소통도구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다. 

5년뒤 10년뒤에는 어떤 도구들이 우리를 기다릴까...


건축가의 일은 점점 더 많아진다... :)



김해내려가는 기차안에서... 

J.

 

지난주에 광주, 화순을 거쳐 나주까지 일박이일의 일정으로 전라도를 다녀왔다.

오늘은 순천, 장흥, 보성을 갈 목적으로 다시 전라도로 내려가는 KTX에 앉아있다.

이유는 인터뷰를 따기 위해서이다.

말그대로 인터뷰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를 따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지난해 말 경남 김해의 클레이아크 미술관으로부터 전시 초청을 받았다.

주제는 "공공장소" 

참으로 난감한 주제였다.

"공공장소" 라... 

이 뻔하고 식상한 주제에 대해 지금 굳이 또다시 전시주제를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말고도 수많은 분들이 수없이 많은 (좋은, 혹은 교과서적인) 얘기들을 해오고 있는 것이 공공장소 인데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주제를 잡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는 곧바로 우리는 무슨 얘기를 해야할까 하는 걱정으로 돌아왔다.


"공공장소"... 

우리가 작업한 것 중에 "공공장소" 가 있었나 하고 살펴보니 

공공장소 라고 할 만한 것은 강진산내들지역아동센터 정도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공공장소" 를 "공공이 사용하는 장소" 라는 의미로 해석할때 그렇다


하지만 나에겐 다른 의미에서의 "공공장소" 가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것은 "공공장소" 라는 단어에서 숨은 행간에 '사용하는' 이 아닌 '만드는' 이라는 의미를 넣었을때

만들어지는 "공공이 만드는 장소" 라는 의미의 공공장소이다. 


이같은 의미에서 해석을 했을때 나는 Low Cost House series 들을 떠올렸다.

이 프로젝트들의 실제 사용자는 개인들이다. 현재 세개의 집에는 모두 가족들이 살고 있다.

사용자의 의미에서 봤을때 이 집들은 공공장소라 불리기 어렵다.

하지만 이 집을 만드는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집들은 특정 건축주가 있지만 특정 건축주가 만든것은(건축주의 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 집들을 만들기 위해서 NGO단체, 관공서, 지역의 시민단체 그외 많은 개인들의 작은 힘들이 모아져서 

예산을 모으고 그 돈으로 이 집들은 만들어졌다.

즉,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힘을 모아 이 집을 만들었고 그 결과는 사회의 약자라 할 수 있는 

저소득층 가족과 아이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다시말해 "공공" 이 힘을 모아 "장소"를 만든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하는 "공공장소" 이며

이것이 우리가 이번 전시에서 해야하는 주제 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프로세스에 주목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는 다른 의미도 있다.

우리주변에는 우리가 했던 Low Cost House series 와 유사한 수준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가진 가정이 정말 많다.

전남지역에서만 대충 추정컨데 약 삼만사천 가구정도가 그런걸로 추정한다.

정확한 데이터가 없이 추정만 하는 이유는 그 통계 혹은 조사조차 제대로 된 것이 없기때문이다.

우선 어느정도를 주거열악으로 볼 것인지조차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그 조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문제는 그러한 가정들은 지금 당장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복지시스템에서는 아직까지 주거에 관한 문제는 철저하게 개인에게 맡겨져있다.

즉, 주거는 개인이 알아서 능력껏 해결해야 될 일이지 국가나 혹은 사회가 나서서 도와줘야한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흥주택의 주인분들처럼 우리사회에서는 열심히 일을 해도 도저히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이미 수십년동안 굳어져버린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상당부분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저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주변의 이웃들은 어떻게 도와야할까.

나는 그들을 돕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면서 장기적인 방법이 바로 공공이 힘을 모아 도와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돈많은 누군가나 혹은 관공서나 어느 한 기업에서 도움을 주는 방식은 당장에 그 효율은 좋을지 모르나 

안정적이지 않고 장기성을 담보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공" 이라는 주체에 참여해서 이 공공이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도움을 줄때

이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공공" 안에는 기업이든 국가든 무엇이든 함께 들어올 수 있다. 

실제로 Low Cost House series 중에는 개인들의 비중이 큰 경우도 있고 특정단체의 비중이 더 큰 경우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우리가 "공공" 이라는 인식을 하는것이고 이 "공공" 이라는 이름으로

도움을 줄때 얼마나 유의미한 결과가 눈앞에 펼쳐지는지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공이 만드는 장소" 라는 주제로 Low Cost House series 를 전시하기로 하였다.

다만 그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 집들을 만들기 위해 후원을 해주시고 

기부를 해주시고 힘을 모아주신 "공공"에 해당하는 분들에 초점을 맞춰 그에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그분들의 얘기를 모아 보여주고 왜 그분들이 이런 일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이 어떤것인지를

보여주어 전시를 보시는 분들이 공공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공이 만드는 그 결과물에 대해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지난주에 첫번째로 내려가서 광주 화순 나주 지역에 계신 

여러분들의 인텨뷰를 일일이 찾아가서 따왔다.

인터뷰를 하러 가면 많은 분들의 반응은

 "내가 머 한게 있다고 인터뷰를 하냐, 난 쪼금 도와준거 뿐인데 부끄럽게 멀 그런걸 하려고 하냐"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부끄러워서 안하시려 하신다.

전시의 의도를 잘 설명 드리면 마지못해 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그래도 끝까지 거절하시는 분이 계신다.

안타까웠다.

세상에는 평생 10원한장 남을위해 도와주지 않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적은돈이나마 남을 위해 꾸준히 도와주고 계신데 왜 그걸 부끄러워하시냐고 말씀드린다. 

자랑스러워 하시라고 말씀드린다.


실제로 그렇다. 그분들은 더 많이 도와준 분들도 있는데 본인은 부끄럽다고 하신다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을때 그때 다시 오라고 하신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분이 더 많이 하시는것도 있지만 

그분으로 인해 더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해서 "공공" 이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전시가 

지금 이시기에 다시금 공공장소 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그 의미를 확대시키고 다르게 해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때 우리의 전시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설이 지나고 이제 2월이 시작되었다.

빡빡한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속에서 전시준비도 무사히 끝나서 3월에 시작하는 이 전시가 좋은 결과물로 결실맺기를 바란다.


새벽에 일어난건 아니었지만 최근에도 다시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일이 많고 고민해야 될게 많을때 그런데 지금이 그런시기인가 보다

머리로 인식하기전에 뇌가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몸이 먼저 그런시기를 알아채는가 보다.

암튼 그 덕에 글이 먼가 왔다리 갔다리 하고 앞뒤고 안맞는거 같은데 늘 그렇든 KTX 에서는 

언제나 정신이 몽롱해지기때문에

일단은 그냥 이렇게 마치기로 한다.



140203 순천행 KTX 에서 Y


2014년이다.

어느덧 2014년이고 어느덧 지난 글을 쓰고난 후 두 달 가까이가 지났다.

이제 이 게으름에 새롭지도 않아졌고 죄송하다 혹은 앞으로 자주 쓰려고 노력하겠다 는 말조차

식상해져 버렸다.


점점 글이 뜸해지면서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께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많이 받았다.

이제 쓸내용이 없어서 안쓰는 거냐, 혹은 이제 전보다 새로운 내용이 없어서 안쓰는 거냐,

물론 이제 배불러서 안쓰는 거냐는 질문도 받았다.


글을 눈여겨 봐주신 분들이기에 이런 질문도 가능했으리라 생각하고 우선 감사부터 드리고

다음으로 답변을 드리자면 위의 질문들은 모두 틀린 추측들이었다.


전보다 쓸 내용은 더더 많았었고 말그대로 스펙타클한 일들도 더 많았었고

아쉽게도 전혀 배가 부르지도 않았다.


다만 전과 달라진거라고는 정신없이 바빠졌다는 것뿐이다.

그런 이유로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사라졌고 한주 한주 밀리다 보니

그때의 얘기를 쓰기에는 현재도 너무 많은 일들이 있고, 

그러다보니 지난얘기들을 안쓰게 되고 그렇게 한두주가 더 지나면 현재였던 일들이 

다시 지나간 일이 되버리고 그러면 또 글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이런 악(?)순환들이 반복되다 보니 생존기의 글이 점점 뜸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더해

개인적으론 글을 시간순으로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가 되버린 일에 대해 

쓰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졌던 것도 한몫했고

주로 글을 쓰던 이른 아침시간에 이제 일을 해야 하는 상황도 한몫했다.


그러나 사실 돌이켜보면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점점 감춰야하는 일들이 생겨났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블로그를 통해, 생존기를 통해 좋은 모습만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은연 중에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

우리가 이 글을 시작했던 이유가, 그리고 많은 분들이 우리글을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좋든 나쁘든 그대로를 보여주고 이를 통해 읽는 분들에게 편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을 바랬던 것인데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한동안 그 시작의 의미조차도 잊고 있었던건 아닌가 싶다. 


참 긴 변명이었다.


어쨌든 어느덧 시간순의 글들이 의미가 없어진 지금 일단은 올해는 생각나는대로 쓰자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혹시 어떤 것이 글을 쓰기가 망설여 진다면 그건 우리가 부족한 것이거나 잘못하고 있는 것이니

여기에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우리 사무실은 속된말로 하루라도 사고가 안터지는 날이 없다.

공무원과의 협의에서, 법규체크에서, 현장에서, 건축주와의 의사소통에서, 

거의 매일매일 사고가 터진다.

만큼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몸으로 가서 부딪쳐서, 소리지르고 싸우면서, 여기저기 뒤져가며 찾아가면서 

해결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무소보다 마음고생을 몇배는 더 해가며 프로젝트가 진행이 된다.

그래서 '프로젝트 하나 끝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 이짓 해먹겠어' 라는 말이 수백번 입에서 튀어나온다.


대신 그만큼 프로젝트가 하나 끝날때마다 그 프로젝트의 구석구석 모든 부분에서 영양분을 빨아먹는 느낌이다.

나 뿐만 아니라 사무소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쩔 수 없이 매번 좌충우돌 하지만 우리는 분명이 발전하고 있고 성숙해지고 있다.


감사하게도 지난 하반기 이후 상을 받고 나서, 그리고 프로젝트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이 더 많아졌다.

그 말은 우리가 맞닥드려야 하는 일들도 더 다양해지고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우리와 함께 달려가고 있는 건축주분들께는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다. 

그 분들의 집들을 통해 우리는 실수도 해보고 해결하려 싸우기도 해보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우고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죄송한 마음때문에라도 자신하건데 우리는 모든 프로젝트에 온 마음을 다한다.

아직은 설계비가 많고 적음에, 공사규모가 크고 작음에 따라 차이를 둘 줄 모르기때문에

우리는 모든 프로젝트를 가슴으로 대하고 손해나는것을 계산하기보다는 

아직은 건축주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이 '건축가로 독립하기' 의 글들을 앞으로도 놓지 않고 계속 쓰고 싶은 이유다

건축주분들과 함께 집을 지으며 성장해 가는 우리의 모습을 계속해서 리포트 하는 것이 

우리에게 도전과 성장의 기회를 선뜻 내밀어주신 그 분들에 대한 도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은' 이 앞으로도 변치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 글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감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글 부터는 이제 '건축가로 독립하기' 를 2장에서 3장으로 넘기려 한다.

그 3장의 제목은 '성장하기' 이다.

다짐한 것 처럼 이 3장을 통해 더 솔직하고 더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많은 분들의 응원과 지적질을 기대한다. 



140128  광주에서 서울가는 KTX에서 Y  

   




2013년 젊은건축가상 책이 27일 인사동 KCDF 갤러리에서의 출판기념회를 통해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기념회와 함께 시작해 다음주 화요일까지 열리는 전시가 아마도 

2013년 젊은건축가상에 대한 마지막 공식행사 일듯 합니다.


돌이켜보면 이 상을 지원하려고 준비하던 지난 5월부터 오늘까지의 

지난 약 6개월여동안은 참으로 놀라운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에 지원을 하려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면서 

우리의 지난 1년여의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사무실을 시작했는지, 당시에 무엇을 고민했었는지, 

처음 프로젝트가 지어질때 얼마나 설레였는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무엇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는지,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질 수 있는 당시의 시간들을 돌이켜 떠올려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난 1년여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새삼스레 알게되었습니다.


그렇게 지원을 하고 한동안 잊고있다가 1차 서류심사를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곤 떨리는 마음으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해 학교다닐때부터 귀로만 듣던 심사위원분들, 

앞서 이 상을 수상하신 젊은 건축가분들, 그리고 그외 이름은 모르지만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여러 건축가분들 앞에서 

우리를 보여주고, 우리의 작업들을 설명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2차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후엔 후련한 마음과 함께 한 점 아쉬움도 남지 않았었습니다.

최선을 다 했고, 또한 단지 이런 기회를 갖을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현장에 나가있다가 수상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처음엔 얼떨떨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참으로 감사한 일이란걸 느껴갔습니다.

로컬디자인의 신혜원소장님, 오우재의 김주경 최교식 소장님들과 함께 수상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 후 덕분에 심심치않게 인터뷰도 하고 강연도 하면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이 상을 받은 덕에 얻었던 기회들이었습니다


그리곤 지난 10월에 아직 많진 않았지만 나름 의미있게 완성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지난 1년반의 작업들을 

대한민국 건축문화재에서 전시도 하였습니다. 


그 후 서울여대의 민병걸 교수님, 한겨레의 구본준 기자님, 비평의 글을 써주신 김인성 교수님, 최원준 교수님,

박정현 작가님등 이런 기회가 아니면 만나고 함께 작업하기 어려웠을 훌륭하신 분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멋진 책을 갖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작업을, 아니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을 누군가가 들여다 봐주고

그에대해 비평을 해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흔치 않은 일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비교적 객관적으로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인성 교수님이 써주신 글과 '인디건축' 이라는 단어로 표현해주신 우리의 정체성에

진심으로 동의와 감사함을 느낌니다.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하나의 객관적 이정표를 갖게 된 것 같아 동시에 큰 책임감과 부담감도 느낌니다.

달게 가져가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출판기념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축하해주시기 위해 와주신 많은 분들을 뵈었습니다.

그 많은 분들을 한분한분 보면서 

지금 이자리에 서있고, 그분들과 서로를 소개하고,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를 도모하는 것이

또한 얼마나 감사해야할 일인지를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로 기적같은 일들의 연속이었고 환상적인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다음주 화요일이면 공식적인 행사들은 모두 끝나지만

우리에겐 아직 과분할 수 있는 이 상을 주신 그 기대와 격려와 비판들을 잊지않고

작업 하나하나에 처음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하는 의무가 남아있습니다.


작업을 하나하나 해 나갈때마다 좋은 건축가가 되는 것은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몸으로 깨닫습니다.

절대로 한순간 갑자기 될 수 없는 것이 바로 '좋은 건축가' 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받은 젊은 건축가상에 '젊은' 이라는 말이 붙는 것 같습니다.

젊음을 바탕으로 고통스럽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겠습니다.


이 상을 축하해주신 분들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31129 Y

  





   

오늘은 부평 숲속집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 그 중에서도 시공자 찾기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부평 숲속집 프로젝트는 지난 5월인가? 에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에게(콕집어 얘기하자면 나에게) 커다란 한가지의 교훈을 남겨준 프로젝트이다.

그것은 '아는것이 힘이라면 잘못알고 있는 것은 독이다' 라는 것과 '주둥이 함부로 놀리면 큰일난다' 라는 것이다.


어느날 메일한통과 함께 두분의 자매를 만났다.

부평에 순대국집을 하고 싶으시단다. 이미 예산에 대한 계획도 어느정도 갖고 계셨다.

판넬로 지었을때 평당 250만원정도 한다고 사전조사를 하고 오셨었고 이렇게저렇게 지으면 될거 같다고 

생각을 하고 계셨다.


내가 두분께 처음으로 한 말은 "저희한테 멀 바라세요? " 였다.  


질문의 의미는 멀로 지을지, 얼마에 지을지에 대해 이미 조사를 어느정도 다 하고오셔서 

굳이 내가 해드릴 수 있는게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계비 라는 것을 내고 우리와 작업을 하는 경우 저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냐는

의미였다.


건축주분은 무조건 재미있는 것을 원하신다고 하셨다. 평범한 순대국집이 아닌 특이한 순대국집.

그러면서 판넬로 짓는 것과 같은 공사비에서 할 것.

이런것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셨다.


평당 250만원이라. 

당시 내가 아는 어떤분이 상가를 평당 200만원에 짓고 계시다고 말씀을 하셨었다.

오 200만원? 역시 상가라서 그렇게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있던 찰라였다.

근데 평당 250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이것이 찰라의 미친실수 였다. 

잘못 알고 있으니 그것이 독이 되는것이었다.  나중에…


어쨌든 그렇게 해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대지는 법규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전혀 그래보이지 않는 동네였는데 미관지구에 머에 걸려있는 것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거기다 재미있는 집, 순대국집 처럼 안보이는 순대국집 을 표방하신 건축주의 요구를 

충족시켜드리기 위해 예산과 법규와 건축주의 요구 사이에서 많은 줄다리기를 해야만 했다.

(언제나 그랬든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고해주시기 바람)


프로젝트 보기


하지만 '아는것이 독이 되고 주둥이 함부로 놀리면 큰일난다' 라는 교훈을 몸으로 느끼게 된건 

설계가 끝나고 나서였다. 


설계가 몇차례의 변경끝에 끝이나고 이제 시공사를 선정하려고

몇군데의 시공사에 견적문의를 하였다.


시공사들과의 첫 미팅때 공통적으로 나온말은 

"예산이 빠듯해 보이는데요.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네요. 견적을 뽑아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였다.


그리고 나서 날라온 견적은 5억, 4억7천, 4억2천….등등 이었다 ;;;

참고로 우리는 평당 250만원 예산에 규모가 80평이었다. 

전체 예산의 2배가 넘는 견적이었다.


한 유명시공사에서는 그래도 이 프로젝트를 꼭 해보고 싶다며 어떻게해서든 맞춰보려 노력해주셨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은 상가라도 평당 250은 말이 안된다.

지금은 판넬로 공장만 지어도 평당 300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사태는 모두 나의 잘못된 정보와 판단에서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처음에 할 수 있다라고 주둥이를 놀리고 시작한 프로젝트 였으니 이제와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시공사들에게는 퇴짜맞고… 정말 괴롭기 짝이없는 상황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진짜로 그랬다. 


이제 방법은 한가지였다.

실행가로 공사를 해야하고 예산에 맞춰서 줄일 수 있는것들은 모두 조정을 해서 가는 것.

그렇게 해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시공팀 사장님과 만나 수차례 조정을 하며 공사비를 맞춰가는 과정을 거쳤다.

사장님이 직접 작업을 하는 팀이다 보니 아무래도 실행가가 많이 줄어들기도 하고 공사의 공정들을 

조정하면서 또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마침내 지난 9월말에 착공을 할 수 있었다.

먼가 엄청난 숙제를 마친 느낌이었다. 


사실 어느것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공사들로부터 견적을 받으면서 느낀것은 우선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어느 견적서는 이건 머 거의 막던지는 구만 이라는 느낌이 들정도로 엉성한 것들도 있었다.

형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런 단순한 형태에(입면빼고) 자재도 아주 기본자재마감인데

이렇게 까지 비싸야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공사들에서 받은 견적은 평균적으로 평당공사비가 거의 500만원 수준이었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재의 공사비 수준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를 찾아오시는 많은분들, 

아니 앞으로 우리가 건축가로서 만나야 하는 우리주변의 많은 분들 중 대부분은 

넉넉한 돈을 갖고 계신분들이 아니다 

또한 최근 건축계에서 얘기하고 있는 건축의 대중화 그리고 좋은 건축에는 

최소한 주변의 평범한 분들을 위한 눈높이, 

그리고 그분들을 위한 건축 시스템과 생태계의 다양화가 포함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사의 목적과 예산의 범위에 맞게 다양한 성격의 시공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물론 겉으로 볼때는 아직까지 그런 생태계가 활발히 조성되어 있는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그러나 좀더 안으로 들어가보면 다양한 특성을 가진 시공자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중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따라서 우리같은 젊은건축가들에게는, 

그리고 우리같이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와 프로젝트를 만나고 싶고, 그것들을 업으로 삼고 싶은 사무소라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성격과 특성을 가진 시공자들을 많이 알아두고 옥석을 가려야하며

또 그들과 열린마음으로 테이블에 앉아 논의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131113 Y 






 



장흥주택이 끝나고, 즉 9월과 10월 두달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저 나뿐만 아니라 사무실 전체가 다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지냈다는 것 정도만 머리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렇게 한참이나 지나서야 글을 쓰게 되었다. 머 이런 변명이 한두번도 아니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지난 약 두달간을 머하느라 그렇게 정신없이 바빴나 하고 되짚어보니 

그래도 다행이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지난 봄의 끝자락에 시작한 부암동 프로젝트가 무더웠던 한여름을 지나 가을이 다되서야 

간신히 공사를 끝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중에 가장 힘든 프로젝트였고 처음으로 사무소를 

시작한걸 후회할 정도로 힘든 시간들이었다. 

다음으로 너무나 타이트한 공사비때문에 적당한 시공자를 찾을 수 없어 걱정이 많았던 부평의 숲속집이

다행히 시공자를 찾아 착공을 했고 그새 골조공사가 끝나가고 있다.

또 많은 수정과 인내와 고민이 요구되었던 목동의 오이삼 프로젝트가 양천구와의 몇번의 사투를 끝내고

(서로 물러설곳을 만들어놓지않고 싸웠다는 점에서 사투 가 적당한 말인듯하다) 또 한참의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시공사를 선정해 착공을 하였다. 

음 그리고 진안의 three one house (내가 오늘부터 이렇게 부름 ㅋ, 구 이랑교사사택) 프로젝트가 

시공사를 결정하고 착공에 들어가 벌써 골조가 끝나간다.

거기다 장흥주택이 끝나자 마자 압박이 들어온 세번째 Low Cost House 화순주택이 10월초에 공사를 시작해

지난 11월 1일에 완공식을 마쳤다. 엄청난 속도였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10월 22일에 2013 젊은 건축가상 시상식을 시작으로 대한민국건축문화제에 전시를 

하였고 건축가와의 대화도 무사히 마쳤다.

물론 그 사이사이 몇몇 대학과 단체에 특강을 하기도 했다.


휴… 정말 놀랍다. 

적고 나서 보니 이렇게나 많은 일이 지난 두달동안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이러니 거의 단 하루도 별일없이 평화롭게 지난간 날이 있었나 하고 느낄만 했다. 


참 하나하나 되짚어 볼라치면 정말 많은 할얘기들이 있는 사건들이었는데 

무엇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막막할 정도다. 

아쉽게도 각각의 이야기들이 적당한 때를 놓친것 같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하나하나 차근차근 정리를 해볼 생각이다.


지난 몇일동안 젊은건축가상 책에 들어갈 원고들을 썼다. 

아무래도 블로그에 쓰는 글보다는 훨씬 공식적이고 공손하고 정제해서 쓸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다시 막상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보니 아직 편하게 글을 날려쓸 수가 없다.

하루쯤 쉬고 다시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쓸 준비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글이 너무 딱딱해지는 느낌이랄까. 



131110 Y


  


지난 6월에 시작해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작업한 날짜는 약 25일밖에 되지 않지만 장마를 피하고 다른현장과 겹치다보니 시간이 미루고 미뤄져

9월2일 에서야 완공식을 하게되었다.


그 사이에 오매불망 집을 기다리시던 가족들, 특히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번 주택은 개인적으로 지난번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장마덕분에 다른현장들도 여름내내 일정이 미뤄지다 보니 이곳에서 작업하시던 분들이 내려오시는 날짜를 잡기가 어려웠다.

덕분에 장흥군이나 어린이재단과도 일정때문에 많은 이견과 타협과 이해가 필요했다. 


하지만 찌는 날씨와 어려운 스케줄속에서도 무사히 작업을 마쳐주신 작업팀과 

부암동에 이어 또다시 현장으로 뛰어들 수 밖에 없었던 우리 JYA 가족들. 

특히나 Low Cost House series 를 보고싶어 하던 채연이와 명화, 

아마도 현장에서 느낀 모습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을 것 같지만 

끝까지 웃으면서 함께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2박3일 일정으로 장흥에 함께 내려가 잡일부터 저녁준비까지 투덜거리면서 해줄건 다 해준

우리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사진작가 황효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덕분에 우리의 전라도 나들이가 더 재미있었지 싶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돌아나오면서 몇몇 아쉬움이 남았다.

건축주 아버님과 덜 싸울걸 하는 것, 마루위의 조명을 좀더 밝게 할걸 하는것 등등

보여지는 문제만이 아닌 사용자의 입장에서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느낀다.

Low Cost House series 를 하면서 배우는 많은 것들 중 하나다. 


끝으로 사람이 고프고, 관심이 고프고, 안심하고 살아갈 집이 고팠던 다섯아이들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아마도 다섯명이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지냈기때문에 이리도 밝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집이 이 밝고 명랑한 아이들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집이 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130928 완공식이 한참지나서 Y



장흥 서울 장흥 서울 ...

오늘까지 지난 4일간의 일정이다.

땅끝마을 강진 옆의 장흥까지 서울에서 하루걸러 하루씩 다녀오는 일정이 되었다.


최근의 많은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이 Low Cost House series 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원인이 멀까. 

이유는 직영공사를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각 공정이 넘어갈때마다 

현장에서 확인을 해야하는 것이 있을테고

또한 도면이 사전에 모두 완전하게 그려지질 않았으니 불안해서 일 것이고

마지막으론 현장이란 것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수시로 그 상황이 바뀌니

멀리 서울에서 손놓고 있기엔 현장의 긴박감을 놓쳐 자칫 이상한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물론 슬램덩크의 안선생님이 강백호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그 어떤 현장보다 짧은 공기를 가져서 하루하루 몰라보게 달려져 가는 현장을 보는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처음 시도해보는 컨테이너 하우스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번 장흥현장의 컨테이너 하우스는 말이 컨테이너지 모두 현장 조립이다.

이유는 현장의 진입여건이 좋지가 않아 5톤 이상의 크레인이 들어올 수 없어 

조립된 컨테이너를 가지고 와선 내려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나와 똑같은 질문을 할 분들을 위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크레인에서부터 컨테이너가 앉혀질 자리까지 거리가 좀 되면 크레인의 팔이 뻗어야 하는데

그런 경우엔 크레인의 팔 길이가 늘어날 수록 지탱할 수 있는 무게가 줄어들어

이 현장의 경우엔 5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팔을 뻗어 크레인을 지탱해서 앉힐려면.)

따라서 공장에서 조립해야 하는 것을 현장에서 조립하기로 했다.

머 현장조건이 좋지 않은 곳에선 종종 있는 일이라며 

사장님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해주셨지만  

어쨌든 사실 나에게도 또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덕분에 컨테이너하우스의 조립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조립과정은 생각보다 더 체계적이었고 흥미로웠으며 빨랐다. 

그래서 세명이서 약 17평쯤 되는 컨테이너 세동을 삼일만에 거의 완성을 하였다. 

거의 모든 자재와 조립과정이 규격화가 되어있어 공장에서 재단해온 자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니

빠르고 정확했다. 물론 작업자분들도 기대보다 더 꼼꼼하게 시공해 주셨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을 놓치기가 아까워 (혹은 불안해)

결국 장흥을 옆집가듯 매일 왔다갔다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가지 더 이유가 있다면 

지난주에 마을회관에서 만났던 이집의 부모님들 때문이다. 

마을회관에서 자려는데 밤늦게 복숭아를 들고 찾아오신 부모님은 

역시나 열심히 살아오신 얼굴을 하고 계셨다. 

지난 몇년간 혼자서 집을 새로 지어보려 여기저기 알아보고 노력하셨지만 

참으로 어려웠다던 아버님의 말씀은 특히나 가슴에 와 닿았다.

다쳐서 없어진 손가락이 눈에 먼저 들어올 정도로 녹녹치 않은 삶에서 

일곱가족이 살아갈 집을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마련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새집을 짓는 다는 것에 더더욱 감회가 새로우신 것 같았다. 

그런 두분을 뵙고 나니 이 집에 담겨진 의미와 무게감을 새삼 느낄 수가 있었다.


두 동사이의 마루에서 바라다보이는 하늘이 무척이나 멋졌다.

정말 좋은 집이 만들어 질거라 생각한다.





이제 다음주부터는 이 컨테이너 하우스를 품을 '바깥집' 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될 것이다. 

거기서부터 또 눈깜짝할 사이에 완성이다.

한순간도 방심할 새가 없다. 


130720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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