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어느새 겨울이 되어 간다.

그리고 어느새 생존기의 마지막 글을 쓴지도 1년이 되어간다. - _  -;;


그러다 보니 아직 때가 좀 이르긴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머 했는데 벌써 1년이 다 갔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생각을 하필 새벽 3시가 다 돼가는 시간에 하다가 생각난 김에

생각난 거라도 글로 좀 남겨볼까 하고 쓰기 시작한다.


사무실을 시작하고 첫 건축 프로젝트였던 강진의 지역아동센터와 벌교의 뽁뽁이집은

원치 않았던 직영공사 였다. 

당시 왜 그 프로젝트들이 직영공사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는지는 지난(지나도 한참 지난....) 글에서 

설명을 하기도 했고, 대략 상황만으로도 추측 가능하시리라 본다.

어쨌든 그 이후로도 몇 개의  Low Cost House 프로젝트들을 직영공사처럼 진행을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반 직영"정도였다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늘 현장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했던 "반 직영공사" 가 부암동 House 였다.

여기서 "반 직영"이란 시공을 시공사가 아닌 시공팀 정도와 함께 하면서 돈관리를 우리가 하고, 

현장 관리는 그 시공팀의 반장님께 약간의 자율이 주어지는 그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했다는 의미이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우여곡절끝에 정말

사무실이 금전적으로 파산일보 직전까지 가는 참사와

현장에서 매일 페인트칠을 하고 땅을 파야하는 보람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었다.

사무실 화장실에서 매일 샤워를 하는 눈물나는 날들이 있었다.

그 후 다시는 직영공사를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사실 직영공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매력적이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하나하나 만들어져가는 것을 보며 흥분하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그런 경제적, 육체적 고됨은 그 기쁨에 비하면 못할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고됨보다 더 괴로운 것은 바로 공사가 끝나고 나서다.

공사란 모름지기 끝나고 나서 몇번은 잔손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그런것처럼

끝나고 나서도 자잘한 (때로는 큰!) 하자들이 발생한다. 

공사를 한다는 것은 끝나고 나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공사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도 있고, 그 만큼의 이윤도 견적에 있을테고,

무엇보다 하자보수도 업무의 하나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공사에서 돈이 남지 않아서 였기도 하고, 그럴만한 인력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프로젝트가 끝났는데도 끝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한정된 인력으로 새로운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자보는 데에 에너지를 쏟으니

사무소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직영공사란(특히 건축공사는!) 좀더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후 사무소의 대부분 프로젝트들은 시공사를 통해 진행이 되었고,

우리는 그저 직영공사 하듯이 감리를 나갔다. 


시공사들과 작업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중에선 정말 장인과도 같은 시공사도 있었고, 

작은 시공사였는데 같이 일하면서 같이 성장해가는 듯한 시공사도 있었고,

눈에 보이는 마감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적인 기능에 더 집착하는 시공사도 있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갖고 있지만, 

시공사들은 어쨌든 전문가이다.

시공에 관한한 사무소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로 생각한 우리보다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물리적이다.

따라서 시공사를 단순히 건축가의 지시를 이행하다는 집단이 아니라,

또 다른 파트너이자 전문가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노하우를 공유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여러 시공사로부터 서로 다른 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늘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들이 있었다.  


정말 이 작업에 이 정도 금액이 들어갈까?

공사 순서대로 차근차근 하면 될텐데 왜 순서를 뒤죽박죽해서 일을 복잡하게 할까?

왜 다음 공정에서의 작업내용을 미리 고려해서 작업해 놓지 않아서, 뒤에 가서 데나우시를 낼까?

(데나우시? 대나우시? 현장에서 작업한걸 뜯어낼때 쓰는 용어인데 막상 글로 쓰려니 어색하고 이상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보다 더 와닿는 표현이 없는 듯 하다. 먼가 어감도 그렇고 ㅋ)

마감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해야 되는데 왜 그렇지 못할까?

왜 이렇게 현장은 지저분 한가?

왜 건축주와의 의사소통이 투명하고 원활하지 못할까?


등등 의 궁금증과 아쉬움들이 마음속에 있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다 잊는 거 같다.

우리가 직접하면 저런 부분들은 더 잘 할 수 있을거 같은데 하는 

건방진 생각들이 자꾸 불쑥불쑥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에도 또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영공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것이 바로 지난 가을이었다.

상황은 타의적이었지만 시작은 자의로 했다.

그 후 연이어 세개의 프로젝트를 직영으로 공사를 했고, 지금도 하나를 준비 중에 있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이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보고자 한다.

왜 시작했는지, 사무소 처음에 했던 직영공사와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해보고 나서 느끼는 장,단점은 무엇인지 등등

어쩌면 현재 직영공사를 하고 있는 많은 사무소분들,

혹은 건축주분들께 부분부분 공감이 가거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얘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단순히 우리의 감상에서 끝날 수도 있지만 ㅎ


정말로 오랜만에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쓰다보니 좀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그리고 일단 어깨도 아프다. 

머든 조금씩이라도 자주자주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다는 것을 새삼 나이들며 느껴가고 있다 ㅎ


그럼 이 다음 글을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쓸수 있기를 희망하며.... 

오늘은 끝!


171115 Y



 






 





" 우리들이 새로 건축을 하기로 결정하고나서 가장 염려하는 것은 

  새로 만들어진 학교가 너무 편해질까봐, 그래서 아이들이 너무 편한것에 익숙해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건축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국 상당부분 편한 공간을 추구하게 된다.

편한 공간이란 곧 잘 계획되어진 공간이고, 효율적인 공간이고, 안전한 공간이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란 

의미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말은 틀린말은 아니지만 왠지 어딘가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 건축 뿐만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영역에서도 이 편리함 이란 것을 쫓아 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술발전이 있었고 우리의 인식은 변했으며 그 결과 우리 생활은 크게 변했다.

건축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편리한 공간이란 곧 효율적이 공간이고, 

그로인해 사람의 동선은 매우 효율적이어야 하고

이는 곧 사람의 움직임을 최소화 하기 위한 공간배치와 동선의 계획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기계적인 측면에서도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뜬한 쾌적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집은 점점 외부와 차단되어 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패시브하우스처럼 창을 열지 않고도, 심지어 사람이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움직이면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행위에 대한 가치,

외부 자연과 더 많이 접촉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풍성함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몸이 편해지는 만큼 정신도 그만큼 건강해지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광명볍씨학교의 철학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15년동안 하나하나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손으로 만들어온 이 학교는 어설프지만 사랑스러웠고 사랑받는 학교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새로운 학교 건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학교를 새로 짓기로 결정하고, 학교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처음 들려준 말씀이 바로 아이들이 편한것에 익숙해 질까 하는 염려였다.


내가 이해한 볍씨학교의 철학은 "불편한 학교" 이다.


기존의 학교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웠다. 

대신 그래서 겨울에는 따뜻한 방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학교주변의 산에서,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앉아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식힐 줄 아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수돗가의 작은 물줄기의 시원함과 소중함을 배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울때는 더위를, 추울때는 추위를 참아낼 줄 아는 인내심을 배운다.


기존의 학교는 교실과 화장실, 수돗가, 식당 등이 모두 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교실에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와야 하고,

수돗가에 가기 위해서도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하루에도 여러번 아이들은 교실에서 나와 바깥공간의 흙을 밟아야 한다.

이는 한번 학교에 들어가면 체육시간과 집에 갈때를 빼고는 밖에 나올일이 없고, 

심지어 교실이 있는 층 말고는 다른 층에 갈 일도 별로 없는 대부분의 다른 학교에 비하면 불편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볍씨학교의 아이들은 덕분에 

햇살이 좋은 날엔 햇살의 따뜻함도 피부로 느낄 수 있고

비가 올때는 비가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비를 맞으면서 몸이 젖는 느낌, 비가 나무와 땅에 부딪쳐 만들어 내는 물방울의 움직임을 모두 느낄 수 있다.

바람이 불때는 바람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바람이 몸에 와 닿는 느낌도 수시로 느낄 수가 있다.

또 눈이 올때는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쌓인 눈을 밟아야만 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설령 원하지 않더라도 생활을 위해서는 자주 외부로 나갈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자연의 변화를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아이들은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고, 그 안에서 정서적으로 매우 풍부해 질 수 있다. 

이 것이 자연과 가까이 살아갈때 얻을 수 있는 이로움이다.


기존의 학교는 최소한의 학교였다.

학교 건물은 최소한의 크기에 최소한의 역할 만 한다.

담장도, 경계도 없고, 지붕이 있는 것이 교실(혹은 부속시설)일 뿐이다. 

하지만 덕분에 이 곳의 아이들은 학교라는 울타리에 제약받지 않는다.

대신 이 아이들에게는 주변 일대 산자락이 모두 학교이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학교주변의 나무와 나무사이, 언덕, 풀숲 등에 비밀 아지트(호그와트라 불리는)를 만들고, 

놀이터를 만들고, 야외 교실을 만든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공간을 정의하고,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기능을 넣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스스로 학교라는, 자신들의 영역을 확대해가고 만들어 간다.

다른 대부분의 학교들이 담장으로 둘러쌓여 있는 영역이 있고, 교문이 있고, 그 안에서 다시 학교건물이 있어서 

그 건물에 들어가면 또다시 하나의 영역에 갇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볍씨학교는 어쩌면 최소한의 건물만 있는 작은 학교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가장 큰 학교이기도 한 것이다.

이 모든건 아이들을 포함한 학교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학교를 채워나가고 완성해 가기 때문이다.


기존의 학교는 오랜 시간동안 학교구성원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져 온 진행형의 학교이다.

그래서 비록 기존의 건물들이 어설프고 초라해보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 녹아져 있는 시간과 기억은 감히 

적다고 할 수 없다. 

그 시간과 기억속에는 그 동안 이 학교를 구성해온 구성원 모두의 추억이 담겨져 있어서 

그 모두가 그렇게 이 학교를 사랑하나보다.

이렇게 구석구석 어느 한 귀퉁이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는 이 공간이 바로 볍씨학교의 철학을 말해준다.


우리는 이러한 시간의 흐름에서 지금 이 순간은 역시나 그저 지나가는 하나의 통과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계획하는 이 학교건물이 이 학교의 완성이거나 과거부터 이어져온 시간들의 종착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과거 15년 동안 학교의 시간과 철학을 이 시점에서 한번 정리하는 것 뿐이고, 우리가 계획한 학교가 만들어지면

그곳에는 다시 볍씨학교 구성원들의 시간과 노력들이 채워져, 지금까지 이어온 학교의 정체성을  채워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계획은 그저 우리가 이해한 학교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 최소한의 물리적 그릇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자유와 구성원들의 손때와 자연이 담겨질 그릇이.


우리가 계획한 학교도 역시 "불편" 하고자 했다.

어쩌면 기존의 학교보다 더 "불편" 해 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여전히 비바람이 불고 눈이 올때도 

화장실과 식당 혹은 수돗가와 심지어 다른 교실에 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신고 밖을 나가야 한다. 

아니 오히려 어떤 아이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3층에서 신발을 신고

외부 계단을 내려와 다른 교실 앞을 지나 땅을 밝고 걸어서 화장실에 가야한다. 

이제 아이들은 2차원의 공간이 아닌 3차원의 공간을 수시로 움직여야 한다.

가는 길에서 자연의 변화도 느껴야 하지만, 다른 교실의, 다른 공간의 아이들을 또한 만나야 한다.

이렇듯 많은 아이들은 3차원의 공간에서, 실내와 실외가 섞인 공간에서 수많은 움직임을 통해 다양한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다.

각각의 교실은 기존의 학교보다 더 넓고 쉽게 자연과 통할 수 있고, 아이들은 더 쉽게 실내와 실외를 넘나들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이 학교는 진정한 생명력을 얻을 것이다


광명볍씨학교는 진행과정에서도 행정적으로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공사중인 지금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어쩌면 이 또한 학교를 짓기 위한 "불편함" 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학교를 진행하면서 학교의 구성원들을 보며 "불편함" 이라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이 분들은 그 "불편함"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를 알고 계시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겪고 있는 과정에서의 "불편함" 안에서 우리가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멋대로 명명한 "불편함" 이란 단어를 혹시나 불편해 하실 수 있는 학교 관계자 분들께는 사과를 드립니다.

  

161207 어서 철골제작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Y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그 결과를 잘 기록해야 한다.

솔직한 말로 우리가 언제까지 사무소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하는 동안이라도 우리가 작업한 결과물을 잘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물론 단순히 기록의 의미도 있겠지만 우리같이 사무소를 시작한 입장에서는 단순한 기록의 의미를 넘어 이를 통해 프로젝트를 알리고, 우리를 알려야 하는 중요한 홍보수단이기도 하다. 그것 외에는 우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사진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은 첫 번째 완공프로젝트인(비록 인테리어이긴 하지만) 신촌의 치마저고리 한복집 공사가 끝나고 나서였다. 공사가 끝나고 나서 이를 어떻게 기록으로 남길지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그럼 사진은 어떻게 찍을까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졌다.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무엇이든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맞기는 것이 가장 좋다 라는 것이다.

아프면 의사에게 가고, 집을 지을 땐 건축가에게 가야 하듯이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작가에게 맞기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우리도 누군가가 건축가에게 맞기지 않고 집을 지으려 할때 집은 건축가에게 맞겨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그런 기본생각이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우리 둘 다 아무도 사진을 '' 찍을 줄 모른다는 것에 있다. 혹시 둘 중에 한명이라도 개인적인 취미로든, 혹은 어떤 식으로든 사진을 찍어 왔거나 관심이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런 행운은 없었다. 그래서 직접 찍고 싶어도 그럴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결국 사진은 작가에게 맞기기로 결정을 하였다.

 

이렇게 사진을 사진작가에게 맞겨서 찍기로 결정을 하면 그 다음으로 고민해야 되는 것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누구에게 찍을 것이냐 이고, 다른 하나는 비용이 생각보다 비싼데 이 비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이다.

이 당시 우리도 건축사진작가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우선 작가를 소개받기로 하였다. 그래서 J의 전

회사선배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인 작가 분을 소개받았다. 이분이 바로 사무실 시작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거의 모든 프로젝트 사진을 찍어주고 계신 황효철 작가이다. (물론 이 당시 치마저고리 한복집은 비용이 안 맞아서 다른 분에게 찍었다.)

이후 강진 지역아동센터에서부터 황작가님에게 의뢰해 꾸준히 사진을 찍고 있다.

이 황작가라는 분도 참 특이한 분이시긴 한데 우선 사진을 본인 마음대로 찍는다. 이렇게 표현하면 좀 이상하긴 한데 부정적 의미는 아니고 말 그대로 본인이 건물을 사전에 도면과 이미지를 보고 이해를 한 다음 그 건물에서 어떤 부분을 어떤 스토리로 찍을 것인지를 결정을 한다는 의미이다.

건축가 혹은 건축주가 여기저기 찍고 싶다고 부탁해도 그대로 찍어주지 않는다. 거기다 소위 얘기하는 포토샾을 통한 후속작업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다 보니 어떤 경우에는 의뢰인의 입장에서 감추고 싶은 것도 그대로 표현되어 아쉬움이 남을 때도 있다. 작업의 방향을 의뢰인의 요구사항에 두고 찍거나, 사진찍는 시간보다 포토샾을 하는 시간이 더 긴 작가들도 있는 현실에서 특이하고 어찌 보면 불편한 작가일 수 도 있다.

거기다 사진비용에 대해서는 타협을 하지 않으려 하시니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의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분은 이런 자세를 통해 본인이 의뢰인이나 사진찍을 대상물을 결정한다고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어쨌든 이러한 마이너함과 특이함(?) 덕분에 오히려 우리는 계속해서 황작가님과 작업을 해 오게 되었다.

작업성향이 저러하니 반대로 얘기하면 어떻게 사진을 찍을지를 매우 주체적으로 알아서 고민하시고, 그래서 때로는 설계를 한 우리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을 담아낸다. 그래서 사진 찍는 동안 따라다니면서 어디를 어떻게 담는지도 보고 얘기도 하면 그것으로 공간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거기다 이제는 오랜 시간 동안 교류해 오면서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도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분명 우리의 건축을 이해하고 그 결과를 사진에 담는 과정에 있어서도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작업 방향과 궤적에 대해서 나름 객관적으로 지켜봐 온 (어쩌면 유일한) 사람이 있는 것이고, 그런 제 3자의 존재와 그에게서 나오는 조언과 충고들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사진 찍는 비용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이다.

사진 찍는 비용이야 사진작가마다 다르고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황작가 같은 경우에도 사진비용이 비싼 편이다(우리가 다른 작가 분들께 의뢰해 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풍문으로 들은 시세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보통은 주택설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설계비의 10%에서 많게는 20% 정도가 될 때도 있다. 다른 모든 외주비용(구조, 전기, 통신, 기계 등)을 합한 비용만큼 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로서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어떤 건축가분들은 사진을 직접 찍기도 하고, 좀 더 저렴하게 작업하시는 분들을 찾기도 하신다.

우리도 저런 고민들을 안 해본 것은 아니고 현재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는 사진을 단순히 기록으로 보지 않고,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실상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건 이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관점으로 이 사진비용을 바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어쩌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투자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저 작가의 사진이 갖고 싶냐 아니냐 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작업을 저 작가의 시선과 생각으로 담은 사진을 갖고 싶은 것. 이것이 이 비용에 대한 가장 중요한 관점이지 않을까 싶다.


2016.08.20 Y


그 동안 본의 아니게 독립건축가 생존기를 업데이트 하지 못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출판사에서 생존기를 모아서 책을 내보자고 하셔서 그 동안 많지 않은 글이지만

써서 따로 모아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게으른 나머지 글을 꾸준히 쓰지 못해서 출판이 연기되었고,

감사하게도 출판사 대표님의 이해를 구해 그 동안 써온 글들과 앞으로 쓸 글들을 다시 블로그에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독립건축가 생존기는 기본적으로 그때그때의 심정(?)과 생각들을 올리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데

몇몇 글들은 아쉽게도 전에 써둔 글을 올려야 할 듯 합니다.


언제나 하는 변명이지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글을 쓸 마음의 여유도 잘 나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분히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갖지 못했던거 같기도 하고 어쩐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히나 가끔 건축주분들께서 '이젠 더 이상 블로그엔 글을 안쓰시나 봐요? 그럴 필요가 없어지신건가?'

하고 질책같은 물음을 하실때면 더더군다나 마음이 캥겨왔습니다.

딱히 그런 목적을 갔고 쓰기 시작했던 것은 아닌데 마치 일이 많아지니 더 이상 필요없어진거 같이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랬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몇몇 글은 과거에 써논 글들을 올리겠지만

앞으로는 가급적 그때 그때의 생각과 푸념과 심정들을 라이브하게 옮기려고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



사무소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씩 예전의 프로젝트를 들춰봐야 할 때가 있다.

건축잡지에서 자료를 요청하거나 혹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과거에 했던 프로젝트와 유사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할 때 그렇다.

그래서 과거에 했던 프로젝트의 도면이나 사진 등을 찾다 보면 헛웃음이 난다.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때는 어떻게 이런 도면만 가지고 공사를 할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그 용기가 가상하기도 하고, 등골이 오싹하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경험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사무소를 시작하면 모든 게 다 부족하다.

경험치가 부족하고, 인맥도 부족하고, 자료도 부족하다.

적어도 우리는 그랬다. 한 명은 대형설계사무소에서만 5년을 있었고 한 명은 외국사무소에서만 2년이 채 안되는 기간동안 실무를 했다. 그마저도 한 명은 턴키와 보고서 작업을 주로 하고, 한명은 주로 현상과 초기디자인 작업만 했으니 현장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런 둘이서 사무실을 시작했으니 사무실에 데이터(Data)라고 할게 없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이 건축의 구축과 상세에 대한 교육과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

나두 그랬고 지금 졸업하고 있는 친구들도 그렇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건축이 구축되어지는 과정과 그에 따른 디테일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다.

설령 배웠다고 하더라도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따라해보고 암기해서 시험을 보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디테일에 있어서만 그런 건 아니다. 심지어 구조에 대해 기본적인 원리도 이해하지 못하고 졸업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내가 경험해 본 경우에서는 그랬다).


내가 델프트에서 석사를 시작하고 첫 학기때 가장 난감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스튜디오 설계 제출물 중에 내가 설계한 건물의 상세도를 그려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그 전에 그런 건 그려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내 기억엔) 내가 할 수 있는 건 비슷한 구축방식의 건물 상세를 베껴보고 물어봐서 흉내내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걸 그리면서도 왜 이렇게 구축되는지, 각각의 요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반면 같이 공부하던 유럽의 친구들은 비록 그려온 그림이 내가 흉내내서 그려간 것보다 허술해 보이긴 했지만 본인들이 그려온 것이 정확히 어떤 이유로, 무엇을 그린 건지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친구들은 설계가 바뀌고, 구축방식이 바뀌면 그에 맞춰서 상세도를 수정하고, 추가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지극히 나 개인이 부족해서 그런 경험이 더 크게 와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충격적이었다.

 

그러고 나서 암스테르담에서 일을 할 때도, 그리고 한국에 와서 사무실을 시작했을 때도 많은 상세도 자료들을 보았다.

하지만 직접 시공되는 현장을 본적이 없으니 봐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나는 내가 보고 이해할 수 없는 상세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해를 못하는데 현장에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현장은 언제나 살아있는 생물(?)같아서 끊임없이 변수가 생겨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에 대해 현장에서 알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에 대처하란 참으로 난간하기 일쑤다.

 

그렇다 보니 우리의 설계는 모두 현장에서 공사가 끝날 때 같이 끝났다. 설계를 시작해서 공사가 진행되고 그 공사가 진행될 때도 설계가 같이 진행되다가 공사가 끝나야 비로서 설계도 같이 끝났다는 의미이다. , 현장이 열리면 그곳에서 모든 걸 봐야했고, 현장 작업자들과 매일매일 협의를 해야했고, 도면을 그리면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했던 것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그러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은 자료를 찾아보고, 저녁에 밥을 사주면서 작업자에게 한 수 배웠다.

현장에서 보고 있으면 내가 그려준 상세도가 얼마나 말이 안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진에서 세 달을 보냈고, 벌교에서 한 달을 살았고, 부암동을 매일 출근했다. 그 이후에도 거의 모든 현장을 매일 가다시피 들락거렸다. 수많은 밤을 지방의 모텔에서 보냈다.


다행히 우리가 그 동안 해 왔던 프로젝트들은 공사금액과 프로그램이 다양한 편이었다.

이는 건물의 크기와 재료와 구축방식과 마감의 정도가 다양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에게 다양한 건축적 환경을 경험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쌓아온 경험들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의 범주에 있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사무실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이 경험치들을 데이터로 만들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업무의 효율성이 늘어날 것이고, 그것이 결국 사무실의 경험치가 되고 역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데이터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여기서의 데이터는 철저하게 경험에 의한 것이었고,

그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온전히 우리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온전히 내 것이라 이해한 내용은

응용을 가능하게 하고,

변형을 가능하게 하고,

다른 것들과의 접목이 가능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나온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프로젝트들을, 때로는 힘들게 했던 프로젝트들도 많았지만, 다양하게 진행해온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 물론 아직도 다른 분들의 작업들을 보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안에서 처음 해보는 재료와 구축방식과 시공방식을 경험해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큰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쌓이고 쌓여 개개인의 경험이 되고, 그것이 모여 사무실의 역량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것이 좋은 디자인과 상호 호환 될때 사무소가 진정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60404 에 쓴 글  Y



개인적으로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좋아한다.

사실상 우리가 했던 첫번째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Low Cost House series 중 첫번째 였던 벌교주택이었다. 처음 불에 탄 이 집을 마주했을때는 정말 이게 어떻게든 고쳐지긴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그동안 이런집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혹시나 앞으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진다면 그건 더 놀라운 일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하나하나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고, 또 채 한달이 안되는 시간동안 완성되어진 집을 보았다.

처음으로 건축이 마치 마술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보았던 그 집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은 매직!!

 

그 후 리모델링 프로젝트로는 부암동주택을 하였고 이어서 화순주택을 마무리 하였다.

오래된 집을 때로는 벗겨내고 때로는 새로운 것을 더해서 그 시간의 무게를 보여주고 그 오랜세월에 지금 시간에 맞는 새로운 건축적 요소를 더해서 공존시키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거기다 오래된 집은 지금의 손으로는 감히 만들어 내기 어려운 흥미로운 광경과 경험을 우리에게 준다. 하지만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그 변해가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하나하나 지켜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다른 신축 프로젝트보다 더 손이 많이 가고 어렵다.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대부분 집이 너무 오래되 도면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설계에 들어가면 먼저 실측부터 해서 도면화 작업을 해야하고 이를 바탕으로 3D 작업을 해서 건물을 이해해야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도면이나 3D 도 실제와 정확히 일치하지가 않는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설계를 하고 도면작업을 해도 막상 철거를 하고 공사를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현장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들에 대해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때로는 건축주와 긴밀하게 협의를 할 수 있는 신속함이다.

이러한 과정이 적어도 마감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는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공사가 시작되면 설계 2단계가 시작된다고 얘기한다. 그만큼 현장에 자주 가야되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현장에 신경을 많이 쓸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어려운 것은 공사비를 예측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리모델링은 비유하자면 수제품에 가깝다. 물론 건축이라는 것이 결국엔 다 사람이 하는 것이긴 하지만 리모델링의 경우는 그것이 더 극단적이다.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철거부터해서 마감까지 대부분이 사람의 인력으로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철거부터 보강을 하고 새로운 골조작업을 하는 것까지가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이 부분에서 얼마나 시간이 걸리고 인력이 얼마나 필요할 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속된말로 뜯어 봐야 알고 털어봐야 안다. 이 과정에서 자잘자잘하게 손이 가는 일이 많다. 말 그대로 자잘자잘한 것들이 많아서 건축주입장에서는 매일 건물이 확확 바뀌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먼가 일을 한다. 그러니 속으로 타들어가는 맘으로 인건비를 걱정하신다. 이해는 하지만 설명드리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기다. 물론 마감에 들어가더라도 신축처럼 계산대로 마감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이러한 어쩔수 없는 삐딱함이 리모델링의 매력일 수도 있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사기간도 또한 예측이 쉽지않다.

그 이유는 공사비를 가늠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다.

여러모로 건축주분께 유리하지 않은 것이 리모델링 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리모델링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첫번째는 기존에 있던 건물의 일부에 건축주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애정과 집착을 갖는 경우이다. 이는 건축주의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건축주과 어떻게든 기존의 건물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면 이는 여러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건축가로서 당연히 이를 위한 고민을 해야한다.

부암동주택이 바로 이러한 경우였다.

 

두번째 경우는 신축을 하는 경우 법적으로 불리한 점이 너무 많은 경우이다.

언제인지 모를 그 언제인가에는 알수 없는 법적용에 의해 지금의 건물이 되었지만

지금와서 신축을 하려면 늘어나기는 고사하고 집이 반토막나거나 혹은 땅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경우이다.

 

물론 위의 두 가지 경우 모두의 이유로 리모델링을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지난 가을에 만나 올 봄에 끝난 대구의 황금동주택 리모델링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 집은 대구의 황금동, 그 중에서 어린이회관 주변의 공원을 바라보고있는 주택단지의 첫번째 집이다. 지어진지 30년이 넘는 오래된 주택으로 똑같은 형태의 주택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 똑같은 형태의 집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주인이 바뀌기도하고 오랜된 집을 고치기도 하면서 덧붙여지고 고쳐지면서 하나 둘씩 변해왔지만 전체적인 외형은 유지되고 있었다.

따라서 빠르게 변해가는 주변과 다르게 줄지어 늘어선 이 집들은 통일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건축주는 주택에 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발품을 팔아 집을 찾다가 이 주택단지의 첫번째 집, 바로 공원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집을 구입하였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분이 쭉 살아 오셨던 이 집은 아쉽게도 너무나 낡아 있었다. 지난 시간동안 관리가 잘 되지 않아 과연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혹시 귀신나오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집을 부수고 새로 짓자니 도로에 면한 땅을 꽤나 많이 도로로 내줘야 하는 심각한문제가 있었다. 거기다 건축주는 오랜시간동안 유지되어온 같은 형태의 주택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그 통일감을 가급적 유지하고 싶어 하셨다. 이런 이유들로 건축주분들은 결국 리모델링을 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만났다.

 

 

 

 

앞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리모델링 의뢰가 들어오면 참으로 난감하다. 재밌을거 같긴 한데 예측하기 어려운 돈과 시간, 그리고 이를 감당할 시공자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 선뜻 받아들이기가 곤란하다. 이 경우에도 그랬다. 그래서 건축주분께 우선 시공사를 먼저 찾아보고 이를 하겠다는 시공사가 있으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반대로 건축주분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설계비이다. 대부분은 집을 고치는데 무슨 설계비가 그렇게 들어가냐? 리모델링 업체에서는 설계비 없이도 해주는데신축도 아니니 설계비를 싸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선 또 앞서 언급드린 이유들로 리모델링은 신축보다 어쩌면 더 어렵고 손이 많이 가고 힘들다. 쉽게 얘기해 공사가 끝날때까지가 설계기간이다. 그만큼 현장에 자주가야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차근차근 설명을 드리면 이해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그래도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당연히 대구 건축주분들은 이 부분을 선뜻 이해해 주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먼저 시공사를 찾았고 다행히 위빌의 전대표님이 (속으론 울고 계셨겠지만) 망설임끝에 맡아주셨다. 그렇게 해서 설계가 시작되었고 또 그렇게 해서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 드디어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는 예상했던 데로 수많은 변수들의 연속이었고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속살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결국 지붕 전체를 다 걷어내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지만 마치 거친 야생마를 길들이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진행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넓은 이해심을 바탕으로 한 건축주분들의 적극적 협조도 있었고 추진력있게 밀고 가 주신 전대표님의 공이 매우 컸다. 어쨌든 그렇게해서 집은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서야 드디어 완공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역시나 공사기간은 예상보다 더 늘어났고 공사비도 건축주분의 처음 예산보다 훨씬 더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주분은 현장에서 진행되던 작업들이 왜 때로는 더디고 때로는 추가되어야 했는지 이해해 주셨고 쉽지는 않으셨겠지만 공사비의 증가에 대해서도 대부분 이해해주셨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역시나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처음 집을 만나고, 건축주를 만나고, 그리곤 시간이 지나 그 집이 이렇듯 바뀌어서 그곳에서 건축주분이 살고계신 모습을 보니 느낌이 새롭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도 건축주요, 가장 고마운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건축주이다. 이 프로젝트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생기더라도 서로 이해하려 애쓰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를 할 수 있는 건축주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이 어쩌면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이 프로젝트 이후 얼마전 새로운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법규검토하는 단계에서부터 우리에게도, 그리고 건축주 입장에서도 벌써 예상밖의 상황들이 생겨났다 

부디 많은 대화와 이해와 협력속에 잘 마무리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50617 Y

 

 

 

   실무를 시작한 07년도만 해도 내가 다니던 사무소를 비롯해 대형사무소들의 분위기는 한껏 들떠 있었다. 건축경기가 매년 좋아지고 있었고, 한 해가 마무리도 되기 전 그 해의 목표치를 웃돌고 있었다. 회사입장에서야 더할나위없이 좋아할 일이겠지만, 직원들은 턴키며 현상이며 뺑이치며 구르고 있었던 것은 늘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해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그 동안 진행해왔던, 그리고 진행할 예정이었던 프로젝트들이 하나둘씩 멈추면서, 어느 덧 사무소에는 디벨로퍼 다시 말하면, 건축 시행업자들이 자주 오고가곤 했다. 그런 사람들이 오고 간 뒤엔 갓 신입티를 벗은 내가 봐서도 말도 안되는 그러한 제안서들을 1~2주 안으로 줄야근을 하면서 찍어내곤 했는데, 이런 경험을 한 탓인지 그 쪽 계통 사람들을 보게 되면 몸서리부터 치는 것이 아직도 그 때의 경험을 잊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사무소를 시작하면서 기적과 같이-여전히 우리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개인 건축주들에게 의뢰가 들어오고 사무소의 포트폴리오가 조금씩 만들어지면서 드물지만 디벨로퍼에게도 상담 문의가 들어왔다내가 생각하는 사무소의 작은 원칙 중 하나는 첫 상담은 사무소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아주 멀리 지방에 계신 분들까지 그렇게 해달라고는 못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분이면, 완곡히 이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드리는데, 아직도 디벨로퍼라는 '분'들은  당연히 설계사무소에서 찾아와야 하는거 아니냐는 분위기다.

 

1. 요즘 광고도 자주 나오는 한 업체에서 강원도에 펜션단지를 만들겠다며 자기네 사무실에 자료가 다 있으니,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해서 완곡히 첫 상담은 사무소로 와달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며, 일정을 조율하자고 했다. 다시 며칠 뒤 다시 연락이 와서, 꼭 자신들이 가야하는 것인지, 설계사무소에서 와서 미팅하면 안되냐고 하길래, 먼저 와서 사무소도 어떤지 보시고 우리도 보여줄 자료가 있으니 오라고 했더니 그럼 됐다고 하길래 수고하세요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듯이 설령 이야기가 아주 잘 되어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해도 얼마나 건축가가 존중받으며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뜩이나 여러 일들로 바쁜데 같이 작업을 할 지 여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을 오라가라하다니... 그렇게 불러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치부할 거면서 말이다. 한편으로는 씁쓸하지만 원래 그러려니 하고 별 개의치 않게 넘어간 경우가 있었다.

 

2. 부동산과 관련된 회사는 아니지만, 경남쪽에 대규모의 대지를 가지고 있어서 이를 주택단지로 개발해서 분양을 하고 싶은데,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해서 역시나 사무소로 오셔서 상담하자고 했다. 며칠 뒤 사무소에서 상담을 하면서 개발하고자 하는 단지의 규모며 성격이나 여러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마지막에 단지 배치 개념을 스케치해줄 수 있냐고 해서 이 역시 완곡하게 거절을 했다. 상담 오신 분이 살짝 흠칫하긴 했지만, 여유있게 넘어가며 대신 설계견적서를 자세하게 적어달라고 요청하며 돌아갔다. 평소에 거래하던 협력업체에게 의견을 묻고, 주변 건축가분들께도 조언을 구해서 고민 끝에 우리가 생각하는 적정선을 제시하고 메일을 보냈는데... 그 이후로 몇 번의 통화는 했지만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아무런 연락이 없다. 최소한 다른 업체가 선정이 되었다고 양해를 구하는게 상대방에 대한 최소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전화하기 힘들면 문자로 보내도 될텐데 하는 아쉬움.

 

3. 내 고등학교때 친구 L은 도시과를 나와서 현재는 도시엔지니어링 사무소에 다니고 있다. L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같이 프로젝트를 해보자며 미팅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주 평일에서 서로 다른 일정들이 잡혀 있어서 주말에 친구 얼굴도 보고, 친구가 다니는 사무소도 구경할 겸 근처로 갔다. 서울 강서쪽에 진행 준비중인 프로젝트였다. L과 함께 회사 이사님도 참석해 미팅을 진행하면서 자료도 확인하고 관련된 여러 이야기도 듣고, 그리고 역시나 계약 전에 그림은 그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있을 건축주 미팅에게 사업 방향에 대한 보고를 해야하는데, 프로젝트가 구체화가 되기 전이니, 그 전에 그림은 그리지 않더라도 건축사례 이미지 리서치 작업을 도와달래서 그 정도 선에서 이야기가 되고 헤어졌다. 그리고 이틀 뒤 다시 L에게 전화가 와서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와서 이야기하자고 해서 하는 말이 건축주 사업보고에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담은 배치도 2컷을 프레젠테이션에 넣기로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지 않겠다고 하면 자기라도 직접 그려야 할 상황이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계약여부가 걱정이 되면 계약도 먼저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L과 헤어지고 나서 여러 생각들이 많이 겹쳐 지나갔다. 우리 사무소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프로젝트를 실제로 진행해서 완공이 된다면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프로젝트 자체의 성격만 보아도 무척 흥미있어 보이기도 했고, 예상되는 설계 진행여건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져온 원칙들을 스스로 어겨야 했다. 소위 가설계라고 불리는 작업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 가설계를 위해서 법규부터 규모검토, 배치, 프로그램, 아이디어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들이 전체 프로젝트의 절반 이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고스러움을 아무런 대가없이 얻어가려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사무소 포트폴리오에 관련된 프로젝트도 없는 상황에서 누가 덥석 일을 물어다 줄 리가 만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전체 사업비를 보자면 십수억에서 수십, 수백억에 이르는 프로젝트의 큰 역할을 할 건축가를 선정하는 작업에서 사람만 보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이러한 고민 끝에 Y와 나는 배치도를 1컷만 그리자고 이야기를 결론지었다. 다만, 계약은 미리 한다. 그리고 그 계약은 본 계약이 아니라 사전작업에 대한 계약이고 사전작업에 대한 계약은 본 계약으로 이어져야 하며 사전작업에 대한 비용은 1,000만원. 이러한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하지 않겠다고 L에게 이야기를 하니 회사에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김은 다른데서 새버렸다. 1500평의 대지. 150평의 건축물. 프로젝트에 대해 첫 미팅에서 이야기하며 외부공간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서로 많은 교감을 하고 아이디어에 대해 고민하자고 하는데, 설계비는 150평을 평당 20만원기준으로 해서 3,000만원이라고 정했져 있다고 했다. 외부공간 계획도 정말 많은 부분인데 그렇게 한 이유를 물으니, 우리가 작업하기 전 사전작업을 해준 에서 그렇게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는 안된다고 설계비 재산정부터 해야한다고 이야기를 하다가 그렇게 엎어졌다. 누가 밥상을 엎은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L은 우리 사무소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좀 더 좋은 조건의 프로젝트가 생기면 다시 연락한다고 했지만, L이 과연 우리를 얼마나 이해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그 때의 결정을 잘 했다고 생각이 든다. 며칠 간의 그러한 상황들이 잠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인연이 생기리라 믿으며, 지금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대해 더 힘을 쏟으려 한다.



20150605


J 

 

언제나 프로젝트에 목말라야 하는 '늘 배고픈' 젊은 건축가들에게 

의뢰나 상담문의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어떤 내용이 되었건 그러한 전화는 우선은 반갑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전화를 끊고, 혹은 만나고 돌아서면 걱정이 앞서는 프로젝트들이 있다.


작년에 Low Cost House series 가 여러매체들을 통해 많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적은 비용때문에 걱정만 하시면서 선뜻 시작을 못하고 계시던(본인들의 말씀에 의하면)

많은 분들이 사무실로 연락을 주기 시작하셨다.


그 중에는 진짜로 4000만원정도 있다면서 연락해오신 분도 계셨고

조금 더 여유가 있어서 8,9000만원정도 예산을 갖고 계신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개는 설계비에 대한 예산, 간접비에 대한 예산, 

그리고 Low Cost House 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안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저런 추가비용에 대해 말씀드리면 마치 속은 것 같다는 

표정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고 이해하고 가시는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이런 상담들을 꾸준히 받으면서 든 생각은 

이처럼 예산이 넉넉치 않은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이었다.

이 '예산이 넉넉치 않다'는 말이 참 애매모호한 말이긴한데 

때로는 절대적으로 안될 것 같은 금액인 경우도 있지만 

여기선 그냥 '원하는 것에 비해' 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듯 싶다.


어쨌든 이러한 생각들을 하면서 우리는 

이런 분들을 위해 더더 싸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더 크게는 저런 분들의 저 요구들을 어떻게 우리가 받아줄 수 있을까?

저런 상담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라는 고민들을 꾸준히 해왔다.


물론 적절한 예산과 제반여건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를 경험해 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시공자도 그리고 우리도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에도 사람이 살고 건축주가 있다는 것 또한 

누구보다 잘 알기때문에 이러한 고민을 놔버릴 수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오히려 더 절박한 경우가 있고 때로는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 이기때문에 

더 건축가가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이런 고민들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을 찾기 위해 

꾸준히 그런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실행해 보고자 하고있다. 


최근 이러한 성격의 프로젝트를 두 개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이미 공사가 거의 끝났고 하나는 내년 봄 착공을 목표로 구상중에 있다. 

예산이 넉넉치 않은 (앞으로는 "저예산" 이라는 용어로 표현을 하자) 프로젝트는 

앞서 언급했듯이 건축주가 원하는 것에 비해 예산이 넉넉치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시작 전에 명확히 얘기를 한다.

원하는 것을 다 못할 수도 있고, 때로는 본인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제시한 방법을 선택해야 할 수도 있고, 공사마감이 생각했던 것 만큼 깔끔하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런 설명을 드리면 상황을 이해해주시고 믿고 맡겨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우리에게 오히려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이런저런 사정이 있고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 

이런거 감안해서 어떤건 돈받지 말고 추가로 공사도 해주고 어떤건 시공자가 

비용을 부담하게끔 해주고 더 자주 내려와서 봐주고 해야되지 않느냐며 

불만을 표현하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우리도 참으로 난감하고 한편으론 불쾌하다.

우리가 제공해줘야 하는 서비스는 가진 조건들안에서 가장 좋다고 판단되는 결과물을 구상하고 

다음으론 이를 잘 지어낼 수 있게끔 현장을 감리하고

마지막으로는 준공을 무사히 내주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 불만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 불만을 달게 받을 마음이 있지만

이처럼 우리의 희생이 부족함을 이유로 불만을 가진다면 그 불만은 단호히 거절하고 싶다.


이는 결국엔 처음에 누누히 얘기했던,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갈등이 생겨난 것이고 

그 간극을 건축가의 희생으로 메우길 원한다면 매우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만나면 참 힘들다. 

역시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도 든다.


하지만 처음부터 돈이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프로젝트를 하고 안하고를 

판단하는 건축가는 되지 말자고 우리 스스로가 생각해 왔고

때로는 그렇기때문에 가능한 재미있는 경우들이 있기에

이런 저예산프로젝트에 여전히 큰 매력을 느낀다.


다만 결국 이런 저예산프로젝트인 경우 사전에 

더 많은 설명과 의사소통이 있어야 함을 느낀다. 

그래야지만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이 소통이라는 것도 결국에 사람사이의 일인지라

서로가 서로를 좋아해야 하고 서로를 이해해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우리가 이런 저예산프로젝트들을 대했던 자세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시공자보다는 건축주의 편에서 

때로는 시공자에게 부탁하고 때로는 때쓰고

때로는 협상(?)도 해가면서 공사비를 예산안에서 맞춰주고자 노력하였고

다른 일반프로젝트들(?) 못지 않게 많은 에너지를 들여 공사를 완료하였다고 자신한다.

(이는 공사의 완성도가 다른 프로젝트들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가 저예산프로젝트를 대하는 자세이며 또한 다른 모든 프로젝트를 대하는 자세였다


물론 그 진심을 알아주는 건축주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지난 6월 25일. 

Low Cost House series 그 네번째 집이자 올해의 첫번째집이 완공되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이제서야 완성이 되었지만 

시작은 한참 전에 시작되었다. 


다만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려서 완성된데에는 몇가지 사연들이 있었고 

오늘은 그 이야기들을 해 보고자 한다. 


작년에 세 채의 저비용주택들을 하면서 우리는 많은 한계를 느꼈다.

우선은 물리적, 육체적인 한계를 느꼈고 

아직 많은 분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에 또한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올해에도 Low Cost House series 를 계속한다면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이 프로젝트에 여러사람들, 특히 건축을 하시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혹 더 나아가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 보고 싶었다.

특히나 우리가 그랬듯 첫발을 떼기가 어려운 많은 젊은건축가 혹은 학생분들에게

이 프로젝트는 정말 좋은 시작이며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올해 그 네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오픈하기로 하였다.

그 요지는 디자인부터 현장관리까지 모두 맡아서 하실 분을 찾는 것이었고 그에 들어가는 

경비와 공사팀을 꾸리는 것은 우리가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작은 프로젝트이니 우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현장에 가 계실 수 있는 분" 을 유일한 조건으로

사무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모집을 하였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무척 많은 분들이 지원을 해주셨다.

그 후 어쩔 수 없이 선착순으로 끊어서 총 6팀을 모시고 현장방문을 하였고 

제출된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정도만 보고 한팀을 선정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쉽게도 그 한팀이 끝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못하였다.

물리적 여건상 촉박한 시간안에 설계안을 끝내는 것에 문제도 있었고, 

어떤이유에서인지 건축주가 원하는 것들이 반영된 안으로 계획안이 발전하질 못했던 문제도 있었고, 

또한 Low Cost House series 에 어울리는 아이디어가 부족해 보였다. 

즉, 공사비 4000만원이라는 것에 대한 소위 "감" 을 잡기가 어려웠던 듯 싶다.


그렇게 해서 많은 기대를 하고 나름 한달여의 시간을 들여 진행하던 이 일련의 과정들이 아쉽게도 

그 결과를 만들어 내진 못하였다.



현장방문 중 가족들과의 대화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다시 시작된 공사에 이번엔 쟁쟁한 분들이 동참해주셨다.

Max Min House 의 원빌더 님과 위빌의 전대표님. 


그렇게 해서 시작된 공사는 순조롭게 가는가 싶더니 역시나 쉬운게 없었다.

사실상 이런 프로젝트를 네개째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언제나 현실과 이상은 그 차이가 있다.

또한 건축주와 시공자는 그 생각하는 바는 같더라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기도 하고

기대하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차이도 있다.

저소득층분들이라고 마냥 순수하신 것도 아니고 

개인이 느끼기에 따라 도움의 이유가 충분하게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이윤으로 둘 사이가 묶여있지 않기에 더 중요하게 다가올 수가 있다.

즉, 마음에서 납득이 되지 않으면 이러한 프로젝트는 하기가 쉽지않다.


그런 덕분에 공사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고 여러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어져갔다.

어느때보다 쉽게 될거라 예상했던 공사가 어느때보다 어렵게 완성되었다.



주소에서 알 수 있듯이 작년에 전남에서 하던 프로젝트들이 올해는 전북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어린이재단 전북지역본부와 처음 뵈었고 

집짓는 사업을 이번에 처음 해보시는 것이라 의욕적으로 진행을 해주시고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다만 안타까웠던 것은 열심히 활동하시면서 여러 후원들을 많이 계획하시고 약속받으셨는데 

그것들이 마지막에 마무리가 잘 안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재단에서 공사비를 아낄 수 있는 후원을 찾아와주시면 그 부분에서 생기는 공사비의 차액을

그 집에 다시 집어넣는다. 

그래서 집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해준다던지, 재료라도 좀 더 좋은걸 쓴다든지 해서 예산안에서 공사비가 

남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다만 이때 문제는 전제했던 후원이 취소가 되어 버리거나 했을때 문제가 생긴다.

이번에도 몇번 그런해프닝들이 있었고 이는 결국 공사비를 관리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3월에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약 4개월가까이 걸려서 끝이 났다.


이 집은 많이 부족한 집이다. 

돈이 조금만 더 있으면 여기를 요렇게 해주면 좋을거 같은데....

라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 집이다.

마지막에 공사비가 변수가 생기고 예정했던 것들을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오면서

그런 아쉬움이 생겼다. 

또한 친환경자재를 쓴 집도 아니고 OSB를 노출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의 series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실내공간을 얻었고 

가장 많은 수납공간이 만들어 졌으며 

흥미로운 내부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이집의 둘째딸이 집을 짓는 동안 K-pop star 오디션에 합격을 해서 서울로 오디션을 보러 간단다.

조만간 이 친구를 티비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가족의 활약을 기대한다!!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에 내려가 2박3일동안 처녀들로써 쉽지않은 

"산속 친환경오픈화장실"을 기꺼이 감내해가며 바니쉬냄새에 중독될 만큼 열심히 해준 사무실 식구들과 

사진찍느라 고생한 황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140712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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