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앞의 일부내용은 '건축가로 독립하기 : 3장 '성장하기'_ 직영공사 1' 에서 올렸던 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한꺼번에 읽는게 조금이나마 흐름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입니다.

 

사무실을 시작하고 첫 건축 프로젝트였던 강진의 지역아동센터와 벌교 뽁이집은 원치 않았 직영공사 였다. 

 왜 이 프로젝트들이 직영공사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는지는 다른 여러 에서 설명을 하기도 고, 

대략 상황만으로도 추측 가능 하시리라 다. 어쨌든 그 이후로도 의  Low Cost House 프로젝트들을

직영공사처럼 진행을 했다. 엄밀히 하자면 "반 직영" 도였다고 할  지만 어쨌든 늘 현장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지막으로 했던 "반 직영공사" 가 부암동 House 였다. 여기서 "반 직영"이란 시공을 시공사가 아닌

시공팀 정도와 함께 하면서 돈 관리를 리가 하고, 현장 관리는 그 시공팀의 반장님께 약간의 자율이 어지는

그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했다는 의미이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우여곡절끝에 정말 사무실이 개업하자마자 금전적으로 파산일보 직전까지 가는 참사와 

덕분에 현장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을 파야하는 보람된(?) 상황을 마주하게 었었다.

낮에 현장에서 일하고 오후에 사무실로 돌아와 사무실 장실에서 매일 샤워하는 눈물나 들이 있었다.

그 후 다시는 직영공사를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사실 직영공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매력적이다. 

히나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하나하나 만들어져가는 을 보며 흥분하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라서  언급한 그런 경제적, 체적 고됨은 그 기쁨에 하면 할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고됨보다 더 로운 것은 로 공사가 끝나고 나서다.

공사란 모름지기 끝나고 나서 몇  잔손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그런 것처럼 끝나고 나서도

자잘한 (로는 !) 하자들이 생한다. 공사를 한다는 것은 끝나고 나서 발생하는 제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공사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도 있고, 그 만큼의 이윤도 적에 있을테고, 무엇보다

하자보수도 무의 하나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무척이나 괴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공사에서 이윤이 지 않아서 였기도 하고, 그럴만한 인력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들었던 것은

프로젝트가 끝났는데도 끝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한정된 인력으로 로운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자보는 데에 에너지를 으니 사무소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직영공사란, 특히 건축공사는,  좀 더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후 사무소의 대부분 프로젝트들은 시공사를 해 진행이 되었고, 우리는 그저 직영공사 하듯이 리를 나갔다. 

시공사들과 작업을 하며 은 것을 배웠다. 그 중에선 정말 장인과도 은 시공사도 있었고, 처음엔 작은 시공사였는데 

같이 일하면서 같이 장해가는 듯한 시공사도 있었고, 눈에 보이는 마감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적인 기능에 더

집중하는 시공사도 있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장단점을 고 있지만, 시공사들은 어쨌든 전문가이다. 

시공에 관한한 사무소 컴퓨터 앞에  리로 생각한 우리보다는 훨씬더 현실적이고 물리적이다.

따라서 시공사를 단순히 건축가의 지시를 이행하다는 집단이 아니라, 또 다른 파트너이자 전문가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하우를 공유하려고 노력해 다.

그 과정에서 여러 시공사로부터 서로 다른 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늘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들이 있었다.  

정말 이 작업에 이 정도 금액이 들어갈까?, 공사 순서대로 차근차근 하면 될텐데 왜 순서를 뒤죽박죽해서 일을

복잡하게 할까? 왜 다음 공정에서의 작업 내용을 미리 고려해서 작업해 지 않아서, 뒤에 가서 시공을 하게 만들까?

마감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해야 되는데 왜 그렇지 못할까? 왜 이렇게 현장은 지저분 한가?

왜 건축주와의 의사소통이 명하고 원활하지 못할까? 등 의 금증과 아쉬움들이 마음속에 있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다 는 거 같다.

우리가 직접하면 저런 부분들은 더 잘 할 수 있을거 같은데 하는 건방진 생각들이 자꾸 불쑥불쑥 들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직접 공사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나는 용인 House 이고, 이는 건축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하나는 부산의 치과인테리어 프로젝트, 

마지막 하나는 건축도 인테리어도 아닌 방배동 한 주택의 마당을 Remodeling 하는 프로젝트 였다. 

이 프로젝트들에 대해 다른 얘기를 하기 전에, 

혹시 결과적으로 직영공사를 다시 또 할거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지금으로선 다시 하고 싶진 않다. 

물론 어떤 사무실들은 인테리어공사들을 직접하면서 잘 운영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보면 어쩌면 우리의 경험이 

단편적이고 또한 역량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다. 다만 몇 번의 직영공사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리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 또 우리가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용인 House, 부산의 치과인테리어, 방배동 리모델링의 프로젝트들에서 느끼고 겪은 것은 앞서 겪었던 것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문제와 비슷한 즐거움이 반복 되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공사비를 넉넉하게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건축주가 예산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우리가 전문 시공사도 아니고, 공사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도 많을텐데, 경험도 부족한 우리가 공사를 통해

이윤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시공사를 보며 늘 공사비 라는 것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이를 통해 건축주와 

신뢰를 쌓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즉 건축주와 우리가 모두 돈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면, 공사하면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비용들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공사를 하다 보면 거의 매 공정마다 

늘 생각하지 못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들이 발생하고, 작성한 견적서보다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드는 공정은 거의 없었다. 

견적서를 작업자분들께 받은 금액 그대로 반영을 해 놓다보니, 조그마한 변동에도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상황들을 건축주가 일일이 다 이해하느냐 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건축주는 어쨌든 어떤 방식으로

견적서가 작성되었는지, 어떤 사유로 추가금액이 발생했는지를 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처음 준 견적서 이외의 금액이

나오는 것을 불편해 할 뿐이다. 나름 대로는 시작하면서 설명을 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건축주가 이해한 것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건축주의 조그마한 요구사항이나 불평도 부담스러워지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돌발상황들이 모두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왔다이것은 공사가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입주 이후에 생기는 크고 작은 하자들에 대해 연락이 오는 것

그 자체로 모두 스트레스고 이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사무실을 너무 힘들게 하였다.

 

이런 상황을 다시금 반복해서 겪으면서 지금 겪고 있는 이 스트레스가 과연 생산적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어떤 때는 직영 공사로 인해 겪는 경제적 스트레스, 건축주와의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들이 정신을 지배하고, 

그로 인해 정작 우리가 해야하는 설계에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설계를 고민하는 시간을 즐겨야 하는데, 어떤 때는 마음이 파괴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영공사가 주는 매력은 여전하다. 도면이 아닌 현장에서 작업자와 직접 소통하며 만들어 내는 하나하나는

이런 경우가 아니면 느껴 볼 수 없는 건축의 또 다른 즐거움이자 쾌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때는 여전히 설계를 하고 있을 때이고, 우리가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그래서 더 나아지고 싶다고 늘 갈망하는 것 또한 건축설계이다.  따라서 직영공사라는 것이

이러한 우리의 즐거움과 나아감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우리는 직영공사를 앞으로는 그만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건축가가 현장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무실 컴퓨터의 모니터 안에서 그려지는 도면이 현장에서 작업자들의

손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를, 각 재료가 어떤 가능성과 한계가 있는지를  아는 것은 건축의 또 다른 단계이고 수준이다

이 과정 안에서 또 다른 창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직영공사는 배울 것이 많다.

물론 어떤 분들은 우리와 달리 직영공사를 통해 돈을 벌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공사를 직접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많은 것들을 최종적으로는

결정해야 하고그 경제적 물리적 책임도 고스란히 혼자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일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글 끝에 더해서 작년 초에 멀리 김해에서 했던 직영공사로 인해 지금까지도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자세한 얘기를 지금 쓸 순 없지만, 처음에는 받지 못한 돈으로 인한 금전적인 손실이 고통이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 우리 나름대로는 건축주의 여러 어려운 상황들에 최대한 맞춰보려

돈을 나중에 주겠다는 약속만 믿고 공사를 진행했는데, 그런 마음에 대한 배신을 생각하니 

그 인간 자체에 대한 미움이 훨씬 더 괴로웠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 크게 와 닿던 돈의 문제는 

조금씩 조금씩 해결되어 가는 거지만, 그 마음속에 생기는 증오는 시간이 지날 수록 커져갔다.

서로가 모든게 만족스러울 순 없는 거겠지만,

우리는 언제나처럼 진정을 다 했고, 그 진정성과 노력에 대해

부정당하고, 한편으론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속 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증오가 나의 손끝과 머리속을 침식해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순식간에 돌변한 그 태도에 어떻게 하면 복수 할 수 있을까가 머릿속에서 하루종일 맴돌기도 했다.

결국 이 증오가 나를 망가트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내가 감추고 싶다고 해서 감추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주변으로부터 깨달았다. 

그리고 고맙게도 조소장이 함께 짐을 나누어 가져가주면서 그 증오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닌 둘이 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 계기이며, 시간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직영공사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하면서,

또한 아주 익스트림한 일들을 겪으며 우리가 한정된 능력과 에너지로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고민을 모아야하는 지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일상의 시간에 대한 감사함을 배웠다. 

어쩌면 그것이 직영공사를 통해 얻은 가장 값진 보상인지 모르겠다.

 

Y

 

 

 

   




 

내가 건축을 얼마나 오랫동안 배워왔는지를 따져보면

시작이 대학교부터이니 계산해보면 부끄럽지만 거의 20년 가까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결과로서 내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가 있는가?

혹은 어느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어찌된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다만 어쨌든 숫자로 따져 20년 가까이,

그 과정으로 보자면, 대학교, 유학, 외국살이, 사무실 개소 후 실무 라는

다양한 과정들을 겪어오며 내가 얻은 것들을 다 잘라내고 가장 밑바닥의 딱 한마다로 하자면

'건축에 정해진 답은 없다' 라는, 초등학생도 알만한, 결론을 진심으로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건축에 정해진 맞고 틀리고의 절대적 기준도 없으며,

그래서 맞고 틀린 방법론이라는 것도 없다는 것이고,

설령 과거에 작동하던 방법론도 지금 유효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설계에 있어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와 조건들이 무엇인지 세심히 살펴야 하며,

그 과정이 일관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계속 확인해 봐야 한다

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생각을 구축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고,

그 생각을 흩트리지 않고 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결국 건축이라는 형태로 이어지게 하는

과정이 결국 설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누가 더 혁신적인 생각을 구축하느냐가 결국 다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나의 대학교때를 돌이켜보면 설계수업을 들으며 

가장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 바로 이런 훈련의 부족함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들의 말씀은 정답처럼 여겨졌으며, 교수님들이 주시는 피드백은

이건 틀렸고,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건축은 이거다, 건축은 이런게 맞는거다 라는

결론이 대부분 이었다.

그래서 내 생각의 부족함과 발전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고,

교수님들이 주시는 답에 맞춰 수정을 하며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모든 분들이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대체로 분위기는 그러했다.

 

작년부터 학교에서 4학년 학생들과 설계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기준을 세웠던 것은, 그리고 학생들에게 주었던 말은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그리고 경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나의 관점을 갖고, 그 관점을 발전시켜 보는 과정을 밟아보는 것이라는 말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생각이 건축이 되는 그 과정을 하나하나 경험해 보는 것,

이것이 설령 후에 건축을 하든 안하든, 어느 일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나는 그 과정을 각자가 어떻게 전개해 나가는지에 관심을 둘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나의 의견이 맞고 틀리고의 기준이 아니고, 각자의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흩어지지 않고 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이것이 맞는지 아닌지가

모든 결정의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리되면 학생들은 도시를 분석할때부터,

그 안을 구성하는 하나하나를 우선 세심하게 살펴야 하고,

다음으로 고민해보고 판단해야하며, 

그 과정에서 또한 선택을 해야하고,

더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열해야하며, 

그것들에 대한 본인의 관점을 결정해야한다.

그리고 나면 이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고,

최종적으로 건축이라는 형태와 공간으로 변이되는 과정을 겪어내야한다.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이 고민의 대상이고, 모든 것이 판단의 대상이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없다. 

정해진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나도 여전히 잘 하지 못하는 것을 학생들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 순간 되면 잘해지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하는 한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숙명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어려워도 시작해보길 바랬다.

나도 학생들도 서로 부족했지만 함께 어려우니 좀 낫지 않았을까?  

 

1년 반의 수업을 마치고 학교수업은 그만 두기로 했다.

한 학기든, 1 년이든 쉬었다가 돌아오시라는 말이, 빈말이라도, 감사하긴 했지만,

수업을 하는 지난 시간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사무실일에 쓰는 시간과 관심이 물리적으로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양쪽에서 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다시 사무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무실에 집중해도 늘 부족하고 간당간당하니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이 어쩌면 사무실의 변화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도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사무실은 언제나 그때그때가 가장 어렵고 중요한 순간이긴 했다 ㅠㅠ)

 

수업을 하는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에 대한 사명감이 있지 않으면,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겁지 않으면,

오랫동안 하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대학시절

대단한 인내와 끈기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가르침을 주신 당시의 우리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

 

지난 1년반의 시간동안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이었는지 돌이켜보면

아쉬움과 미안함이 크다.

작년에 수업했던 친구들이 올해 졸업작품을 하는 걸 보며,

그 성장에 뿌듯하고 설렘이 있기도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어렵지만 얻는 보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수업을 그만 두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그 동안 좋은 기회를 주셨던 학교와 교수님들께 감사드리고,

부족하지만 함께 해준 학생들에게 또한 고맙다.

 

Y

 

우리가 사무실을 시작하고부터의 약 7년, 그 이전 약 2,3 년을 더해도 지난 약 10년의 시간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특이했던 기간 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상 이런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집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짓는 꿈을 꾸고, 또 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이에 더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집 혹은 건축에 대한 수 많은 책과 잡지가 인기를 얻으며 일반인들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방송에서도 또한 집 혹은 인테리어는 주요한 소재 중 하나로 다루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인들의 집 혹은 거주 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꾸게 해 주었고,

집을 재산증식의 수단에서 원하는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인식하게 해 주었다.

이에 더해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정권은 경기부양을 위해 건설을 적극 활용하였고,

그 결과로 엄청난 돈을 대출을 통해 시장에 풀기 시작했다.

일명 빚내서 집사라 라는 구호는 비단 아파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고, 한없이 낮아지는

대출금리는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 수익을 위해 빌딩을 지으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건축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에 더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나이와 패기로 무장한 수많은 건축가들이 건축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이들은 일의 규모, 종류, 영역을 가리지 않고 그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 있었다.

(물론 여기엔 몇몇 대형사무소의 부도도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지난 약 10년의 시간은 소규모 건축시장의 호황 아닌 호황의 시기였고,

건축사무소는 그 규모와 형태에서 다양화 되었다.

 

하지만 2019년 올해는 어떠한가.

정확한 통계를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여러 기회로 만나뵙고 얘기들은 사무소 소장님들을 통해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해 보건데 최소한 지난 10년,

아니 작년 혹은 재작년과 비교해도 확실히 나빠졌다는 것 만은 확실한 듯 하다.

대부분의 아뜰리에들이 활동하던 민간 소규모 건축시장은 강력한 대출규제와 부동산법,

그리고 높아진 대출금리로 사실상 거의 죽었다고 표현할 정도가 되었고,

그로인해 많은 사무소들이 수주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이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란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지난 약 10년간의 그 엄청난 대출과 그로인해 시장으로 풀린 돈은 표현하자면

미래에 쓸 돈들을 다 끌어모아 한 순간에 쓰게 만든 것과 마찬가리라고 생각한다.

그로인해 그 한 순간에는 건축시장이 호황처럼 보였지만, 그건 마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한 순간에 폭발시켜버리고 마는 그런 결과가 된게 아닌가.

1500조가 넘는 가게부채가 의미하는 것이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겪은 것과 같은

민간건축시장의 활성화는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란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약 10년의 시기동안 사무소를 시작하고,

그 시기를 경험한 우리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소규모 건축시장만으로 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수주를 할 수 있었고,

현재 하는 일을 충실히 하는 것 만으로 내년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 7년과 같은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또한 이전과 비교해 확연히 줄어든 상담 건수를 통해

민간시장의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고 있고,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10년은 그 이전의 소위 기성세대라 불리던 건축가들이 활동하던 시대와는 달랐다.

그 이전 기성세대 건축가들은 그래서 한때 왜 건축가들이 이런 작은 건축시장에서 활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도 직간접적으로 들은 적도 있다. 

그들이 활동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지난 10년의 시기에 수 많은 건축가들이

작은 주택, 작은 건물, 인테리어 등등을 하는 것이 탐탁치 않았을 것이고,

거대한 건축적 담론이나 건축적 철학 등을 얘기하는 않는 건축가들이 패기없어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뜨거웠던 이슈가 바로 "생존" 이라는 단어 일만큼 경쟁은 녹녹치 않았고,

예전과 같이 어설픈 건축적 담론이나 철학을 얘기할만큼 건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높이는 만만치 않았으며,

건축가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시대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대형 프로젝트가 넘쳐나던 시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어쩌면 지난 10년과는 또 다른 시기일 수도 있다.

지난 10년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 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만큼 더한 경쟁과 생존의 시대가 될 수도 있다.

늘 변화하고 나아져야하고, 또한 그것이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

그러려면 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의 내부적 여건과 역량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못한 사무소는 어쩌면 언제든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 무척 흥분된다.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불안정하지만, 그것이 불안하면도 동시에 흥미롭기도 하다.

지금 이 시기에 집중해야하고, 이 시기에 미래를 향해 신경을 곤두세워야하고, 

변화를 채찍질해야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시장을 또한 찾아야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걸 보여주어야 한다.

이 모든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Y

 

 

건축 디자인이 주는 가치를 당장 돌아올 수익으로 환산할 수가 있을까? 

공항대로변에 위치한 땅에 들어선 이 건물은 건축주가 처음부터 당연히 임대를 위한 목적으로 땅을 매입했다. 

따라서 건축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임대가 잘 나가는 것 이었고, 특히나 건축주는 병원들을 모아 건물을

소위 메디컬타워로 만들고 싶어했다.

다만 시작할때 이 건물의 목적에 대한 부분에서는 모두가 동의를 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식에서는

서로 생각이 달랐다.우리는 기본적인 면적을 충족한다는 전제하에  공항대로에 면해 있는 건물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을 만드는 것, 더 나아가 비슷한 상업용 근생건물과는 다른 공간구성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즉, 우리는 기본적으로 디자인 이라는 것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야 하고, 

그 것이 결국 사람들에게 이미지로 기억에 남게 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이 건물에 입점한 상가들의 가치도 함께 높여준다고 믿었다.

반면 건축주는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눈에 띄고,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간판이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건축주는 미리 (이 건물에 입점을 생각하고 있는 병원의) 원장들, 그리고 우리도 처음 들어봤지만

이런 종류의 상업용 근생건물을 컨설팅 해주는 사람들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 컨설팅업체(업자)는 어떻게 해야 건물이 임대가 잘 나가는지, 

임대인들이 선호하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등등을 컨설팅해주는데,

그 내용은 주로 평면은 어떤 형태가 잘 나가고, 간판은 어떻게 설치해야 사람들에게 잘 인지되고 등등의 내용이다. 

이런 사람들과의 미팅에서 논의된 내용의 주된 결론은 결국 간판이다.

이 간판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야 규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최대한 크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한 건축의 입면과 평면 구성은 어떠해야 하는가 등등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건물의 임대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는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임대인이 선호하는 조건에 가장 충실한 건물이 임대가 잘 나가고, 그것이 곧 가치라는 것이다.

 

이러한 서로 상충되는 두 방향의 가치가 충돌할때 결국 어떻게 결론을 낼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우리가 주장하는 것을 경제적 가치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이렇게 했을때 임대가 잘 나간다고 확실히 장담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우리는 결국 이러한 것들을 장담할 수 없었다.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 할 구체적 데이터도 결국 찾지 못했다. 

어쩌면 당장 대출이자를 내야하고, 하루라도 빨리 임대를 내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건축주에게 “이미지”나 

“무형의 가치” 같은 단어들은 조금은 멀리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것보다는 당장 임대에 관심갖고 있는 병원장이 하는 말이 훨씬 더 가깝게 와 닿았을 것이다. 이해가는 측면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가치를 건축주에게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로 설득해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고, 

혹은 언젠가는 이러한 사례와 경험들이 쌓여서 일반적인 접근으로 받아들여질 날이 올때까지 기회가 될 때마도

증명하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최대한 많은 부분을 건축주, 

혹은 예비임대인의 요구사항에 맞춰주려 노력했다. 

점점 작은 면적 하나하나, 숫자 하나하나가 모두 돈으로 계산되는 상황이 되어 갔고, 

그 과정에서 건축가가 제안할 수 있는 것들 또한 그런 종류의 계산법 뿐이었다. 

복잡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디테일은 모두 공사비로 연결되니 이 또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모든 것은 투입된 비용 대비 수익으로 계산되는 수익률의 지배 아래 있으니 이에 어긋나는 요소는 우선 제외된다.  

그나마 건축주가 상관하지 않는 영역이 있으니(혹은 알아채기가 어려운 부분) 그건 건물의 입면 비례 정도였다.  

전면 커튼월의 비례와 건물 전체적인 비례 등을  조정하는 것이 할 수 있는 계획의 영역이었다. 

 

특히나 전면 커튼월은 철저히 병원이 선호하는 간판방식과 크기에 대응하기 의해 결정된 입면사항이다. 

처음부터 office에서 볼 수 있는 커튼월의 입면은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고, 광고내용으로 가득찰 커튼월 입면을 기대하였다.  

 

그렇게 해서 공사는 시작되었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OO병원 입점예정, 

혹은 O층 임대문의 등등의 광고가 건물에 붙어 있었다. 

이 건물이 도면상의 입면 그대로 세상에 보여진 건 딱 하루였다. 

건물의 공사가 다 끝나고, 준공검사를 위해 건물 외부에 붙어있던 광고를 모두 떼어낸 날, 

바로 그날이 이 건물이 입면에 아무런 광고 없이,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가 설계한 온전한 모습 그대로 세상에 존재했던 단 하루였다. 

사진도 딱 하루 허락된 바로 그날 촬영되었다. 

준공검사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 부터 미리 예정되어있던 각 층 인테리어 공사가 임대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연히 외부엔 OO병원 2월말 오픈 예정, 혹은 O 층 임대문의 등의 현수막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상업건축의 운명이라 생각해야 할까.

다행히 현재 이 건물은 지하부터 1,2층 스타벅스, 3층부터 6층까지 나머지는 모두 병원으로 임대가 다 채워졌다. 

덕분에 이것이 임대인의 조건에 충실해서 그런건지, 건물이 대로에 면해 입지조건이 좋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건축설계의 덕분인지, 어떤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는지 알 수는 없다. 

디자인의 가치를 대중이 인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나 건축이라는 영역은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그 인식변화가 가장 느린 편이다. 

건축에는 단순히 멋있다 아니다를 떠나 수많은 사회적, 물리적 재원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고려되어야 할 것이 그 만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치들 중에서 디자인을 가장 앞에 두고 판단하려면 오랜시간 좋은 디자인, 

좋은 건축, 좋은 공간을 경험해보고 그 안에서 얻는 가치를 내 생활에서 느껴보고, 

그러고 나면 그것이 긴 안목으로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때가 되면 건축가들이 늘 갖고 있는 설계비에 대한 고민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그러한 시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좋은 건축, 좋은 디자인 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어떻게 그 가치를 경험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즉, 대중과 가까워지려하는 노력과 과정이 필요하고, 우리의 생각을 대중의 생각과 맞추고 공유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건축과 대중이 가까워질때 우리는 우리를 애써 열올리며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온전한 모습이 단 하루만 허락되는 상업건축의 슬픈 운명도 바뀔수 있을 것이다.  

 

Y

요즘 머리속을 계속 맴돌고 있는 생각은 불안감과 차별화 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30대의 끝무렵에 다다르고 나서 그런지,

혹은 각자가 다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헤쳐나가려 애쓰시는 주변의 여러 소장님들을 보며,

혹은 이제 막 시작하는, 의욕과 기대에 가득찬 여러 후배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은 작년과 다른 올해 민간건축경기의 위축을 느끼며, 

혹은 아마도 이런 모든게 다 모여 그런 생각이 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건축가는 늘 불안과 불안정을 갖고 사는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불안과 불안정을 스릴과 기대로 여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두려운 것은 역시나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다.

우리가 남들과 다른게 무엇일까?

우리가 다른 사무소와 차별되는 것이 무엇일까?

전에는 젊다는 것이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더 젊은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의 작업들?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작업들을 해가고 있고,

우리의 프로젝트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할까?

우리는 어쨌든 존재의 이유,

그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증명해내지 못하면 언젠가 존재자체를 불안해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무소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몇 년전, 30대의 한창에 있을때는 우리에게 앞으로 시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40대까지도 한참 남은 것 같고, 50대는 남의 얘기 같고, 60대는 생각도 안해봤다.

하지만 철이 들었는지 어떤건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보니 우리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무소가 되기 위해, 그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초초해지고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무소를 시작할 때부터 이 정체성이라는 것을 늘 고민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처음의 그 정체성을 현실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왔다고 생각한다.

가끔 강연을 하며, 그 준비를 하면서 우리의 작업들을 설명하기 위한 큰 이야기의 흐름을

처음 우리가 시작할때 썼던, 가졌던 글귀와 생각들을 통해 설명하려 노력한다. 

그때마다 우리가 처음 고민했던 정체성을 잃고 있진 않은지,

우리 작업들을 통해 그런 것들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 초심을 다시금 되돌아 본다. 

 

하지만 어쩌면 처음 시작할때는 사무소로서 구체적으로 그리던 모습이란게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엔 구체적인 어떤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고, 그렇게 될 거란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6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는 사무실을 꾸려나가는 것에, 

우리에게 주어진 프로젝트들을 해결하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나무가 아닌 좀더 큰 숲을 상상하며,

지금의 우리를 좀더 진지하고 객관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상태로 약 6년이라는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대로 머물건지, 아니면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갈건지,

갈거라면 그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지,

우리가 지금 준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할 시기가 되었다.

고민하고 이제 움직여야 할 시기가 되었다.

 

변화하지 않고, 발전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잊혀진다는 

단순한 진리는 분명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

 

다만 우리가 가려는 변화와 발전의 방향은

지금 가진 에너지를 모으고 모아 

결국 건축이라는 것을 더 잘하려는 방향이 될 것이다.

어쨌든 건축을 잘하고, 그걸로 인정받을때 우리는 가장 즐겁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런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지금" 이라는 것에 

어쩌면 감사하고, 그런 고민을 재촉해주신 한분의 건축주께도 감사드린다.

 

Y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란 어떤 공간일까?


이 질문은 그리 어렵지도, 생소하지도 않은 질문이지만 우리는 쉽게 그 답을 찾지 못한다.

사실 찾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알고 있지만 아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각자가 내리는 답이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 우리 아이들이 누리고 있는 공간이

각자가 생각하는 그 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라.... 

참으로 많은 고려해야하는 요소들이 있겠고, 

사실 아이들을 위한 것인데 모든 것이 다 좋으면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은 

바로 "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만 자라난다 " 라는 전제였다.


아이들은 지식의 습득도, 사회성의 발달도, 감성의 개발도 그 모든 것이 놀이를 통해서만 

건강하게 이루어진다 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놀이를 통해서 느끼는 수많은 자극들, 그 자극들을 통해 아이들은 뇌의 발달, 신체의 발달, 그리고 

감성의 발달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놀이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결국 아이들이 자연의 변화를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이를 통해 매일 매일 오감으로 느껴지는 미세하면서, 동시에 위대한 변화를 체험하고, 그로부터 

늘 새로운 자극을 받는 것,

바로 이것이 놀이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우리는 그 동안 몇 개의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들를 진행해 왔다.

사무실의 첫번째 건축프로젝트였던 강진 지역아동센터, 

놀라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광명 볍씨학교, 

현재 공사중인 청송 지역아동센터, 

청송 어린이 도서관, 

그리고 문경의 늘사랑 어린이집 이다.

작지만 아이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는 형태와 공간은 무엇일까 꾸준히 

고민하고 적용해보려 노력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문경의 늘사랑 어린이집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어린이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적 가치는 무엇일까?

현재 그것은 아마도 "효율과 관리" 일 것이다.

그렇다면 효율이라는 것은 무엇을 위한 효율일까?

그것은 바로 '관리의 효율' 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어린이집에서 가장 큰 가치는 바로 '관리' 인 것이다.

당연히 과장된 부분이 있겠지만 적어도 현재는 그런거 같다.


지금까지 어린이집은 상당부분 관리자의 입장에서 고민되었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계획할때 (이건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시설에 해당되는 얘기이긴 하지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의견이 "이러면 관리가 어려운데...." 라는 말이다.

관리는 물론 중요하다. 그 관리를 통해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육하는데 효율적인 부분도 분명 고려되어야하다.


하지만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그렇다고 관리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루한 복도형식의 교실배치로 교실에 있으나 복도로 나오나 다른 것을 느끼기 어렵고,

2,3살과 5,6살 아이들의 교실이 같은 구조여서, 한살을 더 먹어도 달라지는 건 교실의 교구와 장난감들 정도라면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아침에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하루에 한번 잠깐의 외부활동 시간 외에는 실내에서만 지내야 하는 공간이라면

이 공간이 일상의 아이들에게 충분한 자극을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아이들의 공간을 어른들의 '관리' 라는 관점으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생각에 공감해주신 분들이 문경의 늘사랑어린이집 원장님과 사무장님 이셨다. 

한번의 미팅 후에 바로 계약을 결정해 주셨고,

첫번째 프리젠테이션을 보시고 흔쾌히 우리의 이 생각에 공감을 해주셨다.

문경의 늘사랑 어린이집은 당시에도 문경시내에서 가장 잘 운영되고, 인기가 많은 어린이집 이었다.

처음 방문했을때, 비록 공간은 전형적인 어린이집 구조였지만, 

원장님부터 선생님들까지 아이들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고, 시스템도 매우 잘 되어 있어 

아이들과 부모님들로부터 인기가 매우 높은 어린이집이었다.

쉽게 말해 하던대로 그냥 해도 충분히 잘나가는 어린이집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장님과 사무장님은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하는 욕심이 있으셨고,

그것이 단순히 규모만 커지는 그런 변화 말고, 

근본적으로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하셨다. 

그리고 그 고민의 출발은 아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이에 대해 우리가 제안해 드린 것의 핵심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일상에서 언제든 자연의 변화를 시각적, 촉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과

그 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높이, 위치, 색, 형태의 공간에서 서로 다양한 시각적, 물리적 교류를 하고,

이로부터 다양한 자극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 바로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이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라고 믿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똑똑해서 우리가 예측했던 것 이상의 다양한 방식으로 공간을 즐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다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부딪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아이들은 다칠 권리가 있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은 빨리 깨닫고, 빨리 개선해 나가고, 빨리 치유된다.

아이들은 정말 놀랍다.


얼마전 이렇게 만들어진 늘사랑 어린이집의 이전 및 개원식이 있었다.

많은 학부모분들과 어린이집 원장님들, 

그리고 문경시장과 아동복지 관련 공무원분들이 방문해서 축하해 주셨다.

이 분들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은 대체로 " 아이고~ 애들이 참 좋아하겠네~" 였다

인사처럼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얘기인거 같다

무엇보다 애들이 좋아하는 것, 그것이 가장 바라던 것 이었으니까.


높은분(?)들이 오시면 늘 하는 거, 사진찍기 ㅎ


아이들의 축하공연까지!


멀 이런 감사패와 꽃다발까지 준비를... 정작 이걸 받으실 분들은 바로 원장님과 사무장님!



공사하는 과정에서 시공사로 인해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사무장님이 정말 마음고생하셨고, 

사무장님의 의지와 용기가 아니었다면 프로젝트가 무사히 끝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한참 어려운 시기에 사무장님과 통화를 할때면 전화기 너머로 아이들이 떠들고 인사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이 아이들 때문에라도 빨리 마무리해야지 라는 말씀을 하셨고, 

전해듣는 나도 같은 마음일 수 밖에 없었다.

함께 마무리 하는 동안 인간적으로 많이 배우고, 위로받고, 의지가 되었다.

다시한번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새로 이사한 후 아이들은 역시나 예상보다 훨씬 더 잘 놀고 잘 지낸다.

나는 학부모들도 그러한 아이들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제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 진심어린 관심을 더 많이 가질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Y













 

5월은 정말 힘든 한달을 보내고 있다.

현상 및 각종 마감과 PT를 포함하니 20일 동안 6개 정도의 행사(?)들을 치르며 5월을 달려왔던 듯 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그렇고 사무실 직원들도 모두들 육체적으로 지쳐있다.


그런 와중에 지난주에는 나름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하루는 제출한 현상에 발표를 하러 갔고, 그 다음날에는 현상에 심사위원으로 심사를 하러 갔다.

하루만에 입장이 뒤바뀌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건 늘상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니 특별하다고 할 건 아니었지만

현상심사를 하는건 처음 해보는 것이라 무척 재미있었다.

또한 같이 심사를 하셨던 분들이 훌륭하신 건축가분들이셔서 

어떤 분위기로 어떻게 심사가 이루어지는지 분위기를 좀 익혀봐야겠다 하는 생각도 했다.


개인적으로 네덜란드 사무실에서 있을때 여러 현상에 참여했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현상을 준비하는 방향은 계획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생기더라도 새롭고, 매력적인 요소를 

만들어 내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좀 무리다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저 무난한 안을 만들도록 하진 않았다.

당시 사무실의 보스는 늘 그런 부분을 잊지 않도록 리마인드를 자주 시켜주는 편이었다.

그렇게 해서 얻었던 현상의 결과는 성공률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한국에 돌아와서 올해에 2개를 연달아 하며 지금까지 총 4개의 현상을 했다.

그리고 어떤 소장님들은 2등을 하는게 제일 좋은 거라고 말씀 하시곤 하시지만 어쨌든 주로 2등을 하며

얼마 되지 않는 상금만 따먹는, 그 소장님들의 말씀에 따르면 최상의, 결과였다

그 중에서 심사과정이나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괜히 했다 싶은 것도 물론 있었지만

아무튼 하는 중에 우리가 가졌던 기본적인 방향은 설령 공모제안내용을 좀 어기더라도

"안이 좋으면 된다" 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검증(?)되지 않은 방향을 갖고 현상을 해오다가 

이번에 현상 심사를 하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그 방향이 유효한지를 확인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물론 현상의 성격과 목표하는 바, 물리적 현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의 성향 등등 무척 다양한 요소가 

고려되어 심사되고 결과가 결정되는 것이니 일반화 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느낀 분위기는 최소한 공공기관에서 발주되는 현상에서는 어쩌면 

우리의 원칙은 절반정도만 유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현상에서 결국 당선을 시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가장 문제가 없는 제출안이었다.

물론 좋은 개념과 문제가 없는 것이 서로 공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기에 당선안 중에서 이 둘을 

모두 만족시키는 안들도 있었다.

다만  이것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즉 개념이 재미있는 안과 여러면에서 가장 문제가 없는 안이 충돌하는 경우

결국 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는 것은 가장 문제가(혹은 문제의 소지가 적은) 적은 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심사위원은 심사를 하면서 좋은 안을 뽑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책임감도 가져야 하겠지만,

더 크게는 여기서 결정된 안을 완성시키기 위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돈과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론 사용자의 입장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하고, 사용함에 있어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이 불편함이란 것의 기준이 곧 우리 사회의 건축에 대한 인식수준이고, 이 불편함이란 것에 대한 기준이

다양해 질때, 우리는 더 다양한 개성의 건축물을 갖게 될 것 이다.

어쨌든 지금 현재 요구되는 발주처와 사용자의 이에 대한 인식에 어느정도는 부합되는(문제가 없는) 안이 결국엔 

뽑히게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기회를 통해 발주처의 고충(?)도 나름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고,

심사위원들의 고민도 경험해본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현상을 해야 할까?

아니, 우리는 현상을 왜 할까?


이번에 제출한 사무소들을 보면 같은 사무소가 비슷비슷한 안들을 여러 현상에 제출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당선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선 이해되는 면도 있지만

마치 현상안을 반복생산하고 있다는 느낌을 역시 지울 순 없었다.

현상안을 만드는 것과 당선이 그저 의례적인 행위인 것 처럼.


우리에게 현상은 나름 신성하다.

현상을 한번 하려면 정말 크게 맘을 먹어야 하고, 여러 무리가 따른다.

우리와 사무소 직원들 모두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현상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지금 시기에 할수 있을지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하는 현상이니 우리에겐 그 의미가 크다.


개인적으로 현상은 지금 사무실에서 현재 하고 있지 않은(혹은 할 수 없는) 

스케일과 프로그램을 다루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건축적 사고의 틀을 다양하게 넓히는데 있어 중요한 기회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선 자체가 목표이기 보단

그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안을 만들어 내는 것,

저런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다루어 보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그럼으로써 사무실 능력의 영역이 더 넓고 다양해 지기를 바란다.


현상이 끝나고 당선되지 않은 경우엔 물론 아프다.

그 이유를 이것저것 생각해 보지만 역시나 근본적으론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동시에 현재 진행하고 있는 현장들의 소중함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이 또한 현상의 긍정적 효과가 아닌가 한다. ㅎ


지난 몇달 고생한 사무소 식구들께 감사하며, 

나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실력을 채워갈 수 있도록 더 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다짐한다.


180524 Y




 

학교를 다닐때나 월급을 받고 남의 사무실을 다닐때는 

건축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설계를 잘하고 디자인을 멋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이때 나는 나의 경쟁력만을 고민하고, 나에게 주어진 프로젝트를 어떻게 잘 만들어 낼 것인지만 

(정확히는 학교 선생님이나 사무실 Boss 의 눈에 잘 들게 만들 것인지) 걱정하고 고민하면 되었다

물론 생각해보면 이것도 당시 나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하지만 사무실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것은 나의 경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무실의 경쟁력 이라는 것이다

사무실을 하기 전에는 나를 평가하는 것이 나 개인의 경쟁력이었다면, 

지금 나를 평가하는 기준은 (혹은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무실이 만드는 결과물과 사무실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무실의 경쟁력 이라는 것은 단순히 설계를 얼마나 잘하고, 디자인을 얼마나 잘 하느냐 를 넘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떻게 좋은 프로젝트를 만나고, 설계를 잘 하고, 그 결과물을 어떻게 현실에서 잘 만들어 내느냐하는 수많은 단계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 단계들에 담긴 수많은 시간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에는 할 필요가 없던 고민들을 어쩌면 설계를 고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쓰며 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다

, 사무실을 어떻게 하면 더 경쟁력있고, 에너지가 넘치고,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이다

여기에는 수 많은 요소가 있다

먼저 어떻게 하면 건축주들에게 우리를 잘 알릴 것이고 소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

다음으로 설계를 하는 동안 어떻게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을 끄집어 낼 것이냐 하는 고민들

그 과정에서 직원들을 어떻게 더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이냐

우리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건축주와 어떻게 협의해 갈 것이냐

어떻게 좋은 시공사를 선정할 것이냐

현장 감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할 것이냐 등등 

작은 집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 프로젝트를 잘 완성하기 위해서는 사무실이 갖춰야 하는 수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능력들을 어떻게 사무실이 갖춰갈 것이고, 장기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더 보완해 갈 것이냐에 

대한 고민들을 계속해서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들은 대부분 사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작은 사무실에서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많은 변화를 의미한다

사람이 늘어나면 당연히 가장 먼저 그 사람들이 해야할 프로젝트가 있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프로젝트가 있으니 그에 따라 사람이 늘었겠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반대로 사람이 있으니 프로젝트가 필요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게 해서 프로젝트수가 사람에 맞춰 늘어나게 되면 단순히 일이 많아지는 물리적 현상을 떠나 앞서 언급했던 

많은 가치들에도 영향을 준다

예를 들자면 일의 양이 많아지다보니 각자가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서로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가 부족해지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전보다 

사무실 내부의 활발한 소통과 활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의 저하는 새로운 생각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이 프로젝트의 완성도 저하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내부 시스템과 의사소통 방식이 필요하다

우리도 이러한 현상을 파악하고 이를 위한 시스템을 여러가지로 고민해 보고 시도해 보는 중이다

물론 어느 경우든 변화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사무실이 어떤 특성의 사람들로 구성되어지느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그 중에서 가려서 뽑는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고 느낀다.

첫 직원을 뽑은 이후로 약 4년동안 사무실의 식구가 10여명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사무실에 필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 보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객관적이지 못했고 계획적이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사무실 구성원들의 능력이 중복되기도 하고 비슷한 유형의 친구들이 겹치기도 한다

따라서 사람은 적은 편이 아닌데 작은 사무실에 요구되는 다양한 성격의 프로젝트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성과 탄력성에서 한계를 느끼거나 아쉬울 때가 많다.

 

따라서 이처럼 사무실에서 부족한 역량들을 채워가기 위해

그래서 사무실의 효율을 더 높이기 위해 현재 사무실의 친구들에게 변화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 목적 혹은 욕구와 충돌하지 않을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 혹시나 사무실의 필요와 개인의 욕구가 서로 상충된다면 개인의 희생을 무조건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이 "사람"에 대한 고민은 현재도 가장 진지하게 하고 있는 고민 중 하나이고,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이다

결국 사람이 전부인 소규모의 건축사사무소에서 이 사람의 변화는 모든 변화에 관계되고, 

이는 결국 사무실이 앞으로 어떤 형태와 운영방식과 방향을 가지고 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와도 이어진다

건축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사무소라는 단어와 연결되어지다 보니 효율과 운영이라는 또 다른 관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근 조소장과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좀더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시스템을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에도 내부적으로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더해 어떤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뽑을 것이고,

그 후에 구성원들에게 꾸준히 긍정적인 동기유발을 할 수 있는 인사체계가 무엇일지도 고민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과연 모두가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라고 믿고 뭐라도 시도해 보려한다

학교다닐때 이런 것도 좀 가르쳐줬으면 좋았을 텐데 ... 


P.S 그 동안 모텔에서 자온 밤들이 적지 않은데, 여전히 모텔에서의 잠자리가 편하질 않다

숙면을 취했다는 기분을 갖질 못하고, 오늘도 결국 새벽에 잠이 깼다.

이상하게 목과 눈과 종아리가 너무 뻑뻑하다.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듯이, 생각나면 뭐라도 써보자 라는 심정으로 뭐라도 썼는데 내가 다시 읽어봐도 

뭐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 땡기는 뒷목을 부여잡고 쓴 글이기에 아까워서 지우진 못하고 그냥 올리기로 했다.


171129 김해 짬모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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