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서로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쟤가 나한테 할말이 있는 거 같은데..."

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올 한해를 그 어느해 보다도 숨가쁘게 달려온 상황에서

왠지 사무소 식구들이 우리에게 할말이 있을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잠시 여유가 있을때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뒤풀이나 회식이 아닌, 진짜 workshop 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해동안 가져온 

우리의 고민과 걱정, 우리가 생각하는 내년, 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무실의 미래를,

그 불확실한 얘기들을 과감히 입밖으로 내고, 그렇게 공유하고, 그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그들의 의견을 모으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무실의 모습으로 좀 더 다가갈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사무실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새로운 생각들을 모아내기 위한 시스템을 늘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7년이 넘는 시간동안 늘 시도하고, 바꿔보고, 실패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힘을 더 믿는 편이고, 

그것이 오랫동안 사무소의 에너지가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꾸준히 얘기해 왔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혹은 빠른 시간에 사무소의 주역이 우리가 아니게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자리에서 다시금 우리의 생각을 교환하고 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구성원 각자의 의지와 적극적 태도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아마도 내가 

더 열린 자세와 낮은 자세를 갖는 것인거 같습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각 자가 힘들었던 사연들은 개인적으로 따로 듣고자 했습니다.

오늘은 내년을 위한, 더 길게는 5년 후, 10년 후를 위한, 모두가 해야하는 얘기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무소 내부적으로 약간의 시스템과 구성의 변화를 갖고자 합니다.

이는 역할의 변화이기도 하고,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한 변화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사무실을 해온 지난 시간동안 

꾸준히 성장하며 자산이 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가급적 그렇게 성장해 주길 바라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늘 어렵고 불안하다고 느껴왔지만, 

올해는 어느해보다도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럴때 일수록 눈앞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반대로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년엔 또 큰 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됩니다.

우선 짧게는 내년 여름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에게 예정된 변화를 잘 즐겨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Y

 

점심먹으면서 부터 얘기는 시작, 지은이 식욕터짐!
점심이후 약 5시간의 토론(?)
저녁은 양갈비! 사장님의 입담과 영업에 멘탈나가서 배터지는 줄도 모르고 막 지름;;;
저녁식사 후 다시 뒤풀이(?), 50만원짜리를 호기롭게 주문했다가 아쉽게 지금 없다고 해서 참 다행 ㅋ, 꿩대신 닭

사무실에서 마포방향으로 총 네 군데를 약 10분거리 만큼씩 동쪽으로 이동하며 약 12시간을 보냈습니다. 

절묘한 동선이었습니다 ㅋ

사무소를 꾸려오면서 돌이켜보건데, '실수'라는 녀석과 늘상 같이 있어왔고, 따라왔다. 완전히 떼어놓고 싶은 심정이긴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길리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실수를 아예 없애기보다는 어떻게 관리하고 같이 지내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사무소를 차린지 몇 해 되지 않을 때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아주 팡팡 여기저기서 터지곤 했다. 사무소는 바람잘날이 없었다. 그제서야 등에 흐르는 식은땀과 온몸에서 느껴지는 쭈뼛한 감각을 느끼며 실수를 수습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물론 그때마다 괴로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프로젝트를 다루는 규모가 크지 않았고 그 안에서 생기는 소소한 실수들은 역으로 사무소의 경험과 자산으로 남았다.  나이가 들어 무엇인가를 학습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식은 땀 흘리고 나면 학습이 되었다는 것보다는 소위 뼛속에 새기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러고 나서도 같은 실수를 한 적도 있긴 하다...)

 

이런 실수를 하는 내 자신이 너무 싫기도 해서, 이걸 어떻게 잡아놓을까 하고 전전긍긍해왔다. 꽤나 꼼꼼하게 내용을 검토하고, 주변에 물어보고 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으나, 이러고 있자니 업무시간이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비슷한 프로젝트에서도 문제가 없었고, 그러니 비슷하게 진행하자고 하면서 대충하자니 나중에서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사고가 나기도 한다.

 

이렇게 최근까지도 (바쁘다는 이유로) 그때그때 상황을 모면하고, 상황을 떼우는 무한반복의 굴레에 있다가 실수라는 것을 좀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일단 정체를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 말이다.

 

일단, 왜 이렇게 실수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되었을까.

이 글을 읽는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지 뭘 그리 예민하게 구느냐고 할 수도 있다. (내가 예전에 그랬다.) 내가 혼자 처리해야하는 업무를 하다가 발생하는 사소한 실수들은 사무소에 큰 영향 보다는 사소하게 영향을 미친다. 자잘한 실수들이 크게 한방으로 오기보다 업무의 비효율이나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것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게 사무소의 입장에서 시시각각으로 중요한 결정들을 해야하는 입장에 서다보니 실수라는 것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신뢰와 직결되었다. 특히나 주택이나 근생과 같은 소규모 건축물에서 건축가의 역할은 프로젝트의 코어에 자리잡는다. 직접적으로 건축가가 해야하는 수많은 판단들도 있겠지만 건축주 또는 시공사에게 자문역할을 하고 그들의 판단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생기는 실수로, 건축주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라면... 생각만 해도 눈이 질끈 감긴다...

 

그러면 실수가 없다면 좋은, 잘만들어진, 놀랄만한 건축을 할 수 있는가. 그건 당연히 아니다. 그건 자연스레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 다른 건축가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무엇가를 찾아보고,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 사무소가 추구하는 건축의 정체성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각각의 프로젝트마다가 다양성과 특별함을 찾는 과정이 실수를 더 만들어내는 상황을 연출한다. 아, 이 아이러니함이라니. 

 

그러면 실수는 언제 어떻게 슬그머니 우리를 찾아오는가. 

'하인리히의 법칙'과 같은 것을 거창하게 꺼내들지 않아도, 대형 실수가 터지기 전에는 여러 징후가 보이기 마련이다. 어렵게 말할 것도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갑자기 느껴지는 뭔가 쎄~한 느낌이 있는데, 이러면 뭔가 있다고 보면 된다. 결과적으로 뭔가 없다고 하더라도 짚고 넘어가는게 맞다고 본다.

회사 다닐적, 4년차때 선배 대리님이 해준 얘기가 2가지가 있다. 실무는 아직 저년차라 하더라도 건축에 몸을 담근지 그 정도 됐으면, 뭔가 쎄~한 느낌받으면 그거 잘못되어가고 있는거니 팀원끼리 크로스체크해보면서 짚고 넘어가라는 얘기다. 그 당시에는 쎄한 느낌이 가끔씩 왔었는데, 실무연차가 올라가고 소장이 되면서 자주 쎄한 느낌을 받긴하지만..... 신입이라하더라도 아닌 거라고 느껴지는 거는 진짜 아닌거다. (물론, 신입이 정말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촉을 세우고 있는 것에는 박수를 보낼만 하지 않은가)

다른 해준 얘기는 실무 10여년차 넘는 뭔가 프로페셔널한 고년차 형님들도 다 알고 있는게 아니고, 알고 있는게 틀릴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니 저 사람이 하는 얘기는 다 맞구나 이러고 지나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두가지 얘기에는 실수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담겨있다. 

 

그리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 너무 과몰입되어 있거나, 또는 영혼없이 모델링이나 캐드를 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자신의 일에 대한 촉을 세우고, 이게 잘 흘러가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본다.

(이러면서도 잘 실천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실수를 줄이기 위해 몇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다.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오답노트를 만드는 것처럼 식은 땀흘린 실수를 아주 상세히 적어서 실수노트를 사무소 내에서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 건이 자주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자주 생겨서도 안되고) 이것만은 사무소 식구들이 꼭 알고 스스로의 프로젝트를 돌아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고 상황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나 조차도 같은 실수에 빠질 수 있으니 말이다.

 

또 하나는 그 동안 미비하였던 법규체크리스트를 정비하였는데, 그 목적은 잘 정리되고 꼼꼼하게 법규를 보자는 목적은 아니다. 아주 사소한 실수라도 하나하나 기록해서 각각의 법규항목에 해당되는 사무소의 실수들이 적혀있어서, 정말 최소한은!!! 같은 실수를 두 번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건축이라는게 규모와 프로그램이 하도 다양해서 각각마다 검토해야할 사항들이 아주 복잡다단(x100)하다. 그래서 실수라도 검토해야할 사항을 까먹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참고로, 헬리포트의 설치기준도 체크리스트에 추가해놓았다. (헬리포트는 11층이상의 바닥면적 합계가 만제곱미터 이상인 건축물 옥상에 설치한다. ㅎㅎㅎ)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간단히 이야기를 줄이면 실수 좀 줄이면서 프로젝트 하고 싶다는 것이다.

 

 

내일은 무슨 사고가 생길지 걱정하면서

J

건축을 하면서 건축가라는 직업이 갖는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다양한 직업과 분야에서 일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인격의 사람들과 건축이라는, 

어쩌면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큰 이벤트를 겪어 나가다보면 그 사람을 깊이 있게 겪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건축주분 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때가 있다. 

다양한 인생공부를 압축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배움에는 타산지석의 의미도 포함이 된다.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건축주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나쁜 점이 될 때도 있다. 

건축을 하지 않았으면 만나지 않고 살아도 좋았을 것 같은 분들을 만나야 되는 건 힘든 일이다.

 

건축주분들 중에서는 돈을 버는 것에 특별한 재능을 갖고 계신 분,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계신 분, 

알만한 연예인, 

유명한 예술가 등 다양한 분들이 계셨지만 오늘은 사람을 다루는 관점에서 건축주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이 '사람을 다룬다는 것' 에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 인간에 대한 생각, 더 나아가 삶에 대한 자세가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 범주에는 당연히 건축주가 건축가를 다루는 방식도 포함되어 있다.

 

그 동안 만난 건축주 중에서 어떤 분들은 보면 참으로 영리하시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분들 참 사람을 영리하게 다루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영리하게 다룬다는 말의 의미는 사람을 전혀 기분 나쁘지 않게, 그렇지만 그 일에 최선을 다하게 만들고, 

스스로 책임감을 갖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이런 분들은 설계하면서부터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한번도 싫은 소리를 기분 나쁘게 하신 적이 없으셨다. 

아쉽고 서운한게 있으셔도 일단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유가 있었을 거란 생각을 전제하시고 본인의 생각을 말씀하신다.  

이 분들은 수 많은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의견은 주시지만 언제나 건축가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셨다. 

가장 많이 들었다고 기억하는 말이  저희는 소장님만 믿어요, 소장님이 의견주시면 그대로 할께요 등의 말이었다. 

그리곤 말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결정을 하셨다. 

그렇게 해 주시니 건축가로써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고, 

어찌 그 책임을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잠을 자다가도 갑자기 혹시 이거 놓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어서  식은땀이 났던게 몇번이고 있었다. 

그 만큼 프로젝트에 대해 자발적으로 더 고민을 하게 되고, 건축주의 그 믿음 가득한 눈빛에 보답하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엔 나름대로 최선의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따져보니 아쉽고 부족하고, 늘 더 잘하지 못한 것에 죄송한 마음을 갖게 한다. 

사람에게 기분 좋은 부채의식을 갖게 하는 재주가 있으시다. 

 

이러한 것이 비단 건축가에게만 그러신 것은 아니다. 시공사를 대하는 태도에도,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기본적으로 존중이 있다. 

그렇다보니 건축주가 몇몇 수정을 요구하는 사항들이 있어도, 

이 건축주분이 수정을 요구하실 정도면 정말 마음에 안드셨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공사도 건축주에게 기본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 

마무리하면서 건축주의 요구에 큰 이의없이 대응을 해주게 된다. 

결국 건축이라는 것은 온전히100 퍼센트 수제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공사와 작업자들에게 내 집인 것처럼 만들겠다 라는 마음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다만 일하는 과정에서

돈을 받았으니 그 만큼만 빨리 해치워버리고 가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과

돈은 돈이고 이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존중받고, 자부심이라는 것을 갖고, 그런 마음으로 손길 한번 더 가게 일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경우에는 프로젝트를 매우 수동적으로 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수동적으로 대처한다는 의미는 건축주가 불만을 갖지 않을 정도에서 고민이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딱 그 정도의 고민 이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앞선 경우가 이 믿음을 통해 건축가를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고, 

그래서 더 좋은 것다른 것을 고민하고 제안하게 되는 경우라면

이 경우는 이 믿음이 없기 때문에 건축가가 굳이 주어진 일 이상의 수고와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된다. 

이러한 분들은 기본적으로 건축가가 제안하는 것이나 건축가의 판단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신다.

모든 것을 본인이 다시 찾아보고 결정한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 결정이라는 것이 건축가의 입장에선 매우 단편적이고 아쉬울때가 많다. 

건축가가 생각한 스토리와 조화로움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런 분들은 작은 아이템 하나하나까지 본인들이 고르고 결정한다. 

아쉬운 것은 이 경우 아이템 하나하나 만 보고 전체가 만드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신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의견을 드려도 좀 처럼 이해하지 못하신다. 또 이런 분들은 여기저기다 조언을 구하시고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얘기를 들으신다그리고 대게는 그런 얘기들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 조언이라는 것들이 대부분 단편적이고, 일반적이고, 때로는 틀린 얘기들도 많다. 

심지어는 시공사도 잘 믿지 않는다. 

 

이런 분들 중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혹은 본인이 생각하는 데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우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고, 그 다음엔 그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그 잘잘못 부터 따지려고 한다. 

세상의 대부분의 일이 그럴 것이고, 마찬가지로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공정들을 나눠 수행함으로써

완성하는 현장에서도 그것이 누구 한 사람만의 잘못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런 분들은 과거에 잘못된 일이 왜 발생했는지 그 책임을 찾는데 우선 에너지를 쓰고, 

왜 미리 예방하지 못했는지 그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둔다. 

발생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서 본인은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러니 건축가도 시공사도 그저 문제가 될 만한 것은 하지 않으려 한다. 

건축주에게서 불평이 나오지 않는 선에서 서로 암묵적으로 동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건축가도 시공사도 건축주라는 가이드라인 안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 경우 건축은 딱 건축주가 생각하고 있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을 다루는 측면에서만 보면 영리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돈을 써도 누구는 건축가가 자발적으로 가진 능력 이상을 발현하도록 하고, 

누구는 갖고 있는 최소한의 능력만 쓰게 만든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게 어디 건축주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이겠는가.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겠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의 능력여하에 따라 일이 잘 되고 안되가 결정되는 것이 큰 곳 중 하나가 건축사무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우리 사무실의 구성원들에게 가진 것 이상의 능력과 애정을 발현할 수 있게 하고 있는가? 

나는 영리하게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건축주를 통해 여전히 배울게 많다. 

 

PS.

최근에 한 프로젝트와 설계를 진행하던 중 타절을 했다. 

미팅을 할 수록 점점 우리가 수동적으로 되어 간다는 것을 느꼈고, 

건축주와의 미팅이 점점 재미가 없어져 갔다.

전에는 그래도 꾸역꾸역 해서 마무리를 했지만, 그 과정 내내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왠지 앞서 얘기했던 경우가 될 거 같았다.

건축주는 잘 믿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만 가려하고, 

이런 경우 지금이야 그나마 괜찮지만, 현장이 열리고 나면 정말 괴로운 경우가 생긴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이 프로젝트를 그럼에도 꼭 해야하는 이유가 있는지 생각했을때,

이런 마음으로 계속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건축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거 같았다. 

또 하나를 배웠다.

  

 Y

우선 앞의 일부내용은 '건축가로 독립하기 : 3장 '성장하기'_ 직영공사 1' 에서 올렸던 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한꺼번에 읽는게 조금이나마 흐름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입니다.

 

사무실을 시작하고 첫 건축 프로젝트였던 강진의 지역아동센터와 벌교 뽁이집은 원치 않았 직영공사 였다. 

 왜 이 프로젝트들이 직영공사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는지는 다른 여러 에서 설명을 하기도 고, 

대략 상황만으로도 추측 가능 하시리라 다. 어쨌든 그 이후로도 의  Low Cost House 프로젝트들을

직영공사처럼 진행을 했다. 엄밀히 하자면 "반 직영" 도였다고 할  지만 어쨌든 늘 현장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지막으로 했던 "반 직영공사" 가 부암동 House 였다. 여기서 "반 직영"이란 시공을 시공사가 아닌

시공팀 정도와 함께 하면서 돈 관리를 리가 하고, 현장 관리는 그 시공팀의 반장님께 약간의 자율이 어지는

그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복잡하면서도 체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했다는 의미이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여러가지 우여곡절끝에 정말 사무실이 개업하자마자 금전적으로 파산일보 직전까지 가는 참사와 

덕분에 현장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을 파야하는 보람된(?) 상황을 마주하게 었었다.

낮에 현장에서 일하고 오후에 사무실로 돌아와 사무실 장실에서 매일 샤워하는 눈물나 들이 있었다.

그 후 다시는 직영공사를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사실 직영공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매력적이다. 

히나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하나하나 만들어져가는 을 보며 흥분하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라서  언급한 그런 경제적, 체적 고됨은 그 기쁨에 하면 할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고됨보다 더 로운 것은 로 공사가 끝나고 나서다.

공사란 모름지기 끝나고 나서 몇  잔손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그런 것처럼 끝나고 나서도

자잘한 (로는 !) 하자들이 생한다. 공사를 한다는 것은 끝나고 나서 발생하는 제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공사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도 있고, 그 만큼의 이윤도 적에 있을테고, 무엇보다

하자보수도 무의 하나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무척이나 괴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공사에서 이윤이 지 않아서 였기도 하고, 그럴만한 인력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들었던 것은

프로젝트가 끝났는데도 끝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한정된 인력으로 로운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자보는 데에 에너지를 으니 사무소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직영공사란, 특히 건축공사는,  좀 더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후 사무소의 대부분 프로젝트들은 시공사를 해 진행이 되었고, 우리는 그저 직영공사 하듯이 리를 나갔다. 

시공사들과 작업을 하며 은 것을 배웠다. 그 중에선 정말 장인과도 은 시공사도 있었고, 처음엔 작은 시공사였는데 

같이 일하면서 같이 장해가는 듯한 시공사도 있었고, 눈에 보이는 마감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적인 기능에 더

집중하는 시공사도 있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장단점을 고 있지만, 시공사들은 어쨌든 전문가이다. 

시공에 관한한 사무소 컴퓨터 앞에  리로 생각한 우리보다는 훨씬더 현실적이고 물리적이다.

따라서 시공사를 단순히 건축가의 지시를 이행하다는 집단이 아니라, 또 다른 파트너이자 전문가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하우를 공유하려고 노력해 다.

그 과정에서 여러 시공사로부터 서로 다른 점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늘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들이 있었다.  

정말 이 작업에 이 정도 금액이 들어갈까?, 공사 순서대로 차근차근 하면 될텐데 왜 순서를 뒤죽박죽해서 일을

복잡하게 할까? 왜 다음 공정에서의 작업 내용을 미리 고려해서 작업해 지 않아서, 뒤에 가서 시공을 하게 만들까?

마감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해야 되는데 왜 그렇지 못할까? 왜 이렇게 현장은 지저분 한가?

왜 건축주와의 의사소통이 명하고 원활하지 못할까? 등 의 금증과 아쉬움들이 마음속에 있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다 는 거 같다.

우리가 직접하면 저런 부분들은 더 잘 할 수 있을거 같은데 하는 건방진 생각들이 자꾸 불쑥불쑥 들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직접 공사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나는 용인 House 이고, 이는 건축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하나는 부산의 치과인테리어 프로젝트, 

마지막 하나는 건축도 인테리어도 아닌 방배동 한 주택의 마당을 Remodeling 하는 프로젝트 였다. 

이 프로젝트들에 대해 다른 얘기를 하기 전에, 

혹시 결과적으로 직영공사를 다시 또 할거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지금으로선 다시 하고 싶진 않다. 

물론 어떤 사무실들은 인테리어공사들을 직접하면서 잘 운영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보면 어쩌면 우리의 경험이 

단편적이고 또한 역량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다. 다만 몇 번의 직영공사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리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 또 우리가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용인 House, 부산의 치과인테리어, 방배동 리모델링의 프로젝트들에서 느끼고 겪은 것은 앞서 겪었던 것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문제와 비슷한 즐거움이 반복 되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공사비를 넉넉하게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건축주가 예산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우리가 전문 시공사도 아니고, 공사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도 많을텐데, 경험도 부족한 우리가 공사를 통해

이윤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시공사를 보며 늘 공사비 라는 것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이를 통해 건축주와 

신뢰를 쌓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즉 건축주와 우리가 모두 돈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면, 공사하면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비용들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공사를 하다 보면 거의 매 공정마다 

늘 생각하지 못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들이 발생하고, 작성한 견적서보다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드는 공정은 거의 없었다. 

견적서를 작업자분들께 받은 금액 그대로 반영을 해 놓다보니, 조그마한 변동에도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상황들을 건축주가 일일이 다 이해하느냐 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건축주는 어쨌든 어떤 방식으로

견적서가 작성되었는지, 어떤 사유로 추가금액이 발생했는지를 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처음 준 견적서 이외의 금액이

나오는 것을 불편해 할 뿐이다. 나름 대로는 시작하면서 설명을 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건축주가 이해한 것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건축주의 조그마한 요구사항이나 불평도 부담스러워지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돌발상황들이 모두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왔다이것은 공사가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입주 이후에 생기는 크고 작은 하자들에 대해 연락이 오는 것

그 자체로 모두 스트레스고 이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사무실을 너무 힘들게 하였다.

 

이런 상황을 다시금 반복해서 겪으면서 지금 겪고 있는 이 스트레스가 과연 생산적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어떤 때는 직영 공사로 인해 겪는 경제적 스트레스, 건축주와의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들이 정신을 지배하고, 

그로 인해 정작 우리가 해야하는 설계에 집중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설계를 고민하는 시간을 즐겨야 하는데, 어떤 때는 마음이 파괴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영공사가 주는 매력은 여전하다. 도면이 아닌 현장에서 작업자와 직접 소통하며 만들어 내는 하나하나는

이런 경우가 아니면 느껴 볼 수 없는 건축의 또 다른 즐거움이자 쾌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때는 여전히 설계를 하고 있을 때이고, 우리가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그래서 더 나아지고 싶다고 늘 갈망하는 것 또한 건축설계이다.  따라서 직영공사라는 것이

이러한 우리의 즐거움과 나아감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우리는 직영공사를 앞으로는 그만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건축가가 현장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무실 컴퓨터의 모니터 안에서 그려지는 도면이 현장에서 작업자들의

손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를, 각 재료가 어떤 가능성과 한계가 있는지를  아는 것은 건축의 또 다른 단계이고 수준이다

이 과정 안에서 또 다른 창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직영공사는 배울 것이 많다.

물론 어떤 분들은 우리와 달리 직영공사를 통해 돈을 벌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공사를 직접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많은 책임을 지는 것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많은 것들을 최종적으로는

결정해야 하고그 경제적 물리적 책임도 고스란히 혼자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은 일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글 끝에 더해서 작년 초에 멀리 김해에서 했던 직영공사로 인해 지금까지도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자세한 얘기를 지금 쓸 순 없지만, 처음에는 받지 못한 돈으로 인한 금전적인 손실이 고통이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니, 우리 나름대로는 건축주의 여러 어려운 상황들에 최대한 맞춰보려

돈을 나중에 주겠다는 약속만 믿고 공사를 진행했는데, 그런 마음에 대한 배신을 생각하니 

그 인간 자체에 대한 미움이 훨씬 더 괴로웠다.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 크게 와 닿던 돈의 문제는 

조금씩 조금씩 해결되어 가는 거지만, 그 마음속에 생기는 증오는 시간이 지날 수록 커져갔다.

서로가 모든게 만족스러울 순 없는 거겠지만,

우리는 언제나처럼 진정을 다 했고, 그 진정성과 노력에 대해

부정당하고, 한편으론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속 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증오가 나의 손끝과 머리속을 침식해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순식간에 돌변한 그 태도에 어떻게 하면 복수 할 수 있을까가 머릿속에서 하루종일 맴돌기도 했다.

결국 이 증오가 나를 망가트리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내가 감추고 싶다고 해서 감추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주변으로부터 깨달았다. 

그리고 고맙게도 조소장이 함께 짐을 나누어 가져가주면서 그 증오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닌 둘이 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 계기이며, 시간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직영공사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하면서,

또한 아주 익스트림한 일들을 겪으며 우리가 한정된 능력과 에너지로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고민을 모아야하는 지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일상의 시간에 대한 감사함을 배웠다. 

어쩌면 그것이 직영공사를 통해 얻은 가장 값진 보상인지 모르겠다.

 

Y

 

 

 

   




 

내가 건축을 얼마나 오랫동안 배워왔는지를 따져보면

시작이 대학교부터이니 계산해보면 부끄럽지만 거의 20년 가까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결과로서 내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가 있는가?

혹은 어느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어찌된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다만 어쨌든 숫자로 따져 20년 가까이,

그 과정으로 보자면, 대학교, 유학, 외국살이, 사무실 개소 후 실무 라는

다양한 과정들을 겪어오며 내가 얻은 것들을 다 잘라내고 가장 밑바닥의 딱 한마다로 하자면

'건축에 정해진 답은 없다' 라는, 초등학생도 알만한, 결론을 진심으로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건축에 정해진 맞고 틀리고의 절대적 기준도 없으며,

그래서 맞고 틀린 방법론이라는 것도 없다는 것이고,

설령 과거에 작동하던 방법론도 지금 유효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설계에 있어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와 조건들이 무엇인지 세심히 살펴야 하며,

그 과정이 일관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스스로 계속 확인해 봐야 한다

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생각을 구축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고,

그 생각을 흩트리지 않고 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결국 건축이라는 형태로 이어지게 하는

과정이 결국 설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누가 더 혁신적인 생각을 구축하느냐가 결국 다름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나의 대학교때를 돌이켜보면 설계수업을 들으며 

가장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 바로 이런 훈련의 부족함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들의 말씀은 정답처럼 여겨졌으며, 교수님들이 주시는 피드백은

이건 틀렸고,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 건축은 이거다, 건축은 이런게 맞는거다 라는

결론이 대부분 이었다.

그래서 내 생각의 부족함과 발전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고,

교수님들이 주시는 답에 맞춰 수정을 하며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모든 분들이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대체로 분위기는 그러했다.

 

작년부터 학교에서 4학년 학생들과 설계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기준을 세웠던 것은, 그리고 학생들에게 주었던 말은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그리고 경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나의 관점을 갖고, 그 관점을 발전시켜 보는 과정을 밟아보는 것이라는 말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생각이 건축이 되는 그 과정을 하나하나 경험해 보는 것,

이것이 설령 후에 건축을 하든 안하든, 어느 일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나는 그 과정을 각자가 어떻게 전개해 나가는지에 관심을 둘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나의 의견이 맞고 틀리고의 기준이 아니고, 각자의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흩어지지 않고 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이것이 맞는지 아닌지가

모든 결정의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리되면 학생들은 도시를 분석할때부터,

그 안을 구성하는 하나하나를 우선 세심하게 살펴야 하고,

다음으로 고민해보고 판단해야하며, 

그 과정에서 또한 선택을 해야하고,

더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열해야하며, 

그것들에 대한 본인의 관점을 결정해야한다.

그리고 나면 이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필요하고,

최종적으로 건축이라는 형태와 공간으로 변이되는 과정을 겪어내야한다.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이 고민의 대상이고, 모든 것이 판단의 대상이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없다. 

정해진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나도 여전히 잘 하지 못하는 것을 학생들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 순간 되면 잘해지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하는 한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숙명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어려워도 시작해보길 바랬다.

나도 학생들도 서로 부족했지만 함께 어려우니 좀 낫지 않았을까?  

 

1년 반의 수업을 마치고 학교수업은 그만 두기로 했다.

한 학기든, 1 년이든 쉬었다가 돌아오시라는 말이, 빈말이라도, 감사하긴 했지만,

수업을 하는 지난 시간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사무실일에 쓰는 시간과 관심이 물리적으로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양쪽에서 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다시 사무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무실에 집중해도 늘 부족하고 간당간당하니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이 어쩌면 사무실의 변화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도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사무실은 언제나 그때그때가 가장 어렵고 중요한 순간이긴 했다 ㅠㅠ)

 

수업을 하는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에 대한 사명감이 있지 않으면,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겁지 않으면,

오랫동안 하기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대학시절

대단한 인내와 끈기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가르침을 주신 당시의 우리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

 

지난 1년반의 시간동안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이었는지 돌이켜보면

아쉬움과 미안함이 크다.

작년에 수업했던 친구들이 올해 졸업작품을 하는 걸 보며,

그 성장에 뿌듯하고 설렘이 있기도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어렵지만 얻는 보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수업을 그만 두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그 동안 좋은 기회를 주셨던 학교와 교수님들께 감사드리고,

부족하지만 함께 해준 학생들에게 또한 고맙다.

 

Y

 

우리가 사무실을 시작하고부터의 약 7년, 그 이전 약 2,3 년을 더해도 지난 약 10년의 시간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특이했던 기간 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상 이런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집이라는 것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짓는 꿈을 꾸고, 또 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이에 더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집 혹은 건축에 대한 수 많은 책과 잡지가 인기를 얻으며 일반인들의 관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방송에서도 또한 집 혹은 인테리어는 주요한 소재 중 하나로 다루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인들의 집 혹은 거주 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꾸게 해 주었고,

집을 재산증식의 수단에서 원하는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인식하게 해 주었다.

이에 더해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정권은 경기부양을 위해 건설을 적극 활용하였고,

그 결과로 엄청난 돈을 대출을 통해 시장에 풀기 시작했다.

일명 빚내서 집사라 라는 구호는 비단 아파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고, 한없이 낮아지는

대출금리는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 수익을 위해 빌딩을 지으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건축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에 더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나이와 패기로 무장한 수많은 건축가들이 건축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이들은 일의 규모, 종류, 영역을 가리지 않고 그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 있었다.

(물론 여기엔 몇몇 대형사무소의 부도도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지난 약 10년의 시간은 소규모 건축시장의 호황 아닌 호황의 시기였고,

건축사무소는 그 규모와 형태에서 다양화 되었다.

 

하지만 2019년 올해는 어떠한가.

정확한 통계를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여러 기회로 만나뵙고 얘기들은 사무소 소장님들을 통해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해 보건데 최소한 지난 10년,

아니 작년 혹은 재작년과 비교해도 확실히 나빠졌다는 것 만은 확실한 듯 하다.

대부분의 아뜰리에들이 활동하던 민간 소규모 건축시장은 강력한 대출규제와 부동산법,

그리고 높아진 대출금리로 사실상 거의 죽었다고 표현할 정도가 되었고,

그로인해 많은 사무소들이 수주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이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란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지난 약 10년간의 그 엄청난 대출과 그로인해 시장으로 풀린 돈은 표현하자면

미래에 쓸 돈들을 다 끌어모아 한 순간에 쓰게 만든 것과 마찬가리라고 생각한다.

그로인해 그 한 순간에는 건축시장이 호황처럼 보였지만, 그건 마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한 순간에 폭발시켜버리고 마는 그런 결과가 된게 아닌가.

1500조가 넘는 가게부채가 의미하는 것이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겪은 것과 같은

민간건축시장의 활성화는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란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약 10년의 시기동안 사무소를 시작하고,

그 시기를 경험한 우리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소규모 건축시장만으로 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수주를 할 수 있었고,

현재 하는 일을 충실히 하는 것 만으로 내년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 7년과 같은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 또한 이전과 비교해 확연히 줄어든 상담 건수를 통해

민간시장의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고 있고,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10년은 그 이전의 소위 기성세대라 불리던 건축가들이 활동하던 시대와는 달랐다.

그 이전 기성세대 건축가들은 그래서 한때 왜 건축가들이 이런 작은 건축시장에서 활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도 직간접적으로 들은 적도 있다. 

그들이 활동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지난 10년의 시기에 수 많은 건축가들이

작은 주택, 작은 건물, 인테리어 등등을 하는 것이 탐탁치 않았을 것이고,

거대한 건축적 담론이나 건축적 철학 등을 얘기하는 않는 건축가들이 패기없어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뜨거웠던 이슈가 바로 "생존" 이라는 단어 일만큼 경쟁은 녹녹치 않았고,

예전과 같이 어설픈 건축적 담론이나 철학을 얘기할만큼 건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높이는 만만치 않았으며,

건축가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시대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대형 프로젝트가 넘쳐나던 시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어쩌면 지난 10년과는 또 다른 시기일 수도 있다.

지난 10년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 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만큼 더한 경쟁과 생존의 시대가 될 수도 있다.

늘 변화하고 나아져야하고, 또한 그것이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

그러려면 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의 내부적 여건과 역량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못한 사무소는 어쩌면 언제든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 무척 흥분된다.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불안정하지만, 그것이 불안하면도 동시에 흥미롭기도 하다.

지금 이 시기에 집중해야하고, 이 시기에 미래를 향해 신경을 곤두세워야하고, 

변화를 채찍질해야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시장을 또한 찾아야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걸 보여주어야 한다.

이 모든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Y

 

 

건축 디자인이 주는 가치를 당장 돌아올 수익으로 환산할 수가 있을까? 

공항대로변에 위치한 땅에 들어선 이 건물은 건축주가 처음부터 당연히 임대를 위한 목적으로 땅을 매입했다. 

따라서 건축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임대가 잘 나가는 것 이었고, 특히나 건축주는 병원들을 모아 건물을

소위 메디컬타워로 만들고 싶어했다.

다만 시작할때 이 건물의 목적에 대한 부분에서는 모두가 동의를 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식에서는

서로 생각이 달랐다.우리는 기본적인 면적을 충족한다는 전제하에  공항대로에 면해 있는 건물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을 만드는 것, 더 나아가 비슷한 상업용 근생건물과는 다른 공간구성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즉, 우리는 기본적으로 디자인 이라는 것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야 하고, 

그 것이 결국 사람들에게 이미지로 기억에 남게 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이 건물에 입점한 상가들의 가치도 함께 높여준다고 믿었다.

반면 건축주는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눈에 띄고,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간판이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건축주는 미리 (이 건물에 입점을 생각하고 있는 병원의) 원장들, 그리고 우리도 처음 들어봤지만

이런 종류의 상업용 근생건물을 컨설팅 해주는 사람들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 컨설팅업체(업자)는 어떻게 해야 건물이 임대가 잘 나가는지, 

임대인들이 선호하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등등을 컨설팅해주는데,

그 내용은 주로 평면은 어떤 형태가 잘 나가고, 간판은 어떻게 설치해야 사람들에게 잘 인지되고 등등의 내용이다. 

이런 사람들과의 미팅에서 논의된 내용의 주된 결론은 결국 간판이다.

이 간판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야 규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최대한 크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한 건축의 입면과 평면 구성은 어떠해야 하는가 등등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건물의 임대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는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임대인이 선호하는 조건에 가장 충실한 건물이 임대가 잘 나가고, 그것이 곧 가치라는 것이다.

 

이러한 서로 상충되는 두 방향의 가치가 충돌할때 결국 어떻게 결론을 낼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우리가 주장하는 것을 경제적 가치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이렇게 했을때 임대가 잘 나간다고 확실히 장담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우리는 결국 이러한 것들을 장담할 수 없었다.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 할 구체적 데이터도 결국 찾지 못했다. 

어쩌면 당장 대출이자를 내야하고, 하루라도 빨리 임대를 내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건축주에게 “이미지”나 

“무형의 가치” 같은 단어들은 조금은 멀리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것보다는 당장 임대에 관심갖고 있는 병원장이 하는 말이 훨씬 더 가깝게 와 닿았을 것이다. 이해가는 측면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가치를 건축주에게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로 설득해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고, 

혹은 언젠가는 이러한 사례와 경험들이 쌓여서 일반적인 접근으로 받아들여질 날이 올때까지 기회가 될 때마도

증명하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최대한 많은 부분을 건축주, 

혹은 예비임대인의 요구사항에 맞춰주려 노력했다. 

점점 작은 면적 하나하나, 숫자 하나하나가 모두 돈으로 계산되는 상황이 되어 갔고, 

그 과정에서 건축가가 제안할 수 있는 것들 또한 그런 종류의 계산법 뿐이었다. 

복잡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디테일은 모두 공사비로 연결되니 이 또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모든 것은 투입된 비용 대비 수익으로 계산되는 수익률의 지배 아래 있으니 이에 어긋나는 요소는 우선 제외된다.  

그나마 건축주가 상관하지 않는 영역이 있으니(혹은 알아채기가 어려운 부분) 그건 건물의 입면 비례 정도였다.  

전면 커튼월의 비례와 건물 전체적인 비례 등을  조정하는 것이 할 수 있는 계획의 영역이었다. 

 

특히나 전면 커튼월은 철저히 병원이 선호하는 간판방식과 크기에 대응하기 의해 결정된 입면사항이다. 

처음부터 office에서 볼 수 있는 커튼월의 입면은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고, 광고내용으로 가득찰 커튼월 입면을 기대하였다.  

 

그렇게 해서 공사는 시작되었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OO병원 입점예정, 

혹은 O층 임대문의 등등의 광고가 건물에 붙어 있었다. 

이 건물이 도면상의 입면 그대로 세상에 보여진 건 딱 하루였다. 

건물의 공사가 다 끝나고, 준공검사를 위해 건물 외부에 붙어있던 광고를 모두 떼어낸 날, 

바로 그날이 이 건물이 입면에 아무런 광고 없이,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가 설계한 온전한 모습 그대로 세상에 존재했던 단 하루였다. 

사진도 딱 하루 허락된 바로 그날 촬영되었다. 

준공검사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 부터 미리 예정되어있던 각 층 인테리어 공사가 임대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연히 외부엔 OO병원 2월말 오픈 예정, 혹은 O 층 임대문의 등의 현수막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상업건축의 운명이라 생각해야 할까.

다행히 현재 이 건물은 지하부터 1,2층 스타벅스, 3층부터 6층까지 나머지는 모두 병원으로 임대가 다 채워졌다. 

덕분에 이것이 임대인의 조건에 충실해서 그런건지, 건물이 대로에 면해 입지조건이 좋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건축설계의 덕분인지, 어떤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는지 알 수는 없다. 

디자인의 가치를 대중이 인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나 건축이라는 영역은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그 인식변화가 가장 느린 편이다. 

건축에는 단순히 멋있다 아니다를 떠나 수많은 사회적, 물리적 재원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고려되어야 할 것이 그 만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치들 중에서 디자인을 가장 앞에 두고 판단하려면 오랜시간 좋은 디자인, 

좋은 건축, 좋은 공간을 경험해보고 그 안에서 얻는 가치를 내 생활에서 느껴보고, 

그러고 나면 그것이 긴 안목으로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때가 되면 건축가들이 늘 갖고 있는 설계비에 대한 고민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그러한 시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좋은 건축, 좋은 디자인 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어떻게 그 가치를 경험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즉, 대중과 가까워지려하는 노력과 과정이 필요하고, 우리의 생각을 대중의 생각과 맞추고 공유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건축과 대중이 가까워질때 우리는 우리를 애써 열올리며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온전한 모습이 단 하루만 허락되는 상업건축의 슬픈 운명도 바뀔수 있을 것이다.  

 

Y

요즘 머리속을 계속 맴돌고 있는 생각은 불안감과 차별화 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30대의 끝무렵에 다다르고 나서 그런지,

혹은 각자가 다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헤쳐나가려 애쓰시는 주변의 여러 소장님들을 보며,

혹은 이제 막 시작하는, 의욕과 기대에 가득찬 여러 후배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은 작년과 다른 올해 민간건축경기의 위축을 느끼며, 

혹은 아마도 이런 모든게 다 모여 그런 생각이 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건축가는 늘 불안과 불안정을 갖고 사는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불안과 불안정을 스릴과 기대로 여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두려운 것은 역시나 존재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다.

우리가 남들과 다른게 무엇일까?

우리가 다른 사무소와 차별되는 것이 무엇일까?

전에는 젊다는 것이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더 젊은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의 작업들?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작업들을 해가고 있고,

우리의 프로젝트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할까?

우리는 어쨌든 존재의 이유,

그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증명해내지 못하면 언젠가 존재자체를 불안해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무소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몇 년전, 30대의 한창에 있을때는 우리에게 앞으로 시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40대까지도 한참 남은 것 같고, 50대는 남의 얘기 같고, 60대는 생각도 안해봤다.

하지만 철이 들었는지 어떤건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보니 우리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무소가 되기 위해, 그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초초해지고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무소를 시작할 때부터 이 정체성이라는 것을 늘 고민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처음의 그 정체성을 현실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왔다고 생각한다.

가끔 강연을 하며, 그 준비를 하면서 우리의 작업들을 설명하기 위한 큰 이야기의 흐름을

처음 우리가 시작할때 썼던, 가졌던 글귀와 생각들을 통해 설명하려 노력한다. 

그때마다 우리가 처음 고민했던 정체성을 잃고 있진 않은지,

우리 작업들을 통해 그런 것들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 초심을 다시금 되돌아 본다. 

 

하지만 어쩌면 처음 시작할때는 사무소로서 구체적으로 그리던 모습이란게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엔 구체적인 어떤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고, 그렇게 될 거란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6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는 사무실을 꾸려나가는 것에, 

우리에게 주어진 프로젝트들을 해결하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나무가 아닌 좀더 큰 숲을 상상하며,

지금의 우리를 좀더 진지하고 객관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상태로 약 6년이라는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대로 머물건지, 아니면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갈건지,

갈거라면 그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지,

우리가 지금 준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할 시기가 되었다.

고민하고 이제 움직여야 할 시기가 되었다.

 

변화하지 않고, 발전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잊혀진다는 

단순한 진리는 분명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

 

다만 우리가 가려는 변화와 발전의 방향은

지금 가진 에너지를 모으고 모아 

결국 건축이라는 것을 더 잘하려는 방향이 될 것이다.

어쨌든 건축을 잘하고, 그걸로 인정받을때 우리는 가장 즐겁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런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지금" 이라는 것에 

어쩌면 감사하고, 그런 고민을 재촉해주신 한분의 건축주께도 감사드린다.

 

Y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