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 현장에 있는데 어린이재단 전남본부에서 전화가 왔다.

"소장님~두번째 집 이제 지으셔야죠~ 돈이 마련될거 같아요~"

뜬금없이 전화하셔서 갑작스레 지으시잖다. 

그래서 나두 단번에 보자며 내려간다고 하고는 오늘 전라남도에 다녀왔다.

사실 말이 뜬금없이 전화했다고 했지 사실은 알고있다. 

집 짓기 위한 돈을 후원받아 마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재단분들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를.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쭤봤다. 

"그래서 얼마나 모으셨어요?"

3천인데요 쫌 더 할수도 있을거 같아요.

또 다시 시험에 들거 같은 기분이다. 

첫번째주택인 벌교보다도 작은 돈이다.

하지만 예산에 대한 걱정보다 어떤 집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새벽에 일어나 목포를 거쳐 두번째 집짓기 장소인 장흥에 도착했다.

장흥은 강진과 벌교 사이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지난 겨울 강진과 벌교를 거의 매일왔다갔다 하던 나에겐 장흥가는 길이 매우 낯이 익었다.


장흥집을 가면서 대상자분들의 상황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때면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어째서 고난은 가뜩이나 어렵고 힘든분들에게만, 그것도 한꺼번에 몰아서 오느냐는 것이다.

이분들도 그런 상황이었다.

다행히 부모님이 정말 열심히 살려고 하시는 분들이지만, 

아버님과 어머님이 번갈아서 사고가 나시고 병을 얻고, 수술을 해야하고, 

그러면서 수입이 없어지다 보니 아이들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고, 아.... 아이들은 또 어찌도 그리 많이 낳으셨단 말인가. 

이 집엔 부모와 다섯아이 해서 총 일곱가족이 살고 있다.

집은 너무나 오래되어서 상태가 매우 안좋았고 화장실이 없이 

대문옆에 문도없는 변기만 하나 놓여있었다.

상상이 가는가. 

엄마를 포함해 청소년이 된 여자아이들까지도 문도없이 훤히 다 보이는 

변기를 화장실로 쓰고 있었다는 것이.

거기다 집에는 과거 소를 키우던 우사가 남아있어 그곳에 있는 소의 배설물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악취와 파리들이 집에 가득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집에 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오래되고 낡은 집이다 보니 그렇겠지만 옷장이며 주방이며 

심지어 밥먹는데 밥상 밑으로도 쥐가 지나갈 정도라는 것이다. 

오늘 현장을 방문했을때 짐정리를 위해서 옷장의 옷이며 이불등을 꺼내놨는데

그 안에서 나온듯한 쥐똥들이 바닥에 가득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과연 사람이 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살아온 다섯명의 아이들이 정말 건강할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곳에 내려오면서 재단분들에겐

최근 부쩍 바빠진 사무실 사정을 핑계로 가급적 빨리 하겠지만 

언제쯤 공사를 시작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핑계만은 아닌 사실이긴 했지만 이런 광경을 보니 차마 그런이유를 대면서 공사를 미룰 순 없을 거 같았다,

우리가 하루이틀을 미루면 아이들은 이런집에서 

하루이틀을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내려와야 할거 같았다. 

같은게 아니라 그래야 한다. 


현재 아버지는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계신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건 그저 고등학생이 된 자녀들도 있으니 최소한 남자와 여자끼리는 따로 잘 수 있게

아이들방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현재는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고등학생인 두 자녀는 그 방에서, 부모님과 나머지 셋은 거실(?)같은 

부엌앞에서 잔다. 그리고 집이 너무 어두워 집이 좀 밝아졌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화장실과 씻는곳도 있었으면 좋겠단다.


들어보면 당연히 집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것들을 어려운 부탁인듯이 조심스레 말씀을 하신다.

마음이 참 아팠다.


벌교때보다 예산은 적고 가족은 많다보니 필요한 공간은 더 많은 상황이다. 

또 그때는 일부 자재도 후원받을 수 있었으니 두번째집의 상황은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더싸고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위해 이제부터 머리를 싸메고 고민을 해야하는 이유다.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때 자원봉사자분들이 집을 정리하고 계셨다.

쓰레기가 한트럭이 나왔다며 웃으셨다.

이번 장흥프로젝트는 군청에서부터 장흥의 복지단체들이 매우 적극적이시고,

거기다 마을에서도 이 가족을 위해 걱정도 많이 해주시고 새로 집을 짓게 된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시고

적극적으로 돕고 싶어 하신단다.

그래서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때 우리를 오랫동안 기다리던 손님맞듯이 반가이 맞아주셨다.

이런 마음들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될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저런 좋은 마음들이 모였을때 좋은 집이 나오는게 아닐까. 


어쨌든 이렇게 해서 갑작스레 Low Cost House series 그 두번째 집 "장흥" 편이 시작되었다.


130605 Y 




"프로젝트마다 가져야할 위치 또는 성격을 정하고 진행하는게 좋다. 어떤 프로젝트는 돈이 안되지만 사무실의 정체성을 구축하거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위해, 어떤 프로젝트는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또 어떤 경우는 지자체 또는 단체와의 관계를 위해... "

이 말은 Y와 함께 사무실 차려놓고 며칠 안되서 여러 선배 건축가들에게 조언을 구하던 중 들었던 이야기중 하나이다. 


"사무소 차리고 첫번째 프로젝트로 존재를 밝히지 못하고, 이번엔 그냥 지나가고 다음엔 잘 만들어보자. 이런 마음으로는 힘들다..."

이 말은 회사그만두기전 스승처럼 모시던 선배형님한테 들었던 이야기다. 


지난 해 10개월정도 준비하던 울릉도가 엎어지고 (현재는 FOR SALE을 홈페이지에 대문짝만한게 올렸지만)  이어지는 강진과 벌교프로젝트로 여러 잡지에도 소개되고 인터뷰도 들어오면서 위에서 언급한 두 번째의 이야기는 이제 뒤로 하고 앞으로의 프로젝트를 재밌게 만들어가야하는 시기가 왔다. 

강진아동센터를 마무리지으면서 앞의 글에서 Y가 언급했던 일련의 프로젝트들이 진행이 되었고, 이 중에는 '우리에게 제한적인 역할만은 원하는 프로젝트'들도 분명히 있었다. 


울산 시골교회와 해비타트 프로젝트가 여러 사정으로 연기되면서 새로 맡게된 2개의 프로젝트는 글의 처음에 적어놓았듯 우리 사무소의 포폴로 구성하기에는 우리의 역할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장담이 안되는 상황들 속에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프로젝트는 최소한 사무소의 운영을 위해서 진행해야겠다는데 나와 Y는 동의했다. 


건축주가 의욕에 넘치는 또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든 전권을 우리에게 맡긴 프로젝트는 아주 세심하고 재미있게 잘 키워서 나중에 짜잔하고 세상에 내놓고, 우리 이렇게 잘 키워놨습니다. 하면서 흐뭇하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건축주가 최대임대면적을 뽑기위해 설계안을 뽑아내려고 하고(왜 몇몇 건축주들은 설계안을 뽑는다고 할까...) 디자인은 알아서 적당히 해주세요(디자인이라는 말도 사용하지않고 '모양'을 만든다고 한다.)하는 그러한 프로젝트에서 '그래 원하는대로 쫙쫙뽑아주고 디자인도 큰 고민말고 무난하게 가자'고 생각하지만, 하루 이틀 프로젝트를 잡고 있자면 못난 자식을 바라보는 심정이 이러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며칠만에 털고 끝내버릴 아르바이트 같은 일이라면야 이런 생각이 들기도 힘들겠지만, 땅을 보기 시작해서 건축주의 의논하고 한달정도는 프로젝트 진행을 하다보면 임대수익, 사업성 이런 요소들은 건축주들에게는 당연히 건축의 처음과 끝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최소한 도면을 그리는 나에게는 그런 것들은 어느새 증발해버리고 건축에만 집중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들일 노력을 건축주는 원하지도 않을 뿐더러 사무소는 또다른 프로젝트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이번에 지나가고 있는 이 2개의 프로젝트말고도 우리에게는 비슷한 성격의 것들이 언제든지 만들어져 우리에게 올 수 있다고 본다. 

'우리에게 제한적인 역할만을 원하는 프로젝트'에게 우리는 제한적인 역할만을 해야할까. 아니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2개의 프로젝트중 하나는 허가접수를 마쳐놓았고, 나머지 하나는 임대면적을 더 뽑기 위해 오늘 사무실에서 미팅을 가졌다. 2개의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중이고, 아직은 어떤 식으로 생각이 정리될지는 장담은 힘들지만, 마무리가 될 무렵에는 프로젝트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조금은 잡히는게 있지 않을까싶다.



ps. 1. 글의 힘이란!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지고 방향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또 나중에 어떤식으로 변화될진 모르지만... :)


      2. 사무실에 두 식구가 늘었다. 그리고 각각 프로젝트를 하나씩 맡게 되었다. 둘 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내적으로 성장하고, 더 나아가 독립건축가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130531.


J.

정말 오랜만이다

매번 쓸때마다 오랜만이라는 말을 하게 되고 

그럴때마다 이제부턴 좀더 열심히 이곳에기록을 남기겠다고 다짐을 해봤지만

결국 다시 또 오랜만이다 라는 말을 하게 되는게 참 민망하다.


이 글을 쓰려고 마지막으로 쓴 글을 찾아보니 무려 2월 말에 쓴게 끝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J가 글을 썼으니 다행이지만.

어쨌든 그래서 오늘은 그동안의 일들을 간단히 정리하고 다음 글들을 위한 사전준비글 정도로 해보겠다.


지난 전라도에서의 일련의 작업들이 장장 5개월여만에 모두 마무리되고 

드디어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시기쯤 해서 만난게 지금의 부암동 건축주분들이다.

사실 개인적으론 지난 3달여동안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이 것이고 

중간중간 포스팅할만한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들은 따로 준비하는게 있어 

모아두고 있는 중이다.

다만 정말로 열정적이고 부지런하시고 긍정적이시고 특이하신 분들이라서 조금은 

특이한 형태와 이질적인것과 한옥의 공존에 대해 좋은점만 봐주셔서 즐거운 맘, 피곤한 몸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후에 모두 낱낱이 보여드릴 기회가 있을거라고 믿고 우선은 이정도로 정리해 두겠다.


지난 2월말부터 해서 3개월동안 사무실은 무척 바빴다. 

사무실 처음 시작할때 갖고있던 유일한 프로젝트인 충남의 근생시설이 1년도 넘게 돌고돌아 

드디어 본격적인 설계에 들어갔다.

다행히 그사이에 땅문제가 해결이 되었고 미리 들어오겠다고 하는 임대인도 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현재 가장 피곤한 문제는 현재 땅을 일부 임대해쓰고있는 공업사가 나가질 않아서 측량자체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적대응까지 고려하고 계시다. 


여기에 그 후 간간히 사무실로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온다.

대부분이 우리가 했던 작업들이 소개된 것들을 보시고 연락을 해오신 것이다

정말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로선 처음에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프로젝트 수주 방법이며 유일한 방법을 통해 들어오고 있기때문이다.

다만 흥미로운건 우리에게 연락해오시는 분들중 대다수가 벌교주택을 보고 연락을 하신다는 것이다.

사실 벌교주택은 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이 관심가져주실 줄 몰랐는데 저예산이라는 점과 뽁뽁이지붕에 대해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이유때문인진 몰라도 연락주시는 대부분의 분들은 굉장히 적은 예산을 갖고 계신분들이다. 

다양한 요구와 매우 제한적인 예산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최근 시작한게 목동의 다세대(말그대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의 이 세세대을 의미한다), 

그리고 부평의 숲속집이다. 

(사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해서' 이 프로젝트들을 시작한건진 정확치 않다.  

이분들이 저예산을 갖고 계신 것도 아니고 굳이 벌교주택때문에 우리를 보신것도 아니다.

예산은 그저 원하시는 것을 하실만큼 적당히 갖고 계셨다.)


이외에도 우리에게 제한적 역할만을 원하는 그런 프로젝트가 2개정도 더 진행되어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셋이서 지지고 볶고 해오던 사무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함께 일할 분들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기쁜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주에 공고가 나간 후 예상치 못했던 정말 많은 분들이 지원을 해주셨다.

해외에 계신분들까지 인턴쉽지원을 많이 해주고 계시다. 

일일이 모두를 뵙진 못했고 우리 기준에서 그분들을 판단하기도 참으로 곤란했다.

그저 몇몇 내부기준에 의해 두 분을 선택을 하고 합류를 했다.

다른 지원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휴. 많은 이야기가 있는 사건들을 짧게 나열하자니 더 힘든거 같다.

이제부터 저 각각의 이야기들을 차례로 차근차근 올려야겠다


최근 새벽에 눈이 떠진다. 

걱정이 많아졌다는 몸이 보내는 신호다.

덕분에 가까워진 사무실에 도착하는 시간이 7시 이전이다.

비소리를 들으며 사무실에 홀로있는 아침의 2시간의 여유는 참으로 좋은것 같다.



130529  Y


  




합정동 이사를 마치고 행정적 절차 몇가지를 서둘러 진행했다.

먼저 건축사사무소는 구청에서 관리되고 있기때문에, 사업지 주소가 변경되거나 지역을 우리처럼 종로구에서 마포구로 이동하게되면 세움터를 통해서 '건축사사무소업무신고사항변경신고'를 해야한다. 누군가는 폐업후 재개설을 해야한다는 얘기를 하긴했지만, 마포구 담당자와 통화 후 변경신고만 했다. 세움터에 관련내용 적고, 임대차계약서는 세움터상에서 파일로 첨부.

하루만에 업무 완료되어서 개설신고확인증 받으러가야되냐고 물어보니, 와도되고 우편으로도 보내준단다. 아 친철하시군.

그래도 합정과 멀지않아서 다음날 오전에 찾으러간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마포세무서로 직행.

사업자등록증에도 '사업장소재지'를 변경해야하므로, 사업자등록증원본과 임대차계약서, 정정신청서(이건 세무서에서 작성), 신분증 이렇게 챙겨서 민원창구에가니 5분만에 정정완료.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하나 엄청 찾아보고 버벅거렸지만, 그래도 두번째라고 능숙하게 처리하게 되는구나...


참. 그리고

우리와 같이 공동으로 사무실을 사용하고 각 사무소마다 사업자등록을 해야하는 경우에는 계약주체를 공동으로 잡아야 한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1개의 사무소 명의로 계약하고 공동으로 사용할 사무소는 전대차계약을 통해서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꺼려해서 거의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계약하려고 찾은 부동산에서 조금 혼란스러웠었다. 


원칙적으로 1개의 임대사무실에 1개의 업체만이 등록가능하도록 되어 있기때문에, 1개의 임대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공동으로 계약을 하고 그 계약서를 제출하면 사업자등록을 해준다. 

특별한 경우에 1개의 임대사무실을 어떤 식으로 나누어쓰는지 실사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마포세무서에서는 별다른 얘기가

없이 지나갔다. ㅎ





130503

J.

  사무소를 처음 준비하면서 1주일에 한 번씩은 프로젝트 돌아가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적어보고 1년이 지나면 어떤 형식으로든 엮어보자고 했던 다짐은 바빠진 일상과 코앞에 닥친 프로젝트 일정 등으로 소홀해진 것은 사실이다.  아마 오늘도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다면 쉽게 이 글을 쓰지 못했겠지만, 친구를 만나러 제천에 다녀오는 길에 사무실의 근황에 대해서 몇 자 끄적이려고 한다.


 먼저 약2주후면 숭인동을 떠나 합정동으로 자리를 옮긴다. 평일 낮에는 인근 가죽상가와 금속부자재 상가를 오가던 오토바이소리들, 저녁만되어도 사람이 썰물빠지듯 다 떠나고 덩그라니 혼자 남아있는 느낌. 주말이면 동묘부터 풍물시장까지 이어지는 구제노점상들과 구경꾼들. 장면장면이 굉장히 다양하고 표정을 싹 바꿔버리는 이 동네를 이제 떠나게 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곳은 몇해전부터 불어온 도시형생활주택 붐을 가장 확연하게 볼 수 있는 동네라, 인근 5분이내에 공사현장이 5군데. 그리고 우리가 머문 건물을 포함해 맞은편 건물도 곧 철거를 하고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는 계획에 있다. 재개발을 하면 빌딩도 죽죽올라가고 건물주는 임대료도 많이 받고, 세수도 올라갈거고, 건설사들도 일감생겨좋고. 뭐 다 좋은 것 같은데,  우리와 같이 처음시작하는 사무소는 어디로 가지? 그리고 여기 가죽시장골목과 구제시장은 새로운 건축물과 어떤식으로 관계를 맺으면 살아갈까?  그런 고민이 도시계획에 묻어날까하는 고민들.


 여하튼 곧 합정동 조용한 주택가 골목 2층으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사무소를 같이 공유할 팀도 생겼다. 사무소명이 아주 발랄하고 톡톡 튀어오르는 OOO. (정식 오픈전 이렇게 사이드에서 공개하기에는 좀 뭣하니...). 이 팀도 소문으로만 듣던 (자의반타의반) 수많은 공간출신 독립건축가들중 한명. 아니 두명. 공간출신 독립건축가들이 소규모 건축가 생태계를 좀더 밀도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들.



그리고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들.

부암동 한옥 집고치기 프로젝트도 조만간 현장이 열리고 설계와 시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이러한 프로세스는 강진아동센터면 족하다고 생각했지만, 프로젝트의 여러 여건상 이번에도 설계와 시공을 현장에서 함께 진행하는 신기를 보여줄 예정.) 관건은 6월이면 찾아올 장마!!  


또 한가지. 예산에서 만들 3층근생 W-building. 소규모 사무실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프로젝트. 그만큼 건축가들이 해볼만큼 다 해봤다는 이야기. 상가 임대면적도 유지하고 거기에 건축물의 두근거리는 심장을 심어줄 무엇가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중. 이것도 장마전에 착공이 목표이다. 


그리고 작년부터 진행되어온 울산의 해비타트 주택단지와 농촌교회. 이 프로젝트의 진행은 조만간 별개의 글로 알릴 예정이다. 아직 인허가 심의 진행중이라 할말은 엄청 많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이름을 걸고 사무소를 낸다는 것은 어느 조직에 속해 일을 잘하는 것과는 절대 별개로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쿨럭. -_ -;;;


마지막으로 수면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몇가지 것들.



2013년 봄 근황은 이렇다.



라반장님의 말씀처럼 간신히 이제 "이년"이가 가고 "삼년"이가 왔다.

어느때보다 힘들게 설을 맞이한것 같다. 

지난 11월부터 시작한 강진지역아동센터 공사를 시작으로 설전에 모두 3개의 프로젝트를 완공하였다.

덕분에 설 전전날까지도 현장에서 속을 태워야 했으니 

어느때보다 고생스럽게 설을 맞았다고 할만하다.


3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현장에서 진행하다 보니 힘든부분이 참 많았다.

우선 물리적으로 세곳을 왔다갔다 하는 동선이 힘들었고

덕분에 1월한달을 거의 지방에서 보내야 했다.

하지만 재밌었던 점은 이 세개의 프로젝트가 모두 규모와 성격이 달라 

마치 한곳의 식당에서 특이한 퓨전요리, 기본에 충실한 저렴한 백반, 그리고 달달하고 유치해 보이는 후식까지 

한꺼번에 먹는 듯한 즐거움이 있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기본에 충실한 저렴한 백반'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작년말쯤에 우리에게 저소득층을 위한 정말 저렴한 주택 

즉, Low Cost House 를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전라남도 지역에서 어린이재단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한해에 다섯채이상의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짓고 있는데 그것을 맡아서 해줄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사업(?)의 구조는 대상자가 선정이 되면 그 대상자가 처한 주거상황을 먼저 확인을 하고

각각의 상황에 맞춰 신축이든, 개축이든, 혹은 수리이든 을 결정을 해서 공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프로젝트에 할당된 금액은 약 4000만원. 

이는 그동안의 사업을 통해 찾아진 나름 최대한의, 그리고 공평성면에서 적절한 금액이라고 한다.

4000만원에 집을 짓는다라...

잡지책에 나오는 전원주택이라 불리는 집들의 공사비가 인테리어를 제외하고 평당 500만원에서 

왔다갔다 한다고 주장하니 4000만원이면 약 8평쯤 가능한 금액이다. 

이후 작년에 진행되었던 몇몇 주택을 직간접적으로 찾아보았다.

아무리 넉넉치 못한 예산이라곤 하지만 샌드위치패널로 지어지는 똑같은 모양과

각기 다른 상황의 가족이나 지리적 특성을 배려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 획일적 평면의 집들을 보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적어도 저것보단 더 좋은 집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반드시 해야한다는 책임감이 함께 들었다.

그렇게 해서 Low Cost House series 가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적은 예산을 가지고 

어디까지 우리가 집의 완성도와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인지가 프로젝트의 가장 큰 의미였다.

좀더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비록 최근 집을 짓는 비용을 합리화하고 현실화 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지만

아직도 집을 짓는 비용은 결코 많은 사람들이 선뜻 시작하긴 어려운 수준인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처럼 이렇게 예산이 넉넉치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저렇게 정말 낮은 공사예산의 경우엔 그에 맞는 또 다른 방법들이 모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고 본다.

바로 이점이 우리에겐 이 프로젝트를 해볼만한 가치의 포인트가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첫번째 프로젝트가 전남 보성 벌교에서 지난 1월에 진행되었다.

건축주이자 대상자인 이 집의 주인은 아이가 모두 넷인 부부였다.

이 가족이 살던 집은 지난 12월 화재로 인해 모두 전소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가족중에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그리 넉넉치 못했던 살림에 살림살이가 거의 모두 불타버렸다.

따라서 가족이 한평남짓한 창고를 개조해 살고 있고 이 추운 겨울에 씻고 밥해먹는 등의 물을 쓰는 일을 

모두 밖에서 해야했던 이 가족에게 설이 되기 전에 집을 다시 만들어 주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 이 집을 둘러보았을때 개선되어야 할 세개의 명확한 문제들이 있었다.

첫번째는 매우 불합리한 평면이었다.

집은 약 17평정도 되었었지만 평면이 이상하게 되어 있어 아이들 네명이 두평되는 방에서 생활하고

집의 거실 겸 주방이 복도처럼 쓰이고 실제 복도공간은 창고처럼 쓰이고 화장실을 갈때마다 주방의

불을 켜고 가야하는 평면이었다. 


두번째는 과거 그 언젠가 동네 업자들에 의해 마구 지어져서 단열재도 없이 블럭과 벽돌로 올려놓은 외벽이었다.

건물의 네면중 두면은 약 20mm 스트로폼이 들어가 있었고 두면은 단열재가 아예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집이 겨울에 특히 춥고 빛마저 들지 않아 항상 어둡고 음습하였다.


세번째는 1년내내 집에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집은 북향을 하고있고 남쪽으로는 키큰 대나무숲이 있어서 집이 하루종일 빛을 받지 못했다.

거기다 창문 앞으로 덧붙여놓은 처마로 인해 집 내부로는 더더욱 빛이 들질 않았다. 


이런 세개의, 집이 가져야할 기본요소들이 충족되지 못하는 점들이 이 집을 만난 이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들로 남겨졌다. 

따라서 프로젝트는 이 세개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효율적이고 저렴한 방법들을 

종합적으로 찾아내는 것이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 과정의 하나로 우선은 이 프로젝트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말이 좀 거창했지만 쉽게 말하자면 어깨의 힘을 빼고 툭! 하고 내려놓는 마음가짐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마치 모 오디션프로에서 박진영이 말했듯 어깨와 눈의 힘을 좀 빼고 마음을 좀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이 프로젝트를 대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형태적인 고집, 공간적 고집, 재료적인 고집들을 많이 내려놓으려 했다.

주변에서 자재를 후원하시겠다는 분이 계시면 감사히 가져다 쓰고, 

주변에서 빨리, 싸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가져다 쓰고, 

그렇게 벌교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나 시공방법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문의 크기가 다 다르고 창문의 색과 크기가 다르고 선이 서로 안맞더라도 

그걸 맞추려 고집피우지 않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필요와 공급에 철저히 맞추려 하였다.

단 몇가지의 부분만 빼고.


그중 한가지가 바로 지붕에 대한 것이다. 

이 집이 가진 문제중에 가장 그 답을 찾기가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바로 빛에 대한 것이었다.

1년내내 어두컴컴한 집을 개선하기 위해 빛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여건상 그 방법은 지붕을 통하는 것밖에 없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인 천창이나 중정등은 모두 우리의 예산상 어려운 것들이었다.

따라서 지붕 그 자체를 환하게 하는 것. 그것이 답의 단서였다.

아는 범위에서 열심히 찾아봐도 지붕 그 자체가 밝은 방법, 즉 단열이 되면서 빛이 들어와 환한 지붕.

그런 자재를 찾는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듣게된 뽁뽁이열풍.

뽁뽁이를 단열재로 쓴다는 말에 열심히 기사를 찾아보았다.

흥미로웠다. 

가능해 보였다.

내가 찾고있는 빛과 단열의 대결을 중재해줄 만한 가능성이 있을것 같았다.

그래서 직접 구매해서 만들어 보았다.

음.... 직접 보기도 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고민을 해보니 될것 같았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뮤앤자인건축사무소의 박근수 소장님과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았다.

방수와 여름에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온실효과 등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법을 생각했다.

그렇게 결국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작업자분들께 설명드리기도 힘들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누가 뽁뽁이를 단열재로 쓴다고 들어본적도 없다고 하셨다.

이 지붕의 핵심은 뽁뽁이를 꼼꼼하게 시공해서 지붕에 75겹의 공기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때문에

작업자분들께 열심히 설명드리고 함께 방법을 고민하였다.

다행히 나중엔 잘 이해해 주시고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작업을 열심히, 그리고 훌륭히 시공해 주셨다.


이렇게 해서 공사는 총 다섯분의 시공자 분들과 함께 철거부터 완공까지 총 21일에 걸쳐 진행되었고

시공자 분들의 고생과 희생속에 간당간당하게 설전에 완공식을 하고 입주를 할 수 있었다.

사실, 이 공사는 이 다섯분의 시공자분들이 없었으면 결코 정해진 예산안에 정해진 시기까지 

마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마치 슈퍼맨처럼 모든 공정을 다섯분이서 다 연결성있게 시공을 해 주셨기때문에 가능했다.

이 집의 진정한 공은 바로 이분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공사를 모두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려고 마지막으로 뵈었던 두부부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 술도 끊고 센터에 다니며 아버지교육도 받고 새롭게 살아 볼랍니다 라고 하시던 

아버님과 농사짓는 딸기를 건네주시던 어머니.

눈물이 날만큼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떠나는 마음이 먹먹했다.

헤어짐이 섭섭해서이기도 하고 정말 앞으로 저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는 마음에서이기도 

했던것 같다.


프로젝트 보기





130225 Y






    

2012년이 가고 어느새 2013년이 되었다.

어느새라는 말 그대로 정말 어느새 2013년을 맞아버렸다.

한국에 들어와서 첫 현장이 작년 10월말부터 시작되어 그 현장을 오고가고

(사실은 거의 가 있었지만) 하다보니 연말에 사무실식구들이 모여 한해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도 들어온지 약 8개월만에 첫 현장을 열었으니 그 지난 8개월간의 좌충우돌했던 일들이 완전히 헛된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꼭 될거 같아 보였던 일들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실망하고 그랬던 일이 

의도치않았던 다른 좋은 사건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몇번의 다리를 지나 돌고 돌아 열매를 맺은 것중의 하나가

바로 현재의 강진아동센터 현장이다. 

정말이지 한치앞도 알 수 없는게 인생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또한 한편으론 무섭다는 생각도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지 모르기때문에 

그 어떤 사건도 흘려보내면 안될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벌써부터 피곤해지기도 한다.



현장을 시작한 후 어쩔 수 없이 현장에 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장이 직영공사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사비가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위'눈먼돈' 을 잡아보고자, 

아니 정확하게는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에 의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기타 다른이유를 덧붙이자면 기본디자인이 끝난후 실시도면조차 그릴틈이 없이 

시작되어야 했던 현장이었기 때문에 도면이 완전히 준비되지 못한 디자인의 완성도를 보장하는 방법은 현장에서 

지켜보고 풀어가는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덕분에 사무실의 누군가는 항상 현장에서 상주를 하며 관리를 해야했고

때로는 잡다한 준비작업이나 공사도 해야 했다.

정말이지 매우 힘든 일이었고 엄청난 에너지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가지 좋았던 것은 바로 현장을 완전히 몸으로, 눈으로, 귀로 익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과정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사과정 하나하나를 직접 내 손으로 한 것과 같은 느낌이다.

사실 이것이 네덜란드에서 일하는 동안 가장 갈구했던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니, 

서울에서 멀고먼 강진 그 현장에 내려가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바닥부터 시작해 골조가 완성외고 외장까지 붙여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는 동안에는 정말 재밌기도 했다.






현장에서 있는 동안 배운건 물리적인 구축의 과정뿐만은 아니다

바로 그 현장을 만드는 인간군상들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된다.

이번 현장을 하면서 크게 실망하고 떨궈버린 사람들이 한 셋이 된다.

그들은 이바닥 생리를 잘 모르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의 잣대에서 계산해봤을때

말도 안되는 가격을 갖고 속이려 든다.

그들에겐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적인 일일 수 있겠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하기엔 너무나 괴리가 있다.

한국의 현장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겐 너무나 이상하게 보였다.

왜 좋은 건물, 좋은 환경을 아이들에게 주기위해 모아진 돈을 그런 업자들의 주머니에 

공짜로 넣어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상식은 지극히 단순했다. 일한만큰, 그리고 합리적인 이득을 취해가라.

그렇지 못한 관행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복잡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상식과 잣대가 이 공구리바닥에선 그리 잘 지켜지진 않았던것 같다.


사람을 떨궈버린다는건 참 힘든일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적어도 나는, 번잡한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쉽고 명쾌한걸 좋아한다.

사람관계도 그래서 한번 만나면 가급적 믿고 말고 싶다.

두고보고 판단하는 것 같이 오래걸리고 번잡한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처음에 보통 믿고 웃으며 진행하다 나중에 그 이면을 알았을때 내가 느끼는 충격이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사람을 쳐버리는 것이 심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번잡한걸 싫어하듯이 한번 마음에서 버리면 그것도 빨리 정리하는 편이다.

가끔은 속된말로 내가 내돈으로 짓는 것도 아닌데 왜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혹시 내가 이 생태계를 잘 모른체, 그 관행을 인정하지 않은체 너무 딱딱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한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어떤지 판단이 어려울때도 있다.

하지만 정당한 대가가 아닌 돈을 찾아서 건물이, 그리고 그 안의 아이들의 삶이 더 풍부해 질 수 있다면

그것이 맞는 것이라고 일단은 믿겠다.


현장에서 공사하는 사람들을 직접상대하는 것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다.

그중에는 정말 소위 말하는 '업자새끼들'도 있지만 앞으로 다른 현장에서도 함께 일을 할수 있을만한

좋은 분들도 있다. 

어차피 현장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도면을 그려서 현장에 넘기고 끝내는 범위의 사무소가 아니라면,

현장에서 함께 건물을 만들어 갈 많은 분들을 알고 있는 것이 곧 자산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과정을 거쳐 그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 많은 우여곡절과 보람과 좌절과 실망과 분노와 욕설과 재미와 뿌듯함이 공존하며 진행되는 현장이다.


이제 더이상 욕설과 의심이 없이 현장이 마무리 될 수 있기만을 바란다


130108 Y


 




이제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아들놈과 내년 중순이면 태어날 둘째... 

이 녀석들 덕분에 나의 퇴근 후 일과는 아들놈 반찬거리 국거리 만드는 일이 부지기수다. (절대 불만을 토로하는건 아니고...)

아이가 생기기전에는 여기저기서 얻은 밑반찬과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때우기 일수였지만, 요즘에는 이런저런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곤 한다.

근처 동네마트에서 버섯, 두부, 가지, 호박, 감자 등 가장 기본적인 재료를 사가지고 간도 무덤덤하고 양념도 최소한 (아이가 먹다보니...) 이렇게 한 두시간 음식을 만들다보면 각 재료마다 볶고, 삶고, 무치는 등의 일정한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러면 같은 재료라도 여러가지 음식이 나오기 마련. 너무나 뻔한 얘기를 구구절절...


그런데 그러는 동안에 드는 생각. 

건축에 쓰이는 흔한 재료들. 마치 위에서 언급한 기본 음식재료와 같은 가령 페인트, 벽돌, 블록, 사이딩, 드라이비트 등 너무 흔하기에 어쩌면 건축가들에게 터부시되기도 하는 이런 재료들의 조합(단순한 조합이 아닌 건축가의 고민을 담은 조합)이 괜찮은 삶을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재료를 가지고 가공을 독특하게 해서 새로운 질감을 만들고, 고급자재와의 패치워크를 통해 좋은 건축을 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절박하다.


어제 금요일에는 이번 주내내 강진현장에서 지역아동센터 건축을 이끌던 2명의 파트너가 올라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이번 강진 현장을 통해 인연을 맺은 어린이재단.

이 사람들과 같이 진행할 2013 Low Budget House 시리즈.

매년 후원을 받아 최소한의 예산속에서 최소한의 주거환경만을 만들어왔던 기존의 프로세스를 이제는 과감히 뒤집고, 같은 물리적인, 금전적인 조건속에서 좀 더 나은, 그리고 입주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삶을 독려하는 주거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 그리고 건축.




아직은 구체화된 조건들은 없다.

어디다가 지을지, 누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 

다만, 같은 예산속에서 조금 더 나은 집을 주고 싶고 매년 반복되어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스탠다드를 만들어가길 바라는 건축주.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에 공감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좋은 집을 그리고 좋은 삶을 줄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2013년 또한 사무소를 처음 차렸을 때의 기대와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지속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1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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