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디자인이 주는 가치를 당장 돌아올 수익으로 환산할 수가 있을까?
공항대로변에 위치한 땅에 들어선 이 건물은 건축주가 처음부터 당연히 임대를 위한 목적으로 땅을 매입했다.
따라서 건축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임대가 잘 나가는 것 이었고, 특히나 건축주는 병원들을 모아 건물을
소위 메디컬타워로 만들고 싶어했다.
다만 시작할때 이 건물의 목적에 대한 부분에서는 모두가 동의를 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식에서는
서로 생각이 달랐다.우리는 기본적인 면적을 충족한다는 전제하에 공항대로에 면해 있는 건물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을 만드는 것, 더 나아가 비슷한 상업용 근생건물과는 다른 공간구성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즉, 우리는 기본적으로 디자인 이라는 것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야 하고,
그 것이 결국 사람들에게 이미지로 기억에 남게 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이 건물에 입점한 상가들의 가치도 함께 높여준다고 믿었다.
반면 건축주는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눈에 띄고,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간판이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건축주는 미리 (이 건물에 입점을 생각하고 있는 병원의) 원장들, 그리고 우리도 처음 들어봤지만
이런 종류의 상업용 근생건물을 컨설팅 해주는 사람들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 컨설팅업체(업자)는 어떻게 해야 건물이 임대가 잘 나가는지,
임대인들이 선호하는 조건들이 무엇인지 등등을 컨설팅해주는데,
그 내용은 주로 평면은 어떤 형태가 잘 나가고, 간판은 어떻게 설치해야 사람들에게 잘 인지되고 등등의 내용이다.
이런 사람들과의 미팅에서 논의된 내용의 주된 결론은 결국 간판이다.
이 간판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야 규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최대한 크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위한 건축의 입면과 평면 구성은 어떠해야 하는가 등등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건물의 임대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는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임대인이 선호하는 조건에 가장 충실한 건물이 임대가 잘 나가고, 그것이 곧 가치라는 것이다.
이러한 서로 상충되는 두 방향의 가치가 충돌할때 결국 어떻게 결론을 낼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우리가 주장하는 것을 경제적 가치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이렇게 했을때 임대가 잘 나간다고 확실히 장담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우리는 결국 이러한 것들을 장담할 수 없었다.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 할 구체적 데이터도 결국 찾지 못했다.
어쩌면 당장 대출이자를 내야하고, 하루라도 빨리 임대를 내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건축주에게 “이미지”나
“무형의 가치” 같은 단어들은 조금은 멀리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것보다는 당장 임대에 관심갖고 있는 병원장이 하는 말이 훨씬 더 가깝게 와 닿았을 것이다. 이해가는 측면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가치를 건축주에게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로 설득해야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고,
혹은 언젠가는 이러한 사례와 경험들이 쌓여서 일반적인 접근으로 받아들여질 날이 올때까지 기회가 될 때마도
증명하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최대한 많은 부분을 건축주,
혹은 예비임대인의 요구사항에 맞춰주려 노력했다.
점점 작은 면적 하나하나, 숫자 하나하나가 모두 돈으로 계산되는 상황이 되어 갔고,
그 과정에서 건축가가 제안할 수 있는 것들 또한 그런 종류의 계산법 뿐이었다.
복잡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디테일은 모두 공사비로 연결되니 이 또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모든 것은 투입된 비용 대비 수익으로 계산되는 수익률의 지배 아래 있으니 이에 어긋나는 요소는 우선 제외된다.
그나마 건축주가 상관하지 않는 영역이 있으니(혹은 알아채기가 어려운 부분) 그건 건물의 입면 비례 정도였다.
전면 커튼월의 비례와 건물 전체적인 비례 등을 조정하는 것이 할 수 있는 계획의 영역이었다.
특히나 전면 커튼월은 철저히 병원이 선호하는 간판방식과 크기에 대응하기 의해 결정된 입면사항이다.
처음부터 office에서 볼 수 있는 커튼월의 입면은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고, 광고내용으로 가득찰 커튼월 입면을 기대하였다.
그렇게 해서 공사는 시작되었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OO병원 입점예정,
혹은 O층 임대문의 등등의 광고가 건물에 붙어 있었다.
이 건물이 도면상의 입면 그대로 세상에 보여진 건 딱 하루였다.
건물의 공사가 다 끝나고, 준공검사를 위해 건물 외부에 붙어있던 광고를 모두 떼어낸 날,
바로 그날이 이 건물이 입면에 아무런 광고 없이,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가 설계한 온전한 모습 그대로 세상에 존재했던 단 하루였다.
사진도 딱 하루 허락된 바로 그날 촬영되었다.
준공검사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 부터 미리 예정되어있던 각 층 인테리어 공사가 임대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당연히 외부엔 OO병원 2월말 오픈 예정, 혹은 O 층 임대문의 등의 현수막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상업건축의 운명이라 생각해야 할까.
다행히 현재 이 건물은 지하부터 1,2층 스타벅스, 3층부터 6층까지 나머지는 모두 병원으로 임대가 다 채워졌다.
덕분에 이것이 임대인의 조건에 충실해서 그런건지, 건물이 대로에 면해 입지조건이 좋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건축설계의 덕분인지, 어떤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는지 알 수는 없다.
디자인의 가치를 대중이 인식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나 건축이라는 영역은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그 인식변화가 가장 느린 편이다.
건축에는 단순히 멋있다 아니다를 떠나 수많은 사회적, 물리적 재원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고려되어야 할 것이 그 만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치들 중에서 디자인을 가장 앞에 두고 판단하려면 오랜시간 좋은 디자인,
좋은 건축, 좋은 공간을 경험해보고 그 안에서 얻는 가치를 내 생활에서 느껴보고,
그러고 나면 그것이 긴 안목으로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때가 되면 건축가들이 늘 갖고 있는 설계비에 대한 고민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그러한 시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좋은 건축, 좋은 디자인 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어떻게 그 가치를 경험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즉, 대중과 가까워지려하는 노력과 과정이 필요하고, 우리의 생각을 대중의 생각과 맞추고 공유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건축과 대중이 가까워질때 우리는 우리를 애써 열올리며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온전한 모습이 단 하루만 허락되는 상업건축의 슬픈 운명도 바뀔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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