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아들놈과 내년 중순이면 태어날 둘째... 

이 녀석들 덕분에 나의 퇴근 후 일과는 아들놈 반찬거리 국거리 만드는 일이 부지기수다. (절대 불만을 토로하는건 아니고...)

아이가 생기기전에는 여기저기서 얻은 밑반찬과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때우기 일수였지만, 요즘에는 이런저런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곤 한다.

근처 동네마트에서 버섯, 두부, 가지, 호박, 감자 등 가장 기본적인 재료를 사가지고 간도 무덤덤하고 양념도 최소한 (아이가 먹다보니...) 이렇게 한 두시간 음식을 만들다보면 각 재료마다 볶고, 삶고, 무치는 등의 일정한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러면 같은 재료라도 여러가지 음식이 나오기 마련. 너무나 뻔한 얘기를 구구절절...


그런데 그러는 동안에 드는 생각. 

건축에 쓰이는 흔한 재료들. 마치 위에서 언급한 기본 음식재료와 같은 가령 페인트, 벽돌, 블록, 사이딩, 드라이비트 등 너무 흔하기에 어쩌면 건축가들에게 터부시되기도 하는 이런 재료들의 조합(단순한 조합이 아닌 건축가의 고민을 담은 조합)이 괜찮은 삶을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재료를 가지고 가공을 독특하게 해서 새로운 질감을 만들고, 고급자재와의 패치워크를 통해 좋은 건축을 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절박하다.


어제 금요일에는 이번 주내내 강진현장에서 지역아동센터 건축을 이끌던 2명의 파트너가 올라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이번 강진 현장을 통해 인연을 맺은 어린이재단.

이 사람들과 같이 진행할 2013 Low Budget House 시리즈.

매년 후원을 받아 최소한의 예산속에서 최소한의 주거환경만을 만들어왔던 기존의 프로세스를 이제는 과감히 뒤집고, 같은 물리적인, 금전적인 조건속에서 좀 더 나은, 그리고 입주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삶을 독려하는 주거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 그리고 건축.




아직은 구체화된 조건들은 없다.

어디다가 지을지, 누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 

다만, 같은 예산속에서 조금 더 나은 집을 주고 싶고 매년 반복되어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스탠다드를 만들어가길 바라는 건축주.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에 공감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좋은 집을 그리고 좋은 삶을 줄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2013년 또한 사무소를 처음 차렸을 때의 기대와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지속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121215

J

사무소를 열고 독립을 하고나면 우선 가장 고민되는 것 중의 하나가 

'어떻게 사무실을 알릴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말로 표현하면 '일거리를 어떻게 찾을 것이냐' 하는 질문과도 같다.


선배들이 하는 가장 흔한말로 제일 좋은 것은 역시나 많은 아는사람, 

그중에서도 집이나 건물을 지을만큼 부자인 '아는사람'이 있는 것이겠지만...

아쉽게도 우리 주변엔 그런 여건을 갖고 계신 '아는사람'이 없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근본적으론 한가지 밖에 없다고 본다.

어떤것이든 건물을 잘 끝내는 것.

그래서 그것이 주변에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다른 프로젝트와 연결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

말은 참 쉽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영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너무나 '뻔한' 대답만이 결국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상하고 있는 많은 젊은 건축가분들이 계시다.


따라서 그런맥락에서 

오늘은 우리에게 사무소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프리젠테이션' 에 대해 매우 간단하게 써보고자 한다. 

물론 여기서 프리젠테이션이란 이렇게 해야한다 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보다 더 깊은 내공을 갖고 계신분들이 많으니 그런건 어불성설일것이기때문에 

나는 그저 우리의 경험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프리젠테이션.

내가 학부를 다니고 있을때는 이 프리젠테이션이 그저 발표 정도의 의미였다. 

그것도 발표날 아침까지 정신없이 작업을 하다가 발표순간에는 떡지고 피곤에 찌든 몰골로 

그저 급하게 만든 ppt파일을 넘기며 소개하는 것 정도의 의미였다.

아쉽게도 학부때 선생님들 중 그런 '자세'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따끔한 충고를 해주신 분이 없으셨다.

아마도 얼마나 피곤하게 당일 아침까지 작업하고 있었는지 알고 계시기때문에 스승으로서 차마 

말을 못하셨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델프트에서 마스터과정을 하면서 이런 프리젠테이션의 자세에 대해 본격적인 지적(?)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그 디테일한 지적들의 내용은 튜터들마다 모두 달랐지만

강조했던 것들의 공통기저에는 프리젠테이션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어떻게 하면 보여주고 싶은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 사소한 것까지 고려해서

고민하고 준비하라 라는 것이었다고 지금 순간에 추측해본다... (시간이 지나 좀 기억이 미화되고 

희석되긴 했지만 그랬던 거 같다고 믿는다 ㅋ)

어쨌든 그러한 튜터들의 지적을 비록 나는 학부때와 비슷한 작업패턴이 몸에 베어 쉽게 체화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공부한 유럽의 다른 친구들의(다는 아니고 주로 프랑스, 이란, 포르투갈에서 온)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낄 수는 있었다.


그러다 네덜란드 사무소에서 일을 하는 동안 이 '프리젠테이션' 에 대해 다시금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프리젠테이션을 정말 많이 했다.

(내가 했다는 것은 아니고 사무소 파트너가 했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해야하는 경우는 당연한 것이었고, 

개인주택을 의뢰한 건축주에게도 마주앉아 협의하기전에 건축주 한명을 위해서 형식을 갖춘 프리젠테이션을 하였다. 

거기다 건물이 지어질 대지의 주위에 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또 구조, 시공, 조경 디자이너에게도.

경우에 따라 그 양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굉장히 많은 프리젠테이션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하였다.

하지만 많은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노력만큼이나 인상깊은 것은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자세였다.

개인적으로 그 파트너의 에너지와 눈빛과 적극성을 존경해 마지않지만 

그는 프리젠테이션을 누구에게 하든 결코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지켜봐온 동안에는.

그는 그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걸로 모자라 마치 그 자리를 씹어삼킬듯한 기세로 

너무나 적극적으로 상대방에게 말하고 설득하고 알린다.

건축주라면 이 건축가를 신뢰하게 되거나 혹은 설득당할 수 밖에 없을 것 같고

함께 일할 사람이라면 '아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소속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최소한 '이 사람이 정말 이 프로젝트에 대해 열정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보며 프리젠테이션은 아마도 건축가가 프로젝트를 알리고, 

또 자신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어떤 건축가는 느리면서 또박또박 천천히 말을 하면서 자신을 충실하게 알리는 분도 계시다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프리젠테이션의 성향은 곧 성격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프리젠테이션' 이란 단어를 쓰고나니 갑자기 전에 느꼈던 생각들이 떠올라 얘기가 약간 길어졌다.

다시 이 글의 목적인 '경험을 매우 간단하게 소개하려는 글'로 돌아가 마무리 하자면

어쨌든 우리는 본의 아니게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중에 아주 많은 건축주(?)가 있는 일명 social project 들이 있다.

그런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여러사람이 관여하게 되고, 그런이유로 여러사람에게 프로젝트를 소개해야할 기회들,

즉 프리젠테이션이 많을 수밖에 없다. 본래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프리젠테이션을 받는 것을 좀 민망해 하는 분위기가 있는 듯 하다.

건축가가 하고싶어도 받으실 분들이 어색해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프리젠테이션의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얘기가 끝날때쯤에 그저 '그럼 우리가 몇날 몇일에 지금까지의 과정을 프리젠테이션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받으시는 분들도 싫어하진 않아하신다. 그저 좀 어색하고 귀찮아 하실 뿐이지.

그렇게 자리가 마련되면 그저 열심히 준비해서 하면 된다.

물론 사무실 입장에서도 그걸 준비하려면 에너지가 들어가지만 

이것은 건축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우리의 홍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끼리 추측컨데 그런 프리젠테이션의 긍정적 효과로 인해 "강진아동센터" 프로젝트가 연결된게 아닐까 한다.

울릉도 social housing 프로젝트를 디자인하면서 

프리젠테이션을 울릉군에도 해야했고 해비타트에도 해야했지만, 

이와 별개로 추가적으로 우리가 굳이 열심히 준비해서 유니온스틸에 프리젠테이션을 두 번을 했었다.

아마도 그것이 유니온스틸에 우리를 알리는데 좋은 역할을 해서 강진아동센터 가 연결된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백프로 그것 때문이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최소한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건

프리젠테이션을 하는것이 안하는 것보단 상대방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 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강진아동센터를 진행하면서도 많은 프리젠티션을 했다.

어린이재단에서, 후원기업들에게, 강진군에게

우리에겐 이 모든 자리가 우리를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고 믿는다.






개인적으로 프리젠티이션을 할때마다 

새로운 방법이나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으려 고민하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능력과 시간의 한계로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노력과 한계들이 시간이 지나 차츰 쌓이다 보면

우리에게 적합한, 우리의 생각들이 잘 담긴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프리젠테이션들은 우리를 알리고 보여줄 좋은 기회들이 될 것이다.

프리젠테이션을 두려워 하지 말자. 

독립한 건축가로서는 더더욱 말이다. 



121028 Y in Gangjin  





 


 




그 정도 시기에 그 정도 되는 사무소를 그런 상황에서 그만두기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하지만 성일은 이 주렁주렁 붙은 우려들을 단순히 좀더 재밌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별거 아닌듯 과감히 떨쳐내었다.

물론 본인에겐 별거 아닌일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그의 과감한 용기에 응원을 보내고 

또한 언젠간 반드시 부상할 새로운 건축의 시기에 함께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 그의 짧은 글을 소개하며 그의 다음 선택이 무엇이 될지 기다려본다.





-우주의 중심이 대지빌딩 205호에 머물었던, 지난 한 달-


“그만두겠습니다.”

사실,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두 분 소장님을 만나고 여기에서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은, 짧은 말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 했을 일, 그런데 우연찮게 제가 하게 된, 저에겐 매우 특별한 경험.

지리산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친구에게 온 메세지,
“선배가 하는 사무실이 있는데, 전인적인(?) 인간을 원해.  지금 당장 하는 거 없으면 해볼래?”
“전에 있던 사무소와는 극과 극인데?  무엇이든 해보는 게 좋겠지?  가볼게.”

그렇게 시작한 일이 한 달이 되었습니다.  

JYA-rchitects에 오게 된 것은 분명히 행운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었고 경험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동시에 맡았던 일이 잘 되지 않은 것은 불행입니다.  뛰어난 인재는 주어진 시간이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일을 마무리 짓는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이 일은 사무소 측에서는 ‘손해’이지만, 저에게는 무조건 ‘이득’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지난 한 달을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아가는데 쓸 수 있었으니까요.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저에게 이 소중한 경험은 앞으로 한 달 이상의 의미를 가질 겁니다.  해 본 것과 안 해 본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니까요.  그 차이를 알기에 이 모씨는 그렇게도 ‘해봤는데’를 연발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상황은 우연의 백만 제곱 정도는 될 것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우주의 중심이 제 주위를 맴돌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 번 경험이 이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누군가의 눈에 ‘실패’로 보이더라도  그 때는 ‘실패’가 아니라 누구도 무시못할 ‘경험’으로 자리잡을 것이라 믿습니다.  거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모래 밭에 조금씩 더 깊은 뿌리를 내릴 것이라 확신합니다.

‘과도한 노동과 적은 보수’, ‘사양 산업’, ‘염가 설계’라는 암울한 말들로 점철된 건축계에, 쓰러지더라도 부러지지 못할 굳건한 나무로 자라날 수 있는 뿌리가 되어주세요.
‘나만 살면 돼’가 아니라, ‘내가 잘되야 내 후배들도 나를 보고 따라오지’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던 그 모습, 몇 년 뒤에도 그대로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뒤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첫 번째 collegue가 된 것을 감사하며,
2012년 7월 11일
박 성 일 드림

추신 : 누군가는 걸음마를 내딛는 갓난 아기로 볼지 몰라도 제 눈에는 무소불위의 전차같았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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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의 첫번째 colleague 인 박성일군이 6월4일부터 출근하였습니다 :)


이번 주가 지나고 나면 사무소를 정식으로 개업한지 만 3개월이 된다. 요즘 파트너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서로 공감하는 부분중 하나는 하루하루는 빠르게 지나가는데, 뒤돌아보면 이제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물론 사무소 구한다고 서울을 헤집고 다닐 때는 두꺼운 외투 입고도 덜덜 떨었는데 이제는 반팔입고 다니니 몸은 시간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 머리가 체감하는 시간은 1년 가까이 흐른 것 같다. 아직 매일매일이 낯설고 고민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지만,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쏜살같이 시간이 흐르겠지. 그 때가 되면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야 하는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현재 우리는 하나의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마쳤고, 두 개의 건축프로젝트를 진행중에 있다.


완료된 인테리어 프로젝트는 작가에 의뢰한 사진 촬영이 마무리되는대로 포스팅할 예정이다. 조금만 기다리시라.


그리고 두개의 건축 프로젝트는 해비타트에 대한 재능기부 또는 그것을 통해 파생되어 현재 진행중에 있다. 

해비타트와의 인연은 앞서 사무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간단히 설명을 했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지난 2012년 1월로 돌아가보면...

그 때 Y와 나는 아직 각자의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었고,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온라인 상으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앞으로의 우리 사무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 시기쯤 해비타트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까지 우리는 해비타트가 우리 서로가 같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든 하나의 계기 또는 전환점의 역할을 마치고 장렬히 떠나갔다고 생각하고 별다른 미련조차 두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는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듯이 해비타트 내부 조직에 변화가 생기면서 우리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해비타트에서 새롭게 기획하는 특별 건축 프로젝트에 대해 제안이 들어왔다. 물론 재능 후원이 바탕이 된 제안이었지만, 혈기 넘치는 서른 초반의 젊은 건축가에게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손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100% 협력해 줄 동반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매력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어느 개인, 누군가에게 좋은 집을 지어주는 의미 이상의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우리는 사무소를 내고 곧 해비타트와 후원 협약을 맺게 되었다. 

당시의 사무소 재정을 담당하는 나는 개인적으로 (Y는 물론 다른 생각을 가졌겠지만)

사무소 재정상태가 구멍만 나지 않고 프로젝트를 'JYA'이름으로 완공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기회가 있을까하는 생각.


이후 울릉도 도동에 20세대 해비타트 하우징에 대한 계획이 진행된다.  지금은 계획안이 마무리 단계. 좀 더 마무리되면 웹사이트를 통해 소개할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프로젝트는 울산 구미리 프로젝트.

실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장소는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이다.

이제 동대구를 지나가는데, 아직 서울까지는 2시간 남음.

오늘! 그 동안 지지부진하게 끌어왔던 여러 문제들을 교통정리하고 계약!!!!

프로젝트의 시작은 2개월 전이었고 그 동안 여러번 협의를 거치다가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울산 구미리에 해비타트 주택 3동과 복지관 1동 계획.

해비타트 주택은 표준설계도면에 따라 대지에 앉히고 복지관 설계에 대한 스토리는 웹사이트에 이미 3월에 올려져 있다. 


<울산 구미리 프로젝트 보기>


3월에 계획설계에 대해 마무리가 되고 울산에 내려갔다.  설계안에 대한 협의를 마치고 건축 설계 계약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여기서 건축주와 이견이 생긴다.

계획설계의 대가성 여부와 건축설계비 적정성

이 두가지 문제는 사무소를 운영하는 설계인들이라면 프로젝트마다 늘 따라다니는 고민이자 해결되기 쉽지 않은, 그래서 해결되기 보다는 위의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배려하는 건축주를 만나기를 바라는 그런 상황임은 이미 알고 있던 터.

계획설계, 아니 계획설계라고는 처음 들어본다면서 가설계 아니냐고. 어디서 나온지 모를 정체 불명의 용어.

모두들 교회건축이나 주택건축 한 두번씩 지어본 경험이 있으신 건축주 분들.

그 분들이 알고 있는 프로세스는 가설계 3~4군데 받아보고 맘에 드는데 골라서 설계 진행.

물론 가설계는 돈 주는거 아니라시네.

우리는 시작하면서 계획설계도 돈 받고 하자. 엉뚱한데 힘쓰지 말자고 다짐. 하지만 대부분 특히, 지역 사무소 대부분이 그러할진데 

이를 어찌하리오.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민할 문제다. 같은 설계를 업으로 살아가지만 전혀 다른 생태계에 살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건축 설계비.

평당 4만5천원. 지역에서 설계일 하시는 건축주 인이 부른 제안서에 적힌 설계 단가.

우리가 요구한 설계비는 건축사대가요율로 계산해서 제출. 따져보니 평당 15만원선.

3배나 차이나는 구나.

이를 또 어찌하리오.

원래 고시로 정해진 요율이 이렇습니다. 그리고 공사비가 큰 차이가 없더라도 다른 공간의 퀄리티가 있습니다.

이런 설명도 10~20% 차이가 났을 때 얘기지, 3배차이나는 설계비 가지고는...

결국엔 설계비가 일정부분 조정이 되고 계약에 이르렀다.

단순히 설계안과 설계비로 결정나는 상황이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훅~하고 날라가버렸을지 모른다.

우리가 해비타트 후원 역할을 하고 있고, 해비타트 주택에 대해서는 재능기부형식으로 진행하고 복지관만 요율에 따른 설계비를 책정한 반면에 지역 사무소는 전체 용적에 그냥 가격으로 후려쳤는데 결국엔 가격은 비슷해짐.

이것 외에도 여러 역학적인 상황들이 들어맞아야 현실적인 (이것 또한 현실적일까 의문이지만) 설계비로서 협상이 된다는 사실에

쓴 뒷맛이 남는다. 

여기서 드는 생각.

Y의 말에 의하면 네덜란드 건축사협회는 설계비 덤핑한 업체에 대한 제제조치를 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한국 협회는?

이건 엄연한 생태계질서의 교란인데.

폭리를 취하자는 것도 아니고 적정한 수준 받아서 설계 날림으로 하지 말고 제대로 하자는 건데.


여하튼 2달여간의 밀당의 결과 도장 찍고 서울 올라가는 길.

올 가을까지는 한 프로젝트에 올힌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아... 시험 준비도 해야하는구나... 이런~


지난 금요일 

Y와 나는 호젓한 오후시간을 보내다 '젊은'건축가들이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문화역서울'로 향했다.


건축한계선. 금요토크. 


사이건축,더시스템랩,오즈 

진행은 김광수 김일현 교수

객석에는 민현식, 이종호 건축가.


특별한 주제가 정해져 있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가다보니, 

'이전'세대와는 다른 '젊은' 세대의 건축에 대한 태도, 과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를 맡을 객석의 학생들의 이야기.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들

그리고 실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건축가들의 삶.


느낀 점.

그들의 생각과 Y와 내가 그동안 나누었던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과 우리는 대충 10년 터울인데...  별 차이를 못느끼겠다는 것은 누가 문제인거지?

어쩌면, 치열한 환경 속에서 적응해가는 같은 모습일지도.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서울역앞의 군중속으로 들어서며,

우리의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야겠다.

이번 울릉도 프로젝트가 좋은 계기가 되어 

다른 사무소가 가지지 못한 이야기거리를 지어내야 겠다는 대화로 마무리.


이번주 화요일 울릉도 답사 예정!~ 두근~



독립을 준비하면서는 사업을 시작하는 것 자체에 대한 낯설음과 함께 여러 행정적인 처리를 어찌해야 하는지 나름 고민이 많았다.

실질적으로 사무소를 설립하는 일이 단순히 설계를 '잘'하고 좋은 건축물을 위해 에너지를 쏟는 일외에도 수많은 행정적인, 세무적인 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직접 해야한다.

개략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포스팅을 했지만, 당시에는 빠뜨리거나 미루어왔던 업무들을 처리하기 위해 지난 주에 세무서와 세무사사무소를 찾았다.

일단, 세무서를 찾은 이유는 사업자등록의 업추가.

지난 사업자 등록시에는 '건설업-인테리어 공사'로 등록을 했다. 당장은 라이센스의 문제로 인해 건축설계를 업종으로 등록하지 못해 차선의 방법으로 등록....한다고 했지만,

이 사업자 등록증, 건축주 또는 같이 일할 단체에 우리의 법적인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보내줘야 하는 상황에서, 인테리어공사라는 타이틀은 조금 어색하다. 어색하기 보다는 맞지 않다.

그러던 중,  ANM구리캠프에서 가졌던 김소장님과 이야기중 업등록 그냥 해달라고 하면 된다고 얘기를 듣고, 

아... 그러면 우리도 정정해야겠구나

생각난 김에 운현궁 맞은편 종로세무서로 찾아가서, 업등록 정정 서류 작성하고 신고.

'서비스-건축디자인 및 연구'

'건설업-인테리어 디자인 및 공사'

업등록의 명칭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유연성이 있는듯. 어차피 세무서에서는 각 사업장의 업종을 코드로 관리하기 때문에 그 세부 명칭에 대해서는 업종과 연관성을 고려해서 사업자의 요구대로 작성해줌. 

이로써, 사업자등록증 정정 완료.


그리고 이어서 바로 세무사사무소 찾았다.

복식부기, 기장대리, 부가세신고, 소득세...  뭐 이런 사무소 차리기전까지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객기로 내가 직접해보겠다고... 객기라기보다 사무소에서 돈의 흐름이 빈번하지도 않겠거니와, 매달 10만원씩 고정비용이 잡힌다는 생각에 책 두 권사서 직접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결국엔 포기.

그래서 인근의 세무사사무소 찾고, 세금관련 업무를 맡겨버렸다.

Y가 일전 언급했던 이야기지만,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한테 맡기자는 것. 혼자 해보겠다고 나선 일이 지금와서 보면 조금 한심스러운 면이 있다. 

이로써, 매달 10만원, 그리고 연말 정산해서 매출대비 비용 몇십을 또 청구받겠지만,,,  그동안 한 구석에서 찜찜하고 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하고 끙끙앓고 있던 이를 뽑아버린 느낌.

그만큼 일 열심히 해서 그정도 비용이야 푼돈으로 만들어 버려야 겠다고,  뭐 결국에는 돈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결론도 돈으로 끝나는구나. ㅎㅎ


20120407

J



어느새 말머리 제목에 "2장" 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그렇다고 3장, 4장 이라는 단계를 염두해 두고 있는건 아니지만

공식적으로 "독립" 이라는 것을 했으니 분명 우리는 '준비'라는 제목을 갖던 "1장" 에서 다음단계로 넘어왔음이 분명하다.

어떤 계기가 있어 앞으로 3장 혹은 4장 이라는 쳅터를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런계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우선 "2장" 이라고 명명하고 개업이후의 일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애석하게도 개업이후에 글을 자주 쓰질 못했다.

본래는 매주매주 그 생생한 처절함을 쓰고자 하였으나 현재까지는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그다지 처절하지가 않았고

두번째는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을 생중계를 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운면도 있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이 될지 안될지가 불투명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어느정도 윤곽이 들어났을때 쓰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미뤄둔 경우가 있다.




오늘은 개업이후 오늘까지 약 한달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우리가 진행하였던, 혹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중 하나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한다.


한국에 귀국한지 약 3일정도가 되었을때, 존경해 마지않는(?) 김머머소장님께서 신사동에 돈안되는 프로젝트가 있으니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소개를 해 주셨다.


프로젝트는 신사동에 수입유아용품을 위한 flagship store 를 만드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조건은 약 40평의 1층과 그 외부공간을 디자인 하는 것이었고 다행히도

신사동 대로변이 아니라 블럭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이 아늑한 스케일의 골목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소개받았을때 몇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첫번째는 개인적으로 소위 '매장' 인테리어 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에 대해선 흥미가 없었다.

그 이유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J 를 통해서 인테리어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의 진행프로세스를 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굳이 단가를 가지고 경쟁하는 대열에 끼여들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였다.


처음 건축주를 (건축을 하는게 아니니 건축주라는 표현이 맞는진 모르겠고 후에 인테리어쪽에 있는 분과 대화를

하는동안 유심히 들으니 그분은 이런 의뢰인을 '소비자'라 불렀다. 머 어쨌든 우리는 모든것을 건축의 범주로 보고

생각하고자 하니 그냥 그 의뢰인을 '건축주' 라 부르겠다)

만나러 가면서 위에서 언급한 조건의 경우라면 정중히 거절을 하고 오고자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프로젝트는 몇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첫번째는 건축주가 굉장히 많은 레퍼런스들을 보여주면서 "디자인된" 어떤 store를 만들고 싶어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하기 여하에 따라 기존의 유행을 따라가는, 예쁘게 꾸미는데 초점을 둔 매장과 다른 것을 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번째는 예산이 매우 적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건축주가 원하는 것들에 비하면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이는 일반적인 매장으로 가서는 안되는, 디자인된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고

이런 논리로 충분히 원하는 것을 건축주에게 제안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머 개인적으론 예산이 매우 적은 프로젝트에 대해 승부욕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내가 알기로 네덜란드에서는 건축가가 인테리어 디자인, 혹은 인테리어만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는거 같다.

적어도 VMX 에 있는 동안 '인테리어 디자이너' 라는 직업을 가진사람이 따로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이는 주택의 경우 기본적으로 집주인 스스로가 자기집의 인테리어를 시간을 가지고 완성해 간다.

그래서 삐까뻔쩍하진 않더라도 아기자기하고 아늑하고 섬세하게 꾸며진다.

그 집의 인테리어는 집주인의 인간적인 면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외에 공공적인 프로젝트의 경우 적어도 VMX 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건축가가 내부디자인에 대한

컨셉을 잡고 공사가 진행되었다.

이는 건축물의 전체 컨셉과 내부공간은 당연히 일관된 개념으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개념의 범주를 넘어서는 스케일의 프로젝트에서는 다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러한 두가지 이유로 프로젝트에 흥미가 생겼고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거의 개업식도 하기 전의 일이다.

이후 디자인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개념을 가지고 디자인되었는지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프로젝트를 보면 다 나와있으니 다시 설명을 하진 않고 여기선 그 뒤얘기들을 하고자 한다.


프로젝트 보기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최종단계에서 지어지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건축주가 가지고 있는 예산이 첫미팅때 얘기했던 것보다 더욱 줄어서이다.

즉, 공사비의, 숫자의 함정에 빠진것이다

건축주가 디자인을 매우 맘에 들어했음에도,

우리에게 양해를 구해 디자인을 좀 수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건축주가 꼭 하고싶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사비라는 숫자의 함정에 빠져서 포기하고 말았다.


여기서 공사비라는 숫자의 함정이라 한 표현을 부연설명을 하자면

어떤 인테리어 공사이든 건축주는 결국 복수의 견적을 받아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원하든 원치않든 그 견적을 가지고 공사비를 비교하게 된다.

앞서 우려했던 단가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숫자를 보고 비교를 하는 순간부터 숫자의 함정에 빠진다고 나는 주장한다.


이 경우도 비슷했다. 특히나 건축주의 예산이 굉장히 빠듯했기때문에

건축주입장에서는 많이 싼 숫자를 쉽게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했던 장점이 단점이 되어 돌아온 결과가 되었다.


이 시점에서 사실 우리에게 첫번째 고민의 순간이 있었다.

돌이켜보건데 분명 우리가 강력하게 밀어붙였으면 건축주를 설득시켰을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러하기를 주저했던데에는 매장 오픈 이후의 일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건축주는 분명 우리가 제시했던 디자인과 훨씬 싼가격을 제시한 경우를 두고 매출이라는 측면에서 고민을 하였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제안한 것을 매우 맘에들어했지만 그것이 매출의 증가로 이어질거란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은 물론 우리에게는 있었지만 그것을 증명하거나 보장해줄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좋은 디자인의 매장이 분명 매출뿐만 아니라 매장의 이미지 제고효과, 이슈를 만드는 효과 등등의

가시적, 비가시적 측면에서 분명한 플러스가 있다는 것을 믿지만

그것을 건축주에게 매출이라는,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로, 장담을 해줄 수는 없었다.

매출이라는 것이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것인데 그것을 디자인의 한가지 요소만을 가지고 우리가 주장하기에는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건축주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결정을 건축주에게 맡겨놓은 것이었다.


이후 두번째 고민의 순간이 있었다.

사실 이건 고민의 순간이었다기보다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기로 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단언하건데 우리가 제시한 디자인은 최초 건축주가 원했던 예산의 범위에 들어와 있었다.

(이미 견적서를 가지고 보여줬기때문에 확실하다)

이후 예산이 줄어서 우리는 이 줄어든 예산의 범위에 맞추기위해

건축주와 여러가지 수정들을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이는 수정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디자인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예산이 매우 빠듯했다)

하지만 어떤 프로젝트건 건축주의 예산이 넉넉하지 못한것이 99%이고

이에 맞추어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기때문에 이는 결코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건축주가 다른 터무니없는 공사비를 제안한 공사업체의 경우를 얘기하시는 순간

이 프로젝트는 이미 가격경쟁의 프로세스에 들어갔다는걸 느낄수 있었다.

그 순간이 아주 홀가분하게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순간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해서 프로젝트는 마지막에 와서 좌절되었다.

한편으론 줄어든 예산에 의해 일부가 수정 혹은 포기된채 공사되었을때 과연 우리가 원한 것이 잘 표현되어질수 있을지

그 결과물에 대한 우려도 있었기때문에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아쉬운것은 건축주분과 개인적으로도, 디자인 결과에 대해서도 매우 좋은 관계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숫자의 함정에 빠져 최종 결과를 내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게 남는다. 


이 프로젝트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인테리어" 라고 불리는 프로젝트중 첫번째 경우였다.

(물론 나는 이 또한 건축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진행한다)

처음에 우려했던 것보단 생각할 여지가 많은, 매력있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처음에 우려했던 것만큼 프로젝트 프로세스자체가 왜곡된 부분이 많이 있다고 느꼈다.


다만 내부공간의 평면을 짜고 공간을 상상하고 만들어 감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공부가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매우 제한된 여건안에서 "특별함" 을 만들어 내는 공부를 하기에 매우 좋았다.

또한 그 진행이 매우 속도감있게 이루어진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끝으로 비록 우리와 함께 완성해 가지는 못했지만

이자리를 빌어 우리를 믿어주시고 또한 좋은 선물까지 주신 두분 건축주분께 감사드린다.


120406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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