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와 몸이 몹시나 바쁘다.
개인적으로는 새로 들어가 살집을 정리하는 일이고
공적으로는 사무실을 만드는 것이다.

우선은 사무실이 안정이 되고 준비가 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급한것은 내부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고 책장과 책상 및 테이블을 들이고
컴퓨터 및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중에서 선행되어야 할것은 내부 페이트칠이다.
하루 날을 정해서 둘이서  시작했다.

J 가 페인트칠을 위한 사전작업을 했다.

무척이나 꼼꼼한 그다 ㅋ

날이 너무 추운날이어서 창문을 열수도 안열수도 없는 상황이다.

열면 금새 춥고 안열면 냄새에 질식할 것 같은..


약 하루종일에 좀 모자른 시간동안의 노동끝에 작업을 끝냈다.

세상에 모든 페인트 노동자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허리와 무릎이 하염없이 아프다.

다만 사무실을 칠해간다는 것에, 그리고 확연히 하얗고 깔끔해진 사무실분위기에

큰 보람과 재미를 느꼈다. 한번이라면...ㅎ


청소를 끝내고 미리 주문해 두었던 책장을 받았다.

하얀색의 총 15칸짜리 책장이다.

일산의 가구단지를 뒤져서 10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럼한 가격에 구입했다.



사무실의 책상 및 테이블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할까 하고 고민이 많았다.

이유는 테이블은 구입처와 만드는 방법, 혹은 스타일에 따라서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사무실 책상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책상들은 우선 선택에서
제외를 하였다.
분위기가 곧 일의 능률이라는 모토(?)아래 좀더 자연스러운 책상을 원했다.
그래서 맞춤가구를 알아봤는데 역시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아는분의 소개로 알게된 funnyturemaker 라는 공방을 운영중인
furnituremaker 를 만났다.
젊고 활력넘치고 열정적인 아가씨로 우리의 큰 걱정인 비용면에서도
거의 손해를 보다시피해가며 테이블을 제공해 주시기로 하였다.
미안했다. 거의 협박하다시피했으니.. ㅎ

어쨌든 그렇게 해서 책상용으로 쓸 테이블 두개와 회의용으로 사용할
테이블 한개, 총 3개의 테이블을 주문하였다.

또한 더블어 책상용 테이블의 도착과 시간을 맞춰 친구를 통해 부탁한
컴퓨터를 찾아왔다.
모니터와 본체를 합쳐 100만원정도의 예산에서 최고의 성능으로 맞춰달라고
또 협박을 하였다.

앞서도 말했듯이 우린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흐흐흐

이자리를 빌어 테이블을 협박당한 정리나씨(www.funnyturemaker.com)와
컴퓨터를 협박당해 주문, 조립 및 OS설치까지해준 친구 이제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 사무실도 처음부터 모든걸 다 만들어 놓고 시작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JYA 의 성장과 함께 채워져 가길 바란다.

120213 Y
귀국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귀국을 계기로
지난 네덜란드에서의 시간들을 모두 이곳에 정리하고, 쏟아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동안 간간히 올렸던 글들에서 이미 많이 언급했기도 했거니와
나 스스로도 이곳에서의 생활을 어찌 정리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다만 20대후반에 와서 30대초반까지를 이곳에 있으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이란 혼자서 살아갈수 없다는,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의 나의 삶이란 모든게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어고 지속되어 왔다.
델프트에서의 형님, 누님, 동기, 후배들
암스테르담에서 평생의 연을 맺은 나의 또하나의 맘 과 파더, 그리고 여러분들
VMX 의 고마운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무사히 이시간까지 올 수 있었다.

그들에게, 그리고 주변의 모든이에게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
귀국하는 비행기에 챙겨가야하는 마음이다.

또 하나 네덜란드로부터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여유' 이다.
돌아보건데 네덜란드에서는 시간이 마치 천천히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루 24시간을 쓰는건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천천히 걸으면서, 몇십분이라도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마치 슬로우무비처럼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바라보게 하는 여유가 있었다.
또한 동네를 걷고, 차를 타고 가고, 기차를 타고 가는동안 주변을 관찰하고 느끼고
행복감을 느낀다.

이러한 마음의 여유는 건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고, 다른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하고, 멀리 떨어져 전체를 다시금 보게하는
그러한 여유를 갖게 해준다.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에 급급했을때 놓치기 쉬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하나를 하더라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비단 건축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집을 지으면 이들은 여유를 가지고 집을 꾸며나간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완성해 간다는 것이다
한번에 다 만들겠다고 욕심부리지 않는다.
자신이 나이들어 가듯이 집도 함께 완성해가며 함께 나이든다.
이런 여유속에서 그들은 집에 대한, 건축에 대한 철학을 자연스럽게 형성해 간다.

이러한 철학은 무슨무슨 디자인 이론 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책에서 보고 머리로 이해하려는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깊이 네덜란드의 건축에 들어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돌아간다.
바라는 건 지금 이 손에 닿을듯 말듯한 이 느낌들이 한국에 가서도
증발되지 않고 계속해서 내 몸과 마음과 생활패턴에 새겨졌으면 하는 것이다

120201 Y


맘과 파더를 비롯한 암스텔담의 고마운 분들


 

귀국을 한주 앞두고 바젤을 찾았다.

근 4년가까이 유럽에 있는동안
4번의 스위스 여행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건 두번째로 스위스를 찾았을때 였는데
당시엔 차를 빌려서 했기 때문에 다른 세번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로운 여행을 할수 있었다

따라서 일정이나 교통편에 완전히 구속되지 않고 말그대로
길이 있는 곳을 따라 여행을 했다.

그 알수 없는 길들은 지도나 여행책자에는 나와있지 않은
스위스의 알수없는 마을들로 나를 인도하였고
나는 비로소 진짜 스위스의 삶을 만날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풍경들은
단언코 '적어도 스위스에서' 만큼은 유명한 현대건축물들을 만날때보다도
더 감동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건 단순히
'더 이상 이보다 더 아름다울수 없을 것 같은 자연과 인간의 삶의 조화를 체험하는데서 오는 감동'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순전히 건축을 여전히 배우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스위스 현대건축가들의 작품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들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건축언어, 재료의 물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공간에서 느껴지는 담백함.
결코 이러한 감각들은 어느날 갑자기 천재같은 건축가들에 의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듯이 만들어진게
아니다.

그것들은 그들이 어려을때부터 삶을 통해 언제나 함께 해온 그들의 전통의로서의 삶과 건축이
자연스럽게 그들속에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현대적인 모습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왜 Peter zumter는, 왜 헤르조그 앤 드뮤론은 혹은 어떻게 저들은 저런 건물을 잘 만들까 
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은 스위스의 숨겨진 마을들을 찾는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쯤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나에게는 어린시절부터 나와 함께 나이들어온 전통과 생활을 담아내는 공간이 무엇일까?
다행이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 거실이 아닌 안방, 부엌, 사랑채로 둘러쌓인
마당이, 그리고 소파가 아닌 대청마루와 안방의 옷장뒤에 숨겨져있던 비밀스런 다락방에 대한 기억과 몸이 기억하고
있는 공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머리와 손에 깃들어서 건축으로써 투영되어 지지는 못하고 있다.

좀더 넓게 보면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단절되어 버린 우리의 유산이 못내 아쉽다.

이것은 결코 전통을 살리자, 한옥을 살려서 현대건축에 적용해야 된다 라고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그럴수도 있고 안 그럴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과거와 우리가 가진 유무형의 유산에 대한 이해는 분명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건축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시작하는 우리로서는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유심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우리의 얘깃거리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의 '당분간' 은 마지막 여행이 될 바젤여행이 끝났다.

120125 Y

근 한달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
이 글도 벌써 써논지가 한달은 되어버린 글인데 이제서야 이렇게 올린다
보통을 글을 올리기 전에 최소한 오타체크의 이유에서라도 한번은 읽어보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지난밤에 쓴 연애편지가 다음날 아침에 읽으면 유치찬란한 3류시처럼 되버리듯이
왠지 지금 읽으면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지 못할만큼 유치하게 느껴질거 같아서이다.
그저 저 순간에 저 감정을 그대로 이곳에 올리는게 맞을거 같다.


회사를 나왔다.

처음 JYA blog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생각해왔던 순간이자, 가장 먼저 쓰고 싶었던 문장이었다.
지난 여름부터 가졌던 많은 생각들,
이미 앞에서 글로 남겼던,
생각의 타래들을 끊어버리고 
아직 일과가 끝나지 않은 오후에 회사를 나왔다. 

만5년. 숫자로만 세어보면 오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돌이켜보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듯 하다.

그 5년동안 같이 지내왔던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1시간정도면 인사를 다 드릴것 같았는데, 다시 자리에 앉고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많은 사람들중 몇가지 상황들을 소개한다.

#1. 
모든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말중에 '경기도 어려운데 어찌...'
나도 그렇게 들었고, 그 사람들도 그렇게 들었고,
신문에서도 떠들고, 대통령도 떠들고, 유럽도 그렇다고 하고, 미국도 어렵다고 하고...
그러면 아.. 정말 경기가 어려운가 보구나. 보구나. 보구나. 
하지만, 과연 경기가 좋았던 적은 얼마나 있었을까.
IMF이전? 아니면 지난 금융위기 이전?
그 때 당시도 모두들 지금은 경기가 호황이다라고 했을까.
어렵다고 하지만, 아직도 도시에는 크레인이 올라가고 가림막이 처져있고
누군가는 먹고 살고 있다는 것.
겪어보지 않고서는 속단할 수 없다.
꼭 겪어봐야 아는가? 라는 질문에는 
그럼 이제 호황이니 어서 독립해라 라고 그 때 말해줄건가?  라고 답하고 싶다.

#2.
인사드렸던 몇 분 중에는 개인사무소를 운영했거나, 준비하다가 포기했던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의 표정과 눈빛은
큰 회사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들과는 조금은 남달랐다.
뭔가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복잡하고 애잔함?
그들이 겪었던 힘든 길과 고민들이 떠올랐으리라.
결국은 잘 하라고, 대신 잘 하라고 많은 격려를 주신다.

#3.
입사할때부터 실장님으로 계셨던 (다녔던 회사에서 실장급은 타사무소의 본부장급이다)
어제까지도 소속 실의 상무님으로 계셨던 분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하고 싶은 말 없냐고 해서...
저 나가고 좋은 기회가 있으면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제 밑에서 일하다가 나가니까 같이 일하는 관계가 되버렸군
큰 건 따서 외주를 주는 상상을 해본다... 크허허

#4.
1층 데스크에 경비 및 관리로 일하시는 분.
야간근무에 '타로점'으로 유명하다. 
회사사람들 알게모르게 1/3넘게는 봤을게다.
지난 주 인사드리고 타로점 봐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야간근무때 찾아오라고 하시는군.
세 장을 뽑았다.
여기서 세세히 말하기는 뭣하지만,
나 자신, 큰 조직에 길들여진 나 자신을 바꾸는게 중요하다 나왔다.
그 말을 와잎에게 전하니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하신다.
^^


이제 다시 시작이군. 앞으로의 뜨거운 5년을 위하여.

120201. J.

 
이번 주에는 개인적인 서류들을 정리했다.

머 나에게 있어 이곳에서 정리해야했던 공식적인 서류들이라면
Master degree에 대한 legalization 과 아포스티유를 받는 것,
네덜란드 건축사 라이센스에 대한 legalization 과 아포스티유를 받는 것,
그리고 경력확인서 정도였다.

덕분에 네덜란드 북쪽의 흐로닝헨(Groningen)부터 덴하그(Den haag)의
 courthouse와 chamber of commerce 등등을 부지런히 다녀야 했다.

네덜란드 건축사 라이센스가 한국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진 아직 잘 모른다.
한-EU FTA 이후에 먼가 현실적인 변화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아직 자세히 확인을 하진 못했다.
아마 이런것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을 해야하는 과정(수고?)이 남아 있는 듯 하다.

이번글은 너무 짧나?

120112 Y





토요일에 파티가 있었다.
더치파트너가 신년파티 겸 내 송별회를 겸해서 집으로 초대를 했다.
보통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집으로 초대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파티는 언제나 그렇든 다같이 술마시고 얘기하고 떠들고 웃고, 저녁먹고.
그리고 이번엔 파트너들이 일일이 각자를 위해 준비한 선물들을 추첨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골라주는 시간이 있었다.
내 선물은 누가 골라줬드라… 음… 겨우 어제일인데 기억이 안난다.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 보니 누가 누구한테 줬는지 원.. 암튼 내가받은 선물은 텍스트테잎(text tape)이다.
상자않에 수많은 단어들이 들어 있고 그 중에서 필요한 단어를 골라서
원하는 문장을 조합해 어디다 붙이거나 하는 것이다.



파티가 끝났다.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또한 델프트에서 우리들끼리 했던 파티와는 또 다른 경험의 파티였다.
고급스러웠고 유쾌했다.
JYA도 이런 파티를 연말쯤에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것으로 공식적인 VMX in Amsterdam 에서의 일정은 끝났다.
물론 앞으로도 이들을 볼일은 많이 있을 것이다.

120114 Y
한국에서 돌아왔다.

돌아와서 약 일주일정도 사무실에 나갔다.
한국에 가기전에 하고 있던 프로젝트들을 정리를 했고
그 사이에 중간중간 개인적인 일들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사무소와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나같은 경우엔 조금 복잡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우선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이슈는 VMX에서 우리사무소에 대해
한국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VMX 한국 사무소를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일정 금액을 투자를 하는 것일테고
(혹은 우리는 일정의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로서는 좀더 안정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얘기는 현재의 우리로서는 굉장히 부담되는 제안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공짜로, 혹은 그저 나와의 정을 생각해 그런 제안을 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얘기는 가능성만을 남겨둔체 후에 적당한 때가 되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다만 나에겐 '가능성'을 열어두는게 중요하고,
VMX 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분명 우리가 갖지 못한 능력과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무엇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나에겐 나를 끊임없이 자극시켜줄 수 있는 다양한 '자극들'이 중요한데
VMX는 분명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자극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쨌든 내가 일하던, 배우던, 나를 잘 알고, 나를 자극시켜 줄 (좋은 방식으로건, 혹은
나쁜 방식으로건) 사무소와 관계를 잘 변경하고 정립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고맙게도 다음주 주말에 송별회를 겸한 파티가 있다.
VMX 에서의 마지막 공식적인 일정이 될 것이다.
섭섭하고 고맙다.


120106 Y
지난 2주 동안 많이 바빴다.
나는 곧 회사를 나올 몸이지만,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달 쯤 팀장님께 먼저 내 거취에 대해 말씀드릴적만 해도 이렇게 바쁘진 않았는데,
팀에게 미안한 감이 많다.

그리고 이 2주동안
회사와 주변에 나의 행동에 대해 알렸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 프로젝트 총괄하는 부장님, 입사를 했을 적부터 줄곧 내가 속한 실의 실장님으로 계셨던
상무님께도 모두 알렸다.

동기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거치며 같이 일 했던 동료, 후배, 팀장님들.

그리고 가족들, 친척들에게도 대부분 알렸다.

반응은 ...

부럽다 / 용기가 대단하다 / 집에서 허락해준게 더 대단해다 -_-; / 잘 해봐라 / 실무를 좀 더 하고 하지 그러냐 / 
일은 어떻게 시작할거냐 / 라이센스는 어떻할거냐 / 사업하려면 이런저런거 잘 챙겨야 한다 / 사기꾼 많다 / 
일 한다음에 돈은 잘 받을 수 있겠냐 / 동업하는 친구랑 잘 해야한다 / 사무실은 어쩔거냐 / 
지금 가지고 있는 맘을 잊지 말아라 /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잘 참아내라 / 하다가 안되면 다시 돌아와라 /

위의 적은것들 말고도 많다.

상대방들의 반응에 크게 동요되고 싶지 않아도, 상대방의 칭찬에는 어깨가 들썩이고, 걱정에는 주눅이 든다.
하지만, 
아직도 겪지 않고, 무슨 일이 생길지 직접 부딪히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주변의 반응에 대해서 최대한 초연하고자 한다.

 그리고 오늘 대전에 장인어른한테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지막 한 마디만 가슴에 담고자 한다.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구경꾼이다, 주인공은 너희들이다" 

그들의 걱정이 나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나타내는 것일 뿐 결국은 헤쳐가는 것은 Y와 나 이 둘이라는 것을
다시금 마음속에 새긴다. 

20120114 - J 
3주전에 한국에 들어와 개인적인 일들과 함께 내년 2월초에
독립을 위한 좀더 구체적인 사항들을 준비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보이는 것은 역시나 사무실자리를 얻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독립하고 우리에게 프로젝트를 줄 가능성이 있는 "potential client" 를 만나
일의 진행 시기와 가능성을 점검하고 독려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첫번째로 사무실을 정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앞서 J가 글에서 쓴 것처럼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성북동 근처의 몇몇 후보들 중에서 2군데정도를 추려서 둘러보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성북동 깊숙히 자리잡은 작고 매우 저렴한 원룸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한성대입구 역에서 내려 사무소까지
가는길은 높은 담장의 고급주택들과 그 사이사이 자리잡은 갤러리들이 도착하기까지
사무소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줄 것이고 찾아오는 이의 마음속을 주눅들게 할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따라오던 대로변에서 접어들어 사무소에 닿기 위해 올라야 하는 급경사의 경사로는
찾아오는 이의 허리를 다시한번 굽히게 할 것이다.
건축주 혹은 협력자를 만나기 위한 사무소로는 매우 훌륭한 위치였다.
나 또한 매일매일을 사무소를 향해 허리를 굽혀 오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해질 수 있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일 것이다.
주변은 매우 조용하고 나무도 많고 주차할 곳도 많고 마음에 들었다.


사무실공간까지 올라가는 길 _ 스트리트 뷰
안타깝게도 내부 사진은 없다

다만 내 마음속에 걸리는 것은 내부가 너무 좁아서 둘을 위한 책상을 두고 나면
여유공간이 별로 안남는 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넓직한 테이블을 두고 만남도 갖고 얘기도 하고 프로젝트에 관해 토론도 하고
차도 마시고 싶은 욕구를 채울 수 없을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좁은 공간이 나의 사고와 마음을 제안하고, 초조하게 하고, 좁게 만들것 같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금전적 자산에 비추어봤을때 포기하기엔 아까운 옵션이었다.
따라서 옵션으로 우선 두고 출국까지 몇일이 남았으니 좀더 찾아보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무실을 찾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원하는 지역의 부동산중개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문의를 해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인터넷의 직거래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앞서 J도 얘기했듯이 여러가지 이유로 강남의 빌딩숲은 피하고 (물론 여러가지 이유중엔 임대료에 대한
현실적인 요인이 한가지이기도 하다) 좀더 사람사는 곳 같은, 약간은 느슨한 동네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본 곳이  성북동지역이었다
나는 시간과 물리적인 한계상 우선 인터넷 직거래사이트를 주로 이용하였다.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고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그만한 시간적여유와 나의 체력적 한계가 충분치 않은 이유였다.

우리에게는 사무실 임대의 조건중에서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우선 임대료는 보증금은 최대 1000만원까지, 매달내는 임대료는 가급적 50만원이하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혹시 여러가지 이유로 사무소등의 임대조건을 찾아보신 분들은 아시리라 생각되지만
이런 조건에 서울에 있어야 하며 생각보다 넓어서 책상도 놓고 넓직한 테이블도 놓고 모델을 만들 공간도 있어야하는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사무실자리를 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당연히 좀 깨끗했으면 좋겠다.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했는데 좁더라도 금전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을 찾을 것이냐
아니면 물리적인 측면에서 우리를 만족시키는 곳을 찾고 비용을 좀더 감수할 것이냐 였다.
고민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우선은 비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독립하고 나서 좀더 즐겁게,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는 사무실의 물리적 조건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고 두번째는 비용은 사무실을 같이 사용할 누군가를 한명 찾아 공간을 같이 써서 매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을 가지고 열심히 검색을 해봐도 원하는 눈높이에 맞는 사무실을 찾는것이 쉬운것은 아니었으나
가까스로 2군데 정도를 정하고 둘러보고자 연락을 했다.
한군데는 을지로 4가역 7번출구에서 약 5m 떨어져있는 말그대로 초역세권! 두둥!
다른곳은 신설동역에서 좀 걸어야하는 종로구 숭인동의 사무실.

먼저 을지로에 있는 사무실을 보았다.
알만한 사람은 아시겠지만 주변에 각종 자재상가, 출력소, 공예소등 영세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동네이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건물로 들어갔다. 2층에 들러 임대인을 찾고 함께 4층으로 올라갔다.
뜨악이다.
건물이 낡은것 또한 좋았지만 올라가는 길이....쉽게 표현하자면 누군가를 데려오기가 좀 민망할 것 같았다.
특히나 화장실은 내가 쓰기에도 민망하고 불편할 것 같았다.
4층에 도착해 사무실로 들어갔다.
우와이다.
무진장 넓었다. 왠만한 작업대까지 다 있었다. 건물이 매우 낡은 것이긴 했지만
내부는 수리를 좀 해서 깔끔한 편이었다 좀 추운것만 빼고.
음... 좋다 나쁘다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다.
나오면서 보니 또 한가지 안타까운점이 주차공간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내부가 넓은 것에 마음이 끌려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겨울에 난방비도 좀 많이 나올것 같긴 했지만.
조건은 1000만원에 월 55만원이었고 전기세는 따로 였다.
이쯤되면 함께 사무실을 나눠 쓸 누군가를 구해야 할것 같은데
4층까지 올라오다가 그냥 돌아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을지로 사무실 _ 인터넷 직거래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들이다



다음으로 숭인동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청계천을 면하진 않고 한블럭 뒤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은 쾌적한 편이었다.
여기서 쾌적한 편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차들도 지들 맘대로 주차되있고
걸어다니면 심심하진 않을 것 같은 그런 환경이라는 얘기다.
사무실은 빌딩 2층에 있었다.
우선 계단을 한번만 올라가면 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건물또한 깨끗한 편이었다. 특히 화장실이
거기다 앞서 얘기했듯이 건물이 확보하고 있는 주차장도 많이 있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주차할곳이 언제든지 있을 것 같은 여유로운 느낌이 좋았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을지로의 사무실만큼은 아니었지만(어립잡아 을지로는 약 18평정도는 되 보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만큼은 여유로워 보였다
특히나 맘에드는 것이 ㄷ 자 형태의 내부구조가 공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것 같았다
내부도 깨끗하고 특별히 손댈곳이 없어 보였다.
마음이 이곳으로 기울었다.
건물주인과 통화를 하고 내년 2월부터 계약을 하기로 했다.
이곳은 조건은 보증금 600만원에 임대료는 전기세를 뺀 55만원이다.


숭인동 사무실 _ 인터넷 직거래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들이다

이제 이 사무실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된다

개인적으로 맘에 들면 별로 망설이지 않고 바로 진행하는 편이다
살면서 몇번인가를 고민하다가 놓치고 후회한적이 있어서
그때의 아쉬운 느낌이 싫고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한다는 것이 귀찮아서 인듯 하다.
우리어머니가 "별놈없고 별년없다" 고 하시는 말처럼 너무 이것저것 잰다고 해서
특별히 별난 놈이 나오지 않으니 괜히 시간낭비, 에너지낭비 말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기타 인터넷 서핑을 위한 시간을 빼면
사무실을 결정하는데 약 3일, 2번의 외출 이 소요되었다.

111227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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