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전에 한국에 들어와 개인적인 일들과 함께 내년 2월초에
독립을 위한 좀더 구체적인 사항들을 준비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보이는 것은 역시나 사무실자리를 얻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독립하고 우리에게 프로젝트를 줄 가능성이 있는 "potential client" 를 만나
일의 진행 시기와 가능성을 점검하고 독려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첫번째로 사무실을 정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앞서 J가 글에서 쓴 것처럼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성북동 근처의 몇몇 후보들 중에서 2군데정도를 추려서 둘러보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성북동 깊숙히 자리잡은 작고 매우 저렴한 원룸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한성대입구 역에서 내려 사무소까지
가는길은 높은 담장의 고급주택들과 그 사이사이 자리잡은 갤러리들이 도착하기까지
사무소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여줄 것이고 찾아오는 이의 마음속을 주눅들게 할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따라오던 대로변에서 접어들어 사무소에 닿기 위해 올라야 하는 급경사의 경사로는
찾아오는 이의 허리를 다시한번 굽히게 할 것이다.
건축주 혹은 협력자를 만나기 위한 사무소로는 매우 훌륭한 위치였다.
나 또한 매일매일을 사무소를 향해 허리를 굽혀 오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해질 수 있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일 것이다.
주변은 매우 조용하고 나무도 많고 주차할 곳도 많고 마음에 들었다.


사무실공간까지 올라가는 길 _ 스트리트 뷰
안타깝게도 내부 사진은 없다

다만 내 마음속에 걸리는 것은 내부가 너무 좁아서 둘을 위한 책상을 두고 나면
여유공간이 별로 안남는 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넓직한 테이블을 두고 만남도 갖고 얘기도 하고 프로젝트에 관해 토론도 하고
차도 마시고 싶은 욕구를 채울 수 없을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좁은 공간이 나의 사고와 마음을 제안하고, 초조하게 하고, 좁게 만들것 같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금전적 자산에 비추어봤을때 포기하기엔 아까운 옵션이었다.
따라서 옵션으로 우선 두고 출국까지 몇일이 남았으니 좀더 찾아보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무실을 찾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원하는 지역의 부동산중개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문의를 해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인터넷의 직거래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앞서 J도 얘기했듯이 여러가지 이유로 강남의 빌딩숲은 피하고 (물론 여러가지 이유중엔 임대료에 대한
현실적인 요인이 한가지이기도 하다) 좀더 사람사는 곳 같은, 약간은 느슨한 동네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본 곳이  성북동지역이었다
나는 시간과 물리적인 한계상 우선 인터넷 직거래사이트를 주로 이용하였다.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고 확인하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그만한 시간적여유와 나의 체력적 한계가 충분치 않은 이유였다.

우리에게는 사무실 임대의 조건중에서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우선 임대료는 보증금은 최대 1000만원까지, 매달내는 임대료는 가급적 50만원이하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혹시 여러가지 이유로 사무소등의 임대조건을 찾아보신 분들은 아시리라 생각되지만
이런 조건에 서울에 있어야 하며 생각보다 넓어서 책상도 놓고 넓직한 테이블도 놓고 모델을 만들 공간도 있어야하는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사무실자리를 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당연히 좀 깨끗했으면 좋겠다.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했는데 좁더라도 금전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을 찾을 것이냐
아니면 물리적인 측면에서 우리를 만족시키는 곳을 찾고 비용을 좀더 감수할 것이냐 였다.
고민끝에 후자를 선택했다.
우선은 비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독립하고 나서 좀더 즐겁게,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는 사무실의 물리적 조건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고 두번째는 비용은 사무실을 같이 사용할 누군가를 한명 찾아 공간을 같이 써서 매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을 가지고 열심히 검색을 해봐도 원하는 눈높이에 맞는 사무실을 찾는것이 쉬운것은 아니었으나
가까스로 2군데 정도를 정하고 둘러보고자 연락을 했다.
한군데는 을지로 4가역 7번출구에서 약 5m 떨어져있는 말그대로 초역세권! 두둥!
다른곳은 신설동역에서 좀 걸어야하는 종로구 숭인동의 사무실.

먼저 을지로에 있는 사무실을 보았다.
알만한 사람은 아시겠지만 주변에 각종 자재상가, 출력소, 공예소등 영세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동네이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건물로 들어갔다. 2층에 들러 임대인을 찾고 함께 4층으로 올라갔다.
뜨악이다.
건물이 낡은것 또한 좋았지만 올라가는 길이....쉽게 표현하자면 누군가를 데려오기가 좀 민망할 것 같았다.
특히나 화장실은 내가 쓰기에도 민망하고 불편할 것 같았다.
4층에 도착해 사무실로 들어갔다.
우와이다.
무진장 넓었다. 왠만한 작업대까지 다 있었다. 건물이 매우 낡은 것이긴 했지만
내부는 수리를 좀 해서 깔끔한 편이었다 좀 추운것만 빼고.
음... 좋다 나쁘다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다.
나오면서 보니 또 한가지 안타까운점이 주차공간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내부가 넓은 것에 마음이 끌려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겨울에 난방비도 좀 많이 나올것 같긴 했지만.
조건은 1000만원에 월 55만원이었고 전기세는 따로 였다.
이쯤되면 함께 사무실을 나눠 쓸 누군가를 구해야 할것 같은데
4층까지 올라오다가 그냥 돌아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을지로 사무실 _ 인터넷 직거래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들이다



다음으로 숭인동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청계천을 면하진 않고 한블럭 뒤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은 쾌적한 편이었다.
여기서 쾌적한 편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차들도 지들 맘대로 주차되있고
걸어다니면 심심하진 않을 것 같은 그런 환경이라는 얘기다.
사무실은 빌딩 2층에 있었다.
우선 계단을 한번만 올라가면 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건물또한 깨끗한 편이었다. 특히 화장실이
거기다 앞서 얘기했듯이 건물이 확보하고 있는 주차장도 많이 있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주차할곳이 언제든지 있을 것 같은 여유로운 느낌이 좋았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을지로의 사무실만큼은 아니었지만(어립잡아 을지로는 약 18평정도는 되 보였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만큼은 여유로워 보였다
특히나 맘에드는 것이 ㄷ 자 형태의 내부구조가 공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것 같았다
내부도 깨끗하고 특별히 손댈곳이 없어 보였다.
마음이 이곳으로 기울었다.
건물주인과 통화를 하고 내년 2월부터 계약을 하기로 했다.
이곳은 조건은 보증금 600만원에 임대료는 전기세를 뺀 55만원이다.


숭인동 사무실 _ 인터넷 직거래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들이다

이제 이 사무실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된다

개인적으로 맘에 들면 별로 망설이지 않고 바로 진행하는 편이다
살면서 몇번인가를 고민하다가 놓치고 후회한적이 있어서
그때의 아쉬운 느낌이 싫고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한다는 것이 귀찮아서 인듯 하다.
우리어머니가 "별놈없고 별년없다" 고 하시는 말처럼 너무 이것저것 잰다고 해서
특별히 별난 놈이 나오지 않으니 괜히 시간낭비, 에너지낭비 말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기타 인터넷 서핑을 위한 시간을 빼면
사무실을 결정하는데 약 3일, 2번의 외출 이 소요되었다.

111227 Y


독립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 중
그 동안의 글들에서 얘기한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들 이외에도
물리적인 것들이 필요한데 그 중 가장 중요한게
사무실 아닐까 싶은데
일단 고정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에 (일단, 각자의 인건비는 논외로...;;;)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 연인들과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만 할 것 같은 날
집에 하루종일 덩그라니 남겨진 탓에
점심만 먹고 집을 나섬. 화이트 크리스마스구나...

사무소를 구하는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복덕방을 돌아보기로 했는데

 1. 보증금, 임대료는 1000에 50이하로 - 이정도가 최대 한계치...
 2. 위치는 강북 - 강북에서도 동네에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강남을 안하는 이유는? 강남의 오피스 숲은 여력도 없거니와, 이미 수년간 질리게 봐온 덕에
 3. 굳이 사무실이 아니어도 주거용으로 나온 원룸도 같이 알아보기

이정도가 생각해 놓은 것인데, 
이것 말고도
 4. 교통접근성 - 협력업체 또는 클라이언트를 위한
 5. 건축사무소간 공동 사무실

하지만, 당장 클라이언트가 찾아올 일도 당장 흔치 않을 것 같고, 협력업체야 초반 킥오프 미팅하고 전화로 협업을 진행한다면
굳이 매달 몇십만원을 꼴아박으면서 목 좋은데 자리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함.
그리고 건축사사무소간 공동 사무실은 아직 결정된 사항이 아니라, 일단은 개별적으로 생각중
2~3개 사무소가 공동 사용하고, 관리/운영비 분담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비용 문제 뿐아니라, 정보공유나 서로간의 자극제로서의 역할 등 하지만 역시 좀 더 무르익어야할 상황이므로... 패쓰.

일단 오늘은 대충 가격대랑 물건을 둘러보는 겸해서 큰 부담 없이 나섬

이런저런 생각으로 정한곳이 성북동.
지난 여름 길상사를 둘러보기 위해 다니던 성북동 길은
높은 담장과 으리으리한 주택들로 인한 위화감만 빼자면
동네 분위기나 주변 환경은 나무랄대가 없다고 생각함

다행히 성북동 한 구석, 길상사 가는 길목에
연립주택 1층 원룸이 비어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둘러보고.
Y가 오케이만 한다면 난 괜찮다고 생각함

가격도 생각보다 괜찮고 ^^  
동네분위기도 카페나, 갤러리, 오래되어 보이는 성당이 주변에 보이고,

밥집이나, 생활을 위한 가게들은 없어보였지만, 한성대에서 걸어 올라오는 길에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보고
어차피 밥도 자체해결할 생각이므로.

여기 말고도, 한성대 입구쪽 사무실, 약수역 인근 원룸을 둘러봤지만
여러면에서 부족.
가장 큰게 역시 월세.

조금씩 윤곽이 보이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모양새다

집에 돌아와 혹시 근처에 건축가가 살고 있나 지도 검색해보니
주대관교수님의 엑토건축이 우리보다 더 깊숙히 자리잡고 있음.
양평 집짓기할때 처음 뵈었었는데 성북동에 작업실이 있었군.


- 20121225 J,  Merry Christmas! 
사실 독립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구체적으로 준비를 하다 보면
여러가지 걱정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지난번 글에서 말했던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의문이
마음속에서 정리가 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많은 걱정과 망설임이 남는다

나에게 있어 오늘 두번째로 꼽고자 하는것은 다음과 같다.

현재 사무소에 있으면서 어쨌든 다양한 규모와 프로그램의 프로젝트를 다루어 왔다.
비록 한국처럼 단지 전체를 개발하는 아파트 프로젝트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집합주택단지부터, 학교, 오피스, 공장, 대사관, 아트센터, 작은 개인주택까지(개인주택은 아주 잠시만 했었지만)
이러한 다양한 프로젝트들의 경험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독립을 하게되면
아무래도 프로젝트의 규모나 종류가 굉장히 영세해 질 수 밖에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할수있는건 개인주택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도 가능성이 있는 것 또한
규모나 종류에서 한계가 있을 거라는 걱정이었다.

혹시 이러한 변화가 지금의 내 나이를 한참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경험하고 배워가야할 시기라고
봤을때 개인적으로 현재 가진 좋은 기회를 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걱정은 좀더 발전하여
자칫 독립후에 혹시나 이러한 이유로인해 발전이, 성장이 멈추거나 더뎌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이어졌다.
즉, 혹시나 우물안에 갇혀 자극과 변화없이 개구리가 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
그런 의미에서 돌이켜봤을때 현재의 암스테르담 사무소의 환경은 나를 항상 불편하게 하는,
즉, 자극되게 만드는 훌륭한 환경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물론 지금 자세히 쓰기는 애메하지만 이러한 자극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무뎌지는 걸 느끼기도 하고
자극을 내가 어떤 포지션에 있느냐에 따라 100%, 혹은 10%, 즉 얼마나 받아들이고 내것으로 만드느냐가
달라진다고 생각을 한다)

어쨌든 불행하게도 아직 이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두번째 이유' 에 대한 만족할 만한 대답이나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대형프로젝트들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걸 다루기 위해 많은 인원으로 이루어진(특히나 상하가 꽤나 엄격한)조직에서 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지만, 내가 다루어보지 못한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에 대한
일종의 미련은 갖고 있다.
분명 내가 모르는, 경험해 보지 못한, 내가 했던 것과는 다른 규모와 접근방식을 요구하는 디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문제는 한국의 대형사무소에서, 주로 대규모 프로젝트만을 다뤄온 J 에게서 이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면 좀더 나은, 명쾌한 얘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래서 내가 이 시점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해결책들은
조금 막연하고 형태가 없다
다만 아마도 사무소의 형태나 성격을 다른 집단, 혹은 개인과 어떤식으로든, 언제든 함께 의견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을 수 있도록 유연하게 유지하는 것과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이미 자리를 잡으신, 비교적 큰 규모를 다룰 위치에 계신 건축가 분들과
기회가 되는데로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것 등등이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아직은 김치국물 마시는 얘기다)
이 해결책들은 우리가 앞으로 최소 1년여의 시간동안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고 찾아본 후에
그 결과를 가지고 1년후쯤에 다시금 얘기를 할 계획이다

어쨌든 이 문제는 J 와, 더 넒게는 주변의 선배님, 교수님, 소장님들과 더 논의가 되어야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고, 또한 건축가로 살아가며 평생을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111207 한국가는 비행기 안에서 Y   




금요일 오후
파트너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각 담당자들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

다가오는 겨울, 네덜란드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맞아
현재 진행중인 각 프로젝트의 이미지를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버젼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머 포토샾을 하든, 렌더링을 다시 하든.

그리고 이 이미지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축주들에게 보낼거란다.

하하하.
재밌다.
암! 이정도 이벤트는 해줘야지.

건축은 사업이고 건축주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리라 본다.

전에 우리가 끝냈던 개인주택을 가본적이 있다.
건축주가 설계과정에서 그리고 시공과정에서 건축가가 보여주었던 드로잉들, 이미지들, 직접 찍은 미팅 사진등을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둔 것을 보았다
집을 하나 짓는 다는 것은 건축주에겐 결과뿐만이 아니라 그 모든 과정들이 모두 하나의 과정이고 결국
그런것들이 모여 집의, 그리고 그 집에 사는 가족의 역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보내줄 겨울 이벤트 이미지들 또한 건축주들에겐 좋은 추억을 가져다줄 선물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이와 관련해 문득 지난번 코펜하겐 여행에서 본 VM House 의 모자이크 타일 벽이 생각났다.
코펜하겐에 가면 BIG 이 디자인한 집합주거들를 시리즈로 한지역에서 볼수가 있다.
Mountain, VM House, 8tallet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지어진 것이 VM House 인데
이 중 M 에 해당하는 건물의 입구에는 커다란 타일 모자이크로 만들어논 사람 얼굴이 있다.
당시 가이드를 해준 코펜하겐 건축협회 분이 그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 얼굴은 최초 BIG 에게 VM House 의 설계를 맡긴 개발업자의 그것이다.
건물의 시공이 끝났을 무렵 BIG의 사장인 Bjarke Ingels 는 입구에 특별한 것을 만들려는 생각을 했고
이에 개발업자의 얼굴을 유명 예술가에게 부탁해 타일모자이크로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를 들은 개발업자는 이 아이디어를 반대했고,
그러자 Bjarke Ingels 는 코펜하겐의 유명한 집합주거들은 전통적으로 모두 그렇게 해 왔다고
거짓말을 해서 설득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건물의 입구에는 개발업자의 얼굴이 타일모자이크로 만들어지게 되었고
후에 VM House 가 코펜하겐 올해의 건축상(인가.. 잘 기억이 안난다 좀 지난 일이라서.. 암튼 먼 상을 받았다)을
받자 그 상패를 금색타일로 만들어서 전체 얼굴에서 이(the teeth)들 중 하나의 타일대신 붙였다.
그래서 결국 그 모자이크 얼굴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니를 하나 가지게 된 것이다
(들은지 좀 지난 얘기라 정확히 기억하는건지 확신이 안선다. 큰 줄거리는 기억이 나는데 디테일이 좀...ㅋ)

저기 보이는 저 얼굴이 그 얼굴이다. 아쉽게도 금니는 안보인다 (photo by 최유리)

이러한 일련의 아이디어는 개발업자에게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벤트가 되었다.
그는 Bjarke Ingels 의 이런 재치를 매우 높이 샀고
결국 그 후 BIG 의 대표작이 된 Mountain House, 8tallet 을 모두 BIG에게 주었다.

자 어떤가.
거짓말 확! 보태면 현재의 BIG 을 만든건 바로 그 황금 모자이크 타일 하나에서 시작된 것이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돈을 쓰고 접대를 해서 건축주의 마음을 얻는게 아니라
그에게 흥미를 주고, 재미를 주고, 감동을 주고,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건축가가 진정 마음을 얻고
진정으로 건강한 건축가, 건축주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사바사바는 중요하다 끝!

111204 Y


               




              ps. 아직 로고가 미완성이라 임시로 링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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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랜만에 쓴다.
자꾸 일이생기고,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보니 글쓰는걸 미루게 된다
먼가 마음이 편해야만 글을 쓰고 싶어진다
마음이 불편하니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한 방에 앉아서 있는 시간자체가 견디기 힘들때가 있다
말그대로 마음이 허한 사람이 요란하다고 내가 딱 그짝인가 보다

사실 독립을 결정하는데 있어 앞서 얘기했던 왜 독립하고자 하는가 하는 주제는
그리 특별할게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하는 사람치고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며
굳이 건축이 아니더라도 자기 일을 하고싶다 라는 생각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런생각을 결심으로 옮기는데 있어 약간의 계기가 있었고 또한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 다른 말로 하자면 살아남을 수 있을거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매우 크게 작용했을 뿐이다

사실 독립을 결정하기위해 더욱 중요한건
'하면 안되는 이유' 를 생각해보고 고민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지만 그 이유들에 대한 대책을 미리 고민해 볼수있고
결국엔 '하면 안되는 이유'는 없구나 하는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않으면 칠흑같은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 버릴수가 없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결국 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따라서 앞으로 몇번에 걸쳐 우리 각자에게 '독립하면 안되었던 당시의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우선 나에게 있어 독립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때쯤에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지금 독립하는게 과연 맞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내가 지금 독립할 실력을 갖고 있을까' 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져보는 생각이 아닐까 한다

나의 경우에 이런 생각이 실질적으로 다가올때가 언제였는가 하면
사무소에서 파트너들과 미팅을 할 때였다.
우리 사무소는 두 명의 파트너가 있다. 한명은 아일랜드 출신이고 한명은 더치이다
프로젝트는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프로젝트당 1명 혹은 2명이서 진행을 하고
파트너들과 수시로 미팅을 갖는다. 머 한마디로 크리틱을 받는다고 할수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사무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프로젝트 초기디자인에는 거의 참여를 했었기 때문에
(물론 중간에 껴들어갔다가 나온 프로젝트도 있지만)
파트너들과 미팅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졌다

그때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 내고 아이디어를 낸다.
무릎을 꿇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아 많이 배우는구나 하고 느꼈다
하지만 막상 마음속으로 독립을 결심하고 나니
배운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내가 아직 배워야할게 많은거 같은데
과연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네덜란드 사무소에서 일하며 배울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를
버리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매일매일 하루에 열두번도 마음이 왔다갔다했다.

그리곤 근본적이면서 문어발식으로 걱정들이 이어졌다.
선배들이 이 나이에 독립하지 않는건 다 이유가 있었서가 아닐까.
좀더 실무를 하고 독립을 할까.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괜히 시작하는건 아닐까.
여기까지 자리잡는데 쉽지 않았는데 네덜란드에 더 있을까.

하지만 한번 마음속에 자리잡은 욕망은 이런 이성적인듯 보이는 이유들로 쉽사리
잠재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파트너 중 한명인 Don 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이 이유로 면담을 한건 아니고 다른 일로 얘기를 시작해서
하다보니 마음속의 얘기가 나왔나 보다.

솔직히 얘기를 했다.
Don 이 말했다.

if you have a chance, you! have! to! take! it!

정확히 저렇게 말했는진 기억이 잘안나는데 암튼 비슷하게 얘기했다
기억나는건 얘기하면서 강조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얘기를 해줬다.
자기가 29살에 독립한 얘기들...

물어봤다.
나 아직은 너한테 더 배워야 할거 같은 생각이 든다.
너를 보면서 항상 많은 걸 배우고 있다.
독립을 하면 이 기회를 버려야한다는게 아쉽다

Don 이 말했다.
자기가 29살에 독립을 했을때 자기는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니가 할수밖에 없기 때문에 넌 해낸다.
(영어로 한말을 우리말로 옮길라니 좀 이상하군 큼.)
저기 있는(당시 미팅룸 밖 유리너머로 보이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를 가르키며)
저 친구가 여기서 8년째 일하고 있지만 8년 지났다고 저 친구가 나처럼 되는건 아니다.
니가 여기 몇년 더 있는다고 '이제 충분히 배웠네' 하고 느끼는 순간이 오는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말이 니가 니 프로젝트를 하게되면 남 밑에서 배우는 것 보다
100배는 더 많이 배울수 있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무소에 와서 일하다가 떠나갔다고 했다
그들을 보며 자기가 생각하는 최선은
그들이 자신의 사무소를 차려 나가는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건축가로 성장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했다.

물론 얘기의 끝에 이런 말을 덧붙여주었다. 친절하게도..
가장 빠르면서 가장 악몽같은 길이라고...
자기도 처음 2년동안은 돈을 잃었단다. 쩝..

한순간 마음이 편안해 졌다가 순식간에 다시 먹구름이 몰려왔다.
ㅎㅎ
이건 농담이다.

Don 과 얘기를 하고 나서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다.
생각해 보니
배워먹는건, 즉 높은분이 주시는것 잘 받아먹는건 건축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벌써 학교다닌 횟수로만 7년째 먹었다.

이걸 언제까지 먹는다고 배가 불러서 완전체가 될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그런건 안되지 싶다.

Don 을 비롯한 내가 보아온 소위 일가를 이룬 건축가들에게서 나오는 예리함은
아마도 야생에서 살아남은 자들만이 가질수 있는 노련함과 경험, 그리고 그 강력한 생명력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싶다
우리에서 사육된 자가 뿜어낼 수 있는 눈빛이 아니다.

첫번째 고민의 순간이 지나가는 듯 했다.

111128 Y




이 글을 마지막으로 고민을 날려버리고자 한다.


  "세상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 가장 모르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오히려 타인은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데 나 스스로는 편견과 자기애에 사로잡혀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힘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 순간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누구나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때는 나와 같은 갈등과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하고자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생성되었는데 자기 인식의 벽 때문에 자신감을 미리 꺾는 경우도 자주 본다.

  그런 분들에게 감히 충고를 한다면, 자기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일단 시도를 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도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일단 시도한 것이라면 아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실패를 할 수도 있고 성공을 할 수도 있는데, 그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가운데 자기를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며, 이 자체만으로도 무척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선택과 시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것이 꼭 직업, 회사일과 관련된 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무엇이든 자기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들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시도를 해보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 안철수 '나와의 만남, 나의 발견' 중에서

111123 J



아 마음이 심란하다
퇴근후 집에와 한미FTA 날치기 통과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일단 "개새끼들" 이라고 한마디 하고 시작해야겠다.

정치.. 정치가 어느순간에서부터 남의 얘기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당장 애를 키워야해서 교육비를 걱정해야한다거나 집을 사야되는데
집값이 너무 뛰어서 정치가 피부로 와 닿는다는건 아니다.

건축가라는 직업이 사회와 얼마나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즉, 가장 걱정되고 짜증스러운건 우리사회가 저성장 지속발전의 단계로 접어들어야 할 시점에
터진 이 미국이라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경제적 사상과 구조를 가진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우리사회의 나아갈 길이 얼마나 왜곡되고 변질될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지금도 지랄같은 한국 건축시장이 어떻게 바뀌어 갈지 참으로 흥미진진해진다.
정말이지 우리나라에 있는, 또 미국에 있는 이에 관련된 놈들 모두 다 개새끼들이 아닐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건축가로서 건물을 완성하는 과정은 매우 다양하다.
예쁘거나 혹은 멋있는 디자인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건 그 중 일부일 뿐이다
그외에 건축가가 해야하는, 따라서 할줄 알아야 하는 영역이 아주 많다.
건축주 혹은 개발업자를 만나고, 다른 협력업체 사람을 만나고 혹은 건물을 사용할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만나서 토론도 하고, 협박도 하고, 설득도 하고, 설명도 하고, 웃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머 이런 것들이 건축가가 해야하는 것들이다.

어찌보면 이런것들을 하는것이 디자인을 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고 어쩌면 더 재미있는 일일수도 있다.
암스테르담의 사무소에 있으면서 파트너를 통해 이런 건축가로서의 행위들을 매일 본다.
파트너들은 건축가로서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그래서 권리를 주장할 줄 안다.
즉, 그들은 프로젝트를 지배한다.
초기디자인 단계에서부터 땅을 파고 완공식을 하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과정에서 그들은 아이디어를 내고 설득하고 관철시키고 싸우고... 그리고 해낸다.
따라서 그들의 건물엔 디자인부터 재료사용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다.

그들은 '건축가' 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어쩌면 매일매일 지켜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을 사회환경의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고 본다.
물론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사회시스템이 우리보다 좋아서 거저 만들어준것도 아니고,
네덜란드의 모든 건축가가 이럴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내가 당연하다고 넘겨버리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곤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조사하고 설득시키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곤 건축주를 협박한다.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안하면 당신은 손해를 보는거다. 니가 나와 일을 하고있으면 나를 믿어라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건물을 잘 팔릴 건물을, 공간을 만들어 주겠다.
싫으면 말아라. 니 손해지 내 손해가 아니다.'

이 협박에 안넘어간 건축주는 못봤다.
즉, 그들이 누리고 있는 건축가로서의 삶은 그들이 쟁취한 것이다.
스스로가 건축가로서의 자존감을 지키지 않는데 그걸 알아서 지켜줄 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건축주, 혹은 사용자와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말뿐만이 아닌, 실제 디자인 단계에서 많은 협동작업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끌려다니진 않는다.
소통와 제시, 이 두 가지는 함께 이루어 져야한다.

이 모든 것들이 건축가가 해야하는 것이다.
건축가는 사회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나도 저런것이 하고 싶었다.
컴퓨터앞에 앉아서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만나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완성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함께 하며 고민하고 의심하고 찾아내고 해결해서
결국 완성하는 그런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 성취감이야 말로 건축가 라는 직업을 택하고 수없이 고민되는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 건물을 짓고 싶다는 나의 욕망에 더해져
나를 독립이라는 길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111122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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