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1년의 사무실 행사 중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도 할 수 있는

연말 workshop을 12월에 다녀왔다. 

앞서 쓴 글에서와 같은 이유로 올해는 workshop을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여름쯤에 하곤 했었지만 결국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름 감개가 무량한 시간이 왔다. 

나름 "진지"하게 준비하고 "진솔"한 얘기를 하루종일 하는 그런 workshop이 이제 4년째에 접어들고,

이제는 사무실 구성원들도 나름 적응을 하고 있고, 목적을 이해하고 있어서 그런지 전보다 확실히

수월해졌고, 생산적이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올해도 크게는 두 개의 세션이었다. 

하나는 작년 workshop에서 세웠던 올해 2022년의 목표들을 직원들이 평가하고, 

나름 그것에 대한 성적(?)을 메기고 (주로는 소장들이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를) 평가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역시나 내년 2023년에 대한 목표를 함께 설정하는 시간이다. 

직원들이 작성한 평가표는 다음과 같다.

음... 22년에 대한 평가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을 적으라면 

(자세한 것은 위에 있으니까.. )

올 한해 사무실에서 했던 것들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들은 주 4.5일제의 도입과 관련되어있다는 것이다. 하하하하하;;;;;

업무강도, 사무실의 일과 개인 삶의 균형, 적절한 휴식 등등 늘 단골처럼 나오던 주제들은 

이 제도로 대부분 해소되었고, 그 어떤 제도나 시도들 보다 만족도가 높았다.

어쩌면 가장 원했던 결과이기도 하고, 이 제도를 시작하면서 기대했던 결과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석연찮다.

사무실에서 덜 일하게 하는게, 사무실에서 가장 만족하는 것이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ㅋㅋ

 

반면 가장 불만인 것은 소장들의 일정이 공유되지 못해서  

도대체 어디서 멀 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ㅋㅋ

소장에 대한 감시와 관리가 필요하니 일정을 공유해달라... 

이젠 도망다니는 것은 포기해야할듯 하다. 

다음은 2023년에 대한 바램들이다. 

사실 머 자세한 내용들이야 굳이 하나하나 언급할 필요없지만 흥미로웠던 것은 

직원들이 회식이나 문화의날과 같이 조직단위로 함께 하는 활동들이나,

멘토멘티와 같이 직장에서 만들어진 관계를 위한 어떤 것이나, 

소장과의 면담, 혹은 식사와 같이 일반적으로는 직장내 상사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규정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유튜브를 통해 배운 소위 "MZ세대 직장인들의 생활패턴" 과는 너무나 다른 요구들이었다.

아... 충격이었다. 

난 유튜브로 멀 배웠던 것인가?

내가 문제인가, 쟤들이 문제인가, 아님 유튜브가 문제인가?....혼란스럽다 ㅋ;;

사무실의 막내와는 이제 띠동갑이 넘게 차이가 난다. 

그들을 대하는 것이 한편으론 어렵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유튜브로 듣고 배운데로 했더니 애들이 다른 얘기를 한다. 

음...이게 나, 애들, 유튜브 중 누군가가 잘 못된게 아니라면....

우리..가...잘...해...줘...서??

우리..가...꼰대가...아니...라서?

우리..가...좋..아....서? ㅋㅋㅋ

흐흐흐흐흐~~ 하하하;;;;;

암튼 이런 요구들을 한다는 것이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론 부담되기도 하고 머 그렇다..

어쨌든 요구데로 내년엔 더 많은 면담과 회식과 야유회와 단합대회를 열기로 했다.

대학때 익혀두었던, 몸이 기억하고 있던 그 모든 것들을 다시 깨울때가 되었다 ㅋㅋ

 

2023년, 모두가 최악의 경제상황을 예상하고 있는 해를 앞둔 올해의 workshop은 나름 의미가 있었다. 

아직은 우리도 내년이 어떨지 귀로만 듣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피부로는 못느끼고 있지만

어쨌든 우리가 해야할 것은 단순한 생존과 버티기가 아니라 

그 이후에 다시 찾아올 좋은 시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야 버티는 것, 생존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우리는 늘 건축이라는 이 시장의 앞에서고자 노력할때 우리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지

그저 이 시장에 남아있는 것이 목표가 되었을때는 그만해도 되는 때라고 믿기 때문이다. 

올해는 이를 모두가 다시한번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한 자리가 되었다. 

 

모두에게 끝으로 당부했던 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물리적, 제도적 노력들과 함께

우리의 생각과 마음가짐의 전환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진짜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나부터도 그렇다. 

끝으로 세심하게 준비해준 세지에게 감사하다. 

 

Y

 

 

 

 

어느새 2022년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22년의 중간중간에는 올해가

어떨때는 끝날거 같지않았고,

어떨때는 빨리 끝났으면 했고, 

언젠가는 이렇게 뒤돌아 떠올려보는 때가 올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해다. 

과거 언제고 안 어렵고 안 힘든 해가 있었겠냐 만은, 

이상하게 올해는 지독히도 괴로웠던 한해로 기억된다. 

하나하나 하루하루 되돌아보면 좋았던 일들도 많았겠지만 

어쨌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그렇다.

 

돌이켜보니 되지도 않는덤핑수주를 하고, 온갖 거짓말들로 모두를 속였던 새끼

계약할때 했던 말과는 달리 현장은 수준미달에 대표는 현장에 나타나지도 않는 새끼

현장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안하고 다른 사업에만 관심이 가있던 새끼

도면이고 설명이고 다 무시하고, 수준이 안되도 너무 안되는 현장소장만 데려다 놓는 새끼

협박과 으름장이 일상인 새끼

공사하라고 돈 줬더니 그 돈으로 지 개인적인 일에 쓰는 새끼

공사막판에 추가공사비를 마구 청구하더니 준공을 인질로 삼는 새끼

준공시 시공사 인증할려면 돈을 달라고 하는 양아치새끼

현장에 건축주가 감독관이라고 데려다놨더니 시공사랑 골프치면서 히히덕 거리는 새끼

자기때문에 건축주들이 그 고통을 받고 있는데 여전히 SNS에 열심인 새끼 

 

놀랍게도 이 모든 새끼들을 올해 한꺼번에 만났다.

올해 벌어진 괴로움의 근원은 바로 이런 시공사들 때문이었고, 

그 중에 몇놈은 정말 욕이 튀어나올만큼 비정상적이었다. 

저런 놈이 그 동안 어떻게 이 바닥에서 얼굴 들고 일을 해왔나 싶었다. 

아니 어쩌면 이 바닥이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SNS 덕분에 더 그렇지만, 이 바닥은 우리가 봐도 

정말 진흙탕이고 그 안에서 옥석고르기는 너무나 어려운 곳이라고 느낀다. 

우린 이 진흙탕속에 있고, 그동안 이 안에서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고 한편 자부했는데도 그렇다.

이러니 다른 분야의 눈으로 이 바닥을 바라보는 건축주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질까.

저런 인간들이 나 잘하네~ 하고 활동하고 있고,

그런 인간들 때문에 본인이 이런 일을 겪고 있고,

법이든 머든 어찌 해볼려고 해도 실상 할 수 있는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느낀 감정은 분노라기보단 황당함이 아닐까.

옆에서 직간접적으로 겪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런 분노와 원망으로 한해의 일들을 돌아보다보니 

결국은 돌고 돌아 이런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왜 이를 막지 못했는가. 

결국 아직도 사람보는 눈이, 상황을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나름 적지 않은 현장을, 적지 않은 여러 시공사들과 진행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세상은 넓고, 별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이상한 인간들도 많았던 것이다. 

 

이를 교훈삼아 여러가지 내부적인 시스템의 수정과 

정책(?)의 변경을 논의하고 있다. 

"경험했으니 나아져야한다"

올해를 정리하며 떠오른 한마디다.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가 완벽할 순 없고, 앞으로도 또 여러일들이 생길 수 있겠지만, 

우린 그럼 또 경험하고 더 나아지면 될 것이다. 

 

올해 많은 일들을 겪으며

이해할 수 없을만큼 이상한 놈들도 있었지만

고마웠던 사람도 여럿이었다.

어려운 상황에도 소장보다 더한 열정과 애정으로 임해준 직원들,

우리보다 훨씬 더 괴로우셨겠지만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으셨던 건축주들

(물론 끝내 흑화되버린 분도 계셨지만.. ㅠ)

번거롭고 귀찮고 돈도 안되는 일이지만, 부탁에 흔쾌히 나서준 시공사 

 

올해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결국 사람때문에 벌어진 일이긴 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해결해 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사람 덕분이었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을 많이 만들어 놓느냐가 

앞으로 닥쳐올 여러가지 일들을 넘어가는데있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올해 벌어진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건 아니다. 

아직도 몇몇은 해결 중이고 결국 해를 넘길 것 같다. 

하지만 이제 큰 고비는 넘긴듯 하고, 그렇게 올해는 끝나간다. 

올해 이런 일들을 겪어서 그런지 왠지 내년엔 좋은일이 있을거 같은 막연한 기대가 생긴다. 

아마도 왠만해선 올해보다 좋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다

올한해가 우리에게 준, 의도치 않은, 선물인거 같다. 

좀 더 차분하고 단단하게 내년을 준비할 수 있을거 같은 의욕이 생긴다. 

이렇게 2022년의 끝에서 23년의 희망을 꿈꿔본다. 

 

참고로 나의 삼재도 올해로 끝이다. 하하하~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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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첫째주부터 시작했으니 오늘부로 주 4.5일제를 시작한지 네번째 주가 되었다. 

올 초, 아니 정확하게는 작년 말 워크샾때 "오후 4시 이후 자율퇴근제" 를 하기로 결정하고

새해가 되어 지난 5개월이 가는 동안 4시에 퇴근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일하는 사람들이야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크겠지만

늘 상황은 바쁘고,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사건들이 거의 매일 벌어지고,

늘 그렇게 일이 손보다 조금 더 많으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자율퇴근제를 시작할때 속으로는

장기적으로 장소와 시간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본인에게 더 적합하고 효율적인 시간대와 장소에서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당장의 일정과 할일이 급했다.

누가 그렇게 시켜서가 아니라 구성원들 스스로가 그랬다.

이런 이슈에 관해서 만큼은 역시나 반 강제가 되지 않는 이상 변화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많은 것들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야근을 포함한 퇴근과 심지어 출근까지도 그렇다. 

아직은 설계라는 것이 들인 고민의 시간과 매만지는 손길의 양에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 생각하기에,

우리가 그 동안 노력해온 것은 단순히 근무시간을 얼마를 줄일까 보다

어떻게 하면 손으로 하는 일의 시간을 줄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을까 였다.

지금도 단순히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이 우선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쉬는 시간은 더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4.5일은 일하고 2.5일은 쉬는 걸 해보기로 했다.

 

4.5일제를 오랫동안 준비한 것은 아니었기에, 정말 가능할까 라는 걱정은 당연히 있었다. 

지금도 늘 쫓기듯 바쁜데 4.5일을 하면 사무실이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늘 하던 걱정도 여전히 있었다.

하지만 걱정하고 준비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특히 이 이슈에 대해선,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급작스럽고, 조금은 즉흥적이긴 했지만 4.5일제 시행을 구성원들에게 공표하고 6월부터 시작했다. 

 

시작하고 나서 현재까지 확인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너무나 당연하다는듯이 사무실에는 아무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의미가 사무실이 현재 아무 문제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4.5일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없는 거 같다는 것이다. 

우려했던 업무의 공백도 크게 느껴지진 않고, 예정했던 일정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물론 이로 인해 건축주든 누구든 어떤 결손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그런 것이 문제로 돌아오진 않았다. 

그렇다보니 우린 그 동안 무엇을 그리 걱정하고 있었고, 

무엇이 두려워 준비를 하려했고,

시행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하는 허망한 맘이 들었다. 

 

두번째는 무엇보다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너무 좋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금요일 1시 이후의 오후는 그 동안의 금요일 오후와는 달랐다. 

첫번째 금요일 오후에,

우선 점심을 조소장과 조금 여유있게 먹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무실의 여러 이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사무실에서 늘 마주보고 앉아 있지만 그 안에서 나누는 얘기는 

주로 직면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얘기가 주로 였다면,

금요일 오후의 대화는 좀 더 장기적이고 차분하게 사무실을 돌아보고 준비하는 얘기들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사무실에 앉아 주중에 정리하지 못했던 여러 일들에 대해

차분하게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설계에 관련된 것이건,

현재 갖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이건,

사무실 운영에 대해서이건,

혹은 사람에 대해서이건,

늘 정리하고 또 정리해서 생각을 명쾌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 나의 의무일텐데,

그래야 잘못되고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한 위험을 최소화 하는 것일텐데

이 시간을 통해 그럴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구성원들을 위해 시작한 것인데 오히려 나에게도 큰 힐링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현재까지는 4.5일제가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작동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건 지금의, 혹은 앞으로의 사무실 구성원들과 

건강하게 오랜시간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구성원들이 잘 쉬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 역시나' 믿고 있다.

 

늘 조금씩 나아지고 싶다.

 

Y

요즘 사무실을 하면서 강하게, 그리고 자주 느끼는 것 하나가 

참아야 할때가 많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매 순간 참고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멀 참느냐?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참는 것이고, 자존심에 큰 상처나 나는 상황도 참는 것이다. 

그럼 왜 그래야 되느냐?

그건 내 맘가는데로, 내 성질나는데로 해서는 해결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상황이란 건 나 혼자가 아닌 주변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서이고, 

참지 않으면 지금의 현재가 다 망가져버릴 것 같기 때문이고,

긍정적으로 보자면, 뜻대로 안될때마다 다 던져버리면 

끝까지 감으로 인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울 기회가 없을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하게는 그 이후의 뒷감당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는 던질 줄 아는 것이 용기요 멋짐이라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참을 줄 아는 것이 용기요 그때의 뒷모습이 멋짐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 깨달음이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어떤 일인가로 피로하다. 

남의 감정에 이입이 되고,

성난 감정을 상대하고 얘기를 이어가고,

어떤 결론을 향해 설득해 가는 것은

매우매우 피곤한 일이다. 

이런 감정적 상태로 인해 인내심이 바닥이 나니, 

이 인내심으로 눌러두었던 화와 불안함, 삐뚤어짐 등이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것 같다. 

이럴때 필요한 것은 이 부정적 에너지를 빨리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이번주는 그런 주가 되도록 해야겠다. 

 

쓰다보니 먼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되는지 혼란스럽다 ;;;;;;

일단 다 모르겠고, 

모쪼록 주변의 모든 분들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 

하하하하하하하~~

끝~

 

Y

 

 

 

사무실의 매니저가 해주는 일 중에 하나가 조달청에 올라오는 설계공모들을 정리해주는 것이다.

시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적게는 하루에 서너개, 많게는 하루에 열 몇개가 올라오기도 한다.

매니저가 정리해준 것을 오고가며 보고 있으면

"이렇게 프로젝트가 하루에도 몇 개씩, 한달이면 몇 십개씩 쏟아져 나오는 게 흔한 일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나라들도 이렇게 현상공모가 매일매일 몇개씩 나오나?

유럽에서 있을때는 그런거 같지 않았는데, 설마 우리나라만 이런 건가?

우리는 정말 대단한 나라에 살고 있는 건가?

3월 9일까지는 그랬나? (ㅠㅠ) 

앞으로는 어떻게 되지? (다시 ㅠㅠ)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이 이 많은 프로젝트는 다 누가 가져가나?

우리는 그 많은 기회의 바다를 왜 구경만 하고 있지?

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러면서 공모 심사위원들을 이렇게 보고 있으면,

아 이 기회의 바다가 혹시 들어가보면 물이 썪어 있거나,

너무 얕아서 멋지게 머리부터 떨어지는 다이빙을 했다가는 머리가 깨지는 그런 바다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또 든다. 

하지만 머 생각만 하고 있으면 어차피 되는 건 없으니 

머리부터 들어가진 않더라도 발부터라도 들어가보자 라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다시 

현상의 바다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현상은 모두가 다~~하시는 말이지만....참... 어렵다. 

지난번에 이런 이유로 떨어졌으니 이번엔 요렇게 하면 

또 이번엔 요렇게 했다는 이유로 지적받고 떨어지고, 

그래서 다시 저렇게 하면 이번엔 이렇게 하는게 더 좋겠다며 떨어진다. 

 

현상에 대해 얘기하면 어떤 분들은 심사위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자기 소신대로 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심사위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그 사람의 관점에 이입을 하면,

우선 정신건강에 매우 해롭고, 도대체 계획안의 갈피와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에이 우리 좋은 걸로 하자 하고

우리 소신껏 하면 그걸 또 이해를 못하고 여러 지적을 받으며 떨어진다. 쯥..

 

한참 공모를 할때 느꼈던 것이고, 잠시 잊고 있기도 했고,

이번에 다시 공모를 하면서 느낀 거지만,

속된말로 정말 운빨이 중요한거 같다. 

심사위원에 따라 같은 계획안도 좋게 봐주는 경우가 있고,

지적을 받는 경우도 있다. 

같은 요소도 저사람들은 좋다는데 이사람들은 감흥이 없다.

모든게 엿가락 장수 같은 심사위원들 맘이다.

 

그래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어떻게 하면 된다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저

'마침' 이때의 우리 생각과 노력과 

'마침' 그때의 심사위원 구성과

'마침' 그 심사위원들의 성향과

'마침' 그 심사위원들의 개인적 경험에서 기인한 생각이

딱! 맞아 떨어질때,

바로 그때가 당선이 되는 때이다 ㅋ

 

명언대로 떨어지는 이유를 찾자면 수십가지고, 

당선되는 이유는 보통 한두가지이다. 

 

사실 그래서 공모를 한번 떨어지고 나면 

다시 할 엄두가 잘 안날때가 있다. 

저 '마침'+'마침'+'마침'+'마침' 이 딱 맞아떨어질때를

기대해야 한다는게 토할거 같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실 준비하는 과정은 즐겁다.

저 '마침' 구성된 심사위원들을 설득해보고, 만족시켜보고 싶은 승부욕이

막 생긱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변태같게도...

건축주가 없기에, 건축주의 개인적 욕망이 반영되지 않기에

순수하게 건축적인 우리 욕심과 공공을 위한다는 자기위로의 만족에만 충실하면 되기에, 

설계라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고민과 논의가 즐겁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당분간은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설계공모리스트들을 더 쳐다보려 한다.

지금의 이 푸념을 뒤로하고 잠시만 쉬었다가...

우리의 다섯번째 당선작을 찾아서 크 ㅠㅠ

 

Y

 

 

 

사무소를 하다보면

많은 건축주들을 만나고, 많은 프로젝트들을 만나게 된다. 

큰 프로젝트는 그것마다,

작은 프로젝트는 또 그것마다

다양한 상황이 있고, 욕심이 있고,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나가다 보면 

그것이 우리 일상이 되고, 

그렇게 하루하루 정신없이 시간은 가고, 

어느 순간에는 그것들에 무뎌지게 되고, 또 그런 과정들이 자연스러워 진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듣고, 그것에 공감하고, 고민하고 

하는 모든 과정에 공감하고, 설레여야하는 것이 설계인건데,

또 그러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것이고,

건축주도 그것을 바라고 함께 그 과정을 시작한 것인데,

어느 순간에는 그것들이 그저 일이되기도 하고, 풀어야할 숙제가 되기도 하고,

감정과 공감보다는 이성과 과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반복되는 과정과 시간이 주는 무뎌짐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그 안에, 우리가 하는 이 작업 안에, 

사람이 있고, 때로는 절박한 사연이 있고, 절실한 간절함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한 순간들을 만나게되면 

우리에겐 그저 해결해야 하는 하나의 과제로 느껴지던 이 프로젝트속에

한 사람의, 한 가족의 삶과 바램과, 달디 달고 쓰디 쓴 진짜 사연들이 담겨져야하는, 

그들에겐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프로젝트 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때로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노고와 아픔과 그 안의 희망을 보면서, 경외심과 존경심과, 이유모를 감사함을 갖게 된다.

이 일을 하는 것에 책임감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

 

얼마전 시작한 응암동 프로젝트가 그랬다.

다시금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주었고,

지극히 인간적인 존경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저 능력껏 많은 걸 해드리고 싶은데 

그 능력이 보잘것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감사하게도 그 분들과 얘기하는 동안 

우리에게 있는 하나하나의 사연에 다시금 집중할 힘을 얻었다.

 

Y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고, 모두가 다 동의하진 않겠지만

나는 '현장도 살아있는 생물이다' 라고 생각한다.

현장들 마다도 

현장의 상황이 다르고, 

주변 이웃들과 여건이 다르고, 

공사 규모가 다르고

건물의 목적이 다르고, 

효율성의 기준도 다르고,

무엇보다 시공사가 다르고,

그안에 작업하는 작업자의 노하우와 수준이 다르다. 

 

따라서 단순히 현장에서 무조건 도면대로,

무조건 FM 대로만 외칠수 가 없다. 

각 공정에서도 반드시 한가지 방법만이 정답이다라고 할 수도 없다. 

물론 모든 것에는 기본이 있고, 그 기본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공자가 현장에서 판단하는 것도 있을테고,

현장소장이 현장에서 판단하는 것도 있을테고,

감리자가 현장에서 판단하는 것도 있을테고,

상황은 모두 들어봐야 한다.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본인이 아는 것만이 정답인 것 처럼 잔소리를 하는 것,

어떤 상황이든 도면대로만 하라고 하는 것은 

'감독' 은 되겠지만 '감리' 라 하긴 어렵다. 

 

그것이 감리가 어려운 것이고, 

현장소장이 어려운 것이고,

그래서 좋은 감리와 현장소장은 

도면이라는 합의된 원칙하에서

현장에서 마주하는 복잡다단한 상황들에 합리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일 것이다. 

이 안에는 건축주라는 변수를 대하는 것도 포함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장에서 도면과 상이한 부분이 발생하거나,

설계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한 상황이 생기는 것에 매우 불편함을 느낀다. 

그럴때면 설계때 왜 이런 현장상황을 왜 고려못했지? 하는

민망함과 건축주에 대한 미안함도 든다.

그래서 '감리'가 필요없이 '감독' 으로서 도면대로만! 외쳐도 현장이 마무리가 되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그런 현장은 극히 드물다.

수많은 조건들이 서로 부딪치고, 그 안에서 이견이 생기고, 상황이라는 것도 생기고,

수많은 관계들이 생기고, 현장은 그들 속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현장이란 이런 것임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유연하고 합리적이고 잘! 해결할 수 있을지 서로 이해하고 공유하고 인정해야한다.

남의 얘기가 아니고 우리현장에도 필요한 얘기다 -_ -;;;;;

 

끝으로 박인석 교수님이 '건축이 바꾼다' 라는 책에서 정리해논 감독과 감리에 대해 소개하고 마치려 한다.

"감독이란 말 그대로

계약대로 공사를 이행하는가, 즉 설계도서대로 공사를 이행하는가를 감독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리란 그보단

설계의도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설계도서의 해석 및 자문과 현장 여건 변화 및 업체선정에 따른

자재와 장비의 치수, 위치, 재질, 질감, 색상 등의 선정 및 변경에 대한 검토, 보완에 더 가깝다."

 

좋은 감리가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Y

 

바쁘다는 '핑계' 는 아니었다.

최근의 지난 몇 년동안에는 정말 바빴다. 

그러다 보니 밤에 집에 들어갔을때는 운동이란 걸 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자기전에 누워 웹툰 좀 보다가 자는게 낙이자 하루의 마무리였다.

운동을 해보려 시도를 안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길게 가진 못했다. 

 

한살 한살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안좋아 진다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나 주로 차로 이동을 하다보니 걸어다니는 거리가 정말 얼마 없었다. 

낮잠을 자지 않고는 하루일과를 다 소화할 수 없을 만큼 저질체력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 늘 입버릇처럼 달고만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등에 난 종기를 제거하려 사무실 근처 병원의 외과를 찾아갔다.

이 외과는 치질로 유명했는지 환자의 9할은 치질환자였다.

그 사이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마침내 진료실에 들어갔을때 진료실 침대에 붙어있는

"치질환자 진료자세" 를 보여주는 그림을 보았고, 그 그림속 자세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런 자세로 진료받을 생각만해도 너무 굴욕적일거 같았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체력이 딸려 골골댈때도,

건강검진에서 운동 안하면 빨리 죽는다고 그렇게 겁을 줄때도, 

하루에 낮잠을 한시간을 자야 오후 일정이 가능할때도,

늘 많이 먹으라고 권하던 엄마가 그만 먹고 살빼라고 타박할때도, 

안하던 운동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물론 치질예방과 운동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냥 치질을 피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운동뿐이라는 막연한 미신이었다. 

 

그렇게 해서 약 두 달 정도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물론 퇴근해 집에 가서 하는 거다 보니 너무 늦거나, 너무 피곤하면 못한다. 

그래서 많아야 일주일에 4,5번 정도 하는 거고, 코스는 동네를 크~게 한바퀴 도는 것이다. 

이처럼 비록 소박한 운동이긴 하지만 나름 꾸준히(?) 하면서 새삼 느낀 것들이 있다. 

 

첫번째는

일단 다 필요없고, 버티면 된다는 것이다. 비록 좀 느릴지라도.

얘기했던데로 퇴근 후에 하는 달리기이다 보니 컨디션은 늘 다르다. 

늦게 집에 간 날에는 무척 피곤한 상태여서 출발해 열발자국정도 뛰었을때 

벌써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 불편해진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바로 든다.

저녁을 늦게 먹거나 많이 먹거나 했을때도 달리기를 시작하자 마자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든다. 역시나 포기하고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바로 든다. 

또한 동네를 도는 거다 보니 운동장을 달리는 것과 다른게 달리는 코스가

거의 대부분 오르막이거나 내리막으로 되어 있다. 평평한 구간은 많지 않다.

오르막은 오르막대로 허벅지가 터질것 같이 힘들고,

내리막이라고 그 속도대로 달렸다가는 곧 폐가 찢어질 것 같은 숨가쁨을 느끼게 된다.

이럴때도 그만 멈추고 집에 갈까 하는 생각이 바로 든다.

따라서 이럴때는 속도고 나발이고 우선 버티는 것이 필요하다. 

몸이 무거울때, 컨디션이 안좋다고 느낄때, 오르막에서 허벅지가 터질거 같은 고통을 느낄때는

평소의 보폭보다 훨씬 줄여서,

마치 걷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는 말고 계속 약하게라도 뛰어야한다. 

너무 멀리보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에만 집중하면서 가야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호흡이 안정되고, 다리의 통증도 견딜만해지고,

무거웠던 몸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컨디션이 좋을때는 원하는 속도와 보폭으로 달려나가면 되지만,

그렇지 않을때는, 느리고, 마치 걷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버텨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우선은 멈추지만 않으면 다시금 페이스는 올라오게 되어 있다. 

 

두번째는 

눈이 바닥을 쳐다보지 말고 앞을 보고 달려야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뛰고 있는 내 발을 쳐다보고 달리면 

더 빨리 힘들고 지친다.

그럼에도 자꾸 바닥을 쳐다보는 것은 힘들어서이기도 할 것이고,

혹시 머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하반신 아래는 지면에 닫는 내 발과 다리의 감각에 맞기고, 

고개는 정면을 바라보고 달리면 훨씬 덜 힘들고, 더 멀리, 그리고 오래 달릴 수 있다.

즉, 내 다리와 발을 믿고 눈은 앞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난 두달여동안 나는 그랬다. 

 

세번째로는 

내 호흡과 페이스와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호흡이 중요하다.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소리, 그리고 그에 맞춰 움직이는 내 팔과 다리

이것들이 서로 익숙한 리듬으로 함께 움직일때 나는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먼거리를 오랜 시간동안 달릴 수 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어느 순간 내 몸은 내 머리와는 별개로 

머리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도, 몸은 스스로 움직이고,

이렇게 달리고 있는 상태가 마치 원래의 상태인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그런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 호흡과, 함께 움직이는 팔다리의 리듬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호흡과 리듬을 잃어버렸을때,

이를 기억해내고 내 페이스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20대 한창때에 비하면 달리는 거리나 시간이 형편없지만,

대신 지금 하는 달리기는 내가 가진 체력의 한계 덕분인지, 

나의 온 신경과 온 마음가짐을 통해 노력해야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달리기를 통해 단순한 달리기 이상의 

많은 것을 느낀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도, 건축도, 사무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깊게 하게 된다.

우리가 하는 일도, 지금 우리 사무실도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속도와 보폭으로 앞으로 쭉쭉 달려나갈 때가 있고,

힘들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때, 마음이 심난하고 무거울때, 원하는데로 알아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럴때는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보폭을 줄여가면서, 호흡을 깊게 하고, 걷는 듯 뛰는 듯 하며 꾹 버텨내야 한다. 

아무리 느릴지언정 멈추지만 않으면 

어느 순간 컨디션은 올라오게 되어 있고 다시 원하는 속도로 달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그리 오랜시간이라 할 순 없지만, 

사무실을 하면서, 사무실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사이클의 반복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 좋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고, 나쁘다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라는 것도 깨닫는다.

그저 지금 우리의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우리의 리듬이 깨지지는 않았는지, 

눈이 바닥을 보는 것이 아니고 앞을 보고 있는지만 신경쓰고,

우리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좋은 사무소로서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을때든 나쁠때든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소박한 달리기이지만 달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걸 배운다.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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