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중순에 SAAI 박인영소장님과 함께

난곡사거리 행복주택 및 복합체육시설 공모를 시작했습니다.

약 280 세대 규모의 행복주택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복합체육시설이 포함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젊은세대와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한 약 280세대의 집합주거는

저희가 그동안 다뤄보지 못한 규모였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많은 경험이 있는 SAAI 와의 협업은

그 당락을 떠나 저희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시작부터 마감까지 약 한달 반 정도의 넉넉하지 않은 시간동안,

서로의 다른 생각을 배제하지 않고 더해가며,

매일매일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덕분에 시간안에 마무리할 수 있었고,

몸은 힘들었지만, 동시에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고,

처음 같이 일하는 두 사무소의 직원들 이었지만, 

나름의 끈끈한 정이 생겼습니다.

SAAI 직원분들이 마감을 하고 짐을 빼서 돌아가고나니,

허전하고 아쉬웠습니다.

 

마무리 하는 동안 불안하고 떨리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스스로도 괜찮다고 생각한 결과물이 만들어졌기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고,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진심으로 그 과정이 훌륭했기에,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노력과 과정들이 결과로 이어져야만 

그 의미가 세상에 만들어지는 현상설계라는 것의 특성상

모두의 노력과 의지와 열망들이 혹시 헛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두려움이 PT 전까지 괴롭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의 노력만큼의 운이 함께 해주어서 

당선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기쁜건 그 결과 자체뿐만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한 두 사무소의 구성원들에게

지난 시간동안의 노력과 열망이 모여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늘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 하자고,

그렇게 말 할 수 있어서, 그들에게 그 노력의 대가가 분명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 것,

그것이 가장 큰 기쁨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0년 3월호 대한건축학회지에

'건축가의 졸업설계' 라는 제목의 특집이 실렸습니다.

거기에 부끄러운 학부졸업설계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학부와 대학원 졸업설계 중에서 어떤 내용을 써볼까 고민하다가,

이번 호 특집 주제에 담긴 의미가

가장 어설펐지만, 동시에 가장 의욕적이었던 그 시기를

돌아보고 소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학부때 작업에 대해 적기로 했습니다.

쓰는 동안 그 시절을 돌아보며,

최대한 사실 그대로를 기억해내려 노렸했는데

역시나 사람의 기억이 그렇듯이

과거의 그 모든 순간들이 찬란하게 왜곡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었던 것 같고,

진지했던 것도 같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많이 가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건축을 지금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이상적으로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세상 일의 전부인 것 처럼 느껴지던 현실적인 고민과 어려움들이 있었겠지만,

지금 돌아보니 건축과 도시를 내맘대로 논하던 그때가 더 낭만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쓰는 동안 재미있었습니다.

졸업설계를 중심으로 관통하던 나의, 혹은 우리의 2006년의 생활들,

오고가며 매일같이 지내던 공간들, 같은 공간에서 웃고 놀고 술마시던 당시의 사람들

그 모두를 떠올려볼 수 있었고, 20대의 중반을 넘어가던,

졸업을 앞두고 가장 고민이 많았던, 하지만 동시에 지금 보면 인생에서

가장 희망찼던 순간을 기억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의 내가 원했던 모습이 지금의 나의 모습과 닮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에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잘 될거라는 막연한 꿈만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그런거 같습니다.

10년 후, 혹은 그 이후 어떻게 될거란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있진 않습니다.

지금도 그저 잘 될거란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하루하루, 한달한달을

정말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 고민과 노력들이 모여, 어떤 길로 우리를 데려다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 길이 결코 나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시 이런 무턱댄 믿음이 낭만이라면,

여전히, 앞으로도 당분간은 낭만적이려 노력하겠습니다!

Y

 

주택이나 작은 상가 등의 소규모 건축물을 설계와 감리를 진행하다보면 마지막 관문이라는 느낌의 과정이 있다.

준공 검사 그리고 그 준공검사를 수행하는 자.

준공 검사는 사용승인 검사를 편의상 준공검사라 부른다. 그리고 준공검사를 수행하는 건축사를 ‘업무대행자’ 또는 ‘특검’이라 부르기도 한다.

누가 언제부터 ‘특검’이라는 용어를 썼는지 그리고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특검은 ‘특별검사자’를 줄여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자꾸 특검, 특검 부르면 뭔가 잘못한 것 같고, 주눅드는 느낌이 자연스레 들게 된다. 부르는 말이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바, 굳이 특검이라는 말을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법에는 사용승인의 검사를 담당할 권한이 있는 공무원(허가권자)의 업무를 건축사에게 대행을 시킨다는 의미로 ‘업무대행자’로 명칭을 정한다.[건축법 시행령 제20조] 건축주와 대화하면서 제3자로서 호칭을 할때는 그냥 ‘지역 건축사’ 또는 ‘준공검사 건축사’정도로 애둘러 얘기한다. 특검이라 부르기는 싫고, 업무대행자는 너무 딱딱한 느낌이다.

 

사무소를 시작하고나서 꽤나 많이 사용승인 인허가를 진행해봤고, 그 과정에서 등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쭈뼛쭈뼛한 머리칼을 다잡은 적도 있었고, 반대로 너무나 쉽게 웃으며 준공검사가 마무리된적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겪어봤지만 지금도 역시나 정말 적응이 되기 힘든 과정이 바로 준공검사를 받는 과정이다.

 

지난 블로그에서 준공검사에 관한 글을 쓴적이 있다. 그때는 어떻게 하면 준공검사를 능숙하게 잘 받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보고 공유해보고자 하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 글을 쓴게 벌써 4년전의 일이다.

 

그 사이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사용승인 신청할 때 해당지역 건축사회에서 돈을 내라는 소리는 이제 안한다. 이 내용은 지난번 글에서도 쓴 바 있는데, 건축사가 준공검사를 하면서 해당 지자체로부터 법정 검사비를 받는데, 그게 얼마 안되니 지역의 건축사회에서도 별도로 돈을 걷었던 것인다. 이런 행위들은 나중에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받고 조사가 들어가면서 더 이상 이런 행위가 벌어지지지는 않는 것 같다.

또 바뀐게 있다. 16년 7월부터 시행된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감리의 분리이다. 설계,감리의 분리는 설계자가 감리까지 하게 되면 부실이 날게 뻔하니, 감리 법으로 정해서 따로 맡겨야하다는 것인데 이는 건축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의 처절함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러한 법이 지역 건축사들의 압도적인 지지속에서 통과가 된 것이라니, 직능인의 자존심보다는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몇 푼이 더 중요한 것이라니... 그 씁쓸함이란.

여튼, 이러한 법령의 개정으로 해당 지역의 감리는 법적인 지위와 우위를 가지게 되었고, 그 감리비의 계산단가도 보장받게 되었고, 심지어 그 돈을 건축주가 지급했는지도 법으로 정해놓았으니, 그들을 위한 안성맞춤 법안이라 하겠다.

이렇게 쏠쏠한 돈벌이가 되는 감리를 타지역에서 와서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우리 관내 건축사끼리 감리를 나눠먹어야지! 감히 타지역에서 감리를 할 생각을 해! 라는 생각일까?

이런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준공 검사를 받는 소위 특검을 받는 과정을 좀 더 어렵고 복잡하고 힘들고, 귀찮게 만들어서 건축주는 준공을 목전에 두고 설계를 했던 건축사에게 재촉을 하는 거고, 이런 상황속에서 설계자는 특검에게 부탁하고, 조아리고, 뭐하나 실수할까 조바조바하는 게 아니겠는가. 일이 잘못되어 트집이라도 잡히게 되면 몇주간 준공이 늘어지기 쉽상이고 담당 공무원은 알아서 처리하라고 뒷짐이나 지고 있는게 현재의 특검제도이다.

 

작년말과 올해초, 3건의 사용승인을 진행했다.

3건 모두 경기도에 해당되었고, 그 진행사항이 모두 달랐다.

한 건은 뜬금없이 특검건축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초대되어 검사는 뒷전이고, 행사에 참여하여 찬조금도 내고, 나중에는 주말에 그 건축사의 사무실까지 건축주와 같이 찾아가서 검사통과를 승인받았다. 마치 온화하게 베푸는 느낌으로.

 

두 번째는 같이 집을 둘러보고, 여러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시는 건축사를 만나기도 했고, 되려 집에 들어간 스팩이나 인허가방식에 대해서 궁금해하며 물어보시기도 했다.

 

세 번째는 3명의 건축사가 나와서 준공검사를 한다고 미리 얘기를 들은 지역이었다. 3명의 건축사가 나와서 이미 다른 지역에서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던 터라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3명이 나와서 검사를 한게 아니고, 한 명이 나와서 먼저 둘러보고, 일정을 이런저런핑계를 대면서 미루는 행태를 보였다. 이런 상황으로 시간이 2주가까이 지나면서 사무소나 건축주나 이미 인내가 극에 달해있는 터에 담당 주무관에게 하소연을 하게 되었는데, 어이없는 것은 담당 주무관이 자기 관내에서 3명의 특검이 나가서 검사를 하는 것은 처음 듣는 일이고, 자기가 직접 협회에 문의를 해보겠다라는 얘기를 들은 것이었다. 이 무슨 X같은 상황이... 그런 다음에 어떻게 됐을까? 담당 공무원은 서류상 보완나온거 빨리 처리하고 준공내버리자. 자기도 서둘러서 진행하는것을 돕겠다고 나를 위로했으니, 젊은 담당 주무관이 언급하지 못한 그 속의 얽혀있는 관계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첫 번째의 경우는 해당 개인의 이상징후라 보이니 그려려니 하더라도 세 번째의 경우는 뭔가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것이 농후하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2월에 건축사와 건축가를 대표하는 셋의 직능단체가 공동성명을 채택해 각 지자체와 담당 주무관, 지역 건축사에게 배포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단체가 모여서 공동성명을 낼 정도면 그 사이 얼마나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 노골적으로 반복되고 건축주와 설계, 감리자가 피해를 겪어왔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만한다.

 

여기에 공동성명의 글을 덧붙이며, 손에 쥔 한 줌의 알량한 힘을 가지고 완장질하지말고 그 책임과 권한을 올바르게 그리고 정직하게 사용하길 바라며 글을 줄인다.

 

PS.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건축주가 어려움을 같이 공감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위에 겪은 일들 모두 상황을 공감하고 같이 도움이 되기 위해 건축주가 인내하고 같이 노력을 해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작년 11월 초에 다녀왔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전시 "한국현대건축, 세계인의 눈" 에

초대되어 다녀온 사진을 이제서야 올립니다.

 

<한국현대건축, 세계인의 눈 1989-2019>는

한국과 헝가리의 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 30년 한국이 걸어온 근,현대사의 변화를 

대표적인 30팀의 건축가와 그들의 30개의 건축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5박6일간의 헝가리 방문기간 동안, 꽤나 빠듯한 일정속에서, 여러 선배건축가분들과 함께

의미있는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가 시작되고 나서 설 명절까지 약 20여일 동안 정말 여런 일정들이 이었습니다.

2개 프로젝트 마감(PT)을 했고, 현상 하나를 마감을 했고, 현상 하나를 또 시작을 했고,

계약을 하나 하기도 했고, 특검을 두 개를 받았고, 신입면접도 봤습니다.

한참이 지난거 같은데 따져보니 새해가 시작된 이후 20일정도 동안에

다 벌어진 일이라 돌아보니 놀랐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즐거웠던 건 마감한 현상의 당선 소식이었습니다.

당선은 열심히 잘 하는 것과 그 만큼의 운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담담하게 생각하려 하고, 그저 좋았던 운과 조언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보다도 혹시나 조바심을 가질 수 도 있는 사무소 구성원들을 

위해서 이 소식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광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채우는 것 보다는 비우는 것을 계획하는 것이다 보니,

건축가들에게 결코 쉬운 주제는 아닙니다.

저희도 이 곳에 비움이라는 광장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채워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였고, 그러한 고민을 어떻게 적절한 균형으로 계획하고 표현 할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이 나가면, 광장의 우연성을 담기 어렵고, 

또 너무 부족하면, 대부분의 우리 광장이 그러하듯이,

일상과 분리되어 비워진 채로 남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광장의 본질적 기능인 주변 흐름의 모임과 흩어짐의 중심,

기능적으로는 일상의 공간이면서, 사회적 공동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마지막까지 이것이 과하지 않은지에 대해

고민하고, 덜어내고 또 덜어내려 했습니다.

보이는 형태에 집착하지 않으려 애썻고,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려 노렸했습니다.

 

고생한 회종이, 종수, 주희에게 고마운 맘을 전하고,

조언과 도움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작년에 이름이 새겨진 홀더를 받아서 한해 동안 정말 

잘 쓰고 있습니다! 

미팅때 손에 없으면 먼가 불안한 그런 아이템이 되어 버렸죠! ㅎ

 

올해에는 직원들이 깜짝 생일선물로 가방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메고 다니던 가방이 너무 없어보였는지, 

미팅하러갈때 만이라도 메고 다니라며 골라주었는데,

무엇보다 맘에 드는 건 가방 속입니다.

열면 보는 것 만으로도 상큼한 오렌지색 속살이 나오는..! ㅎ

 

사실 원래 메고다니던 가방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투표까지 해서 골라줬다니 그 맘이 고마워서 

애정을 갖고 메고 다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ㅎ

 

모두들 정말 고마워!

난 그저 너희들이 조소장 생일엔 어쩌려고 이러나 하는,

너희들의 주머니가 걱정이 될 뿐이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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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저녁으로 고기도 먹고, 맥주도 먹고 지하철역앞에서

주말 잘 보내라~ 하며 헤어졌습니다.

 

그리곤 술도 깰겸 여기저기서 어슬렁 거리다 가방을 가지러 사무실에

가는 길에 보니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흠... 누가 남아 있나~ 하며 들어갔더니 아까 지하철역 앞에서 헤어진 지은이.

"머야! 너 왜 여깄어?" 했더니

아무래도 하던거 더 하다 가야할거 같아서 그 길로 계단을 다시 올라와서

사무실로 왔답니다.

 

세상사 살다보면 사람이 머 별거 있겠습니다.

그냥 이런거보면 고맙고 기특하고 맘이 짠~하고 다 그런거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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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지역아동센터 가 Archdaily 에 소개되었습니다!!

 

 

https://www.archdaily.com/931525/cheongsong-childcare-center-jya-rchitects

 

Cheongsong Childcare Center / JYA-RCHITECTS

Completed in 2019 in Cheongsong-gun, South Korea. Images by JYA-RCHITECTS. A childcare center is a space for alienated “children” of a “district.” It is the only space for play and care in a community where the children can...

www.arch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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